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최근 기업과 지자체뿐 아니라 교육계에서도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에 대한 관심이 높아진다. 디지털 학습 이력과 경력을 증명하는 디지털 배지를 도입하고자 하는 대학들이 늘고 있다. 해외에서는 이미 디지털 배지가 활발하게 사용되지만, 국내에서는 아직 도입 초기라는 점에서 활성화를 위한 더욱 많은 노력이 필요하다. 이에 본지는 디지털 배지 도입에 앞서 연재기획 ‘디지털 대전환 기획 시리즈’를 준비했다. 연재기획을 통해 전문가 시각에서 디지털 배지의 글로벌 표준 정립, 학생 관점의 디지털 이력 관리 중요성을 살펴보고, 향후 흐름을 조망하고자 한다. [편집자주]

■ 연재 순서

① 배상훈 성균관대 교수(교무처장)
② 장상현 한국교육학술정보원 교육데이터센터장
③ 노원석 레코스 대표
④ 홍정민 휴넷 L&D연구소장
⑤ 조훈 전문대교협 국제협력실장
⑥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⑦ 전문가 좌담회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이상범 교육부 전(前) 중등직업교육정책과장

1년여 전, 정부는 ‘디지털 인재양성 종합방안’을 발표했다. 교육부, 과기정통부 등 관계부처가 합동으로 발표한 이 방안에서 디지털 인재는 첨단 IT기업의 기술인력만이 아니었다. 일상에서 자유롭게 디지털 기술을 활용할 수 있는 사람 모두를 디지털 인재로 폭넓게 바라보고, 모든 국민들이 디지털 역량을 키울 수 있도록 지원하는 정책들이 추진되고 있다. 국민 대부분이 스마트폰을 보유하고, ○○○톡, □□□밴드와 같은 소셜네트워킹서비스(SNS) 없이는 하루도 지내기 어려운 시대에 교육현장에서도 디지털 기술을 활용해 모든 학생들이 디지털 인재로 성장해 가도록 교육방법을 혁신하는 시도가 계속되고 있다.

우리 생활 곳곳에 스며들고 있는 디지털 배지
‘배지(Badge)’는 어떤 것을 기념하기 위해 옷이나 모자에 붙이는 물건이다. 이 배지를 온라인으로 발급하고 유통할 수 있도록 전자파일로 만든 것이 디지털 배지(Digital Badge)이다. 디지털 배지가 실물 배지보다 좋은 점은 각종 정보를 저장해 둘 수 있고 스마트 기기를 통해 전 세계 누구에게나 보여줄 수 있다는 점이다. 

디지털 배지는 이미 우리 생활 깊숙이 들어와 있다. 마라톤 대회를 완주하면 금은동 메달 대신에 디지털 배지를 스마트폰 앱으로 보내준다. 마라톤 완주자는 SNS 프로필 사진에 게시하거나 지인들과의 채팅창을 통해 마라톤 완주 배지를 보여 줄 수 있다. 운동 어플에서 1만보 걷기 등 자신만의 목표를 달성하면 왕관 모양 등 다양한 디자인의 배지를 받을 수도 있고, 스마트폰 앱 서비스에서 몇 개의 배지를 모으면 해당 서비스의 등급이 올라가거나 혜택을 받기도 한다. 온라인 게임에서 아이템을 모으면 레벨이 올라가는 것도 디지털 배지와 유사한 개념이다.

학습 동기 유발, 교육과 산업의 연결 수단

(사진=교육부)

디지털 배지의 교육적 기능은 일반 배지와 같다. 학생 스스로 또는 교사가 제시한 목표를 달성했을 때 부여받는 배지는 목표 달성에 대한 보상기제로서 성취감을 맛볼 수 있게 해준다. 다음 단계의 배지를 받고자 하는 동기는 학습욕구를 높여 줄 수 있다. 행동주의 심리학에서의 반응과 보상의 원리를 교수법에 활용하는 수단이 된다. 디지털 배지는 자칫 지루할 수 있는 학습의 과정을 아이템을 획득하는 게임처럼 즐길 수 있게 도와주어 학습효과를 높일 수 있다. 

또한 디지털 배지는 전자파일 형태이기 때문에 무엇을 배웠는지 학습과정을 기록하는 기능을 한다. 미국의 MOOC에서도 수강자들에게 보상 차원에서 디지털 배지를 수여하는 강좌들이 있고, 배지를 클릭하면 담당교수, 강의내용, 토론내용, 과제내용 등의 정보를 제공해 준다. 이러한 기능은 기업이 취업희망자의 역량을 확인할 수 있게 도와준다. 기존에는 졸업장, 학위증명서, 자격증이 인재의 역량을 보여줬지만, 이러한 증빙도구들은 교육의 결과와 성취수준만을 알려주고 학습자의 성장 과정을 제대로 보여주지 못했다. 디지털 배지는 학생의 변화와 성장, 노력의 과정을 함께 보여줄 수 있다. 이를 통해 학교에서의 교육과 졸업 후 고용시장을 연결해주는 수단으로 작동할 수 있다. 디지털 배지가 활성화된다면 학위 졸업장이 아닌, 디지털 배지에 저장된 포트폴리오를 통해 학생의 성장과정과 앞으로의 잠재력을 확인하려는 기업들이 나오게 될 것이다.

실제로 지난 7월초 윤석열 대통령이 방문했던 경기게임마이스터고에서는 디지털 배지와 유사한 개념의 ‘학습‧취업 지원 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이 학교 3학년 학생 전체는 3~4명씩 팀을 구성해 1년간 졸업 작품으로 게임을 만들면서 제작 상황을 일간, 주간으로 주기적으로 시스템에 탑재한다. 선생님들은 게임 개발을 지도한다. 그리고 게임개발업체의 대표나 채용담당자들도 수시로 접속해 학생들의 게임개발 실력, 실력이 향상되는 과정, 난관을 해결해 가는 과정을 수시로 들여다보고 관찰한다. 이를 통해 학생들은 수업만 열심히 참여해도 자연스럽게 구인 기업의 눈에 띄어 취업에 성공하게 된다. 한 두 번의 시험 결과나 명문학교 졸업장이 아니라 학생의 성장과정 그 자체가 취업으로 연결되고 있는 것이다.

직업계고 10곳서 디지털 배지 시범 실시

(사진=교육부)

교육부는 경기게임마이스터고의 사례를 확산하는 현실적 수단으로 디지털 배지를 주목하고, 이를 전국 583개 직업계고교에 도입하는 정책을 추진한다. 우선 10여 개 학교를 모집해 올해 2학기부터 내년까지 직업계고교의 디지털 배지 운영 모델을 개발하고 학교가 발급하는 배지의 수준과 체계를 표준화하는 작업을 할 예정이다. 이를 바탕으로 산업계가 학교에서 발급한 배지를 인재 채용의 기초자료로 활용하도록 할 예정이다.

우선 10여 개 시범학교는 공업, 상업정보, 농생명, 가사실업 등 계열별 특징에 부합하는 배지 체계를 만들 계획이다. 직업기초능력평가, 자격증 취득, 현장실습 내용 및 기능경기대회 수상실적 등의 양적 지표뿐만 아니라, 인성, 창의성, 리더십 등 정성적 부문에 대해서도 배지를 발급해 학생들의 역량을 종합적으로 증빙할 수 있도록 할 방침이다.

시범사업에 참여하는 대전의 공업계열 마이스터고는 학교에서 실시하는 인증 프로그램과 학생 참여 활동을 디지털 배지로 통합해 학습과 성취의 객관적 근거를 남기고, 학생의 성장 과정을 체계적으로 지원해 간다는 계획을 제시했다. 전남의 한 특성화고교에서는 수기로 정리하던 학교생활 태도, 학업 성취도, 자격증 기록을 디지털 배지에 담아서 학생들이 취업‧진학에 활용도록 준비하고 있다. 이미 자체적으로 디지털 배지를 운용하기 시작한 창녕슈퍼텍고는 디지털 배지 기술을 활용해 학생의 자격증 취득률 등 학업 성취도 향상을 기대하고 있다.

디지털 배지 성패는 기업의 인정과 활용에 달려
직업계고교는 산업분야별 전문 인재를 양성한다는 목적에 비춰 디지털 배지 도입과 운영이 효과적으로 작동될 수 있다. 학생들은 배지의 취득을 위해 더 노력하게 되고, 협약 기업들은 구직 인력들의 역량을 확인하는 직관적인 증빙 수단으로서 배지를 활용함으로써 우수한 인재들을 영입할 수 있게 된다. 교육부와 시도교육청 그리고 직업계고교는 학생들에게 동기를 부여하고 학생들이 성장 과정과 역량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디지털 배지를 도입해 가면서, 동시에 기업에서 취업이나 채용과 연계가 가능하도록 지원 방안을 모색해 갈 것으로 보인다.

디지털 배지가 교육 활동과 취업 및 채용의 과정에 제대로 활용되기 위해서는 결국 학생들을 채용하는 산업체에서 배지에 담긴 정보를 인정하고 인재 채용의 기초자료로 배지를 적극 활용해야 한다. 교육부는 국내 주요 기업이나, 학생들이 선망하는 기업에서부터 배지를 인정하고 활용할 수 있도록 과기정통부 등 관계부처와 협력해 기업들의 참여를 이끌어 낼 계획이다.

디지털 배지로 경험·역량 인증…학벌주의 타파의 단초가 될 것
학력과 학벌이 아니라 능력과 실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로 바뀌어야 한다. 어느 학교를 나왔느냐 보다 얼마나 실력을 갖추고 있느냐가 인재를 선발하고 우대하는 기준이 돼야 한다. 각각의 전공 영역에서 출중한 실력을 갖추고 있지만, 대졸자에 비해 제대로 된 평가를 받지 못하는 경향이 있는 직업계고 학생들에게 디지털 배지는 자신들의 실력을 구인기업에 보여줄 수 있는 기회의 창이 될 것이다. 직업계고에서의 디지털 배지 도입을 통해 학벌보다 능력으로 평가받는 사회를 만들기 위한 작지만 큰 걸음을 시작한다.
  
디지털 배지는 다양한 교육, 경험, 자격의 이력을 누적할 수 있는 수 있는 증명 수단이다. 디지털 배지는 자기성취라는 내적 보상을 통해 동기를 부여하고, 온라인에서의 활동을 기록하고 다른 사람이 확인할 수 있게 도와주는 기능을 한다. 교육 현장에서 디지털 배지는 인성, 창의성 등과 같은 비정형화된 역량을 표출하는 수단으로 활용될 수도 있다. 무엇보다 디지털 기술을 활용한 배지 시스템은 교육계의 오랜 열망인 능력주의 실현에 가깝에 다가갈 수 있는 매개체로서의 작동 가능성이 크다. 직업계고의 디지털 배지 도입에 많은 지지와 응원을 부탁드린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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