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문위 재개정 발의, 강사단체간 의견 차로 실패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이재 기자] #1. 경상남도 소재 A대학은 지난 5월 각 학과에 강의 시간이 3시간 이하인 시간강사를 해고하고 전임교수의 강의 부담을 높이도록 지시했다. 이로 인해 지난 학기 3시간 이하 수업을 담당한 시간강사 189명은 2학기 강의를 맡지 못한 채 해고됐다. 지난해 393명의 시간강사가 강의를 맡은 것에 비하면 무려 절반이 교편을 내려놓은 셈이다.

#2. 서울의 대형사립대인 B대학은 최근 교양과목의 폐강기준을 완화했다. 폐강이 쉬워지면 한 강사에게 9시간 강의시수를 몰아주기 용이하기 때문에 남은 강사들을 해고하고 인건비를 줄이겠다는 속내다. 이 대학 강사들은 지난해까지 다른 대학의 수업도 맡았으나 올해부터는 B대학으로만 출강하는 경향이 높아졌다. 다른 학교까지 출강하다가 9시간의 강의시수를 맡지 못하게 되면 해고대상으로 분류되기 십상이기 때문이다.

#3. 부산에 위치한 국립대 C대학과 사립대 D대학은 지난 학기 강사들을 불러 교과목과 할당된 강의시수를 적은 자료를 던져주고는 ‘다음 학기에 누가 남아 수업을 맡을 것인지 자율적으로 정하라’고 통보했다. D대학의 모 단과대학의 경우 강사들이 ‘강의시수를 늘리지 않고 모두 남겠다’고 밝혔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모순적이게도 일방적으로 해고당한 다른 대학 강사들은 C·D대학 본부의 제안을 ‘배려’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 권정택 비정규교수노조 부위원장이 지난 10월 31일 세종로 정부청사 앞에서 1인 시위를 벌이고 있다.

이 같은 강사해고 또는 폐강기준 완화 등은 위에 언급된 4개 대학에서만 일어난 일이 아니다. 강사법(고등교육법 일부 개정안)이 내년 1월 발효됨에 따라 올해 전국 대학들이 강사들의 인건비를 줄이기 위해 강행한 일들이다.

강사법은 시간강사들의 열악한 처우와 생활고가 사회적 이슈가 되면서 지난 2011년 교육과학기술부에서 발의해 통과된 법이다. 일주일에 9시간 이상 강의를 전담하는 강사에 한해 △공개채용 △재임용 기회 제공 △4대 보험 보장 등 채용요건과 처우를 강화하는 것이 주요 골자다.

본래 올해부터 시행될 예정이었으나, 대학의 재정적 부담으로 인한 시간강사 대량해고와 교육 수준 저하 등이 예견돼 대학과 강사 양측으로부터 강한 반발을 사 1년간 유예됐다. 이는 실질적인 시간강사 처우 개선안을 담은 대체입법을 위한 기간이었으나 10개월이 지난 지금까지 한 발짝도 앞으로 나가지 못했다. 강사법은 예정대로 내년 1월부터 시행된다고 입법 예고된 상태다.

강사 대량해고·학문후속세대 공백 가속=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대학들은 이미 시간강사들을 대거 잘라내기 시작됐다. 교양과목 등 교육과정을 축소하고 대형 강의 수는 늘리는 경향도 가속화되고 있다. 전임교원 1인당 책임져야 할 강의 부담도 12시간 이상으로 대폭 늘었다.

아직은 올해 해고된 강사 수를 통계내기란 어려운 상황이다. 대학사회의 대표적 을(乙)인 강사들이 대학과 학계의 보복을 두려워하는 탓에 숨어있고, 대학들 역시 관련 정보를 공개하지 않기 때문이다. 각 대학이 2014년부터 2016년까지 3년 교육과정을 확정해야 하는 11월 말이면 실제 해고된 시간강사 규모와 축소된 교과목 수, 과목당 학생 수 증감 등이 수면 위에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내년도 강의를 배정받지 못한 시간강사가 한 대학 당 적어도 절반가량에 이를 것이라는 예측은 제기됐다. 기존 강사들이 일주일 평균 5시간 강의를 담당해왔기 때문에, 강사법 시행으로 강사 1인당 강의시수가 9시간으로 상향 조정되면 4시간 분의 일자리가 줄어들 수밖에 없다는 전망이다. 재정상황이 열악한 대학이 강사 1인당 강의시수까지 10시간 이상으로 늘릴 경우 해고되는 강사 수는 70~80%에 이를 수도 있다.

이처럼 학문후속세대인 강사들이 대학사회 밖으로 내몰리게 되면 대학원생들이 줄어들고 학문발전에 공백이 생기는 등 황폐화될 것이라는 우려도 고조되고 있다. 새로운 학문을 배우고 만들어나가는 역할을 수행해온 강사들이 억지로 강의시수를 높이면 그만큼 교육과정이 경직되고 학문 발전도 더뎌진다는 것이다. 기초학문의 경우 위기감이 더 높은 상태다.

유예기간 1년, 재개정 왜 실패했나=강사법이 유예된 지난 1년 동안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야당 간사인 유기홍 의원을 중심으로 정진후 정의당 의원, 우원식 민주당 의원 등 국회의원들이 재개정안 발의를 위해 열의 있게 나섰다가 포기한 배경에 대해서도 궁금증이 커지고 있다.

이들 국회의원들은 시간강사 당사자인 비정규교수노조와 전국강사노조 간 합치된 의견 없이는 재개정안을 만들 수 없다는 입장이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전임교원확보 100% 의무화를 주장하되 임시로 연구강의교수제를 통해 생활임금을 보장하고 단계적으로 나아가자는 현실적 대안을 내세웠지만, 전국강사노조는 호봉제와 연금을 적용하는 무기계약직을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하며 재개정안에 연구강의교수제 내용이 담기는 데 대해 극렬히 반대해왔기 때문이다.

비정규교수노조는 이 같은 여론에 대해 이해하기 힘들다는 반응이다. 정재호 비정규교수노조위원장은 “두 강사단체의 대안은 현실성과 완전성 차원에서 차이가 있을 뿐 크게 다르지 않다”며 “결국 정부와 사학이 부담해야 하는 재정 문제가 관건 아니겠느냐”고 반문했다.

이렇듯 강사법을 두고 정부와 대학, 강사들의 이해관계가 첨예하게 얽힌 데다 거시적인 대안조차 전무한 상태이기 때문에 우선 시행을 유예해야 한다는 의견에 무게가 실리고 있다. 익명을 요청한 국회의원 보좌관의 말에 따르면, 국정감사가 끝난 후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에서도 강사법 시행 유예안을 검토할 것으로 보인다.
 

일촉즉발 강사법 “시행 안 돼”
연구강의교수제 등 대체입법 논의시간 ‘태부족’

대학과 강사들의 반대로 1년 유예됐던 강사법 시행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당초 예상과 달리 대체입법이 이뤄지지 않아 대학과 강사들은 다시 법안을 유예시켜야 한다는 데 한 목소리를 내고 있다. 그러나 강사법 유예는 일시적 대책에 불과해 강사단체 등 대학가에서는 대안마련에 고심하고 있다.

강사단체 중 가장 큰 규모인 비정규교수노조는 강사법을 폐기하고 강사 처우개선과 연구여건 조성을 골자로 한 연구강의교수제 도입을 주장하고 있다.

이 제도가 도입되면 시간강사와 초빙, 겸임, 교육전담, 산학협력 등 모든 형태의 비정규교수가 연구강의교수로 통합되고, 9시간 강의를 기준으로 전임교원 임금의 80%를 받게 된다. 강사료는 정부예산으로 보조한다.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교부금법)을 제정해 정부의 고등교육지출을 OECD 평균인 1.1%에 근접하게 인상해 정부가 강사료인상을 보존하는 방식이다.

정부의 강사료 지원은 대학교육협의회 등 대학관련 단체 모두 필요성을 공감하고 있다. 정부도 이미 지난 2010년부터 시간강사 처우개선 지원사업을 시작해 국립대 강사료를 지원하고 있다.

그러나 이 제도가 시간강사문제의 해답은 아니다. 도입되더라도 강사는 2년 단위로 재계약을 맺어야 하는 비정규직 신분을 벗지 못하기 때문이다. 또 대학이 정년퇴임한 전임교수의 빈 자리만 연구강의교수로 충원하는 현상도 나타날 수 있다. 정재호 비정규교수노조 위원장은 “한시적으로만 운영하자는 것”이라며 “비정규직교수노조의 목표는 연구강의교수의 도입이 아닌 전임교원이 100% 충원되고 강사가 제대로 된 교원으로 인정받는 것이다”고 강조했다.

전국강사노조도 대안을 내놨다. △교육공무원법·사립학교법·사립학교교직원연금법에서 강사를 교원으로 인정 △강사 호봉제 도입을 주장한다. 강사를 시간제 계약이 아닌 무기계약으로 고용해야 한다는 것도 이들 주장의 골자다.

강사단체 밖에서 제안된 보완책도 있다. 하수권 전국대학교교무처장협의회장은 “강사법 자체가 전체 대학에 영향을 미치는 일이기 때문에 재개정을 거친 뒤 대학 유형에 따라 연차별로 적용범위를 넓혀가는 방식을 검토해볼 만 하다”고 밝혔다. 박순준 동의대 교수협의회장은 “국가가 강사 사학연금 등 인건비를 먼저 대학에 지원해 대량해고 사태부터 막은 뒤 대학구조조정 평가로 이어간다면 급한 불을 끌 수 있는 것은 물론 강사들이 전임교수와 본부 눈치를 보던 악습도 개선될 것”이라고 제안했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