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정훈 경북전문대 철도운전제어공학과(전공심화)

박정훈 경북전문대 철도운전제어공학과. (사진=본인 제공)
박정훈 경북전문대 철도운전제어공학과. (사진=본인 제공)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2022년 전문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성별도,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큰 공통점이 있다. 사회 근간을 이루는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이다. 본지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공동으로 이 같은 열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삶의 동력과 영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모전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꿈이 뭐야?”라는 질문에 ‘파일럿’, ‘소방관’이라 답했던 해맑은 대답은 어느덧 ‘없음’이 됐다. 나조차도 나에 대해 확신할 수 없을 때 불안했고 그때마다 ‘승리와 패배’로 순간의 상황을 결정짓는 게임에 의존했으며 그렇게 일차원적 쾌락에 고착된 일상은 나를 좀먹었다. 하지만 언젠가 내가 누구인지에 대한 답을 해야 한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 찰나의 쾌락으로 100세 시대를 살아가기엔 삶이 아깝기 때문이다. 고등학생이 되던 해 변화를 맞기 위해 떠난 여행으로부터 우연찮게 현재의 내가 될 수 있었다.

- 한번 타볼래?
홀로 부산여행을 계획하고 떠난 나는 감성에 이끌려 교통수단으로 기차를 선택하게 됐다. 첫차를 타기 위해 서리가 내려앉은 승강장에 거센 눈발과 함께 무궁화호가 들어오고 있었다. “기차 어때?”, 갑작스런 질문에 뒤를 돌아봤을 때 양복을 갖춰 입은 남성이 말을 걸었다. 간단히 여행의 목적을 들은 남성은 대뜸 기차는 앞에 타면 그 전율이 다르다며 “한번 타볼래?”라는 말과 함께 정차한 무궁화호의 기관사와 교대 후 탑승했고 그렇게 나는 운전실에 탑승하게 됐다. 운전실의 조작 버튼과 함께 들려오는 무전기 소리는 새로웠고 역을 출발한 운전실은 기관사의 말처럼 객실에서 보는 것 과는 전혀 다른 전율을 안겨줬다. 마치 새로운 시야를 얻은 기분이었다.

기관사와 나는 ‘직업’에 대한 이야기를 하게 됐고 남들이 볼 때는 보통의 삶에 지나지 않는 기관사로 보일지라도 그들과 그들을 사랑하는 ‘가족’, ‘연인’, ‘친구’, 수천 명의 삶을 짊어지는 책임감과 사명감을 생각할 때 세상에 쉬운 직업은 없다고 알려주었다. 30분간의 짧은 대화였지만 나는 결심했다. ‘보통의 삶’을 살기로.

- 기회
고3 수시 원서를 적을 때였다. 기관사가 되기 위한 과정을 찾아보니 별도의 교육훈련기관에서의 수료를 마쳐야만 면허 시험을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는 것을 알게 됐다. 일반인으로서 교육기관 입교 시 600만원의 교육비와 6개월간 생활비가 필요하고 철도 운전과 관련된 대학에 진학한다고 해도 4년제 대학은 진학 후 대학 자체 교육기관에 별도로 입교해야 하기에 경제적으로나 시간적으로나 비효율적인 선택이었다. 반면 전문대학은 2년제 교육과정이 교육기관의 과정으로 인정되기 때문에 3학년 학기 초에 면허 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기회가 주어진다. 넉넉지 않은 가정형편과 꿈을 향한 시간을 고려해 볼 때 나에게 전문대학은 ‘기회’ 그 자체였다. 물론 모든 철도 관련 전문대학이 무상 교육을 실시하진 않기에 본 대학의 현암철도 아카데미는 더욱 특별한 기회로 다가왔다.

본 대학 진학을 결정했을 때 주위에선 곱지 않은 시선들도 있었다. 실업계고를 나왔지만 성적이 우수해 충분히 4년제 특성화고 전형을 넣었다면 일단 여기보다 나은 대학을 갈 수 있지 않겠냐는 반응과 전문대 갈 바엔 취업하겠다는 반응이 주를 이뤘다. 졸업을 몇 달 안 남긴 지금 내가 그들에게 해줄 수 있는 말은 “그래서 행복한가?”이다. 나날이 증가하고 있는 청년실업률과 무분별한 공무원 증원에 따라 대책 없이 노량진행을 택한 공시생을 생각할 때 무한 경쟁이 도래한 현시대의 대학 간판은 이름만 대면 모셔가는 시대가 지났음을 시사한다. 따라서 현명해질 필요가 있다. 대학은 과정일 뿐, 내가 추구하는 삶의 방향은 무엇인지, 어떤 사회인으로 거듭나고 싶은지를 생각하고 인생이라는 도화지를 그려 나가야 한다. 누군가에겐 보통의 삶처럼 보이는 기관사는 수천 명의 사람을 안고 있다는 책임감과 사명감으로 하루를 보내는 것처럼 말이다.

대학을 입학했을 당시 쉽게 적응할 것을 예견하며 발을 디딘 나에게 낯선 철도 용어와 전기에 대한 공식은 생각만큼 나를 반겨주지 않았다. 적잖이 당황스러웠지만 동기들과 함께 매일 저녁, 전공에 대한 발표와 개인별 학습 피드백을 실시해 공부의 능률을 높여 나가는 대학의 튜터링 프로그램을 활용했고 전공에 대해 한 걸음 앞선 선배들의 리더십을 기반한 멘토링 시스템을 적극 활용한 결과 철도운송 산업기사와 철도 교통 안전관리자 취득이라는 기쁨을 누릴 수 있었다. 또한 학과 커리큘럼에 의한 전공 위주 강의는 나를 지식적으로 견고하게 만들어 줬다. 자격증 취득과 전공을 배우는 과정이 결코 쉽진 않았지만 짧은 시간에 관련 전공을 몸에 익힐 수 있도록 다양한 학습지원 프로그램이 마련돼있다는 것은 전문대학이 가지는 매력이라고 생각한다.

- 보통의 삶
나는 현재 내년에 있을 철도차량 운전면허 시험과 공채시험을 준비하고 있다. 운전학과의 꽃이 되는 면허 시험에 합격하게 된다면 이후에 있을 공채시험에서의 기업 선택의 폭이 넓어지고 기관사가 되기 위해 한걸음 가까워지므로 반드시 취득해야 한다. 필기시험과 공채시험을 준비하면서 알 수 없는 공부의 깊이를 체감할 때면 펜을 내려놓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지만 언제나 학생을 최우선으로 생각해 늦은 저녁까지 특강을 진행해주시는 든든한 교수님들이 계시기에 펜을 잡게 된다.

해맑았던 ‘꿈’이 흐릿해져 갈 때 나는 길을 잃고 방황하게 됐다. 이런 나를 이어준 무궁화호 기관사처럼 마음과 마음을 잇는 기관사가 돼 ‘승객 안전‘, 이라는 미션에 대한 사명감을 가지는 영광스러운 삶을 누리고 싶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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