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업난 시대에 공학계열 선호, 인문사회·자연과학계열은 외면…정부 정책도 취업에 초점
윤석열 정부 고등교육정책에서 ‘산업인재 육성’ 강조…고사 직전의 기초학문 위기 심화 우려
거점 국립대와 경쟁력 있는 사립대에 기초학문 학과 유지와 교원 확보 위해 재정 투입 필요

윤석열 정부에서 ‘산업인재 육성’을 위한 고등교육정책이 강조되는 가운데 기초학문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아이클릭아트)
윤석열 정부에서 ‘산업인재 육성’을 위한 고등교육정책이 강조되는 가운데 기초학문 붕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높다. (사진=아이클릭아트)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이다. 주요 선진국은 대학 경쟁력 강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대학은 국가의 지원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며 교육, 연구, 산학협력 등을 통해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국가의 고등교육 책임이 요구된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불변의 명제다. 본지는 ‘국가에 고등교육 책임을 묻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국가의 고등교육 책임을 위한 과제와 역할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기초학문은 응용학문이나 실용학문의 근간이다. 주로 인문학과 자연과학을 말한다. 기초학문이 튼튼해야 응용학문과 실용학문이 발전할 수 있다. 응용학문과 실용학문의 발전은 국가경쟁력과 직결된다. 하지만 국가경쟁력에 적신호가 켜지고 있다. 기초학문이 위기를 맞고 있기 때문이다. 

■ 인문사회·자연과학계열, 공학계열 ‘희비 교차’ =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서울 소재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학과 17개가 폐지됐다. 반면 공학 계열 학과는 23개 신설됐다. 

또한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 155개가 사라졌다. 인문계열 학과는 2012년 962개였지만 2021년 807개로 16%가량 줄었다. 특히 학령인구 감소로 학생 수가 줄면서 전체 학과 수도 줄었지만 공학계열은 2012년 1333개에서 2021년 1446개로 113개(8.5%) 증가했다.

사실 인문학의 위기는 어제, 오늘의 이야기가 아니다. ‘문송합니다(문과여서 죄송합니다)’라는 신조어가 등장할 정도로 인문학의 위기는 일찌감치 시작됐다.  

핵심 원인은 취업난 장기화다. 취업시장에서 이공계열 전공자를 선호하다 보니 인문학 분야 전공자는 주가가 떨어진다. 실제 종로학원에 따르면 인문계열 휴학생은 2018학년도 51.9%에서 2019학년도 52.2%, 2020학년도 52.9%, 2021학년도 52.9%, 2022학년도 54.4%로 꾸준히 증가했다. 취업난 때문이다. 

임성호 종로학원 대표는 “인문계열 휴학률이 높은 가장 큰 이유는 자연계열보다 취업난을 많이 겪기 때문”이라면서 “졸업 후 상당한 취업난으로 인문계열 학생들이 우선 휴학을 하고, 졸업 유예를 하면서 취업 관련 준비 등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볼 수 있다”고 말했다.

자연과학의 현실도 인문학과 다르지 않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도종환 의원이 교육부에서 일반대학(4년제) 학과(학부) 통폐합 현황 자료를 제출받아 분석한 결과 자연과학계열 학과는 2019년 19개, 2020년 37개, 2021년 74개가 각각 통폐합됐다. 자연과학계열 학과의 2019년 대비 2021년 증감률은 무려 289%다. 공학 64%에 비해 대조적이다.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 155개가 사라졌다. 인문계열 학과는 2012년 962개였지만 2021년 807개로 16%가량 줄었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 155개가 사라졌다. 인문계열 학과는 2012년 962개였지만 2021년 807개로 16%가량 줄었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 정부 고등교육정책과 대학평가에서 취업 비중 강화 = 취업난이 장기화되면서 정부의 고등교육정책과 대학평가에서 취업이 강조되고 있다. 이명박 정부 시절 대학평가에 취업률 지표가 최초로 반영됐다. 박근혜 정부는 ‘산업연계교육활성화 선도대학(프라임) 사업’을 도입, 인문·이학계열 학과 감축과 공학계열 학과 확대를 유도했다. 문재인 정부는 ‘지역인재 양성-취·창업-정주’를 목표로 ‘지자체-대학 협력기반 지역혁신사업(지역혁신플랫폼)’을 시행했다. 

현재 윤석열 정부도 고등교육정책의 초점을 ‘산업’에 맞추고 있다. 대표적으로 교육부는 2022년 7월 반도체 인재 양성방안을 발표한 데 이어 2024학년도 일반대학 첨단·보건의료 분야 정원조정 결과를 확정, 지난 4월 각 대학에 통보했다. 정원조정에 따라 반도체·첨단분야에서 1829명이 증원됐다. 

도종환 의원은 “취업률에만 갇혀 지방대와 기초학문 중심의 학과 통폐합이 날로 심각해지고 있는 상황”이라며 “산업인재 육성만을 강조하는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이 고사 직전에 놓인 기초학문 위기를 더욱 앞당기는 것은 아닌지 심히 우려된다”고 밝혔다.

이형대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인사협) 상임이사(고려대 국어국문학과 교수)도 “윤석열 정부의 고등교육정책이 기업의 수요에 부응하는 시장 가치를 극대화한 인재 양성이라는 점에서 신자유주의적 기조를 띄고 있음이 분명하다”고 평가했다. 

또한 강성호 한국인문사회연구소협의회 회장(순천대 교수)은 “작년 윤석열 정부 인수위 시절 때 기초학문 분야 지원에 인문사회 지원이 빠져 있어 인사협 차원에서 인수위에 인문사회 지원 부분을 같이 넣어서 정책 제안을 한 적이 있다”며 “하지만 인수위는 물론 지난해 12월 ‘고등·평생교육지원특별회계법’도 통과됐지만 인문사회 기초학문 지원은 여전히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기초학문 보호와 지원 확대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기초학문 보호와 지원 확대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수 과제라고 할 수 있다. (사진=아이클릭아트)

■ 기초학문 붕괴는 국가 경쟁력에 적신호 = 기초학문 외면, 취업난에 따른 자연 현상일까. 그래서 시대에 순응, 기초학문은 포기하고 실용학문과 응용학문에 집중하는 것이 능사일까. 절대 그렇지 않다. 기초학문이 붕괴되면 결과적으로 국가경쟁력에도 마이너스 요소로 작용하기 때문이다.

강성호 회장은 K-방산(방위산업)을 일례로 제시했다. 강 회장은 “최근 물리학과나 화학과가 폐과되고 있다는 보도를 접하는데 물리와 화학이 없으면 화공이나 기계학, 전자학까지 어렵게 되고 제대로 된 무기를 개발할 수 없다”고 설명했다. 이어 “더 나아가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무기를 제대로 만들기 위해서는 전략과 전술이 필요함은 물론 전쟁사까지 알아야 한다”며 “전쟁사는 역사학이나 정치학에서 연구해야 하는데 이런 분야를 연구하는 대학연구소는 국내에 3~4군데밖에 없다”고 밝혔다. 즉, 전쟁사를 연구하는 3~4개의 대학연구소가 사라지면 우리나라에서 필요한 무기를 제대로 만들 수 없다는 지적이다. 

또한 강 회장은 “우리나라는 그동안 추격형으로 발전을 해왔다. 이제는 10대 강국에 들어와 있어서 더 이상 추격모델로는 발전할 수 없다”면서 “미국과 독일 등 선진국과 경쟁하려면 결국 원천소스가 있어야 하는데 기초학문이 중요한 경쟁 요소로 작용한다”고 강조했다. 

이형대 상임이사도 “기초학문은 당장의 경제적 가치로 환원될 수는 없지만 응용학문의 근간과 토대를 이룬다는 점에서 매우 중요하다”며 “오늘날의 인공지능이 수학이나 언어학, 심리학, 신경과학 등 여러 기초학문의 기반 위에서 개발됐음은 널리 알려져 있다. 따라서 기초학문의 붕괴는 응용학문의 근본 동력을 상실하는 것과 마찬가지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응용학문이 근본 동력을 상실하면 국가 경쟁력에 악영향을 미치는 것은 불가피하다. 

■ 기초학문 보호와 지원 확대는 국가의 책무 = 따라서 기초학문 보호와 지원 확대는 국가 경쟁력을 위해서도 필수 과제다. 강득구 의원은 “K-드라마, K-pop 등 한국문화에 대한 파급력이 커지는 이면에는 우리의 인문학이 기반이 된 부분이 있고 한국 관련 학과도 증가하는 상황”이라면서 “대학에서의 인문학 중시 풍토와 인재 육성 등 국내 대학 인문학의 중요성은 그 어느 때보다 중요하다. 페과나 통폐합이 아닌 인문학 경쟁력을 유지할 수 있도록 평가지표를 바꾸고, 예산 지원과 투자가 있어야 한다”고 제안했다. 

강성호 회장은 “우리나라의 공적 R&D 규모가 30조 원 정도이고 민간 분야까지 합치면 100조 원이 넘는다. 하지만 인문사회 분야 R&D는 3000억 원 초반으로 공적 R&D 규모의 1% 수준에 불과하다”며 “한 번에 확 늘릴 수는 없겠지만 매년 20%씩 5년 내에 공적 R&D 규모의 2% 수준까지는 돼야 한다”고 밝혔다. 

이형대 상임이사는 교육과 연구의 분야에서 기초학문 발전을 위한 범국가적 중장기 전략을 새롭게 수립할 필요가 있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대학과 대학원 단위에서 기초학문을 이수해야 할 인재들을 학문분야별로 헤아려 보고 이에 대한 재정적 지원을 디지털 인재 양성에 못지않게 수행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적어도 거점 국립대와 경쟁력 있는 사립대에는 기초학문 분야의 학과 유지와 교원 확보를 위한 재정 투입을 아끼지 말아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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