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수아 광주보건대학교 보건행정학과 2학년

정수아 광주보건대학교 보건행정학과 2학년. (사진=본인 제공)
정수아 광주보건대학교 보건행정학과 2학년. (사진=본인 제공)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2022년 전문대 재학생들을 대상으로 그들의 이야기를 듣는 수기 공모전을 개최했다. 전문대학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성별도, 나이도, 살아온 환경도 모두 다르지만 하나의 큰 공통점이 있다. 사회 근간을 이루는 전문 기술인으로 성장하겠다는 뜨거운 열정이다. 본지와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는 공동으로 이 같은 열정을 독자들과 함께 나누고 삶의 동력과 영감을 이끌어내기 위해 공모전 수상자들의 이야기를 소개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무탈하지 않은 청소년기였다. 얼렁뚱땅 주위에 휩쓸린 고교진학을 하고 남들보다 1년 늦은 시작을 다시 걸으며 특성화 특별전형으로 공무원 준비도 했다가, 또 꿈은 가지고 싶어 2학년 하반기부터 입시 준비를 했다. 불 보듯 뻔한 결과였다. 줏대 없는 꿈의 말로는 낙방이었다. 무슨 자신감이었는지 원하는 대학이 아니면 가지 않겠다고 딱 한 곳만 지원을 하는 바람에 졸지에 고졸이 됐다. 12년간 학교를 밥 먹듯이 결석해도 뭐라도 되겠지, 막연했는데 막상 ‘뭐’조차 되지 않은 성년이었다. 막막했다. 영원히 19살일 것 같던 내가 20살, 아니 21살에 고등학교 졸업을 하고 사회에 나가니 낙동강 오리알이 된 기분이었다.

잘 하는 게 없었다. 특기도, 취미도 하다못해 고등학교 때 취득한 자격증마저 활용하지 못 했던 나는 사업을 시작했다. 줏대 없는 사람은 귀도 얇다. ‘프리저브드 플라워’라고 천일동안 시들지 않는 꽃이랬다. 온라인 스토어의 구조도 모르는 아이가 겉핥기 공부만으로, 그것도 경제 침체 시기에 사치품을 가지고 뛰어드니 대학 입시 결과만큼 뻔한 미래였다. 망했다. 바닥 밑에 지옥이 도사리고 있을 줄은 몰랐다. 그쯤되니 주변에서 대입을 많이 권유했는데, 22살의 나는 이 나이에 무슨 대학이냐며 가지 않겠노라 선언을 하고 각종 아르바이트를 시작하면서 또 허송세월을 보냈다.

20대 중반이 넘어 갈 무렵엔 요식업에 발을 들였었지만 악재는 악재를 부른다고 설상가상 전례없는 코로나(COVID-19) 사태로 인해 무기력한 날의 반복이었다. 가치 없는 삶에 흑백이 드리웠다. 그리고 그 때쯤 다시 한 번 대입을 권유받았다. 더 이상 선택지가 없었다. 학원을 다녀도 기술을 배워도 학력미달로 지원 자격조차 되지 않는 서류탈락 인생이었다. 26세가 되던 날, 뒤늦은 대입을 준비하기로 결심했다.

결국 자격만 갖추자는 마음으로 전문보건대학 3년제 학과에 원서 접수를 하고 수시합격 통보를 받았는데, 이상하게 설렜다. 합격 이후 지도교수님이 보내주는 학과 진로 자료를 읽고 또 읽었다. ‘병원행정사’, ‘보건의료정보관리사’, ‘손해사정사’ 등 진로 방향의 폭넓은 선택지를 보자 가슴 한구석에 가시처럼 걸렸던 학구열이 들끓었고 원서 접수 때 가졌던 마음가짐은 온데간데없이 대학 안 간다고 몇 년을 고집부리던 내가 맞나 싶을 정도로 열정이 넘쳤다. 학창시절 결석을 밥 먹듯이 했던 내가 지각 한번 하지 않고 오랜만에 잡는 펜으로 과탑도 해봤다.

‘만학도’라는 진입장벽을 허물고 나니 전문대학에서 시작된 제2의 삶은 탄탄대로였다. 교안부터 생소한 전공도 재미있고 교양은 유익하고 아는 문제로 도배된 시험지는 짜릿했다. 꿈도 생겼다. 난생 눈길 한 번 준 적 없는 의료계에 관심이 생기면서 현재 코로나로 고생하는 현장직 분들의 밀접한 지원군이 되고 싶었다. 모든 일에는 단계가 있고 과정이 있는 만큼 원활한 현장을 진행하는 데에는 신속하고 즉각적인 피드백이 중요하다고 느꼈다. 스피드와 정확성이 동시에 요구되는 직업군 특성상 보건행정의 역할이 누구보다 중대하다고 생각되어 ‘보건직 공무원’으로 진로를 잡았다.

사실상 두 번 째 공무원 준비지만 등 떠밀려 시작했던 그 시기와는 다르게 마음의 추가 잡혔다. 조지 오웰 ‘1984’에 나오는 주인공을 보면 독재의 압박에 벌벌 떨면서도 일기에 자신의 의지를 기록하는 것을 포기하지 않는다. 거창하고 원대한 목표를 이루고자 하는 것 보다, 묵묵히 내 뜻을 가진 길을 걷고 쏟아지는 우려와 걱정 속에서도 소신을 굽히지 않는 정신이 필요함을 뒤늦은 대입을 통해 절실히 깨달았다. 왜 진작 정신 차리지 못 했을까, 후회 되는 건 사실이다. 하지만 지나간 시간을 후회하는 것만큼 바보 같은 행동은 없기에 지금이나마 새 시작을 하게 된 걸 자축하며 현재에 충실하기로 다짐했다.

나쁘면 경험이고 좋으면 추억이랬다. 혹여 다른 시련으로 지금 가진 단단한 의지가 흔들리더라도 지난 날의 경험이 준 교훈을 잊지 않으며 스스로를 바로 잡을 수 있는 값진 추억으로 남길 것이다. 존재의 가치는 끊임없는 열망에서 온다. 배움에는 왕도가 없으므로 앞으로 남은 2년 동안 전공에 국한되지 않는 다양한 공부를 하고 싶다. 아쉽게도 우리 학교 같은 경우 복수전공이나 청강을 할 기회가 없지만 그럴수록 주어진 학습에 최선을 다하며 20대 초반 낭비한 시간을 지금부터 보상받으려 한다.

보건행정과는 전공 특성상 자신의 역량에 따라 폭 넓은 선택지를 갖고 진로 방향을 선택할 수 있다. 병원 혹은 보험. 사실 ‘보건직 공무원’을 염두에 두고 여기에 맞춘 커리큘럼으로 학습계획을 짰지만 기회가 된다면 보험 쪽도 공부해보고 싶다. 각종 보험사고에 대해 경우에 따른 판례와 선례는 호기심을 자극했다. 또한 광주보건대학교 보건행정과는 3년제이긴 하나 1년의 전공심화과정을 통해 학위를 수여받을 수도 있다. 따라서 재학 기간 중에는 보건의료정보관리사 국가고시에 전념하고 이 학습을 토대로 삼아 전공심화과정을 통해 주변 학습환경 조성으로 보건직 공무원 준비에 몰두할 좋은 기회이기도 하다.

기회는 찾아오는 것이 아닌 만들어가는 것이다. 나만의 길을 개척함으로써 사회의 일원으로 인정받고 재원으로 거듭나고 싶다. 기나긴 갈등과 고민 끝에 비로소 20대 후반에야 학교를 다니게 되어 더욱 간절하고 지나가는 1분 1초가 아쉽다. ‘늦었다고 생각할 때가 제일 빠르다’는 말처럼 도전정신에는 때가 없고 발전하는 삶을 위해 도전하는 용기는 가장 중요함을 되새긴다. 가치있는 삶을 위해서도 부단히 노력하고자 한다.

반짝이는 봉사정신은 누구나 가질 수 있지만 그 영속성은 끊임없는 희생과 헌신이라고 생각한다. 급변하는 세상 속 만연한 개인주의에도 국가와 지역사회 안전에 이바지하는 사람들처럼 나 또한 어려움에 처한 이들의 건강권을 위해 만전을 기할 것이다. 코로나 사태 이후 아직까지 전세계가 힘든 이 시기를 발판삼아 크게 도약할 수 있는 재학 기간이 되었으면 좋겠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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