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최근 기업과 지자체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디지털 학습 이력과 경력을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를 도입하고자 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배지가 활발하게 사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초기라는 점에서 활성화를 위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디지털 배지 도입에 앞서 연재기획 ‘디지털 대전환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연재기획을 통해 전문가 시각에서 디지털 배지의 글로벌 표준 정립, 학생 관점의 디지털 이력 관리 중요성을 살펴보고, 향후 흐름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무처장)
②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③ 노원석 레코스 대표
④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⑤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⑥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⑦ 전문가 좌담회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와 초고령화, 생성형 AI, 메타버스, 빅데이터, 블록체인 등 신기술의 진화, COVID-19로 촉발된 비대면 강의 일상화 등 대학교육 현장은 급격하게 변화하고 있다. 혁명적 단절을 의미하는 ‘패러다임 쉬프트’다. 우리는 콘텐츠, 플랫폼, 네트워크, 디바이스, 서비스 등 소위 'C-P-N-D-S'로 대표되는 에듀테크 기술의 혁신적 진화를 경험하고 있다. 챗GPT 등 생성형 AI 등장 이후 교육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표준이 자리잡아 가고 있다. 에듀테크 기반의 다양한 학습 솔루션과 서비스들이 대학 안으로 들어오고 있기 때문이다. 이제 막 걸음마를 시작한 디지털 배지도 어쩌면 그중 하나일지도 모른다.

디지털배지로 그려보는 미래세상

대학의 수입원 중 큰 수입은 아니지만 졸업증명서, 성적증명서 등 각종 증명서를 발급하면서 거둬들이는 수수료 수입이 있다. 만약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가 디지털배지로 대체된다면 졸업증명서와 성적증명서를 떼는 수고로움이 없어질 것이다. 당연히 대학의 수입계정 하나는 없어지게 된다. 유아교육학위를 마치고 캐나다와 호주에 유치원 교사로 취업하기 위해 한국에서 이수했던 과목과 관련 자격증을 제출하려면 서류 발급, 번역비용, 공증비용 등이 꽤 들 것이다. 더욱이 서류의 진위 여부 확인을 위한 절차는 서류를 제출하는 것보다 더 까다로울 수 있다. 만약 블록체인 기술에 의해 보호된 디지털 배지를 ‘디지털 지갑’에 넣고 지원 학생의 과목 이수 이력과 자격증 이력을 증명할 수 있게 되면 어떨까? 이 모든 것이 가능하게 만드는 것이 디지털 배지가 만들어 가는 세상이 될 것이다.

디지털 배지는 단순히 게임을 통해 전리품으로 얻는 훈장과 같은 역할이 아니라 한 사람의 학습 이력과 학습경험을 자신만의 디지털 지갑에 평생 간직하면서 필요할 때마다 펼쳐 보일 수 있는 개인의 포트폴리오를 의미한다. 그런 디지털 배지가 우리나라에서도 첫걸음을 뗐다,

정부 정책과 디지털 배지

교육부 주요 정책 과제에도 디지털 배지 활성화는 포함돼 있다. 교내외 프로젝트 활동과 마이크로디그리 등 다양한 디지털 교육‧경험‧자격 이력을 누적하고, 이를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를 부여한다는 의미다. 더 나아가 디지털 학습 이력 관리‧인증 시스템인 ‘마이 포트폴리오’ 플랫폼과 연계해 디지털 배지가 단순히 일회성이 아니라 평생이력관리의 핵심 요소로 자리잡는다는 것을 의미한다. 정부가 공공기관뿐만 아니라 민간부문에서도 기업 등의 선호에 따라 자율적으로 디지털 배지를 발급하는 것을 지원함으로써 공공과 민간이 협업하는 생태계를 조성하겠다는 의지로 비춰진다. 궁극적으로 디지털 배지가 디지털 지갑에 연계되도록 지원하고, 디지털 인재 얼라이언스를 통해 취업‧구인‧구직 사이트(역량증빙 활용)와 소셜미디어(역량 표출) 등 다양한 채널에서 활용할 수 있는 생태계를 조성한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디지털배지 시장에 대한 글로벌시장 성장전망도 밝다. 시장조사기관인 마켓리서치퓨처(Market Research Future)에 따르면, 글로벌 디지털 배지 시장 규모는 연평균 19.1%P 성장이 예측된다. 시장 규모는 2023년 1억 9865만 달러에서 2030년 6억 7371만 달러로 약 239%P 성장이 예상된다. 주요 성장 동인은 IT업계 전반에 걸친 온라인 인증 적용 증가와 교육 기관의 학습 관리 소프트웨어 도입 증가 등으로 분석하고 있다. 지역별로는 북미, 유럽,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높은 시장 점유율을 기록하고 있다. 특히 한국을 비롯한 중국, 일본, 인도, 호주 등 아시아-태평양 국가가 주요 시장 성장 지역(APAC to Head Digital Badges Market)으로 자리매김할 전망이다. 잘 설계된 디지털 마이크로 자격증명(well-designed digital micro credentials)이 학생의 참여, 성취, 성공 등을 향상시키는 핵심 전략이 되고 있다. 디지털 자격증명 운동의 목표인 ‘교육 경험과 학생 취업의 연결’ 가치를 실현하는데 한 발 더 다가선 느낌이다.

54개 전문대학의 메타버스 플랫폼 실험과 디지털 배지

2021년 9월, 고등직업교육의 교육과정 혁신과 트렌드를 연구하는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에서는 혁신적 상상을 했다. 대학 간 공유·협력을 강조하는 분위기와 원격교육의 맹아로 떠오른 메타버스 환경을 접목한 전문대학 간 메타버스 플랫폼을 공동으로 구축하자는 것이다. 메타버스 공동 플랫폼 구축의 이유는 명확했다. 재정이 부족한 전문대학의 경우 자체적으로 메타버스 교육 플랫폼을 구축하는 것이 사실상 불가능했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메타버스 커뮤니티 플랫폼인 제페토나 게더타운을 활용해 입학식이나 졸업식과 같은 일회성 행사를 하면서 교육적 혁신을 했다고 하기에는 설득력이 없어 보였기 때문이다. 함께 해야 한다는 인식이 공유·협력이라는 당위성과 만나 ‘전문대학이 함께 하는 메타버스 플랫폼’이 탄생하게 되었다. 마치 뒤처진 신용카드 결제 시스템을 패싱하고 바로 모바일결제 환경으로 넘어갔던 중국의 사례처럼 말이다. 그로부터 2년이 지난 지금 전문대학 메타버스 플랫폼인 ‘메타버시티 2.0’은 진화를 거듭했다. 특히 입학식, 졸업식 등 대학 행사 중심의 메타버스 플랫폼에서 아바타 상담, 실시간 강의, 전시회 등의 다양한 기능을 갖추는 ‘all-in-one 서비스’의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디지털 배지와 관련해서는 민간자격과 연계된 자격인증, 졸업식과 연계된 졸업인증, 핵심역량교육과 연계된 학생역량 인증 등 다양한 형태로 진화하고 있다. 54개 대학의 교직원과 학생들은 메타버시티 2.0 플랫폼을 통해 다양한 교육을 이수하고 이를 증명하는 도구로 디지털 배지를 발급받는다. 학생 개인의 관점에서 보면 처음에는 호기심으로 받았던 디지털 배지가 하나씩 쌓여가면서 자신의 학습경험에 대한 이력이 디지털 지갑 안에 하나씩 축적되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양적 변화가 축적되면 질적 변화로 나타난다.

(자료: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주관 ‘메타버시티 2.0’플랫폼 연계 디지털배지 발급 현황)
(자료: 한국고등직업교육학회 주관 ‘메타버시티 2.0’플랫폼 연계 디지털배지 발급 현황)

디지털 배지와 플라이휠 효과

플라이휠 효과란 거대하고 무거운 플라이휠을 한 방향으로 한 바퀴 한 바퀴 돌리면서 임계점에 이를 때까지 지속적으로 밀고 나갈 때, 어느 순간 손을 떼어도 거대한 플라이휠은 자동으로 돌아가는 현상을 말한다. 이동하는 바퀴에 에너지가 축적돼 어느 시점이 되면 거대한 수레바퀴가 스스로 굴러가게 되는 것이다. 아마존의 플라이휠 효과란, 성장(Growth)→낮은 비용 구조(Lower Cost Structure)→낮은 판매 가격(Lower Prices)→고객 경험(Customer Experience) 등 4개의 가치사슬 사이클이 선순환을 갖는 것이다. 이러한 선순환 구조는 성장을 통해 더 큰 성장을 견인하게 된다.

디지털 배지의 플라이휠 효과도 조심스레 예측해 본다. 비록 거대한 수레바퀴의 움직임이 시작되는 초기이긴 하지만 디지털 배지 성장의 걸림돌인 ‘블록체인 기술’과 ‘아날로그 세대 인식전환’이 급속도로 개선될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더 저렴하고 더 나은 기술’이 진화함에 따라 디지털 배지의 사용자 기반이 증가할 것이다. 디지털 환경에 익숙한 MZ세대들이 디지털 배지에 대한 사용자 편의성과 활용 가능성에 눈을 뜨게 되면 디지털 배지는 급속하게 기존의 아날로그 형 역량 증명서를 대체하게 될 것이다. 특히 기존 핵심역량중심 교육뿐만 아니라 기술 급변에 따른 세부 스킬 중심의 마이크로 단위 스킬교육이 중요해 지면서 이를 세부 역량 단위로 증명할 수 있는 디지털 배지와 개인별 포트폴리오가 고등직업교육분야에서는 대세가 될 것이기 때문이다. 단적으로 싱가포르가 2015년부터 국가 아젠다로 채택한 ‘스킬스퓨처 (Skills Future)’프로그램에서 가능성을 엿볼 수 있다. 스킬스 퓨처는 학생부터 사회초년생, 오랜 경력을 보유한 기술자까지 정부가 평생 직업훈련을 제공하는 시스템이다. 디지털 배지는 ‘더 저렴하고 더 나은 기술’들이 계속 진화하면서 ‘스킬 교육→배지 발급→데이터 축척→세부역량 분석→맞춤형 채용’이라는 플라이휠 효과가 생겨날 것이다. 머지않은 미래에 이 큰 수레바퀴가 스스로 굴러갈 수 있는 힘을 갖게 될 것이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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