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6년 제도시행 후 일반·전문대학 57개교 설립

부실대학 퇴출 문제가 대학 구조조정의 핵심이슈로 부상한 배경에는 ‘대학설립준칙주의’가 있다. 이는 기존의 인가제를 대체, 일정 기준만 충족하면 대학설립을 허용한 조치로 제도 도입 이후 대학이 난립하는 계기가 됐다.

문민정부가 1995년 도입, 1996년부터 시행한 대학설립준칙주의(이하 준칙주의)로 지금까지 무려 94개 대학이 늘었다. 2010년 현재 대학설립준칙주의 도입 이후 설립된 대학은 △일반대 38개교 △전문대학 19개교 △대학원대학 37개교 등이다. 전체 일반대의 18.8%, 전문대학의 13.0%가 이 기간에 신설된 것이다.

이들 대학의 신입생 충원률은 비교적 낮다. 준칙주의가 부실대학을 양산했다는 비판을 받는 이유다. 안민석 의원이 지난 2009년 국정감사 때 펴낸 ‘고등교육 재구조화 및 부실대학 합리적 개선방안’에 따르면, 이 제도 도입 이후 설립된 일반대 36개교 가운데 학생 정원을 모두 채우고 있는 대학은 8개교(22.2%)에 불과하다. 전문대학도 11개교의 절반에 가까운 5곳이 정원을 못 채우는 것으로 집계됐다.

안 의원은 자료집에서 “정원 미달보다 더 큰 문제는 이들 대학이 설립요건을 제대로 갖추지 못한 상태에서 설립 인가를 받아 부실대학으로 전락하고 있다”고 지적했다.

실제로 2005년 국정감사 정책자료집 ‘대학설립 준칙주의 10년, 오늘과 내일’(최재성 의원)에 따르면, 준칙주의 이후 설립 80개 대학 가운데 10개 대학이 기준 미달이었는데도 불구하고 설립 인가를 받았다. 조건부 충족대학과 지적사항이 있는 대학까지 포함하면 44개교에 이른다.

이들 대학 가운데는 ‘비리사학’도 많다. 1996년 이후 설립된 한중대·대구외국어대·대구예술대·광주여대·한영신학대·탐라대·예원예술대 등은 교과부 감사에서 부정비리, 불법운영 등이 적발됐다.

상황이 이렇다보니 부실대학 퇴출 드라이브를 걸고 있는 정부에 불만이 제기되고 있다. 한 지역 국립대 총장은 “정부가 준칙주의를 도입해 부실대학을 양산해 놓고, 문제가 되자 이를 퇴출하려고 한다”며 “수도권 대학에 유리한 잣대를 들이대면 준칙주의와 상관없이 설립된 지방대학도 자유로울 수 없다”고 우려했다.

특히 이주호 교과부 장관이 문민정부 시절 1기 교육개혁위원회 전문위원으로 활동한 점도 도마에 오르고 있다. 교육개혁위가 문민정부의 준칙주의 도입을 주도했기 때문이다. 당시 교육개혁위원으로 활동했던 이 장관이 장관 취임 이후 부실대학 퇴출정책을 펴고 있는 데 대한 비판이 제기되는 것이다.

이 장관은 이와 관련해 2004년 발표한 논문(고등교육경쟁촉진정책)에서 “오히려 경쟁촉진정책의 일환으로서 경쟁에 뒤처진 대학이 학생 피해를 최소화하면서 퇴출될 수 있도록 제도화하는 방안에 대해 논의할 때가 됐다”고 밝혔다. 대학 간 경쟁체제를 확립하고, 이 안에서 뒤처진 대학이 퇴출되도록 해야 한다는 주장인 셈이다.

물론 준칙주의가 부실대학을 양산하기 위해 도입된 제도는 아니다. 인가제 당시 학생 정원 5000명 이상 규모에 맞는 시설기준을 확보해야만 대학설립이 가능했기 때문에 소규모 특성화 대학설립을 유도하기 위해 도입된 취지가 컸다. 그러나 부실 가능성을 안고 있거나 최소기준을 충족하지 못한 대학을 인가해준 책임은 교육 당국에 있다. 대학 구조조정 문제에서 단골로 등장하는 부실대학 양산 책임에서 교육당국 또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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