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배상훈 성균관대 교육학과 교수

지난 5월 3일 대통령직 인수위원회는 윤석열 정부가 추진할 110대 국정 과제를 발표했다. 교육 부문은 100만 디지털 인재 양성부터 AI 학습 혁명, 교육격차 해소, 대학 규제개혁, 지역 대학 육성까지 5개 영역으로 나뉘어 제시됐다. 그동안 교육계가 제기했던 문제들이고 나름대로 해법을 제시하고 있다.

많은 과제 중에서 두 가지 과제가 특히 눈에 띈다. ‘학생의 진로 탐색부터 학습 이력-취업경력까지 관리 가능한 개인별 포트폴리오 구축’과 ‘교육, 경험, 자격 이력 누적을 위한 디지털 배지 부여’다. 현안에 밀려 당장 주목받지는 못하고 있지만 앞으로 우리 고등교육의 판도를 바꿀 만한 잠재력이 있다.  

우선 개인별 포트폴리오 시대는 ‘맞춤형 개별화 학습(individualized learning)’을 앞당길 것이다. 닫힌 교실에서 공급자 중심으로 이뤄지는 획일적 지식 전달은 과거 패러다임이다. 들쭉날쭉한 학생 각자의 꿈, 흥미, 진로에 부합하는 개별화 학습 프로그램을 다양하게 제공하는 것이 시대적 요청이고 대학의 책무다. 맞춤형 개별화 학습 체제에서 학생은 주어진 학습에 수동적으로 참여하는 학습자가 아니다. 각자 원하는 배움의 기회를 능동적으로 찾고, 이에 몰입하며 성장하는 자기주도적 학습자여야 한다. 이때 캠퍼스 안팎에서 이뤄지는 다양한 경험과 성취를 체계적으로 기록하는 디지털 플랫폼이 바로 ‘e-포트폴리오’다. 여기에는 학업 성취와 관련된 증명은 물론 개인적 학습 경험과 활동이 담긴 사진과 비디오, 참여했던 프로그램을 보여주는 웹 사이트 등 다양한 정보와 자료를 탑재할 수 있다. 이는 취업, 진학, 유학, 인턴 등을 구할 때, 이수한 과목명과 학점만을 보여주는 기존의 ‘성적 증명서’보다 훨씬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다.

개인별 포트폴리오와 디지털 배지는 학생의 ‘대학 경험(college experiences)’ 확장에도 기여한다. 학생은 교실 수업만으로 성장하지 않는다. 친구들과 함께 하는 팀 프로젝트, 해외 탐방과 도전, 실패해도 좋은 공모전, 지역사회 프로젝트, 인턴과 교환학생 등 다양한 대학 경험을 많이 할수록 ‘학생 성공’을 이룰 수 있다. 학생이 보다 많은 경험을 하게 하려면 유의미한 학습 경험과 학업 성과를 인증하고 활용하는 ‘미래형 학습경험 인증 체제’를 마련할 필요가 있다. 디지털 배지와 e-포트폴리오는 학생이 어떤 교육 프로그램을 이수했거나, 성취를 거두었을 때 이를 인증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이러한 디지털 플랫폼에 개인정보 보호와 보안을 강화한 블록체인 기술을 접목하면 진학, 취업, 인턴 등을 위한 경쟁의 무대에서 공정의 가치를 실현할 수 있다. 다양한 학습을 통한 성장과 공정한 평가와 활용이라는 두 가지 목표를 함께 달성할 수 있는 것이다.        

최신 에듀테크로 무장한 교육 기업들이 고등교육 시장에 뛰어들고 있다. 학점과 학위만 주지 않을 뿐, 이들이 하는 일은 대학이 하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이러한 시대에서는 대학 간판과 졸업장보다 역량이 중요해진다. 전통적인 대학과 새로이 부상하는 교육 공급자 사이에서 어디로 갈지는 학생이 판단할 것이다. 개인의 다양한 학습 경험을 기록하는 학습 포트폴리오와 디지털 배지는 캠퍼스 밖 학습과 활동을 촉진하는 윤활유가 될 수 있다. 대학이 변하지 않는 수업과 학점, 학위를 제공하는 비지니스에 머문다면, 다른 교육 공급자보다 비교우위를 갖기 어렵다. 이렇게 볼 때 디지털 포트폴리오와 배지의 활용은 학생의 학습 동기를 높이고 다양한 학습을 유도함으로써 대학의 혁신을 유도하는 수단이 될 수 있다.   

대학 환경이 놀랍게 변하고 있다. 민첩하게 대응하는 대학만 살아남는다. 디지털 혁신 기술을 진취적으로 받아들이지 않으면, 미래는커녕 생존도 어렵다. e-포트폴리오와 디지털 배지는 고등교육의 ‘파괴적 혁신(destructive innovation)’을 앞당기는 마중물이 될 것이다. 누가 먼저 그 길을 개척하느냐만 남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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