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조신화의 기록 내용들 속에서 우리가 비교적 의심의 여지없이 쉽게 도출해 낼 수 있는 분명한 특징들도 바로 (1)우리는 누구인가 (2)우리가 살고 있는 이 터전은 어떤 곳인가 (3)우리들의 삶의 이상은 무엇인가 하는 세 가지 질문에 대한 명쾌한 대답이다. 하지만, 그 대답의 내용에 대한 이해 못지않게 중요한 것은 그러한 대답 내용을 그렇게 기록한 그 시대 사람들의 의도와 철학에 대한 이해다. 오늘의 무속현장을 연구한 결과 찾아낸 사상적 특징들 대부분이 12세기경에 기록한 국조신화 내용을 통해 찾아낼 수 있는 특징들과 거의 겹친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유사하다. 오늘의 무속 문화현장에서 우리가 찾아낼 수 있는 사상적 메시지 내용을 (1)인간관 (2)공간관 (3)삶의 이상 등으로 나누어 정리할 수 있다.

(1) 인간관(우리는 누구인가)

국조신화 기록들에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이른바 천부지모사상의 골격을 근거로 말한다면, 고대부터 우리 선조들은 밖으로부터 이주해 온 집단과 원주민 집단 간의 결합으로 태어난 신성한 왕이 우리의 시조라고 믿었던 것이 분명하다. 이러한 내용의 시조 관을 신화학·종교학·인류학 같은 이론 모형에 맞추어 분석 비교 설명하는 것은 교육의 역사와 정신을 살피려는 나에게는 일차적 관심사가 아니다. 관심을 가질 필요가 있는 부분은 시조신화 기록 내용들 속에서도 행간에 들어있는 의미, 즉 기록자의 관심사와 기록 의도이다. 시조신화들의 다양한 내용에도 불구하고 그 기록들을 통해 한 결같이 전달 하고자 하는 첫째 메시지는 바로 우리는 누구인가 하는 질문에 대한 대답이다.

“우리는 하찮은 존재들이 아니라 하늘과 땅, 신성남과 신성녀의 우주적 질서와 조화로 상징되는 서로 다른 집단들 간의 결합에 의해서 태어난 신성하고 위대한 조상의 자손들” 이라고 믿는 자기 집단 정체감과 자존심을 갖게끔 하려는 기록자들의 의도와 교육정신을 국조신화 기록에서 읽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니다. 복합민족으로서의 집단적 자긍심을 고취하려는 국조신화 기록 의도는 12~13세기라고 하는 그 시대의 고려 사회에서 필요로 하는 교육이념과 무관할 수 없을 것이다. 단군신화에서 만이 아니라, 주몽신화에서 동명‘성제’나 ‘성왕’이라는 표현을 쓴 것에서도 우리는 그 시대의 기록자들이 느꼈던 집단적 자긍심 고취의 필요성 정도를 감지할 수 있다. 그랬기 때문에 그렇게 기록한 것일 것이다. 내가 경험하고 관찰해 온바 한국의 무속문화 속에 기본 조건으로 잠재되어 있는 인간관에서 는 사람은 ①중심적 존재 ②평등한 존재 ③공동체적 존재 ④소통하고 화해 할 수 있는 존재라고 요약할 수 있다.

(2)공간관(우리가 사는 이 터전은 어떤 곳인가)

시조신화의 기록들 속에서 중요한 관심사는 고대 선조들이 성역사상을 지니고 살았다는 사실이다. 그것이 특정 지역이나 장소인지 아니면 거주영역 전체인지가 서로 모순되는 것은 아니다. 오히려 성소와 성역 두 종류의 공간 관념은 상호 보완적 의미를 지니면서 공존 했을 수도 있다. 우리가 관심을 갖고 살펴야 할 것은 기록자들이 고대 성역사상과 관련해 기록 하면서 강조 하고자 한 행간의 선언 내용이다. 성역에 대해 무엇을 썼으며 그 내용의 의미가 무엇인가를 살피는 일에 못지않게 무엇을 쓰지 않았으며 그 쓰지 않은 내용의 의미는 무엇일까를 유추할 때에 우리는 신화 기록자들이 그 시대 사람들의 가슴 속에다 심어 놓기를 바랐던 중요한 교육내용을 담은 하나의 선언문 같은 것을 만들어 볼 수도 있을 법 하다. “우리들이 살고 있는 이 고장은 신들의 것도 아니고 몽골이나 왜 같은 도적들이 함부로 넘볼 수 있는 주인 없는 땅도 아니다. 우리가 바로 이 성역의 주인이다. 이 터를 지키고 다스리는 주인으로서의 신성한 책임과 의무는 거룩하고 위대한 조상들의 자손인 우리들만의 것이다”. 오늘의 교육철학적 관점에서 보더라도 12~13세기 고려사회에서는 물론, 고대사회에서도 공동체 구성원들에게는 “우리는 누구인가” “우리가 살고 있는 이 고장은 누구의 터인가” 하는 두 가지 질문에 대한 명쾌하고 분명한 대답이 있어야만 했을 것이다. 그래야만 공동체의 이념적 결집이 가능할 터이기 때문이다.

오늘날의 굿에서도 삶의 터전에 대한 성역의식은 마찬가지로 살아있다고 할 수 있다. 한국의 굿에서는 사람이 신들의 공간을 찾아 가지 않는다. 신들로 하여금 사람의 공간으로 오도록 한다. 사람의 공간에 신을 불러오기 위해서 정화절차를 일단 밟고 나면 일상의 공간은 성역이 된다. 이 성역으로 신을 불러 온 다음에는 이 터의 유래와 역사를 알려주면서 여기가 바로 성역임을 천명한다. 굿에서 이 부분은 사람들에게 자기네 고장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갖게 한다. 그리고 스스로 이 고장의 주인임을 깨닫게 한다.

*** 김인회 교수는....
연세대 교육학과를 나와 동대학원에서 석박사과정을 마쳤다. 1969년 이화여대에 부임했고 1980년 연세대로 자리를 옮겨 2003년 정년퇴임했다. 한국교육사학회 회장, 연세대 박물관장, 한국교육철학회 회장, KBS객원해설위원, 혜곡최순우기념관 관장 등을 역임했다. 현재 (재)내셔널트러스트문화유산기금 이사장, 한국박물관교육학회 명예회장을 맡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