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왕조적 전제체제

어느 시대나 나라는 시대에 맞는 이념으로 선정을 베풀어야 한다. 그래야 백성의 충성을 기대할 수 있고 부국강병도 이룰 수 있다. 다시 말하면 ①시대에 맞는 통치이념을 바탕으로 ②백성들이 편하게 생업에 종사할 수 있게 하고 ③효율적인 관인 체제와 튼튼한 군비로 외국의 침탈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나라답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

아무리 왕조체제라도 국왕과 지배층만의 나라일 수는 없다. 지배층이 앞장서서 백성의 나라라고 주장해야 마땅하다. 그래야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일체화된 나라를 이룩할 수 있게 된다. 만일 왕실이나 권신들이 자신만을 위해서 백성을 옭아매고 약탈한다면 그런 왕조체제는 기껏해야 전형적인 전제적 군왕체제일 뿐이다.

실제 조선왕조도 좋은 세상을 이룩하기 위해 국왕이 신료들과 힘을 모아 왕조와 백성을 위해 일하기도 했었다. 그 때문에 성군으로 알려진 국왕도 있었으며 백성들에게 평안한 세상을 맛볼 수 있게 해주었다. 그런 국왕을 만나게 되면 온 나라는 편안했고 신료와 백성들의 힘으로 부강한 나라를 일굴 수 있다는 믿음을 안겨주었다.

2. 이름난 국왕은

조선왕조는 태조에서 순종까지 27대로 새 임금이 등극하면 치국의 대원칙이 천명되었다. 백성을 안돈시키고 나라를 평안하게 다스리겠다는 ‘올바른 통치체제의 지향성’에 대한 선포였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왕위를 차지하기 위해서 왕실과 지배세력 사이에 극심한 대결이 빚어져서 온 나라가 불안에 떨기도 했다. 이 과정에는 수많은 관료들이 역살되거나 귀양가야하는 운명을 맞기도 했었다. 그러다보니 통치는 지배층의 권력투쟁사라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었다.

때로는 외국의 침략으로 전란에 떨어진 적도 있었고 지방 목민관의 가렴주구로 백성들의 원성이 민중저항으로 폭발되기도 했었다.

조선왕조 500여 년간 성군으로 부를 대표적인 국왕으로는 제4대 세종(1418~1450), 9대 성종(1469~1494), 22대 정조(1776~1800)는 빼놓을 수가 없을 것이다. 이들 중에 세종의 치적이 단연 뛰어났는데, 훈민정음의 창제, 집현전 설치, 측우기와 해시계 발명, 육진의 개척 등은 실로 빼어난 치적으로 역사에서 최대의 성군으로 일컬음을 받게 되었다. 성종은 성리학을 기본으로 한 숭유억불정책으로 사회질서의 공고화에 기여했으며 조선왕조 초기의 문물제도를 완비했고 경국대전을 편찬해서는 왕조의 통치를 제도화했다. 또한 홍문관을 설치해서 문풍을 진작하는데도 힘을 쏟았다.

조선후기에는 정조의 치세가 단연 돋보인다. 정조는 왕권의 강화를 모색했고 탕평책으로 사색당파의 병패를 막기 위해 힘을 쏟았다. 규장각의 설치로 문화와 문풍의 진작에도 앞장섰으며 신해통공으로 상민의 경제활동을 활성화시켰다. 그 때문에 조선후기 최대의 명군이라는 평가를 들었는데 정조의 통치기간이야말로 조선왕조 후기의 최고 절정기-어떤 이는 조선왕조의 르네상스 시대라고 말한다.-라 해도 틀린 말은 아닐 것 같다.

3. 뛰어난 명신들

조선왕조에는 유달리 명신으로 불리는 고위 관인들이 많다. 이들 명신을 다 거명하기는 어렵지만, 매천(梅泉) 황현(黃玹)은 조선왕조의 3대 명신으로 황희(黃喜), 정광필(鄭光弼) 이순신(李舜臣)에 김응하(金應河)를 부기했다. 어떤 이는 정조 시대의 명신만으로도 채제공(蔡濟恭), 심환지(沈煥之) 김종수(金鍾秀), 정민시(鄭民始), 서명선(徐命善), 윤시동(尹蓍東)을 적었다. 이들 명신은 국왕에 대한 지근신료로 강한 충성심을 보여주었다. 실제로 조선왕조의 명신으로는 흔히 다음 몇 사람을 적기도 한다. 정도전(鄭道傳), 황희, 맹사성(孟思誠), 이이(李珥), 이항복(李恒福), 이덕형(李德馨), 이원익(李元翼), 유성룡(柳成龍), 이순신, 김육(金堉) 등이 그들이다. 

*** 진덕규 교수는 ...
이화여대 명예교수. 역사정치학자. 현재는 (재)한국연구원 이사장으로 있다. 주요 저서로는 <한국정치의 역사적 기원>, <한국현대정치사서설>, <한국정치와 환상의 늪>, <권력과 지식인>, <민주주의의 황혼> 등이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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