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9년 6월 서울대와 시흥시가 배곧신도시 내 캠퍼스 조성에 합의한 이후 7년이 지났지만 아직까지 구체적인 조성계획도 세우지 못한 채 표류하고 있다. 더욱이 추진하겠다는 약속만 수차례 하고 법적인 구속력이 있는 실시협약은 맺지 못하는 상황이 이어지고 있어 자칫 사업 자체가 무산될 가능성도 커 보인다는 지적이 일고 있다.

이런 가운데 서울대 시흥캠퍼스를 전면에 내세운 배곧신도시 아파트 분양은 진행중에 있고, 이미 분양한 아파트만 1만세대에 달한다. 실체도 없는 캠퍼스 조성계획을 믿고 많은 사람들이 '묻지마' 분양에 말려들어가는 듯한 형국이다.

당초 시와 서울대 등은 지난해 11월 실시협약을 맺기로 했으나, 서울대 측의 요청으로 연기했다. 이후 올해 1월 13일에 맺자는 구두 약속이 있었지만 이마저도 지켜지지 못하고 결국 실시협약은 기약없이 연기되기에 이르렀다. 

시흥시 쪽에선 "서울대 측이 전화를 통해 성낙인 총장 취임 1주년인 올해 7월 이전에는 결론을 내리겠다는 입장을 전해왔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공식문서로 못박은 것이 아닌데다 서울대 측의 입장도 엇갈려 이마저 지켜질 수 있는 것인지 의문이다. 서울대 본부 핵심관계자는 "오는 7월까지는 당연히 답이 나와야 한다"면서도 "다만 현재로선 추진여부를 100% 확답할 수는 없는 상황이라 장담을 못하겠다"고 말했다.

실제 시와 서울대로부터 흘러나오는 얘기를 종합하면 양측은 실시협약 보다는 MOU(사전양해각서)를 다시한번 맺는 방안을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서울대가 다시 한번 임시처방으로 상황을 넘기겠다는 얘기다. 실시협약은 서울대 시흥캠퍼스에 들어설 시설의 규모와 종류, 프로그램을 구체적으로 명시해 시와 서울대, 특수목적법인(SPC)이 맺는 계약으로, MOU와 달리 법적 구속력을 갖는다.

이같은 서울대의 모호한 태도를 꾸역꾸역 받아들이는 시흥시의 태도도 한심하다. 조 단위의 엄청난 사업비가 투입되는 시의 핵심사업에 참여를 약속한 주체가 처음 약속과 달리 자꾸만 딴소리를 하고 있는데도 마냥 끌려다니고만 있다. 시흥시 관계자들은 행여나 서울대가 발을 뺄까 틈만나면 서울대 측에 '다짐'을 애걸하고, 서울대가 법적인 구속력이 없는 약속을 건네면 이를 근거로 다시 시민들을 향해 '안심하라'고 외치는모양새다. 서울대의 구속력 없는 약속을 아무리 받아낸들 사업추진에 대한 확신은 주지못한다.

서울대는 국내 최고의 국립대학으로서 분명한 답을 내놓을 때다. 시흥캠퍼스 사업이 무산될 경우 배곧신도시내 주택을 분양 받은 1만여 세대, 그러니까 인구로는 2~3만명에 달하는 입주예정자들의 사기분양을 조장한 꼴이 되고 만다. 중소도시인 시흥시의 성패도 여기에 달려 있다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게다가 처음부터 이번 캠퍼스 조성사업은 서울대가 구상을 내놓고 이에 수도권 여러 지자체가 경쟁을 벌여 시흥시가 낙점받은 사안이다. 서울대가 실시협약을 맺지 않음으로써 사업이 무산될 경우 법적인 책임은 면할 수 있을지 몰라도 도의적인 책임까지 면제되는 것은 아니다. 애초에 하지도 못할 일을 벌여 놓고 일이 커지자 꽁무니를 내뺄 궁리나 하는 것은, 국내 최고의 국립대학이 거대한 기획부동산 사기를 주도하고서 일이 마음대로 되지 않으니 책임을 면피할 방도나 궁리하는 행태로 비쳐질 수 있다. 사회적인 비난이 쏟아져도 할 말이 없는 무책임한 일이다.

정 사업을 못하겠으면 하루라도 빨리 시와 입주민, 시행사 관계자들에게 사과를 구하고 사회적인 비난을 감내할 각오를 해야한다. 그것이야말로 더 많은 사람들이 '서울대 시흥캠퍼스를 주축으로 한 교육특화단지'라는 장밋빛 청사진을 철썩같이 믿고 부동산을 매입 계약하는 불상사를 막는 유일한 방법이다. 반대로 진짜로 조성사업을 추진하겠다면 시와 맺은 모든 약속을 지켜 이름뿐이 아닌 내실을 갖춘 시흥캠퍼스를 건립하는 데 최선을 다해야 한다.

교수들의 잇따른 성추행, 연구비횡령 등으로 곤혹을 치르고 있는 서울대가 최근엔 교수 3명이 잇따라 성희롱 파문을 일으키더니, 직원이 성희롱 재판에서 패소한 것이 구설에 오르며 바람 잘 날이 없다. 3년전 MT에서 발생한 동기간 성추행 가해학생 일부가 복학할 예정이라는 사실이 뒤늦게 알려지면서 논란이 일기도 했다. 서울대 교수가 연구원을 허위로 등록하는 수법으로 수억원의 연구비를 횡령한 사실이 감사원에 적발된 것도 근래에 벌어진 사건이다. 이제는 스스로 서울대 간판을 내세워 지자체와 민간사업자까지 끌어들여 놓고 사업 타당성을 확신하기 힘들자 먼저 발을 빼려는 조짐마저 보이고 있다. '요즘 서울대가 왜 이러나'라는 지적이 괜히 나오는 게 아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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