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최근 기업과 지자체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디지털 학습 이력과 경력을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를 도입하고자 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배지가 활발하게 사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초기라는 점에서 활성화를 위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디지털 배지 도입에 앞서 연재기획 ‘디지털 대전환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연재기획을 통해 전문가 시각에서 디지털 배지의 글로벌 표준 정립, 학생 관점의 디지털 이력 관리 중요성을 살펴보고, 향후 흐름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무처장)
②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③ 노원석 레코스 대표
④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⑤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⑥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⑦ 전문가 좌담회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2023년 미국의 교육 기업인 프린스턴 리뷰(Princeton Review)가 선정한 ‘2023년도 미국 대학 랭킹’에서 조지아텍(GIT)과 MIT가 각각 주립대와 사립대에서 ‘최고의 가치 있는 대학’ 1위로 선정됐다.

두 대학 모두 작년에는 2위였지만 올해 1위로 올라섰다. 최고의 가치 대학이란 △등록금, 생활비 등 학위 획득 비용 △학교의 학문적 수준 △재정지원 △졸업 후 소득 등과 같은 측면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때 높은 비용 효율성을 가진 대학을 의미한다. 한마디로 가성비가 높은 대학이다. 특히, 조지아텍의 등록금은 MIT의 절반 수준으로 양질의 교육 서비스를 제공받으면서도 졸업 후 높은 연봉을 받는 것으로 유명하다. 기술의 발전으로 변화하는 고용시장에 발 빠르게 대응을 잘 하고 있는 미국 대학의 우수 사례라고 할 수 있다.

2022년 11월 미국의 블룸버그는 한국이 교육열은 높지만 투자비용 대비 성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 국가 중에서 ‘꼴찌’라고 보도했다.

인당 교육비 대비 근로자 1인당 국내총생산(GDP)의 비율을 산정한 결과 한국이 6.5배로 가장 저조했다고 보도했다. 이 비율이 낮을수록 교육비 지출액에 비해 근로자의 생산성이 약하다는 뜻이다. 블룸버그는 “한국 학생들은 세계적으로 우수한 평가를 받지만, 이들의 능력은 근로자가 된 이후 빠르게 줄어든다”며 “지속적인 훈련 부족, 자율성 부족 등이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대학 졸업생 중 절반이 전공과 무관한 직업을 갖게 되는 등 노동시장의 수요와 근로자 능력의 불일치(Job mismatching)가 선진국 중에서 가장 큰 나라라고도 덧붙였다. 많은 청소년들이 취업보다는 대학진학을 목표로 하면서 노동시장의 불균형과 근로자의 생산성 하락이 나타나고 있다는 분석도 제기됐다. “한국의 교육열은 경제적 성취의 핵심 동력이었지만 이제는 노동시장의 요구를 충족시키지 못하고 젊은이들의 정신건강에도 해를 끼친다”는 비난을 받고 있다. 이러한 지적은 이미 2011년 대통령소속국가정보화전략위원회와 교육과학기술부가 발표한 “인재대국으로 가는 길 스마트교육 추진전략”에도 포함된 바 있다. 당시 맥킨지 앤드 컴퍼니(Mckinsey & Company)는 “한국의 교육제도는 장기적인 관점에서 볼 때 한국 경제의 경쟁력을 약화시킬 가능성까지 있다”며 교육 개혁의 필요성을 제기했었다.

하지만 10여 년이 지난 지금도 교육 혁신은 이해 관계자의 복잡성과 변화를 최소화해야 하는 예측 가능성이라는 특수성으로 인해 전환의 계기를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고 있다. 그러나 2016년 이세돌과 AI 알파고의 바둑 대국, 제4차 산업혁명 그리고 코로나 팬데믹으로 확대된 비대면 교육 등 디지털전환(DX: Digital Transformation)의 문명사적 전환기에 한국 교육은 드디어 혁신의 기회를 맞이하고 있다.

지난 6월 8일 이주호 부총리 겸 교육부장관은 서울청사에서 사회정책협의회를 개최하고 우리 사회의 다양한 영역에서 싱크탱크 역할을 하는 20개 연구기관들을 한 자리에 모아 ‘데이터 기반 사회정책 활성화 방안’을 주제로 상호 협력 방안을 모색했다. 이 자리에서 이 총리는“디지털 대전환 시대에는 데이터 연계·활용을 통한 과학적 의사결정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데이터 활용의 주요 주체로서 전문성과 상호 협력을 바탕으로 증거기반 사회정책 수립을 적극적으로 뒷받침해 주기를 당부한 바 있다.

데이터 활용이 필요한 대표적 예시로 졸업생의 취업현황 분야를 들 수 있다. 매년 대학에서는 졸업생의 취업현황을 확인하기 위해 학과장이 직접 졸업생에게 전화를 하는 등 수작업으로 통계를 집계하고 있고, 전문계 고등학교 역시 학생의 취업정보 추적 관리가 체계적으로 이뤄지기 어려운 상황이다. 졸업생 데이터와 고용데이터 또는 보험데이터와 연계만 된다면 수작업이 상당히 줄어들고, 데이터를 바탕으로 역량기반 교육과정 정책을 수립한다면 잡미스매치 또한 줄일 수 있을 것이다.

따라서 데이터를 잘 활용하면 수작업을 획기적으로 줄이고 과학적 의사결정이 가능하다. 교육분야의 데이터는 크게 (교수)학습데이터와 행정통계데이터로 나눌 수 있다. 학습데이터는 개별 맞춤학습은 물론이고 학생의 진로 및 생활을 체계적으로 지원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행정통계데이터는 학교 행정과 경영에 있어 주먹구구가 아닌 과학적 의사결정에 활용할 수 있다.

가구당 한 해 출생률이 0.78명으로 OECD 중 최하위이며 20만 명대 학령기 학생의 초극단적 인구절벽에 직면한 우리나라의 교육 상황은 가성비를 높이기 위한 재정투입과 교육자원의 재구조화가 반드시 필요하다. 그동안 잘 갖춰놓은 대학 시설과 교수요원들을 적극 활용해 국내 학생의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대학뿐만 아니라 초중고에서도 해외 유학생 유치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으며, 이를 위한 종합적인 인재양성 계획수립이 필요하다. 유학생 유치를 확대하기 위해서는 먼저 국내 대학의 명예(Reputation)를 높이고 연구 성과를 잘 관리해 국제적 저널에 많이 투고돼 인용(Citation)돼야 한다. 해외와 관계를 맺고 교육계, 산업계 오피니언 리더를 평소에 데이터베이스(DB)로 관리하며 학교의 성과를 홍보해야 한다. 또 임팩트가 높은 국제 저널과 논문 투고 일정 등을 연구자에게 추천하는 데이터베이스를 구축해야 한다. 최근 연세대, 성균관대 등이 세계 대학 평가에서 순위가 상승하는 이유도 평가, 연구, 교수학습, 학생지원 등 학교 운영의 주요한 분야별 데이터베이스를 체계적으로 구축하고 학생, 연구자의 프로파일 데이터를 기반으로 분석해 즉각적이고 자동화된 대응체제를 가동하고 있기 때문으로 볼 수 있다.

국내 대학은 대부분이 사립대학임에도 정부의 재정지원이 학교 운영 예산의 절대적 비율을 차지하고 있다. 이로 인해 대학은 산발적으로 추진돼 온 정책사업의 영향을 받아 성과가 축적되지 않고 대학 혁신과 경쟁력 강화에 시너지효과를 얻기 어려웠다. 이러한 지적에 교육부는 글로컬대학30, 지역혁신중심대학지원체계(RISE: Regional Innovation System & Education) 등 산발적으로 추진돼 온 대학 지원 사업을 대규모 지원 사업으로 재정 통합해 글로벌 경쟁력을 갖춘 대학으로 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체제를 변경했다. 또 무학과 자율전공 등 대학에 자율성을 확대해 미래 사회와 기술 변화에 대비할 수 있도록 대학지원정책을 대전환시켰다.

이러한 정책의 변화는 대학의 자율성과 경쟁력을 높일 것으로 기대되지만, 반대로 생각하면 주어진 자율에는 책임이 따르고 무한한 의사결정을 대학 스스로 해야 하는 상황에 직면하게 됐다는 것을 의미하기도 한다. 어느 순간부터 우리 대학에도 정치에서나 볼 수 있었던 계파가 형성돼 이성적 의사결정보다 관계와 상황에 따른 의사결정이 만연해지고 있다는 불만의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특히 4년의 짧은 총장 임기마다 장기적 성장을 위한 정책보다는 단기성과에 치우친 의사결정이 이뤄져 대학의 경쟁력을 약화시키고 지속적 발전에 저해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는 우려가 커지고 있다. 대학에 대규모 재정이 투입되는 사업이 늘어날수록 대학은 투자대비효과(ROI: Return On Investment)를 높이기 위한 데이터 기반의 체계적 성과관리 시스템을 도입해 학생·학부모가 희망하는 가성비 높은 대학으로 전환할 필요가 있다.

국가는 학교와 대학이 자체적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을 적극 발굴해 1970년 경부고속도로, 2004년 KTX 개통 등 정부가 국민의 생산 활동을 돕기 위해 SOC를 투입한 것과 같이 비용대비 효과를 높일 수 있는 교육 사회간접자본(SOC) 사업을 추진해야 한다. 예를 들어 미국의 교육부 통계센터는 종단데이터시스템(LDS: Longitudinal Data System)을 구축해 유치원부터 고용시장에 이르는 학생의 학습 이력을 데이터로 추적 분석할 수 있도록 했다. 이 시스템을 통해 대학은 졸업생의 노동시장 적응 양상을 관찰할 수 있게 됐으며, 수업을 개선하고 학생의 요구에 맞는 교육과정으로 개선하는 자료로 활용하고 있다. 또한 데이터를 통해 학생이 노동시장의 요구에 얼마나 적합한지 분석하고 새롭게 생성되는 직업분야를 예측해 이를 대비할 수 있는 인력양성 정책을 마련할 수 있다. 학교, 정책 입안자와 지역사회는 종단데이터시스템을 통해 교육 프로그램과 학생 성과의 관계를 분석할 수 있고 분석 결과를 기반으로 정책을 마련하거나 대학진학, 직업 준비, 성취도 격차 해소와 같은 주요 교육 이슈에 대한 해결방안 마련에도 도움을 받고 있다.

이러한 시스템의 정착 성공 요인으로는 데이터를 수집하고 관리할 수 있는 국가 차원의 데이터시스템 구축, 데이터 제공기관 간의 적극적 협력과 지지, 데이터 사용에 대한 신뢰 및 투명성 확보, 특정 지역 시범 운영을 통한 지속적 시스템의 개선 등을 꼽고 있다. 디지털플랫폼정보를 표방하고 있는 현 정부에서 산재된 데이터의 통합과 연계는 가장 핵심 과제라고 할 수 있다. 교육데이터의 생산, 수집, 가공 등에 이르는 일련의 과정에 아낌없는 SOC 투자가 필요하다.

교육데이터는 의료데이터만큼이나 민감한 정보를 포함하고 있어 다루기가 매우 어렵다. 더욱이 학생의 데이터가 오남용돼 자칫 기대하지 않은 낙인이 찍히는 ‘오명(Stigma)’로부터 학생을 보호하고, 학생이 가성비 높은 저비용의 학습활동으로 다양한 꿈을 키우며 인생을 설계할 수 있도록 기반을 제공하는 것이 국가의 역할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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