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승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전 교육부 부총리 자문관)

대한민국이 지역소멸의 위기에 놓여 있다. 이같은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대학과 지역의 상생 협력적 파트너십 구축이 중요한 시점이다. 현 정부의 주요 고등교육 정책인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라이즈)는 지역소멸 위기를 극복하고 대학과 지역의 동반성장을 이끌기 위한 정책이다. 이에 본지는 지역과 동반성장 전략을 마련하기 위한 지역혁신 허브로서의 대학 역할, 라이즈 사업의 성공적 추진을 위한 지자체 입법과제, 평생교육 차원의 거버넌스 혁신 방안 등을 중심으로 전문가들의 제언을 들어보고, ‘인재양성-기업유치-취창업’ 선순환 구조를 완성하기 위한 방안은 무엇인지 살펴보고자 한다. <편집자주>

박승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전 교육부 부총리 자문관)
박승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전 교육부 부총리 자문관)

■ 연재 순서  
 ①박승재 한국교육개발원 연구위원(전 교육부 부총리 자문관)
 ②김규용 충남대학교 교수  
 ③조인식 국회입법조사처 입법조사관
 ④김태준 한국교육개발원 선임연구위원

학령기 인구 급감과 수도권 인구 집중 등으로 인해 지방소재 대학과 지역은 공동으로 격심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 인구소멸 위기가 예고된 지역의 96%가 비수도권 지역이고, 미충원된 대학 신입생의 88.2%도 비수도권 대학에서 나왔다. 위기가 비수도권부터 더욱 가시화되고 있다. 정부는 이 문제를 지역과 대학, 산업의 동반성장 전략으로 접근하고 있다. 대학이 주도하는 지역혁신으로 이 문제를 해결해 보려는 것이다. 선진국의 성공사례에서 보듯이 지식의 생산과 혁신 창출에는 지리적 근접성(proximity)이 중요하다. 지역의 인적·물적자원의 융합을 통해 효과적으로 시너지를 창출해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물론 여기에는 누가 동인(driver)이 되느냐가 중요하다. 대학은 교육과 연구, 혁신이라는 지식의 3축 체제(Knowledge Triangle) 모두의 실행 주체라는 점에서 혁신을 이끌어내는 동인으로 적합하다. 대학이 지역발전의 허브 역할을 맡아 지자체-대학-산업 간 협력체계를 제대로 이끌어낼 수 있다면 새로운 돌파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지방대학의 경쟁력 제고가 시급하다. 정부의 전폭적인 지원과 대학 스스로의 혁신을 통해 지역대학의 특성과 강점을 잘 살려낸다면 한번 해 볼 만한 일이다. 대학의 변화를 지역과 대학의 공동위기 극복을 위한 새로운 동력으로 활용하자는 것이다. 몇몇 성공사례를 참조해 우리에게 적합한 대학혁신지원체계를 마련할 수 있다면 우리도 성공적인 결과를 거두지 말라는 법은 없다. 하지만 아직은 지역을 살리는 혁신적인 지역대학을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에 대한 재정지원이 지역발전과는 무관하게 이뤄지고 있고, 부처별‧사업별 칸막이가 높으며, 대학을 옭아매는 규제가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이다. 또한 기술의 급격한 발전으로 인해 대학 교육과정의 전면적인 혁신이 요구되는데도 불구하고 학문 간, 교수 간 견고한 벽에 가로막혀 공급자 중심의 교육이 여전히 이뤄지고 있다는 것도 문제다.

이러한 점에서 지역의 우수인재들이 입학하고 싶어하고, 지역발전의 허브이자 싱크탱크로서 존중받는 지역대학 육성이 절실하다. 이제는 중앙정부 주도의 획일적 지원 방식으로는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기 어려운 시대다. 대학별로 특성이나 지역적 여건이 상이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혁신을 추진하지 않는 한 대학의 성장을 기대할 수가 없다. 정부가 대학을 지원하는 방식도 변화가 필요하다. 종래의 공모방식으로는 지역발전이나 대학혁신과는 무관한 구조로 사업이 추진되기 마련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대학지원의 패러다임을 ‘지역혁신 중심’으로 전환하는 것이 필요하다. 대학지원의 행‧재정 권한을 지방정부로 넘겨 지방정부와 지역대학의 파트너십으로 지역혁신을 이룰 수 있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국가-지자체-대학 간 파트너십을 기반으로 자율성이 보장되도록 규제가 혁파되어야 한다.

교육부가 발표한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사업(RISE) 추진안에도 지역혁신을 위한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을 단계적으로 연계·통합하고, 해당 사업의 기획, 예산배분, 성과관리를 ‘협약’을 통해 지자체에 위임하는 것으로 하고 있다. 이러한 체계에 따르면 중앙정부는 사업지역 선정 계획을 수립하고, 가이드라인을 통해 지역의 대학중심 지역혁신계획 수립을 지원하며, 규제혁신을 지원하는 역할을 하게 된다. 지역에서는 지자체가 대학과 함께 지역 대학의 특성과 지역발전계획을 고려해 대학중심 지역혁신계획을 수립하게 되는데, 이때 타 부처와 교육부의 다른 재정지원사업들을 서로 연계하고, 지역혁신 성과를 측정할 수 있는 지표를 설정해 그 달성도를 관리하게 된다.

한편, RISE 체계 속에서 함께 시행되는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는 총 30개 내외의 지역 대학을 지정해 대학당 최대 1000억 원을 지원해 지역발전을 주도하는 혁신 생태계의 허브로 육성하고자 출범한 사업이다. 2023년 첫해에 ①강원대‧강릉원주대 ②경상국립대 ③부산대‧부산교대 ④순천대 ⑤안동대‧경북도립대 ⑥울산대 ⑦전북대 ⑧충북대‧한국교통대 ⑨포항공대 ⑩한림대가 글로컬대학으로 지정됐고, 올해 10개 내외의 대학이 추가 지정될 예정이다. 교육부의 지원금과 지자체의 매칭 지원금, 타 중앙부처의 사업비 등이 합쳐져 지원되기 때문에 지역의 알찬 대학들이 명문대학으로 거듭나는 절호의 기회가 될 것으로 보인다.

첫해 글로컬대학30 공모에는 총 108개 대학이 94개의 혁신안을 제출했다. 대학들이 제안한 혁신안에는 △무학과‧무학년‧무전공 등 학문‧학과 간 벽허물기 △대학-지자체-연구소-기업 간 벽허물기 △유학생 유치 등 국내‧외 간 벽 허물기 △개방형 대학 거버넌스 혁신 등 대학사회 내부의 벽 허물기와 관련한 제안들이 많다. 이는 대학이 향유하던 독과점적 기득권을 내려놓겠다는 것으로 상당히 의미있는 제안으로 들린다. 학령인구의 급감과 수년째 이어진 대학등록금 동결로 인해 대학의 어려움이 가중되는 상황에서 실질적으로 수천억 원에 달하는 대학혁신 지원금을 놓칠 수가 없는 상황일 것이다. 

하지만 아쉬움은 있다. 대학들이 제안한 혁신안은 대부분이 대학의 내부개혁 위주로 짜여져 있다.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가 원래 그리던 것처럼 지역의 알차고 강한 대학이면서 글로벌을 향해 성장하는 탄탄한 지역대학을 추구해야 한다. 향후 대학혁신 기획안에는 글로벌 차원의 교육-연구-혁신 방안이 전략적으로 제시될 필요가 있다. 이를 위해서는 이미 국제화되어 있고, 과학기술 R&D 예산과 연구 인프라가 잘 갖추어져 있는 정부출연연구기관이나 산업계와의 전략적 협력방안이 모색되어야 한다. 한마디로 지금의 대학위기를 슬기롭게 극복하고 더욱 성장하기 위해서는 가용자원을 총동원한 총체적인 혁신전략을 내놓아야 한다는 얘기이다.

물론 대학에 따라 전략의 방향은 서로 다를 것이다. 국립대학은 거버넌스 혁신과 정부출연연구기관과의 연계에 초점을 두는 것이 필요하고, 사립대학은 지속 가능한 재정투자 구조를 마련하는 것이 중요하다. 글로컬대학30 프로젝트가 끝나는 5년 후의 모습을 미리 그려보아야 한다는 뜻이다. 그리고 전문대학은 평생·직업교육의 새로운 모델을 도출해 교육계의 혁신 아이콘으로 거듭나야 한다. 산업계의 유니콘 스타트업과 같이 대학가의 유니콘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알찬 전략을 준비해야 한다.

내년부터는 RISE 체계가 수도권을 포함한 전 지역으로 확대된다. 이에 따라 지역혁신, 산학협력, 대학평생교육, 전문직업교육, 지방대육성 등 지자체와의 협력이 중요한 대학재정지원사업들을 연계하는 것이 시급한 과제가 됐다. 2025년부터 우선 연계한 5개 사업의 통합을 포함해 대학재정지원사업의 구조와 규모 조정을 통해 교육부 대학재정지원사업 예산의 50% 이상을 지역주도 방식으로 추진하게 될 예정이다. 지역의 대학지원 전담기관을 중심으로 지역발전계획에 따라 RISE로 전환된 예산을 대학에 지원함으로서 지자체 중심으로 지역의 혁신을 활발히 이뤄낼 것으로 기대된다. RISE 체계는 지난 수십년간 내려온 중앙정부 주도의 대학지원체계를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로 전환함으로써 대학의 변화를 통해 지역을 살리고, 국가발전을 이끌도록 하려는 데 방점을 둔다. 따라서 시행 초기인 지금은 지역대학의 경쟁력을 높이고, 지역과 대학이 함께 우뚝 설 수 있도록 저마다의 경험과 지혜를 한데 모으는 것이 필요하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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