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태중 중앙대 교수(교육학)

▲ 강태중 중앙대 교수

‘공론화’를 거쳐 대입제도를 개편 하겠다는 정부의 시도는 천박했다. 그 발상에 진정한 데가 없었고, 결과로 기대할 것도 없다. 작년 8월 31일 교육부장관은 수능 개편을 1년 유예한다면서 이렇게 말했다. “교육은 경쟁과 입시만을 위한 교육이 아니라, 아이들이 꿈꾸고 행복할 수 있는 교육이어야 합니다.” “국민 여러분의 목소리 하나도 놓치지 않겠습니다.” 이런 공언(公言)은 공언(空言)이 됐다. 교육부가 내놓은 ‘대입제도 국가교육회의 이송안’에는 학교교육이나 대입제도를 본질적으로 고민한 흔적이 없다. 공론화도 결국 국민 사이 이해 충돌과 분열만 부추길 공산이 크다.

길게 쓸 수 없으니 예 하나로 살펴보자. 교육부는 '학생부종합전형과 수능전형 간 적정 비율'을 논의해달라고 국가교육회의에 이송했다. 국가교육회의도 수용했다. 국민이 '학생부종합전형의 불공정성'을 우려하며 '수능전형 확대'를 요구했기 때문이라고 이유를 댔다. 정부가 국민의 뜻을 제대로 읽었는지 따져봐야 할 구석이 많지만, 이 문제는 덮어두자.

국민 뜻이라 하더라도, 의제 자체에 근본적인 하자가 있다. 의제는 ‘학종’이 불공정하기 때문에 수능전형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고 전제하지만, 그 전제는 견고하지 않다. 따라서 의제를 채택하기에 앞서, 학종이 불공정하고 수능이 공정하다고 볼 근거가 무엇인지 엄밀히 검토했어야 했고, 그런 주장에 함축된 ‘공정’의 정의가 마땅한지도 검토했어야 했다. 교육부도 국가교육회의도 이 사전 작업을 한 것 같지 않다.

이대로 가면 국민이 수긍할 만한 결정에 이를 수도 없고, 대입제도를 바르게 개선하지도 못한다. 공론화는 결국 학생부전형 또는 수능전형이 유리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이 모두 만족할만한 ‘비율’을 찾는 과제로 귀착될 터인데, 양편 모두 더 큰 몫을 기대하는 ‘흥정판’에서는 어느 쪽도 결정에 만족할 수 없다. 상대적 박탈감은 남기 마련이다.

더 나아가, 그 비율을 결정하겠다는 말에는 두 전형을 개선하지 않겠다는 뜻이 이미 담겨 있다. 학생부전형이나 수능전형을 어떻게든 고치면 각 전형에서 유리-불리 상황은 현재와 다르게 될 터이고, 이전에 확대 또는 축소를 요구했던 사람들 역시 이해득실을 새롭게 따져 의견을 바꾸게 될 것이다. 예컨대, 수능 '전과목 절대평가 전환'이라는 안을 채택한다고 생각해보자. 이런 결정은 비율 공론화 의제와 양립할 수 없다.

이를테면, 수능 확대를 요구했던 사람들이 ‘전과목 절대평가’ 조건에서도 여전히 그런 의견을 유지할 리 없다. 그들의 유리함은 현행 수능 아래에서만 유지되기 때문이다. 요컨대, 학생부전형과 수능전형의 비율을 공론화 의제로 채택하는 데는 두 전형 양식을 바꾸지 않는다는 전제가 이미 깔려있게 되는데, 교육부도 국가교육회의도 스스로 자가당착의 논리에 감겨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했다. 그만큼 정부의 궁리는 허술했다.

의제만의 문제가 아니다. ‘공론화’ 발상 자체가 무지와 단견의 산물이다. 국민 토론에 부친다면, 그것은 특정 대안을 결정하려는 시도가 아니라, 국민의 안목을 틔우려는 시도여야 한다. 이해 당사자들이 편견과 왜곡된 정보로 고집스럽게 이해타산하고 있는 우리 상황에서 토론이 가능할 리 없고, 공공선의 정책 결정을 내릴 수 있을 리 없다. 프랑스에서는 2003년 ‘국민 대토론회’를 열면서 토론으로 특정한 정책결정을 내리려 하는 게 아니라고 미리 경계했다. 교육에 대한 국민의 안목을 높이는 기회로 삼겠다는 취지를 표방했다. 널리 알려진 이런 전철마저도 정부는 살피지 않은 듯하다. 이제까지 공론화 어느 구석에서도 진정 어린 숙고의 자취를 찾아보기 어렵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