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지숙 순천제일대학교 유아교육과 졸업생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2022년 전문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성별도,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큰 공통점이 있다. 사회 근간을 이루는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이다. 본지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공동으로 이 같은 열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삶의 동력과 영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모전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최지숙(사진 왼쪽) 순천제일대 유아교육과 졸업생이 유치원생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최지숙(사진 왼쪽) 순천제일대 유아교육과 졸업생이 유치원생과 함께 포즈를 취하고 있다. (사진=본인 제공)

‘꿈’을 선물 받다
그저 조금 더 빨리 돈을 벌고 싶었고, 조금 더 일찍 사회에 나가고 싶었다. 유치원 선생님에 대한 기억은 희미했지만 갓 태어난 조카를 돌보면서 흥미를 느꼈고 유아교육과를 선택하게 됐다.

유아교육과가 있는 수많은 대학교 중 전문대학교를 선택한 이유는 내가 가지고 있는 기준을 반겨주고, 장학금을 지원해 준다며 팔 벌려 환영해 주었기 때문이다. 나를 반기는 곳에서 특별한 사람이 되고 싶다는 단순하고 당연한 마음이 들어서였다. ‘더 좋은 대학을 갈 성적이 되면서 왜 전문대학교를 가느냐’고 묻는 사람들에게 ‘내가 있는 곳의 최대치를 경험하겠다’고 말했다. 내가 갈 곳에서 채워지지 않는 배움이 있다고 느낀다면 그때 찾아 나가도 충분할 거라고 생각했다. 맛있는 음식이 가득한 곳에서 먹을 수 없음에 아쉬워하기보다는 제대로 먹고 하나라도 확실한 만족을 남기고 싶은 마음이 강했다. 내가 하고 싶은 공부를 할 수 있는 곳. 대학교는 그런 곳이라고 하더라. 사실 그때의 나에겐 ‘하고 싶은 공부’라는 것도 딱히 없었지만, 새로운 공간과 사람들과 전공 책들을 마주하며 벌써 전문가가 된 듯한 묘한 기분이 들었다.

사람들이 보내는 걱정과 우려의 시선을 느끼며 내 인생 처음으로 학교를 스스로 선택했다. 감사하게도 우리 학교에는 내가 한 만큼 얻어 갈 수 있는 것들이 많았다. 공부를 잘하고 똑똑하지 않아도 자신만의 강점이 하나라도 있으면 인정해 주고, 그에 알맞은 역할을 찾아주기도 했다. 목소리가 독특한 사람에게는 인형극에 사용할 목소리를 나눠주고, 나서기 부끄러워하는 사람들에게는 천막 뒤에서 빛을 발하는 막대 인형극을 제안했다. 센스나 재치가 좋은 사람은 주변 사람에게 웃음을 나눠주고 넘치는 리액션으로 보답 받을 수 있는 시간을 경험하게 했다. 공부를 하고 싶은 사람에게는 공부할 장소와 기회를, 뽐내고 싶은 사람에게는 다양한 분야의 공모전이나 경연 대회를 개최해주고 참여하는 것은 온전히 본인의 선택에 맡겼다.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다이소’가 생각났다. 우리 학교는 큰 대학교에 비하면 작은 편이지만, 있을 건 다 있었다. 진짜 내 삶에 필요한 것들을 잔뜩 놓아주고, 소비자가 직접 선택해 구매할 수 있게 하는 곳이다. 아기자기한 조약돌이 가득하고, 단풍나무 아래에 앉아 가을을 즐길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봄꽃이 만개한 날에는 수업 중에도 꽃을 감상하러 나가자고 설레하는 교수님들이 가득한, 봄바람에 살랑이는 꽃잎 같은 곳이다.

이렇게 넘치는 만족감을 얻으면서도 ‘작은 대학교에서 잘하면 뭐 하나?’ ‘거기서 1등 하는 건 쉬운 거 아닌가?’ 하는 등의 질문을 받을 때면 마음이 크게 흔들리기도 했다. ‘우물 안 개구리가 된 것은 아닐까’ ‘내가 이 학교에서는 인정받고 있지만 다른 공간에서도 잘할 수 있을까’하는 막연한 생각들이 내 마음을 흔들었다. 이런 와중에 나는 대학교에서 지원해 준 해외 봉사에서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며 생각의 전환점을 맞았다. 내가 만난 사람들도 모두 각자의 우물이 있었다. ‘우물’이라는 것은 각자가 처한 상황과 경험을 포함한 삶이 깃든 곳이었다. 나는 어디를 가도 ‘개구리’ 즉 ‘나’일 뿐이었다. 우물이 깊어서 다른 곳을 보지 못할 거라고, 우물 속 개구리가 불행할 것이라고 누가 말했는가. 나는 주변에서 정해준 기준과 세상이 정해준 기준에 흔들리고 있었지만 결국 우물의 깊이도 크기도 내가 정하는 것이었다. 이 세상엔 정말 다양한 크기와 모양을 따고 있는 우물이 많을 것이다. 나의 우물은 사람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는 새로운 이야기와 배움이 가득한 우물인 것이다.

‘유치원스럽다’ ‘대학교 다니는 기분이 안 나겠다’며 이야기하는 사람이 있어도, 나는 이 ‘유치원스러움’이 참 좋았다. 우리 학교에서는 책으로 배우는 시간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진득하게 어울리며 배우는 시간이 많았다. 한 반에 모여앉아 공통된 주제로 고민을 하고, 새로운 인생을 응원하던 시간들이 좋았다. 시험 기간에 지독하게 경쟁해도, 결국은 얻어 가려는 열정이 있는 사람들과 함께여서 좋았다.

대학 부설 유치원에서 산책 나온 아이들이 재잘대는 모습을 보며 나도 모르게 아이들과 함께하는 하루를 꿈꿨다. 나는 대학생 시절 ‘지금’에서 ‘행복’을 찾는 방법을 배웠다. 이 엄청난 배움과 경험들이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지금’의 나에게 정말 큰 힘이 돼주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지금’을 선물 받다
우리 교실에서는 재빠르고 작은 공간에 숨는 것을 잘하는 아이가 숨바꼭질을 하고 있다. 자신의 의견을 표현할 때 많은 사람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능력을 지닌 목소리가 우렁찬 아이는 피아노 반주에 맞춰 노래를 흥얼거리고 있다. 가사에 맞춰 율동을 만들어내는 능력을 가진 아이는 뮤직비디오를 찍는다며 한껏 기대에 부풀어 있으며, 부끄러움이 가득한 아이는 용기를 내기 위해 매 순간 친구들의 응원을 받고 있다. 아이들과 함께하고 있는 교실은 내 대학 시절과 크게 다르지 않다. 아이들이 내가 경험했던 것처럼 자신의 강점을 충분히 즐기면서 하루를 보내길 바란다. 자신의 하루를 힘껏 활용하고 즐길 수 있는 힘이 생기길 바란다.

우리 아이들을 만나기 이전의 시간부터 아이들과 함께하는 지금까지의 시간에는 전문대학이라는 커다란 과정이 있었다. 일을 할 수 있는 자격과 내가 있는 곳의 최대치를 느낄 수 있게 해준 대학이라는 공간에 감사하다. 전문대학은 내 강점이 돋보일 수 있는 기관을 추천해 주고 면접의 기회를 마련해 줬고, 나의 강점을 알아주고 인정해 주는 공간에서 아이들과 함께 하는 지금을 선물해 줬다. 아이들과 함께하며 더 궁금한 것들이 생겼고, 현장에서 사람들과 소통하고 싶어질 무렵에는 전공심화과정을 통해 소통할 수 있는 시간을 마련해 주었다.

유치원교사는 지역사회와의 연계가 큰 영향을 끼치는 직업 중 하나다. 대학을 졸업한 지 5년째지만, 내가 현장에서 느끼는 고민과 어려움이 학교나 지역사회가 느끼는 고민과 결이 비슷하기 때문에 그 소속감과 든든함은 이루 말할 수가 없다. 내가 대학 시절 느꼈던 따뜻함과 편안함이 있었기에 더 많은 도움을 요청하고 받을 수 있는 것이 아닐까 생각한다.

주변에서는 ‘나는 꿈이 없다’, ‘무엇을 하고 싶은지 모르겠다’며 나를 부러워한다. 나의 시작도 위대하거나 장대하지 않았다. 내가 가진 것은 사회 진출에 대한 기대감, 아이들에 대한 조그마한 흥미뿐이었다. 좋은 사람들과 좋은 공간에서 물처럼 흘러가던 시간들에 어느새 새로운 생명들이 다듬어진 조약돌처럼 함께 하고 있었다.

이 세상에 아무것도 아닌 ‘지금’은 없으며 아무것도 아닌 ‘나’도 없다. 나의 선택들이 쌓여 어떤 ‘지금’을 만들게 될지 아무도 모르기에, 대학이라는 새로운 발판에서 차근차근 시작해보면 어떨까 생각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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