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장 역임 후 옮겨간 현직 총장만 10여 명

대학 위기속 운영 경험 높이 사…대학 발전 장담할 지는 의문

[한국대학신문 이연희·이우희 기자]기업들만 경력 있는 인재를 원하는 것이 아니다. 대학에서도 이미 대학 총장을 역임한 인사를 다시 총장으로 발탁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

23일 본지 조사에 따르면 현직 4년제 대학과 전문대학 총장들 중 10여명이 다른 대학의 총장을 역임한 것으로 파악됐다. 이 총장들은 국립과 사립, 4년제와 전문대학을 가리지 않고 전직 총장으로서의 경험을 피력하고 있다.

가장 최근 사례로는 김도연 전 교육과학기술부 장관이 있다. 그는 지난 2011년까지 8대 울산대 총장을 지낸 이후 초대 국가과학기술위원장을 역임했다. 이후 포스텍 이사회의 만장일치로 차기 총장으로 선임, 지난 9월 취임했다.

오연천 전 서울대 총장도 지난 3월 10대 울산대 총장으로 직함이 바뀌었다.  오 총장은 지난해 7월 임기가 만료된 후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로 돌아갔으나, 울산대 재단인 울산공업학원 이사회는 그를 차기 총장으로 임명했다.

5월 취임한 최해범 창원대 총장은 본래 창원대 교수로, 지난 2013년 3월부터 2014년 12월까지 경남도립거창대학 총장을 지냈던 인물이다. 그는 간선제 투표 결과 1순위 임용후보자로 선출돼 최종 승인을 받았다.

탐라대와 제주산업정보대학과의 통합 후 경영부실대학 위기 속 장기간 이사회와 구성원 내홍을 겪었던 제주국제대는 지난해 9월 고충석 전 제주대 총장의 지휘 아래 안정을 찾는 분위기다. 취임 1년 만에 지난해까지 족쇄처럼 매여 있던 경영부실대학의 오명도 벗어나면서 구성원들의 지지도 받고 있다.

이 대학 한 관계자는 "여전히 갈등들은 있지만 현재 봉합돼 가는 상황"이라며 "아무래도 제주도내 출신이자 국립대 총장을 지내셨고, 실제로 경영 측면에서도 나아지다 보니 리더십을 인정 받고 있다"고 말했다.

홍승용 중부대 총장도 빼놓을 수 없다. 해양수산부 차관 출신인 그는 2002년부터 2008년까지 8년 가까이 인하대 총장을 지냈다. 이후 대학구조개혁위원장을 역임한 홍 총장은 2013년에는 덕성여대 총장선거에 출마, 선출됐다. 여대의 창업 기능을 강화하는 데 기여했다는 평을 받았으나, 이듬해 정부재정지원제한대학에 지정된 책임을 지고 1년 반 만에 물러났다. 그는 지난 8월에는 신임 중부대 총장으로 선임돼, 고등교육 관련 경험들은 여전히 유효하다는 점을 입증했다.

현직 전문대학 총장 중에서는 최근 선임된 김양종 여주대학 총장(전 수원과학대학 총장)과 한영수 전주비전대학 총장(전 경기과학기술대학 총장), 김영식 백석문화대학 총장(전 한국국제대 총장), 추만석 경남정보대학 총장(전 부산디지털대 총장), 김재복 김포대학 총장(전 경인교대 총장)이 경력 총장이다.

대학 총장을 연임하는 경우는 일반적이다. 그러나 대학을 한번 이끈 이후 다시 다른 대학을 이끄는 경우는 눈에 띄는 편이며, 최근 들어 늘어나는 추세다. 이찬규 전 창원대 총장 역시 현재 한남대 총장 선거에 출마한 상태다.

이처럼 경력 총장이 증가하게 된 배경에 대해서는 대학 재정난과 구조개혁평가 등 대학을 둘러싼 환경이 척박해지면서, 이미 대학을 운영한 경험을 바탕으로 대내외적인 관리가 필요한 총장, 즉 CEO형 총장의 진화형 아니겠느냐는 말이 나온다. 교육부 퇴임 관료를 대학으로 모셔가는 '교피아'가 금지된 것도 경력 총장의 유행에 가세한 것 아니겠느냐는 시각도 있다.

반상진 전북대 교수(교육학과)는 "미국은 행정가인 총장과 교수가 구분돼 있어 이 대학 저 대학으로 이동하는 양상이 보편화 된 편"이라며 "국내 경력총장 역시 인정받으면 스카우트 하는 경우다. 앞으로 더 늘어날 것"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외부로부터 새로운 분을 수혈한다면 대학 내부에 고여 있는 대학 조직문화를 혁신하기 위해 긍정적인 효과를 거둘 수 있다"면서도 "외부에서 초빙한 경력총장의 경우 오너십이 부족하거나 내치보다는 외부와의 관계에 치중하기 쉽기 때문에, 국내 경력총장들이 리더십을 발휘해 학교를 성장시켰는지 입증이 안 된 상태"라고 말했다.

길용수 한국대학경영연구소장 역시 "관리형 총장은 외부 환경에는 잘 대응할지 몰라도 내부 환경 혁신에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면서 "아무리 좋은 아이디어와 비전을 제시해도 내부 구성원들이 이를 따르고 실천해주지 않으면 한계에 부딪히게 된다"고 설명했다. 그는 장기간 한 대학을 이끄는 경우 오히려 대학 구성원들을 결집하고 나아가는 데 주효하다고 봤다.

경험이 풍부한 총장이더라도 리더십이 제 힘을 발휘하려면 외부의 압박에서 벗어나 자율성을 보장해야 한다는 의견도 제기했다.

반상진 교수는 "국내 고등교육 환경은 교육부의 행·재정적 압력이 너무 크고 자율성도 보장 받지 못한 상황"이라며 "대학 총장의 리더십 역량이 제대로 발휘되려면 대학의 자율성이 전제돼야 한다. 총장들도 자기역량을 발휘할 수 있는 환경을 만드는 것이 우선"이라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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