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건복지부,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 확대 공식화…실무 착수
우수한 고급 인력 의대로 몰려…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이공계 이탈현상 심화 우려
이공계·의료계 관계자들, 우수 인재의 고른 분포 가능한 정책 마련·지방대학 중심 증원 등 제언

의대 정원 확대 추진으로 인한 입시 지형의 변화가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 이공계 이탈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를 것이며, 의대가 우수 인력을 빨아들여 내신 3등급도 서울공대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의대 정원 확대 추진으로 인한 입시 지형의 변화가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 이공계 이탈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를 것이며, 의대가 우수 인력을 빨아들여 내신 3등급도 서울공대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임지연 기자] 의대 정원 확대 추진으로 인한 입시 지형의 변화가 예측되고 있는 가운데 이공계 이탈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를 것이며, 의대가 우수 인력을 빨아들여 내신 3등급도 서울공대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릴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이에 이공계·의료계 관계자들은 우수 인재들이 각 산업 분야별로 고르게 분포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하고, 지방대학 중심 증원이 필요하다고 제언했다.

■ 의대 정원 확대로 인한 우수 인재 의대 쏠림현상, 이공계 이탈현상 심화 우려 = 보건복지부는 2025학년도부터 의과대학 정원 확대를 공식화하고, 전국 40개 의대를 대상으로 의대 정원 확대 수요조사를 실시해 증원 희망 규모를 파악하는 등 실무에 착수했다. 전국 40개 의과대학이 희망하는 증원 규모는 2025학년에만 최대 2847명, 2030학년도까지 최대 3953명이다. 당초 정부가 검토했던 최대 3000명을 웃도는 수치로, 전망치가 정책에 반영된다면 2030년에는 의대정원이 현재 2배 이상 늘어나게 된다.

하지만 필수의료 인력 증원 필요성을 주장하는 정부의 의대 정원 확대 추진에 의사들의 반발이 거세다. 근본적 해결 없이 숫자만 늘리는 것은 선호하는 병원만 늘 것이라는 이유다. 이에 대한의사협회(의협)는 11일부터 회원 14만여 명을 대상으로 총파업 찬반 투표를 진행 중이며, 17일에는 서울에서 총궐기 대회도 열 계획이다. 의협은 정부가 정원 확대를 강행하면 총파업도 불사하겠다는 입장이다.

교육계에서도 의대 정원 확대가 가져올 입시 지형의 변화가 우려스럽다는 목소리가 제기되고 있다. 특히 이공계 이탈현상이 심각한 수준에 다다를 것이며, 우수 인력이 의대로 몰려 낮은 내신 및 수능 등급의 학생이 서울공대에 갈 수 있는 시대가 열릴 것이라는 전망이다.

14일 국회 의원회관에서 진행된 의대정원 확대 연속토론회에서 최세휴 한국공과대학장협의회 회장(경북대 공과대학장)은 “과거 학력고사 시절 역대 자연계열 수석들이 선택한 학과는 의예과, 물리학과, 전자공학과, 화학공학과 등으로 다양했다. 하지만 지금은 그렇지 않다”며 “현재 우수한 고급 인력은 의대에 몰리고 있다. 의대 정원이 확대돼 조만간 서울공대에 내신 3등급도 들어갈 수 있는 시대가 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올해 수도권 주요 대학의 반도체 계약학과 최초 합격자의 등록 포기율은 155.3%다. 대학별로는 연세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130%, 고려대 반도체학과 72.7%, 서강대 시스템반도체공학과 80%, 한양대 반도체공학과 275%다.

공대 입학을 포기한 인재는 의대로 몰리고 있다. 최근 3년간 SKY 대학 자연계열에서 중도탈락자는 2020년 893명, 2021년 1096명, 2022년 1421명으로 꾸준히 증가하는 추세다. 특히 2020학년도부터 2023학년도까지 의대 정시 합격자의 78%는 N수생이었다.

입시업체에서도 의대정원이 늘면 이공계 재학생들 상당수가 의대에 도전할 것이라고 전망하고 있다. 특히 의대 정원이 1000명 이상 늘면 석박사 과정 학생과 국책·기업체 연구원들도 의대 입학을 시도할 걸로 예측하고 있다.

이에 최 회장은 “기술 패권 시대가 됐지만 산업 현장에선 첨단 기술을 개발할 우수한 전문 인력이 부족하다고 한다. 특히 반도체 전문 인력을 육성하기 위해 사활을 걸고 있지만,고급 인력들은 공대가 아닌 의대로 몰리고 있다”며 “출산율 저하로 인적자원이 급감하고 있는 상황에서 우수 인재들이 각 산업 분야별로 고르게 분포할 수 있게 정책을 마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공계 이탈을 막기 위해서는 지방대학 중심의 증원이 필요하다는 주장도 제기됐다. 임재준 서울대병원 공공부원장은 “수도권 대학의 의대 정원이 늘어날 경우 이공계 인재들의 이탈은 가속화될 수밖에 없다”며 “지방 소재 대학의 정원이 늘어난다면 조금 완화될 것이라고 기대하고 있다”고 말했다.

14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보건의료특별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의대정원 확대로 인한 이공계 이탈 현상 연속토론회’ 현장. (사진=신현영 의원실)
14일 신현영 더불어민주당 의원과 보건의료특별위원회 주최로 진행된 ‘의대정원 확대로 인한 이공계 이탈 현상 연속토론회’ 현장. (사진=신현영 의원실)

■ “의대 정원 확대, 이공계·바이오헬스 분야 발전시킬 전환점될 수 있어” = 일각에서는 의대 정원 확대가 이공계와 바이오헬스 분야를 발전시킬 전환점이 될 수 있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연구파트의 근간을 이루는 의대 기초의학교실과 의사과학자 인력난에 도움이 될 수 있다는 것이다. 다만 그러기 위해서는 우수 인재를 선발하기 위한 현 체계의 변화와 의사과학자 양성 방안 마련, 병원에서 연구가 가능한 시스템 구축 등이 필요하다는 지적이다.

과학기술의학전문대학원(과기의전원) 설립을 추진 중인 김하일 KAIST 의과학대학원 학과장은 “현재 의사과학자가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기초의학 인력도 없다”며 “유입이 없으면 결국 의사과학자를 기르는 기초의학교실이 먼저 무너질 것”이라고 일침을 가했다.

또한 김 학과장은 “의대를 비롯해 모든 분야가 ‘성적’이 우수한 인재를 선발하기 위해 다투는 현 체계를 고쳐야 한다”며 “의사가 되는 데 어느 정도 지적 능력이 필요한 건 맞지만 공부를 잘하는 사람이 필요한 건 아니다. 의대 입학을 성적순으로 정하는 건 심각한 문제다. 해당 직업에 맞는 사람을 선발하고 교육해야 하는데, 지금은 모두가 우수 인력을 데려오려고 다투다 보니 이런 일이 발생한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그는 “우수한 인력이 우리 쪽에서 이탈해서 저쪽으로 가지 않았으면 좋겠다는 식의 논의보다는 국가적으로 어떻게 인재를 배분하고 어린 아이들이 장래에 선택할 직업의 다양성을 확대하는 방향으로 논의가 이뤄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홍순정 과학기술정보통신부 미래인재정책과장 역시 “의대 정원 확대는 과기부에서도 영향을 받는 정책이다. 의대 정원 확대 시 의사과학자를 양성할 수 있는 (티오를) 배정해야 한다”며 “의대나 특히 병원에 있는 인력은 연구를 제대로 할 수가 없다. 병원에서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형성하는 정책이 필요하고, 병원이나 의대가 아닌 곳에서 연구할 수 있는 공간도 많이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임재준 부원장도 “젊은 의사과학자들은 기초의학교실보다 병원 소속으로 연구하는 걸 더 선호하는데, 대형병원 스태프가 되면 진료를 보느라 연구에 집중할 수가 없다”며 “병원에서 환자를 진료하면서도 연구에 충분한 시간을 할애할 수 있도록 연구집중 교수제를 도입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한정된 자원을 어디에 투자할지 충분히 고려해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됐다.

김철훈 연세대 의대 약리학 교수는 “의대정원이 늘어 인재들이 의대로 많이 오게 되면 다른 분야의 인재풀은 반드시 영향을 받게 된다. 결국은 국가에서 전체적으로 보고 전략적인 결정을 내려야 한다”며 “최근 가장 강조되는 것이 융합연구다. 의학도 엔지니어링, 데이터 등 이공계와 융합해야 우수한 의사과학자를 양성하고 먹거리를 만들 수 있는데, 이공계 쪽에 인재풀이 줄어든다면 그게 이상적으로 이뤄질 수 있을지 걱정된다”고 전했다.

강민구 전 대한전공의협의회장(고려대 의대 예방의학과 전공의)은 의사과학자 의대 교육 시스템의 변화와 이공계 인재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봤다.

강 회장은 “지금 의대에 입학하면 임상 의사가 된다고 봐야 하는데, 교육 과정이 빡빡하다 보니 과학기술 등 다른 분야에 관심을 가지기가 어려운 상황이다. 의대를 다니면서도 다른 전공을 듣고 학위를 딸 수 있는 기회가 많아져야 관심이 생길 것”이라며 “주변 친구들을 보면 이공계 이탈 가속화 문제는 의사와 처우 차이가 너무 큰 영향도 있다. 대학원생들의 경우 작게는 30만 원부터 많아야 290만 원 정도를 받는데, 이공계 인재들에 대한 처우 개선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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