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발권 있는 고교들 ‘그들만의 잔치’

[한국대학신문 이우희 기자] 서울대 입시에서 부익부 빈익빈이 심화되고 있다. 양극화는 고입 ‘학생 선발권이 있는 고교’와 ‘학생을 배정받는 일반고’간에 뚜렷이 나타나고 있었다. 새누리당 박인숙 국회의원이 제공한 ‘2013학년도 서울대 신입생 현황’을 살펴보면, 특목고와 자사고, 영재학교가 톱30을 장악한 가운데 특목고 못지 않던 명문 일반고 숫자는 크게 줄었다. 일반고의 서울대 실적 하락은 이명박 정부의 고교다양화 정책 이후 일반고로 유입되는 최상위권이 줄어든 탓이다. 일반고 교장들은 “서울대 입시는 최상위권 경쟁이기 때문에, 고등학교 입학당시 중상위권이던 학생들이 성적향상을 통해 서울대에 들어가기에는 한계가 따른다”고 토로한다. 거기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도 급속히 줄고 있어 일반고의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지난해 학교별로 2명씩 추천받는 서울대 지역균형전형에서 지원자의 21%가 수능최저기준에 미치지 못했다는 사실은 일반고의 성적 저하를 단적으로 보여준다는 지적이다. 일반고를 살리기 위해 정부의 정책과 더불어 서울대의 노력도 요구되는 지점이다.

■ 톱30 이내 일반고는 단 4곳...강남 일반고 ‘수난시대’ 현실로 = 2013학년 고교별 서울대 신입생수 톱10에는 외고가 4곳, 전국단위 자사고가 3곳, 과학영재학교가 2곳, 예술고가 1곳으로 일반고는 전무했다. 톱10은 대원외고 83명, 서울과학고 82명, 서울예술고 79명, 경기과학고 57명, 상산고 52명, 용인외고 45명, 하나고 44명, 민족사관고 42명, 대일외고 41명, 명덕외고 36명 순이었다.

서울대 신입생수 11위~30위에서도 일반고는 드물었다. 서울대 신입생 15명 이상을 배출한 상위 톱30은 선화예술고 33명(11위), 세종과학고·한성과학고·휘문고 30명(공동 12위), 안산동산고·한국과학영재학교 29명(공동 15위), 현대청운고 27명(17위), 국악고 26명(18위), 포항제철고 25명(19위), 안양외고 21명(20위) 경남과학고·고양외고 20명(공동 21위), 한영외고·한일고 19명(공동 23위), 경기북과학고 18명(25위), 단대부고·인천과고 17명(공동 26위), 공주사대부고·중산고 16명(공동 28위), 대구경신고·부산과고·세화고·중동고 15명(공동 30위) 순이었다.

이중 전국단위 선발을 하는 한일고와 공주사대부고 등 자율학교를 제외하고 ‘순수 일반고’는 휘문고와 단대부고, 중산고, 대구경신고 4곳 뿐이다. 휘문고와 단대부고, 중산고는 모두 강남에 있는 학교들이고 대구경신고는 강남에 버금가는 사교육 열기로 유명한 대구 수성구에 있는 학교다.

지난해와 비교해 보면 일반고의 대표선수 격인 ‘교육특구’ 지역 일반고의 하락세는 심상치 않은 수준이다. 지난해 입시업체 하늘교육이 발표한 2012학년 고교별 서울대 합격자수를 살펴보면 휘문고 18위(24명), 대륜고 23위(22명), 중동고 24위(21명), 숙명여고 25위(20명), 경기여고 단대부고 26위(19명), 서라벌고 중산고 28위(18명), 세화고 30위(16명) 등 교육특구 일반고가 9곳이나 톱30에 들었던 바 있다. 추가합격이 반영된 신입생 수 순위였다면 더 많은 학교들이 순위에 들었을 가능성이 높다. 신입생 수도 휘문고 등 일부를 제외하고 대체로 1~3명 씩 줄어든 것으로 추정된다.

일반고의 서울대 실적 하락은 자사고가 대거 도입되고,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가 늘어나면서 최상위권의 일반고 유입이 크게 줄어든 탓으로 풀이된다. 한 강남지역 일반고 교장은 “서울지역에는 자사고만 25곳이나 된다”면서 “추첨전형이라지만 고입 학생들 입장에서는 추첨에서 떨어지더라도 ‘보험든다’ 생각하고 지원을 하니 일반고에 유입되는 최상위권 학생은 씨가 마른다”고 토로했다.

서울대가 사교육에만 의존하는 일반고에 불리한 입학사정관제 100%로 진행되는 수시비중을 전체의 80%까지 늘린 영향도 배제할 수 없다. 수시중심의 서울대 입시는 사교육을 배제하고 공교육을 강조한다는 긍정적인 평가가 많지만, 적응이 느린 일반고보다는 오히려 자사고와 특목고가 더 많은 열매를 따먹고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일반고 출신을 고려해 수능최저학력기준을 낮추는 등의 일반고를 고려한 제도적 장치가 필요하다는 주장이 나오는 배경이다.

■ 일반고도 학생 선발권 있는 학교가 실적도 좋아 = 일반고만 놓고 보면 교육청이나 시도교육감으로부터 ‘자율학교’ 지정을 받아 어느정도 선발권을 갖고 있는 학교들이 서울대 실적도 좋았다. 정부가 추진하는 일반고 육성방안에 희망을 걸어볼수 있는 대목이다.

가장 대표적인 유형이 한일고(19명)와 공주사대부고(16명), 거창대성고(7명) 등 전국단위 모집이 가능한 자율학교들이다. 이들 학교는 대부분 농어촌 자율학교로 지정받아 자사고나 특목고 입시에서 떨어진 학생 상당수를 전국단위로 흡수한다. 광역단위 선발 자율학교로는 경기도의 양서고(6명)가 유명하다.

과학중점학교로 지정된 일반고의 강세는 특히 돋보였다. 서울고(13명), 경기고(12명), 세광고(11명), 반포고·수지고(9명), 분당중앙고(8명), 서울대진고·부산장안고(7명), 충주고(6명), 용산고·인천여고·잠신고(5명), 대기고·대덕고·마포고(4명) 등이 대표적이다. 이들 과학중점학교는 이명박정부가 일반고의 수학·과학 교육 강화를 목표로 도입했다. 시도별로 1개~2개 꼴인 과학고 수용인원이 적기 때문에 과학고에 탈락한 우수 학생이 대거 흡수되는 편이다. 입시는 평준화 지역의 경우 일반고 배정시 희망자에 한해 우선배정하고 비평준화 지역의 경우엔 소정의 입시를 진행한다.

고교 비평준화 지역 일반고도 완전한 선발권을 갖고 있어 상당한 수준의 서울대 실적을 내고 있는 편이다. 논산대건고(9명)와 진성고(9명), 공주고(8명), 춘천고(8명), 안산강서고(6명), 경안고·동화고·창평고(5명) 등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이들 비평준 명문고 가운데 상당수는 이미 평준화 지역으로 지정됐거나 지정될 예정이다. 경기 광명의 진성고와 강원 춘천고, 안산의 강서고·경안고가 모두 평준화 지역으로 전환돼 지난해부터 학생들 배정받았다. 2013학년도부터 고교평준화가 결정된 지역은 △경기도 광명, 안산, 의정부 △강원도 원주, 춘천, 강릉 등 6개 도시였다. 현재 용인도 2015학년도 입시부터 평준화 전환이 결정된 상태다.

■ 대원외고 1위 등 외고 강세는 재수생 ‘착시효과’ = 다만 외고는 건재했다. 2013학년 고교별 서울대 신입생수 톱10에는 대원외고(83명)와 용인외고(45명), 대일외고(41명), 명덕외고(36명)가 이름을 올렸다. 그 밖에도 안양외고(21명), 고양외고(20명), 한영외고(19명), 대전외고(14명), 경기외고(13명), 부산외고·수원외고(12명), 과천외고(8명), 김해외고·이화외고(6명) 등이 톱100에 들었다.

다만 외고의 선전을 부활로 보기는 어렵다는 게 전문가들의 평가다. 대원외고의 1위는 전반적인 외고 하락세 속에서 재수생의 기여와 과학영재학교의 이탈에 힘입어 만들어졌다는 것이다. 대원외고는 당초 서울대 합격자수 발표에서는 78명으로 서울과학고(86명)와 서울예술고(79명)에 뒤졌으나, 카이스트나 주요 의대에 중복 합격한 서울과학고 학생들이 4명 가량 빠져나간데다 대원외고 학생들도 추가합격자가 다수 발생해 순위가 뒤집힌 것으로 풀이된다.

거기다 외고는 전통적으로 재수 경향이 강한데다, 지난해 입시에 참여한 재수생은 외고의 마지막 ‘황금세대’였다는 점도 상당히 영향을 미쳤다는 평가다. 대원외고는 지난해 서울대 정시에서만 39명의 합격자를 냈는데 이 가운데 23명이 이들 '황금세대' 재수생들인 것으로 알려져 있다.

전문가들은 외고의 강세는 올해를 기점으로 한 풀 꺾일 것으로 내다봤다. 올해는 정부의 외고 압박정책의 일환인 영어내신 100% 입시로 들어온 학생들이 처음 대입을 치르게 되기 때문이다. 올해 재수에 도전하는 외고생들도 모집단위가 전국에서 광역으로 축소된 이후 들어온 세대라 지난해에 비해 힘이 빠질 것이란 전망이다.

■ 자연계열 최상위권의 서울대 ‘엑소더스’ 드러나 = 의치대와 상위권 한의대, KAIST, 포스텍 등에 중복합격한 학생들의 서울대 엑소더스는 상당부분 사실로 확인됐다. 전반적으로 외고는 최초합격자 발표 당시에 비해 신입생 숫자가 그대로이거나 늘어난 반면, 자연계열인 과학고와 과학영재학교는 최초합격자보다 신입생 수가 크게 줄어드는 경향을 나타냈다. 인문계열 학생들은 대부분 추가합격까지 기다려 서울대에 진학하지만, 자연계열은 합격하고도 빠져나간다는 얘기다.

실제로 외고의 서울대 최초합격자 수와 신입생 수를 비교해 보면, 대원외고 78→83명, 대일외고 40→41명, 명덕외고 35→36명으로 늘었다. 다만, 2011학년부터 자사고로 전환한 용인외고는 46명에서 45명으로 한 명 줄었다.

반면, 과학영재학교와 과학고는 상당수가 서울대 합격을 뿌리치고 다른 대학으로 진학하는 움직임이 두드러졌다. 서울과학고가 86→82명으로, 경기과학고 62→57명, 세종과고 42→30명, 한성과고 39→30명, 한국영재학교 37→29명, 경남과학고 24→20명, 경기북과학고 19→18명, 인천과학고 18→17명, 부산과학고 17→15명, 대전과학고 14→11명으로 약 3~5명 정도가 서울대 합격을 뿌리친 것으로 분석된다.

이같은 자연계열 최상위권 인재들의 서울대 외면은 식지 않는 의대진학 열기와 KAIST와 포스텍에 비해 특별히 나을게 없는 서울대 자연계열 경쟁력 탓이라는 지적이다. 한 과학영재학교 관계자는 “서울대는 서울에 있고 명문 학벌을 얻을 수 있다는 것 외에는 특별한 메리트는 없다”면서 “오히려 과학영재들이 서울대에 가면 최소 1년은 아는 내용을 또 들어야 하는 실정”이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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