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른 어느 해보다도 무덥던 여름이다. 수해로 난리도 겪었다. 그러더니 이젠 아침, 저녁으로 제법 서늘한 바람이 불면서 계절이 바뀌고 우리들의 새 학기가 시작되고 있다.

그 동안에 우리가 겪은 일은 무더위와 홍수만은 아니다. 긴 방학이었지만 대학도 조용하지 는 않았다. 두뇌 한국 21 사업을 성토하며 전국의 교수들이 서울에 모여들어 대규모의 가두시위를 벌이는가 하면 새 교육법이 국회를 통과하면서 크고 작은 소동이 빚어지기도 했다.

앞으로 BK 21 사업이 각 대학에 어떤 변화를 가져올지 그리고 개정된 교육 3법이 어떤 바람을 몰고 올지 알 수는 없지만 새 학기를 맞으며 이제 대학 본연의 연구와 강의 기타 학사업무 추진을 위한 모든 준비에 만전을 기해야 할 때가 되었다.

대학이 가져야 할 이 같은 본래적 기능을 생각한다면 최근 알려진 원광대 김형민 교수에 대한 연구 활동 소식은 모처럼 대학가에 매우 신선한 감동을 주는 것이다.

그는 97년 한해에 무려 36편의 논문을 발표한 것으로 알려졌다. 그중 대다수는 미국의 과학 기술 논문색인에 오르거나 미국이나 영국 등 다른 학회지에 발표된 것으로 모두 그만큼 국 제적인 권위를 지니는 것으로 인정된다는 것이 다른 교수들의 의견이다.

한약학은 특수분야이기 때문에 국제적인 학술 활동에서 특히 주목을 받을 만한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만일 그 논문들이 우수한 논문이 아니라고 가정하더라도 열흘에 한편 씩 발표된 논문실적은 거의 초인적인 것이라 아니할 수 없다.

그런데 여기서 특히 주목을 끄는 것은 김교수의 연구 여건이다.

지금까지 정부나 기업체나 기타 학술문화재단이 교수들에게 지급해온 연구비는 서울대를 비 롯한 세칭 상위권 대학에 집중되었다. 연구시설도 수십억원 이상씩 대기업이 지원한 것은 모두 서울대나 연세대 고려대 등의 캠퍼스에 자랑스럽게 세워져 있다.

지방에 있는 원광대학의 사정은 잘 알 수 없지만 그곳 한약학과 교수는 김형민 한사람뿐이 고 그는 아직 40대의 젊은 교수다. 나이로 보나 학과 구성으로 보나 또는 그 동안 정부나 기업체의 연구비 지원 풍토를 보더라도 김교수는 별로 좋은 여건은 지니지 못했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사실 값비싼 외제 실험용 재료들을 구하기 위해서 처가 식구들의 보증까지 얻 어가며 돈을 빌려 쓴 것으로 알려졌다.

김교수의 이 같은 사례를 본다면 BK 21사업의 돈이 어디로 가든, 또는 교육법이 악법이든 말든, 또는 세칭 일류대든 아니든 상관없이 일류 교수가 될 사람은 그런 조건과는 무관하게본연의 임무에 충실할 수도 있구나 하는 생각을 하게 된다.

새 학기에 이런 신선한 바람이 다른 많은 대학으로도 불어 주었으며 하는 바람 간절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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