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로컬대학 사업 기점으로 빨라지기 시작한 ‘무전공 선발’ 확대
한 차례 실패한 ‘선(先)입학 후(後)전공선택제’…“선택 아닌 필수”
무전공 선발한 학생 ‘방목’하지 않으려면 ‘학습지원시스템’ 구축해야

김우승 글로컬대학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3일 글로컬대학 본지정 평가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김우승 글로컬대학위원회 부위원장이 지난 13일 글로컬대학 본지정 평가 발표를 하고 있다. (사진=교육부)

[한국대학신문 백두산 기자] 지난해 11월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 취임 이후 윤석열 정부의 교육개혁에도 속도가 붙고 있다.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를 시작으로 글로컬대학30, 스터디 코리아 300K, 첨단분야 인재 양성 등 고등교육 정책에도 많은 변화가 감지된다. 이에 본지는 한국대학교육협의회와 공동으로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정책 톺아보기’를 통해 올해 추진하는 고등교육정책에 대해 진단하고 보완 과제를 살펴본다. 이와 함께 향후 전망과 고등교육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도 해법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① 지역혁신중심 대학지원체계(RISE) 안착을 위한 과제
② 학과 간 경계가 사라지는 대학들의 움직임
③ 첨단분야 인재 양성을 위한 미래 교육의 방향

올 한 해 고등교육을 둘러싼 환경에 커다란 지각변동이 일어나고 있다. 여러 변화가 시도되고 있지만 가장 큰 변화로는 바로 ‘벽 허물기’가 꼽힌다. 학과 간 칸막이부터 대학 간, 국가 간 칸막이까지 그간 공고히 쌓인 벽과 규제를 허물어 시대에 필요한 융합형 인재를 양성하겠다는 취지다.

이 같은 ‘벽 허물기’는 최근 최종 선정이 끝난 ‘글로컬대학30’ 사업에 참여한 대학들의 실행계획서에도 잘 나타난다. 교육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합격 대학의 실행계획서에는 무(無)전공 광역모집, 융합선발 등 자율(자유)전공학부 형태로 학생을 선발하겠다는 대학이 대다수였다.

벽 허물기를 통한 대학의 혁신은 긍정적 효과가 나타날 것으로 전망되지만 제도 도입과 운영 측면에 대한 우려도 존재한다. 제대로 시스템을 갖추지 못하면 오히려 방목하는 효과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이다. 근본적인 취지를 살리면서 성공시킬 수 있는 방안 모색이 필요한 이유다.

■ 글로컬대학을 기점으로 속도 내는 무전공 선발 = 올해부터 교육부가 역점 사업으로 펼치고 있는 글로컬대학은 비수도권 대학을 대상으로 5년간 1000억 원이라는 파격적인 지원을 약속한 사업이다. 108개 대학이 94개의 혁신기획서를 제출할 만큼 비수도권 대학들의 높은 관심을 끌었다.

이번 글로컬대학 사업에서는 대다수의 대학이 ‘벽 허물기’를 통한 대학 혁신안을 제시했다. 특히, 학문‧학과 간 경계를 허물어 융합형 인재를 키우겠다는 대학들이 주를 이뤘다. 단순히 재학생만을 대상으로 삼는 것이 아니라 국내-국외, 학령인구-비(非)학령인구까지 포괄적으로 다루고 있다.

글로컬대학 사업이 촉발한 무전공 선발을 비롯한 ‘벽 허물기’는 일회성에 그치지 않을 전망이다. 올해 10곳을 선정한 데 이어 내년에도 10곳, 이후 2년간 각각 5곳을 선정하는 등 총 30개 대학을 선정할 예정이기 때문이다.

실제로 이번에 글로컬대학에 본지정 된 10곳 중 다수는 ‘벽 허물기’의 일환으로 무전공 광역모집, 융합선발 등을 제시했다. 물론 무전공, 융합선발과 같은 제안 하나 때문에 이들 대학이 선정된 것은 아니지만 선정된 대학 중 대부분이 비슷한 방식을 제안했다는 점은 시사하는 바가 크다.

이번에 글로컬대학에 선정된 모 대학 기획처장은 “이제 비수도권, 수도권을 가리지 않고 무전공 선발이 확대되는 것은 바꿀 수 없는 추세”라며 “글로컬대학 선정이 세 번이나 남았기 때문에 이 같은 흐름은 더욱 빨라질 것”이라고 전망했다.

교육부 또한 이 같은 흐름에 힘을 실어주는 모양새다.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 장관은 지난 10월 출입기자단과의 간담회에서 “대학도 벽 허물기가 시작됐고, 이렇게 하는 대학에 인센티브를 줘서, 안 하는 대학과 차별화하겠다”며 “정원이 1000명이면 300명 정도는 입학 후 원하는 전공을 택할 수 있게끔 하려는 가이드라인을 갖고 대학과 소통하고 정책도 그 방향으로 간다”고 밝힌 바 있다.

교육부는 정책뿐만 아니라 법령 개정 추진을 통해 이 같은 흐름을 촉진하고 있다. 지난 6월 입법 예고한 고등교육법 시행령 개정안은 학과‧학부 개념을 없애는 것이 핵심이다. ‘대학에는 학과 또는 학부를 두는 것을 원칙으로 한다’고 규정돼 있는 부분을 삭제해 학과 간 장벽을 철폐하고자 하는 것이다. 이를 통해 대학들은 자유로운 형태로 신입생 선발, 학교 운영을 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 관계자는 “대학 조직이 전통적 학문 분류체계에 기반한 학과‧학부를 중심으로 구성돼 다른 형태로 유연하게 운영하고자 하는 대학에는 해당 규정들이 제약으로 작용하는 측면이 있었다”며 “이번 시행령 개정안을 통해 학과‧학부의 칸막이를 폐지하고 대학이 자율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하고자 한다”고 개정안 취지에 대해 설명했다.

고등교육법 시행령 주요 개정 내용. (자료=교육부)
고등교육법 시행령 주요 개정 내용. (자료=교육부)

■ 무전공이란 이름으로 부활한 ‘선(先)입학 후(後)전공선택제’ = 이번 글로컬대학 사업에 접수된 혁신기획서 대부분은 ‘학사구조 전환’을 제안했다. 가장 많은 대학이 제안한 방식은 신입생 모집 단계부터 무전공제나 모집단위 광역화를 통한 선발이다. 이 외에 일부 무전공 모집, 첨단융합대학/자율전공학부 설립, 단과대학 통폐합, 학과(전공)제 폐지 등이 혁신안으로 제시됐다.

이 같은 통합모집은 서울대를 비롯해 서울 주요 대학들이 이미 진행하고 있거나 추진하고 있는 선발 방식이다. 서울대는 자율전공학부 형태로 130여 명을 선발한 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하고 있으며, 성균관대는 글로벌융합학부로 50여 명을 선발해 2학년 때 학과를 선택하도록 하고 있다.

학부생 전원을 ‘자유전공’으로 선발하고 있는 대학도 있다. 대표적으로 카이스트(KAIST), 포항공대(POSTECH)가 있으며, 비수도권 대학 중에서는 이번 글로컬대학 본지정에서 탈락한 한동대가 있다. 이들은 신입생 전부를 자유전공으로 선발한 뒤 2학년 때 전공을 선택하도록 한다.

사실, 이 같은 논의는 이미 90년대 후반 김덕중 교육부 장관 시절 ‘선(先)입학 후(後)전공선택제’라는 이름으로 진행된 바 있다. 당시 논의된 무전공 입학제는 학생들의 선택권을 강화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됐다. 전공이 세분화된 상황에서 입학 때 자신의 적성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학과 전공을 선택할 경우 4년이란 시간을 허송세월로 보낼 수 있기 때문이다. 또 대학에만 입학하면 공부에서 손을 떼는 풍토도 개선할 수 있을 것으로 여겨졌다.

학생들의 전공선택 기회를 입학 때부터 지나치게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취지에서 시작된 이 논의는 대학 내부의 반발로 인해 몇몇 대학만 시험적으로 적용하고 조용히 폐기됐다. 학문적으로 중요한 학과이지만 인기가 없거나 취업 경쟁력이 약하다는 이유만으로 폐지돼서는 안 된다는 의견이 강했기 때문이다.

20여 년이란 시간이 지나 무전공 선발이라는 새로운 이름으로 부활한 이 제도가 이번에는 제대로 정착할 수 있을까. 대학가 관계자들은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급변했기 때문에 이번에는 성공적으로 정착하리라 전망했다.

수도권 대학에 재직 중인 한 교수는 “당시와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완전히 달라졌다”며 “지금 대학은 학령인구 감소와 지역 소멸 위기, 첨단 산업 발전‧변화 속도에 대응해야 하는 어려움에 처해 있기 때문에 이전처럼 교수라는 ‘자리’에 연연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다.

또 다른 비수도권 대학 총장은 “비수도권 대학 입장에서는 무전공 선발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되고 있다”며 “세분화된 전공으로 학생을 선발할 경우 향후 미달인 학과가 속출할 가능성이 높기 때문에 무전공 선발을 통해 학생들이 2학년 때 자신의 적성을 찾아갈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 “학생 ‘방목’이 아닌 ‘정밀한 학습지원시스템’ 갖춰야” = 4차 산업혁명의 도래와 함께 빠르게 변화하는 산업과 기술에 대응하기 위해서는 2차 산업혁명 시대 인재 양성 방식인 학과제에서 탈피해야 함은 분명해 보인다. 그러나 교육 전문가들은 철저한 준비 없이 무전공 선발제로의 변화는 조심할 필요가 있다고 경고했다.

백정하 한국대학교육협의회 고등교육연구소장은 “학과 간 벽 허물기가 성공적으로 진행되기 위해서는 정부와 대학이 어디까지 허용할 것인가에 대한 고민이 필요하다”며 “모든 대학에 적용하기 보다는 자율적 도입을 전제로 대규모, 학과 간 벽이 높은 대학부터 단계적으로 확산돼야 한다. 또한 특정 학과 쏠림 문제가 발생할 수 있기 때문에 이에 대한 대비가 필요하다”고 지적했다.

서울 소재 대학의 자유전공학부를 졸업한 박모 씨(29)는 “자유전공학부의 경우 취지와 다르게 취업에 유리한 특정 전공에 쏠림 현상이 심해 성적 경쟁이 치열했다”며 “몇몇 대학은 인기 전공을 선택하려면 학점 제한선이 존재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또 다른 졸업생 이모 씨(31)는 “처음 자유전공학부에 입학하고 가장 힘들었던 점 중 하나는 선배, 후배, 동기가 없다는 것”이라며 “원하는 전공으로 졸업하려면 어떤 커리큘럼을 들어야 하는지, 필수로 이수해야 하는 과목 등에 대한 정보를 얻는 부분이 너무 힘들었다”고 토로했다.

이 같은 문제점에 대해 백정하 소장은 “기존 학과 교육과정의 경우 교수나 선배의 조언을 통해 학과에 대한 적응력을 높이고, 커리큘럼에 대해 이해를 높일 수 있었지만 무전공 입학생의 경우 방목될 가능성이 있다”며 “교육과정 설계 및 이수에 대해 조언하고 지도할 인력과 ‘학습지원시스템’을 갖춰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어 “대학에서 학습지원시스템을 운영하기 위해서는 현재보다 많은 투자와 경비가 발생하기 때문에 정책의 성공을 위해서는 정부의 재정적 지원이 필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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