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정화 찬성 학자는 연구비 지원, 반대 학자는 배제한 의혹도 사실로

▲ 고석규 역사교과서국정화진상조사위원장이 28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하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이연희 기자] 지난해 폐기된 국정화 한국사 교과서에 청와대와 정부가 친정부적인 교수와 학자들을 동원해 ‘차떼기’ 등 불법적으로 국정화 여론을 조성하고 조작했으며, 반대하는 학자는 학술연구지원에 불법 배제했다는 의혹이 사실로 드러났다.

고석규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위원회 위원장(전 목포대 총장)은 28일 오전 11시 정부세종청사에서 지난해 9월부터 조사한 내용을 종합해 역사교과서 국정화 진상조사 결과를 발표했다.

발표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과 당시 김기춘-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 김상률 교육문화수석은 △국정화 비밀TF 부당 운영 △역사교과서 국정화 행정예고 의견서 조작(차떼기 의견서) △청와대 개입에 따른 역사교과서 국정화 홍보비 부당 처리 △교과서 편찬·집필 과정의 위법·부당 △국정화 반대 학자는 학술연구지원 불법 배제 등이 조사결과 사실로 확인됐다.

교육부는 민간사회 영역에서 자발적으로 국정화 지지입장을 표명한 것처럼 보이게 하기 위해 △기고문 작성 후 기고자 섭외 △특정주제에 대해 외부인 기고 계획을 수립 추진 △기고문 미리 검열해 수정 △국정화 찬성 성명서 예시와 논거를 정리해 제공했다. 또한 양정모 성균관대 교수를 중심으로 국정화 지지 102인 교수 성명이 나올 때 청와대 비서실장과 교육부가 관여한 정황도 포착됐다.

지난 2015년 10월 30일 개최된 전국역사학대회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 반대 성명 발표가 예상되자 청와대 비서실장이 사전 대응할 것을 지시하였고, 교육부는 이에 따라 △'올바른 역사교과서 지지 교수 모임' 3차 성명서 발표 △보수 학부모단체를 통한 집단행동 △서울대 및 학술단체 등에 집단행동 방지 협조 요청한 사실이 드러났다. 진상조사위원회는 행사 당일 고엽제 전우회 등의 단체가 난입하는 등 범정부적 협력체계가 예상된다고 밝혔다.

또한 교육부 역사교육정상화추진단은 지난 2016년 7월 26일 청와대 비서실의 지시에 따라 2016년 한국연구재단에서 지원하는 학술연구지원사업에서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지지하는 학자가 선정되도록 한국연구재단에 압력을 행사했다. 그 결과 실제지지 학자들은 모두 지원 받고, 반대 학자들은 탈락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번 진상조사는 총 18차례의 회의와 워크숍, 서류 및 대면조사를 거쳐 진행됐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교육부 관련 문건 복원과 관련자 면담을 통한 조사 결과, 박근혜 정부의 청와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독단적으로 기획하고 결정했다고 밝혔다. 여당(새누리당), 교육부, 관변단체 등을 총동원해 추진했고, 그 과정에서 교과서 편찬과 내용 수정과 같은 세부적인 사안까지 일일이 점검하고 개입했다는 사실을 확인했다는 것이다.

교육부는 청와대 지시에 적극 동조하거나 침묵으로 일관하면서, 청와대의 국정화 논리를 홍보하고 국사편찬위원회, 동북아역사재단 등의 기관을 동원해 실무적으로 뒷받침한 사실도 드러났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추진은 박근혜 정부가 민주적 절차를 무력화시키면서 위헌·위법·편법을 총동원하여 자율적이고, 독립적으로 이뤄져야 할 역사교과서 편찬에 직접 개입해 국정을 농단한 사건이었다”라고 규정했다.

이어 "박근혜 정부는 역사교과서 국정화를 추진하면서 거의 모든 역사학자들과 역사교사들의 반대는 물론 대다수 국민의 반대를 무시하고 좌편향됐다고 재단했으며, 그 과정에서 민주주의라는 헌법 가치를 훼손하고 학생과 학부모․교사와 역사학자를 포함한 국민의 자유와 권리를 심각하게 침해했다."고 밝혔디.

진상조사위원회는 역사교과서 국정화 과정을 다각적으로 검토한 결과 청와대가 무리한 역사교과서 국정화 정책집행 과정에서 헌법 가치를 위반하는 행위뿐만 아니라 많은 실정법 위반 사항과 편법 동원 사실 등을 확인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교육부는 초기부터 단지 ‘청와대 지시’, ‘장·차관의 지시’라는 이유로 많은 위법행위를 기획하고 실천했으며, 이는 국민 전체에 대한 봉사자로서 공익을 추구해야할 책무를 잊어버린 행위라고 지적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진상조사 결과 잘못이 드러난 인사들에 대해 엄정하게 책임을 묻고, 교육부가 앞으로 조직문화를 민주적으로 혁신하는데 배전의 노력을 기울여야 한다는 점을 권고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국정화 사건과 유사한 사건이 다시 일어나지 않기 위해서는 초등 국정교과서 폐지를 포함해 교과서 발행 제도와 관련된 조치들이 시급히 이뤄져야 한다고 제안했다.

또한, 역사인식의 차이가 사회적 갈등으로 치닫지 않고 공론장에서 활발히 논의될 수 있도록 학교 역사교육이 토론과 논쟁 중심으로 개혁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고석규 위원장은 “주요 역사학회 및 단체들과 협력하는 역사교육위원회 신설 등 거버넌스를 새로 구축해 9년간 비틀린 역사 전반을 살펴보고, 역사교육 정책을 일신할 수 있도록 자율적인 역사교과서를 만들 수 있게 해야 한다”고 말했다.

진상조사위원회는 박근혜 전 대통령을 비롯해 당시 김기춘·이병기 청와대 비서실장과 서남수·황우여 교육부 장관, 역사교과서국정화추진단 간부, 김정배 국사편찬위원장 등 관련자들의 직권남용 등의 혐의에 대해 검찰 수사 의뢰 및 신분상 조치를 요청할 예정이다. 또한 범정부적 협력 체계가 있는지 감사원 등에 조사를 요청할 계획이다. 지난 7개월간 폭넓은 조사활동을 진행했으나 위법행위에 가담한 민간인, 퇴직한 고위공무원 등에 대한 조사는 불가능했다는 이유에서다.

고석규 위원장은 “청와대와 국정원 등 관련 기관의 문서에 대한 접근이 제한돼 국정화 추진에 관여된 청와대 관계자의 책임을 규명하는 데 여전히 미진함이 있으므로, 주요 위법사항에 대한 신속하고도 철저한 감사원 감사와 검찰 수사가 이뤄져 불법행위가 명명백백히 밝혀지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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