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광식 서울대 교수

▲ 김광석의 노래를 모티브로 철학을 강의하는 김광식 서울대 기초교육원 교수
김광식 서울대 기초교육원 강의교수가 가수 김광석을 알게 된 것은 유학생 시절이었던 90년대 초반 즈음이었다. 후배가 “좋은 노래가 있다”며 들려주었던 게 ‘너무나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이었다. 노래를 다 듣고 “도대체 이 가수가 누구냐”고 물었다. 후배는 ‘김광석’이라는 이름을 알려줬다.

“김광석의 다른 노래도 들려 달라 했더니 라이브 공연 비디오를 틀어주더라고요. 그 비디오에서 김광석은 노래를 부른 후 관객에게 ‘행복하십시오’라고 말하더라고요. 저는 직감적으로 느꼈습니다. 김광석의 노래가 사람들을 감동시키는 이유를.”

김 교수는 김광석이 슬픈 노래를 통해 다른 사람의 아픔을 치유하는데 탁월한 사람이라는 것을 단박에 알 수 있었다. 그리고 그가 들었던 첫 노래 ‘너무나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에서는 하이데거의 철학을 읽어냈다.

“노래를 듣자마자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풀어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너무나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다’는 말은 일종의 역설인데요, 뒤집으면 ‘아픈 사랑만이 제대로 된 사랑이다’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하이데거 철학의 핵심이 그렇습니다. 제대로 된 삶은 죽음을 겪어봐야 한다는 것이죠. 노래에는 제대로 사는 게 바로 진짜 삶이라는 하이데거의 ‘실존철학’이 녹아 있었어요.”

김 교수는 김광석에게 흥미가 생겼다. 도대체 왜 이 가수는 이렇게 처절한 밑바닥에서 올라오는 아픔을 노래하는 것일까. 김광석의 다른 노래 역시 철학으로 풀어보면 어떨까. 김 교수는 결국 누구도 생각지 못한 독창적인 커리큘럼을 만들어냈다. 지난 2009년 서울대 학부 수업인 철학개론을 시작으로 현재 학부에서 강의하는 ‘지식의 세계’와 지난해 겨울학기부터 평생교육원에서 하고 있는 ‘음악과 철학이 만나는 행복 콘서트’가 바로 김광석의 노래를 철학이론으로 풀어낸 수업들이다.

예를 들어 김광석의 ‘거리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을, ‘바람이 불어오는 곳’을 통해서는 플라톤의 이상론을 가르친다.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에서는 데카르트의 이성·니체의 열정을, ‘사랑했지만’은 흄의 의심론이 연결된다.

이밖에 ‘이등병의 편지’에는 칸트, ‘어느 60대 노부부의 이야기’에서는 헤겔, ‘타는 목마름으로’는 마르크스, ‘두 바퀴로 가는 자동차’는 후설, ‘너무 아픈 사랑은 사랑이 아니었음을’은 하이데거, ‘나의 노래’는 비트겐슈타인, ‘그녀가 처음으로 울던 날’에서는 롤즈 등 이른바 ‘스타 철학자’가 대거 등장한다.

“철학은 이성적인 접근이지만 감성적인 접근도 필요합니다. 감성적인 접근을 위해 사용하는 게 바로 김광석의 노래입니다. 수업 시작 시 김광석의 라이브 비디오를 틀어주면서 ‘아무 것도 생각하지 말고 감성적으로 완전히 몰입하라’고 학생들에게 주문합니다. 그리고 ‘행복’과 관련한 키워드를 알려주고, 노래를 중심으로 철학자들의 이론을 강의합니다. 그리고 이를 기반으로 학생들에게 서로 조를 짜 이야기 하도록 합니다. 토론하는 과정에서 아픔을 치유하고, 결국에는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는 거지요.”

김 교수는 김광석의 노래 가사를 하나하나 분석하거나 하지는 않는다. 노래의 전체적인 분위기와 함께 배경과 전후사정 등을 몇 개의 키워드로 풀어나간다. 예를 들어 노래 ‘거리에서’의 키워드는 ‘꿈결’이다. (거리에 가로등불이 하나 둘씩 켜지고 검붉은 노을 너머 또 하루가 저물 땐 왠지 모든 것이 ‘꿈결’ 같아요)

“꿈결은 경계를 모르는 상태인 동시에 덧없음을 뜻합니다. 주인공은 사랑을 잃어서 슬프지만, 다시 사랑을 얻는다고 행복해지지는 않아요. 아리스토텔레스의 행복론이 그렇습니다. 행복은 얻거나 잃을 수 있는 게 아니라 삶의 방식이라는 거죠. 행복이라는 것이 삶의 방식이라면 행복은 우리 삶에 녹아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삶과 일체가 된 방식으로, 그러니까 ‘꿈결처럼’ 살아야 합니다. 그러려면 어느 한 쪽에 집착하지 않는 조화된 삶, 말하자면 중용의 삶을 살아야 한다는 겁니다.”

평생교육원에서 하는 수업은 일반이들이 많이 몰린다. 김광석의 팬부터 김광석의 친구라는 사람도 그의 수업을 들었다. 단순히 노래가 좋아서, 그저 노래 좀 듣고 철학이론이나 대충 배우는 줄 알고 찾아왔던 사람들은 자신의 마음 속에 있었던 아픔을 꺼내놓고, 문제가 무엇인지 이야기하고, 그리고 행복하게 살아가는 방법을 배운다. 이는 김 교수의 수업이 ‘행복’에 초점이 맞춰져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는 본인을 가리켜 ‘삶의 아픔을 치유하고픈 철학자’라고 설명했다.

“제가 철학을 시작한 이유는 다른 사람들에게 행복하게 사는 방법을 일러주기 위해서입니다. 예전에 소크라테스가 시장에서 사람들을 만나 철학을 강의했듯 철학자의 모습은 그래야 한다는 게 제 생각이에요.”

김광석의 노래를 통해 철학을 배우고, 아픔을 치유하는 과정에 대해 누군가는 지적한다. ‘김광석은 자살한 사람이 아니냐. 어떻게 자살한 사람의 노래에서 행복을 배울 수 있느냐’는 지적이다. 이런 모순과도 같은 질문에 대해 김 교수는 하이데거의 철학으로 답했다.

“김광석이야 말로 가장 절절하게 삶을 살았던 실존철학의 전형이라고 봅니다. 극단적인 선택은 그만큼 그가 얼마나 치열하게 살았는지를 보여주는 반증입니다. 김광석의 노래를 들으면 슬픔의 바닥까지 내려가는 체험을 한 후 무언가 시원한 카타르시스를 느낄 수 있습니다. 왜 일까요. 삶을 피하지 않고 맞닥뜨린 채 죽음을 향해 달려간 그의 생이 바로 노래와 하나가 됐기 때문 아니겠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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