과학기술정보통신부,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결과’ 발표…R&D 예산 3조 4000억 원 삭감
교육부 소관 이공계 연구 지원 예산도 1433억 원 삭감…과기정통부, 교육부 R&D 예산 삭감에 ‘이중고’
이공계 분야 인력 감축, 대학 연구개발비 감소 등 부작용 우려…학문후속세대 위기론 심화도 전망

교육부는 지난 1월 ‘2023년 인문사회·이공분야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이공계 분야의 학문후속세대 지원, 대학연구기반 구축, 학문균형발전 지원 강화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오히려 교육부의 이공계 연구 지원 예산은 감축됐다. (사진=아이클릭아트)
교육부는 지난 1월 ‘2023년 인문사회·이공분야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이공계 분야의 학문후속세대 지원, 대학연구기반 구축, 학문균형발전 지원 강화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오히려 교육부의 이공계 연구 지원 예산은 감축됐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정부가 2024년 예산에서 R&D(연구·개발) 예산을 대폭 삭감했다. 그러자 대학가의 이공계에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본지는 2회에 걸쳐 R&D 예산 대폭 삭감에 따른 문제점과 해결방안을 모색한다. <편집자주>

과학기술정보통신부(이하 과기부)는 지난 8월 22일 ‘2024년 국가연구개발사업 예산 배분‧조정결과(이하 예산 배분‧조정결과)’를 발표했다. 예산 배분‧조정결과 2024년 주요 R&D 예산은 21조 5000억 원이 반영됐다. 2023년(24조 9400억 원)과 대비하면 3조 4400억 원이 삭감됐다. 이는 윤석열 대통령이 지난 6월 28일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R&D 예산의 원점 재검토”를 지시한 데 따른 것이다. 과기부는 “기업 보조금 성격의 나눠주기식 사업과 성과부진 사업 등을 대상으로 108개 사업을 통폐합하며 3조 4000억 원 규모의 예산 구조조정을 실시했다”고 설명했다. 

■ R&D 투자 비효율 개선 목적으로 예산 구조조정 = 예산 배분‧조정결과의 주요 내용을 살펴보면 먼저 세계 최고 수준의 혁신R&D에 10조 원이 집중투자된다. 특히 첨단바이오(16.1%↑), 인공지능(4.5%↑), 사이버보안(14.5%↑), 양자(20.1%↑), 반도체(5.5%↑), 이차전지(19.7%↑), 우주(11.5%↑) 등 7대 핵심분야 투자가 대폭 확대된다. 이에 따라 국가전략기술 분야에는 2023년(4조 7000억 원)보다 6.3% 증가, 5조 원이 투자된다. 

과기부는 국가 임무수행 필수R&D에도 지속적으로 투자할 예정이다. 국방 분야는 무기체계 기술개발 고도화와 필수요소 기술의 적기 확보 등이 차질없이 추진될 수 있도록 지원된다. 공공R&D 분야는 각종 범죄와 재난‧재해로부터 국민의 안전을 확보할 수 있도록 일선 현장에서의 필수 기술에 중점투자된다. 마약범죄 근절을 위해 마약 탐지‧추적부터 중독 예방‧치료까지 전주기 R&D가 지원되며 디지털 기술 활용 다중밀집 안전사고, 호우로 인한 도시침수 등 다양한 재난‧재해에 선제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기술개발 투자가 강화된다.

반면 기초연구와 정부출연연구기관(이하 출연연) 예산은 감축된다. 기초연구는 2023년(2조 6000억 원)보다 소폭 감소, 2조 4000억 원이 투자된다. 또한 기초연구는 글로벌 수준의 인력양성과 연구역량 강화를 위해 수월성 중심으로 재구조화된다. 출연연에는 2023년(2조 4000억 원)보다 3000억 원 감소, 2조 1000억 원이 투자된다. 

특히 과기부는 R&D 투자의 비효율성을 대폭 개선할 방침이다. 이에 과기정통부는 예산 배분‧조정결과에서 기업 보조금 성격, 나눠주기식, 관행적 추진, 유사중복 사업 등은 강도 높게 구조조정했다. 앞으로도 재정집행점검을 통해 추가 구조조정을 실시할 계획이다.

이종호 과기부 장관은 “지난 정부에서 R&D 예산이 무려 10조 원 이상 늘어난 반면, R&D 시스템과 인력은 그대로였다. 역대 정부에서 R&D 퍼스트무브로의 전환을 외쳤지만 성공하지 못했다”면서 “예산을 늘리는 것은 쉬운 길이다. 시스템을 바꾸는 것은 어려운 길이다. 지금껏 역대 정부는 쉬운 길을 걸어왔다. 늘어나는 예산, R&D 예산 속에서 오히려 안일함과 기득권이 자랐다”고 지적했다.

이어 “낡은 R&D의 관행과 비효율을 걷어내고 퍼스트무브로 혁신하는 과정은 힘들고 어려운 길이지만 기술패권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해 반드시 해야 하는 일”이라며 “그것을 윤석열 정부가 반드시 해내겠다”고 강조했다.

■ 교육부 소관 R&D 예산도 감축, 이공계 연구 홀대 지적 = 과기정통부뿐만 아니라 교육부 소관 2024년 R&D 예산도 대폭 삭감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안민석 의원이 공개한 ‘2024년 교육부 R&D 예산’에 따르면 교육부의 이공계 연구 지원 예산이 총 1433억 원(26%) 삭감됐다.

앞서 교육부는 지난 1월 ‘2023년 인문사회·이공분야학술연구지원사업 종합계획’을 발표하며 이공계 분야의 학문후속세대 지원, 대학연구기반 구축, 학문균형발전 지원 강화를 제시한 바 있다. 하지만 오히려 교육부의 이공계 연구 지원 예산은 감축됐다. 교육부 정책이 갈짓자 행보를 보이는 모양새다.

구체적으로 교육부 이공학학술연구기반구축 사업에서 ‘학문후속세대 지원(박사과정생 등 신진연구자에게 연수기회 등을 제공)’과 ‘대학연구기반 구축(대학부설연구소 역량 강화)’ 예산은 각각 22억 원(4%), 257억 원(14%)으로 소폭 상승했으나 ‘학문균형발전 지원’ 예산은 절반 이상(1642억 원·56%)이 삭감됐다. ‘학문균형발전 지원’ 예산의 경우 비전임 연구자의 연구나 민간부문 투자가 어려운 보호연구, 지방대학의 연구를 지원하는 데 사용된다.

교육부는 과기부와 별개로 이공분야 풀뿌리 연구자의 연구를 지원하고자 ‘개인기초연구 사업’ 예산을 편성하고 있다. 그러나 ‘개인기초연구 사업’ 예산은 2023년 93억 2000만 원에서 2024년 23억 9000만 원으로 74.3% 줄었다. 현행 ‘개인기초연구 사업’ 100개 과제에서 20개 과제가 예정대로 종료된 것이 이유이지만, 지속과제가 훨씬 많다는 점에서 예산 삭감의 영향이 불가피할 전망이다. 

안민석 의원은 “올해 과기부가 확정한 국가연구개발사업 중장기투자전략에서도 교육부의 이공계 R&D 예산 삭감 이유를 찾아볼 수 없다”며 “정부는 4차산업혁명을 선도하겠다며 이공계 지원을 약속했지만 말뿐이었음이 드러났다. 국가 경쟁력의 근간인 이공계 연구를 홀대하는 정부에게서 다음 세대에 대한 고민은 찾아볼 수 없다”고 비판했다.

정부의 R&D 예산 감축으로 이공계 대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예산 삭감은 출연연 학생 연구원의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전망이고 이는 결국 학문후속세대의 위기와 직결될 수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정부의 R&D 예산 감축으로 이공계 대학생들은 미래에 대한 걱정이 커지고 있다. 예산 삭감은 출연연 학생 연구원의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전망이고 이는 결국 학문후속세대의 위기와 직결될 수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 R&D 예산 감축에 대학가 ‘비상등’ = 정부의 R&D 예산 감축으로 대학가에도 비상등이 켜지고 있다. 이공계 위기를 심화시킬 수 있기 때문이다. 실제 정부의 R&D 예산 삭감 칼바람이 출연연을 비롯해 한국과학기술원(KAIST), 광주과학기술원(GIST), 대구경북과학기술원(DGIST), 울산과학기술원(UNIST) 등 4대 과학기술원에 집중되고 있다. 2024년 25개 출연연의 주요 사업비는 2023년보다 25.2% 감축, 8859억 원이 편성됐고 4대 과학기술원 예산도 이전 수준에서 10~15%가량 삭감됐다. 

과학기술원 한 관계자는 “연구자들의 사기가 크게 꺾여 동기부여가 힘든 상황”이라면서 “기업과 달리 학교는 장시간 투자가 필요한 연구가 많다. 단기간에 성과가 나오지 않는다고 예산을 삭감하는 것은 오히려 국가적 손해”라고 지적했다.

예산 삭감은 인력 감축으로 이어질 전망이다. 출연연의 경우 연구직 인건비가 사업비에서 주로 지출되기 때문에 예산 삭감에 따른 인력 감축이 불가피하다. 출연연별로 2024년 사업·연구인력 운용계획이 아직 확정되지 않았지만 국가과학기술연구회(NST)는 최소 1200명의 인원 감축을 전망하고 있다. 

이는 결국 학문후속세대의 위기와 직결된다. 이준영 전국대학원생노동조합 부지부장은 “박사후연구원(포스트 닥터)과 학생연구원, 인턴 등으로 이뤄진 출연연 연수직의 감축 규모가 제일 클 것으로 예상한다”면서 “연구기관에 예속된 학생연구원들이 연구원 측의 계약 조기 종료 통보와 채용 축소를 그대로 따라야 한다. 이는 고스란히 학생연구원의 피해로 이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또한 “R&D 예산 삭감으로 국가연구개발사업에서 받는 대학 연구개발비가 약 8.4% 감소했다”며 “학생연구원들이 지급받는 학생 인건비가 축소돼 경제적 부담도 늘어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상당수 학생연구원들이 학생 인건비를 생활비로 충당하며 심지어 대학원생 42.5%는 부모나 형제, 가족의 지원으로 생활을 이어가고 있는 상황”이라면서 “R&D 예산 감축은 곧 학생연구원의 경제적 부담과 직결된다. 이는 학생들의 정상적인 연구활동을 하기 어렵게 만든다”고 우려했다.

학생 인건비는 △대학 △특정연구기관 △정부출연기관 소속 학생연구원에게 지급된다. 대다수의 학생연구원은 국가연구개발사업이나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학생 인건비로 생활비를 조달한다. 그러나 R&D 예산 삭감은 ‘R&D 예산 삭감→국가연구개발사업과 프로젝트 축소→학생 인건비 축소→학생연구원의 생계 위협’의 악순환을 초래하고 학문후속세대의 위기 요인으로 작용할 수 있다. 

이에 고려대, 서울대, 연세대, 한국과학기술원(KAIST), 포항공대(포스텍) 등 전국 11개 대학의 학부 총학생회는 ‘R&D 예산 삭감 대응을 위한 대학생 공동행동(이하 대학생 공동행동)’을 결성하고 지난 10월 30일 ‘공부할 수 있는 나라, 연구하고 싶은 나라를 위하여’ 제목의 공동 성명문을 발표했다. R&D 예산 삭감 정책에 대해 전국 대학생의 반대 의견을 전달하는 것이 목적. 

대학생 공동행동은 공동 성명문에서 “정부의 2024년도 예산안에서 대폭 삭감된 R&D 분야의 예산은 국가의 미래를 일구는 데 필요한 연구와 대학생들의 진로와 밀접한 교육에 사용되는 예산이 삭감됐다는 것을 의미한다”며 “이번 정책 결정으로 국가 주도 연구 개발에 대한 믿음도, 미래를 향한 꿈마저도 꺾인 수많은 인재가 연구와 학문을 향한 꿈을 접거나 해외로 떠나갈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정부의 R&D 예산 졸속 삭감은 ‘미래 준비’라는 정부의 핵심 과제에 모순되게도 학우들의 진로에 대한 삭감이자, 동시에 대한민국의 미래에 대한 삭감”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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