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의 교육예산 투입을 최소화 한다. 그러면서도 국민들 사이에서 교육경쟁심은 갈수록 확산 증진된다. 결과적으로 국가의 교육정책 목적은 성공적으로 달성되고 국가체제의 정당성을 체계화한 교육이념의 내면화현상이 사회적으로 확산된다. 오늘의 우리나라 교육현상을 요약한 설명이 아니다. 일제식민지시대의 교육을 말하는 것도 아니다. 바로 500년의 역사를 자랑하는 조선시대의 교육전략이다.

조선의 교육정책이 성공할 수 있었던 관건은 과거제도였다. 과거제도의 절묘함은 세 가지로 요약된다. 첫째는 관료지망생의 선발권을 국가가 독점 장악하는 것이다. 둘째는 과거시험의 내용은 조선의 성리학적 지배 이데올로기를 정당화하는 일원적 가치체계에 관련된다. 셋째가 중요한 부분인데 지정된 무자격자들(역적의 자손, 천민, 여성, 개가녀의 자손, 뇌물 받고 파직된 관료의 자손, 서얼 등)을 제외한 모든 상민(보통사람)들에게 과거 응시 자격을 개방한 것이다. 시대 분위기와 정치상황에 따라서 제한규정 내용 일부에 약간씩의 변화가 들쭉날쭉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명목상의 개방적 과거응시 원칙은 지속되었고 이 부분이 우리나라 역사에서 보편적 교육열의 원천 노릇을 해 왔던 것이다. 즉, 무자격 조건에 해당하지만 않으면 누구라도 과거에 응시할 수 있고 시험에 합격만하면 신분상승의 길이 열려 있다는 논리가 성립되는 것이다.

과거 준비를 위해서는 성리학의 근간이 되는 경전들을 통달해야만 했고 과거 준비를 향한 모든 교육행위는 가문과 지역사회의 지원을 받는다. 교육내용을 내면화 하면 할수록 주변으로부터 존경을 받게 된다. 그러니 너도나도 교육에 몰입하는 사회분위기가 형성되게 마련인데 바로 이런 사회 문화적 분위기가 조선 체제의 정당성을 당연시하고 옹호하는 보수 세력을 끊임없이 재생산하게 된다. 조선이 500년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밑바탕에는 국초부터 추진된 이렇게 절묘한 교육전략의 성과가 지리 잡고 있었던 것이다.

그러나 성리학이 좋아하는 우주자연의 이치로 볼 때 세상에는 한 없이 좋기만 한 것도, 나쁘기만 한 것도 있을 수 없는 법이다. 장점에는 언제나 약점도 있게 마련이다. 약점은 반드시 그 장점으로부터 나온다. 성리학을 유일 지배이념으로 삼은 조선이 500년씩이나 지속될 수 있었던 것은 중국역사에서도 찾을 수 없는 성공적 예라고 할 수 있겠지만 바로 그 성공의 원인이었던 성리학의 일원적 절대주의가 조선을 망하게 만드는 원인 노릇을 했고, 오늘의 우리 시대에까지도 막강한 부정적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음을 보게 된다.

땅콩회항, 교수의 학생 성추행, 고급장교의 하사관 성추행, 국회의원의 대리기사 폭행, 심지어는 늙은 아파트 경비원에 대한 젊은 주민의 폭행 등등에 이르기까지 우리사회를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는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이른 바 갑질 사건들은 요즘 들어 갑작스레 나타난 돌발현상들이 결코 아닐 것이다. 500년 넘도록 신분사회 속에서 익혀온 종적 인간관계문화의 어쩌면 자연스런 무의식적 표출행위일 런지도 모른다. 우리가 민주주의 평등인권사회를 향해 급하게 달려오다 보니 과거에는 당연시 되어오던 인간관계 행태의 일부분이 IT문명으로 진입한 요즘 들어 두드러지고 있는 것뿐이 아닌가 싶기도 하다. 미국이 노예해방선언을 한 것이 1862년인데 우리나라가 노비세습제를 폐지한 것은 1886년이다.

*** 김인회 교수는....
연세대 교육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1969년 이화여대에 부임했고 1980년 연세대로 자리를 옮겨 2003년 정년퇴임했다. 한국교육사학회 회장, 연세대 박물관장, 한국교육철학회 회장, KBS객원해설위원,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 이사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