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교양교육의 역사, 근·현대사 굴곡 속 발전…취업난으로 대학 교양교육도 위기
미국·영국 등 주요 선진국 대학, 교양교육 강조…교양교육의 중요성과 가치 중시
대학 교양교육 새로운 100년 시대 예고…자율 성장 지원 방향에서 정책 수립, 시행

정부 정책이 취업과 산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학 교양교육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교양교육을 통해 얻은 소양으로 전공에서 배운 특수한 내용을 확장하고, 업무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의 교양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정부 정책이 취업과 산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대학 교양교육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하지만 교양교육을 통해 얻은 소양으로 전공에서 배운 특수한 내용을 확장하고, 업무에 응용할 수 있다는 점에서 대학의 교양교육 활성화를 위한 정부의 정책적 지원은 반드시 필요하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김준환 기자] 대학의 경쟁력은 국가의 경쟁력이다. 주요 선진국은 대학 경쟁력 강화에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주요 선진국의 대학은 국가의 지원을 기반으로 경쟁력을 강화하며 교육, 연구, 산학협력 등을 통해 지역과 국가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나아가 세계적으로 국가의 위상을 드높이고 있다. 이에 우리나라도 국가의 고등교육 책임이 요구된다. 이는 정권이 바뀌어도 불변의 명제다. 본지는 ‘국가에 고등교육 책임을 묻다’ 시리즈를 연재하며 국가의 고등교육 책임을 위한 과제와 역할을 살펴본다. <편집자 주>

시대 변화에 따라 대학교육의 트렌드도 변화한다. 과거에는 ‘지식’이 강조됐다. 현재는 ‘실용’이 강조된다. 대학이 더 이상 상아탑으로 불리지 않는 이유다. 대학도 시대 변화, 사회 변화에 순응하지 못하면 도태된다. 특히 우리나라는 취업난이 대학교육의 실용화를 가속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대학의 근본 사명마저 변화될 수 없다. ‘지성의 전당’으로서 대학의 역할이다. 대학은 올바르게 판단·행동하고, 타인과 공동체를 배려하며, 사회 문제를 인식·해결할 수 있는 지성인 양성에 앞장서야 한다. 이를 위해 교양교육이 중요하며, 정부가 대학의 교양교육 활성화를 위해 정책적으로 지원할 필요가 있다.

■ ‘정부 주도 성장’에서 ‘대학 자율 성장’으로 발전 = 우선 우리나라 대학 교양교육의 역사부터 살펴보자. 윤승준 단국대 자유교양대학(Dankook Liberal Arts College) 교수가 <리버럴아츠> 창간호(2021년 12월)에 ‘한국의 고등교육 정책과 교양교육의 역사’를 주제로 게재한 글에 따르면 우리나라의 대학 교양교육은 1924년 경성제국대학 예과에서 기원을 찾는다. 다만 경성제국대학 예과 교육은 전공교육 예비과정에 그쳤다. 해방 후 3년간 미군정기에 개인의 자유와 민주주의 확산을 위한 ‘일반교육’의 보급이 강조되면서 대학 교육과정에 ‘일반 교양과목’ 범주가 처음 도입됐다. 

1948년 대한민국 정부 수립 이후 제1공화국은 ‘교육법’과 ‘교육법시행령’을 제정, 공포하며  교육제도 법제화의 기본 토대를 구축했다. 그 과정에서 교양교육이 전공교육 중심의 대학 교육 체제 속에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이어 윤 교수는 제3공화국과 제4공화국의 고등교육 정책은 국가의 통제와 육성이 근간을 이뤘다고 밝혔다. 1973년 도입된 실험대학 제도와 ‘교육법시행령’ 제119조 ③항은 대학 교양교육 취지나 입지 강화가 목적이었지만 취지가 실현되지 못했다는 것. 오히려 1970년대 중반 각 대학의 교양교육 전담부서가 폐지되면서 교양교육은 중심을 잃고 표류했다. 제5공화국 시기에는 대학 교육과정이 ‘교양’과 ‘전공’의 이원구조로 변경됐다. 

6공화국 노태우 정부는 민주화 운동의 결실로 출범했다. 따라서 6공화국 시기에는 국책교양 폐지와 ‘대학자율화 세부실천계획’ 시행 등 대학 교양교육에도 민주화의 바람이 불었다. 하지만 교양교육을 각 단과대학에 위임, 교양교육의 전공 종속화를 초래했다는 것이 윤 교수의 지적이다. 

김영삼 정부는 1995년 ‘교육법시행령’ 제119조 ③항을 삭제, 교양교육의 근간을 흔들었다. 또한 ‘5·31 교육개혁 방안’에 따라 학부제가 시행됐지만 대학의 현실을 무시한 위로부터의 개혁, 대학구조개혁을 위한 강제 학과 통폐합 수단으로 받아들여지면서 실패했다고 윤 교수는 설명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이후부터 2000년대로 넘어오는 과정에서 각 대학의 교양교육 전담기관 설립, 한국교양교육학회와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출범으로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은 전환기를 새롭게 맞았다.

윤 교수는 “근 100년의 역사를 지닌 한국 대학의 교양교육은 정부 수립 이전은 물론 이후에도 정부의 통제와 육성, 자율화 등 다양한 고등교육 정책 속에서 많은 굴곡을 겪어야 했다”고 평가했다.

(사진=한국대학신문 DB)
(사진=한국대학신문 DB)

■ 취업난에 기초학문 붕괴, 교양교육 위기로 연결 = 하지만 취업난에 기초학문이 붕괴되며, 대학 교양교육 위기도 본격화됐다. 국회 교육위원회 소속 강득구 의원이 교육부로부터 제출받은 ‘서울 소재 대학 학과 통폐합 현황’에 따르면 2019년부터 2021년까지 3년간 서울 소재 대학에서 인문사회계열 학과 17개가 폐지됐다. 또한 교육부에 따르면 최근 9년간 전국 4년제 대학 인문계열 학과 155개가 사라졌다. 인문학은 대표 기초학문이면서 교양교육 핵심 분야의 하나다. 인문학의 실종은 기초학문의 위기, 교양교육의 위기를 의미한다. 

정부 정책도 교양교육 위기를 부채질하고 있다. 사회맞춤형 산학협력 선도대학 육성사업(LINC+ 사업), 4차 산업혁명 혁신 선도대학 사업, SW 중심대학 지원사업, 창업선도대학 지원사업 등 대학재정지원사업이 취업과 산업에 초점을 맞추면서 교양교육의 입지가 좁아지고 있다. 기본적인 교양능력보다 직업능력을 강조하는 것이다. 

이보경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원장(연세대 학부대학 교수)은 “교양교육의 위기는 기초학문의 위기와 맥을 같이 하고 있다”며 “직업능력을 중요시하는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것도 교양교육 위기의 원인”이라고 지적했다. 

(표=대교협 부설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제공)
(표=대교협 부설 한국교양기초교육원 제공)

■ 인간다운 삶, 공동체의 중요성 탐색과 조망에 교양교육 역할 = 그러나 주요 선진국의 대학은 우리와 다르다. 대학 교육에서 직업적 능력을 강조함과 동시에 교양 능력도 변함없이 중요시하고 있다. 

이보경 원장에 따르면 미국의 경우 50개 주 가운데 36개 주 정도는 교양과목으로 14개 과목(1과목당 3학점)을 이수해야 한다. 심지어 20여개 주에서는 공통 코스 넘버링이 있어 편입이나 상호인정이 용이하다. 대학 졸업생이 반드시 이수해야 하는 교육과정을 전제로 한다는 의미이면서 결국 교양교육이 대학교육의 근간을 이루고 있다는 점을 방증한다. 즉, 학생들의 기초학문과 교양소양이 튼튼해야 이중전공이나 연계전공이 가능하다는 사회적 공감대가 형성된 것이다. 유럽의 경우도 유니버시티 컬리지는 교양교육을 강조하는 대학이다. 

주요 선진국의 대학이 교양교육을 중시하는 것은 결국 교양교육의 중요성과 가치 때문이다. 이 원장은 “교양교육은 고등교육을 받은 사람이 직업인으로서 가져야 하는 기본 지식과 능력을 갖추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필요조건”이라면서 “특히 요즘과 같이 기술진보가 빠른 사회에서는 기초학문과 교양교육에 대한 지식과 방법론들이 기술진보에 대응하는 능력을 향상시키는 데 효과적”이라고 강조했다. 또한 “더 나아가 인간다운 삶, 공동체의 중요성 등을 탐색하고 조망하는 데 교양교육이 중요한 역할을 한다”고 말했다. 

박성미 전국대학교양교육협의회 회장(동서대 민석교양대학 학장, 청소년상담심리학과 교수)도 대학의 교양교육을 통해 융복합적 역량과 종합적 사고력 그리고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갖춘 인재를 키울 수 있다고 제언했다. 박 회장은 “기업들이 희망 인재상으로 인성적 소양과 함께 융복합적 역량, 종합적 사고력, 창의적 문제해결력을 지닌 인재를 요구하고 있다”며 “이를 위해서는 인간, 자연, 사회, 예술 등 보편적 지식을 갖출 수 있는 교양교육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밝혔다.

박 회장은 “대학 졸업 후 학생들이 어떤 업무를 맡든지 교양교육이 근간이 될 수밖에 없다”면서 “전공영역에서 배운 지식은 협소한데 업무(일)라는 게 협소한 영역에서만 이뤄지는 것이 아니다. 교양교육을 통해 얻은 소양으로 전공에서 배운 특수한 내용을 확장하고, 업무에 응용할 수 있다는 데 의미가 있을 것”이라고 밝혔다. 

교양교육의 경제적 가치도 입증되고 있다. 실제 미국 조지타운대(Georgetown University) 연구팀이 인문교양교육 전공자의 임금을 조사한 결과 졸업 후 즉각적인 경제 이득은 없으나 최소 10년 이상 직업 생활을 계속할 경우 경제적 가치가 상당한 것으로 조사됐다. 즉, 대학 졸업 후 40년간의 평균 임금을 조사했을 때 대학 졸업자 전체 평균에 비해 인문교양대학 졸업자의 임금이 약 25% 높았다.

연구팀은 “인문교양교육에서 강조하는 비판적 사고, 글쓰기 역량, 학제 간 융합적 사고 능력 등이 직업 생활과 지속적인 자기 계발에 매우 중요한 요소”라며 “이 때문에 장기적으로 봤을 때 경제적으로도 큰 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 대학 교양교육에 대한 정책 지원 확대 필요 = 이처럼 대학의 교양교육은 단순히 기초 지식을 함양하는 데 그치지 않고 대학 졸업 후 공동체의 일원으로, 사회의 일원으로 소속 집단과 사회에 기여하는 원동력으로 작용한다. 따라서 정부가 대학 교양교육에도 관심을 갖도 정책적 지원을 확대하는 것이 요구된다. 

윤승준 교수는 “‘타율적 성장’에 의존해 왔던 지난 100년의 대학 교양교육 역사가 결코 긍정적으로 평가될 수 없음을 인정한다면, 앞으로 다가올 100년의 역사는 ‘자율적 성장’에 무게를 둬야 할 것”이라면서 “그런 점에서 고등교육 정책은 교양교육의 자율적 성장을 지원할 수 있는 방향에서 수립·시행돼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교양교육의 자율적 성장을 위해서는 교양교육에 대한 인식의 전환, 교양교육을 위한 인적·물적 토대의 구축, 교양교육의 내실을 기하기 위한 교육내용과 방법, 평가와 지원제도의 정비 등이 무엇보다 우선적으로 이뤄져야 할 것”이라고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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