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대학신문 이하은 기자] 사단법인 한글문화연대(대표 이건범)는 18개 정부 행정부처에서 2018년 4월~6월까지 낸 보도자료 총 3024건을 모아, 이들 보도자료가 국어기본법을 잘 지켰는지 조사했다. 조사 기준은 국어기본법 제14조 1항 “공공기관 등은 공문서를 일반 국민이 알기 쉬운 용어와 문장으로 써야 하며, 어문규범에 맞추어 한글로 작성해야 한다”는 조항이다. 따라서 크게 한글전용을 잘 지켰는지, 국민이 알아듣기 어려운 외국어를 쓸데없이 사용하지는 않는지 두 기준을 놓고 살폈다.

■ 보도자료 하나당 한글전용 위반 2.4회, 외국어 남용 6.6회= 올해 조사에서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 규정을 위반한 사례는 보도자료 하나마다 평균 2.4회였고, 가장 많이 위반한 부처는 기획재정부였다. 한글로 적긴 했지만 ‘인프라 컨설팅’처럼 외국어를 우리말 대신 남용한 사례는 보도자료 하나마다 평균 6.6회로 나타났다, 가장 많이 외국어를 남용한 부처는 중소벤처기업부였다. 

3월 19일 문재인 대통령은 제1회 정부혁신전략회의에서 “일반 국민이 법령과 행정의 의미를 쉽게 이해할 수 있게 하는 일이야말로 국민을 위한 행정의 중요한 출발이 될 것”이라고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정용어 사용을 강조한 바 있다. 국민 눈높이에 맞는 행정용어 사용을 강조했던 대통령 의지에 비춰볼 때 행정부처 공무원들의 호응이 매우 낮다.

■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 위반, 외국 문자를 드러내= 분석 결과를 보면 R&D, ICT, AI, TF, EU, UAE, SW, MOU, 美, 對, 新, 現, 比, 軍 등 외국 문자를 본문에 그냥 써 실정법인 국어기본법의 한글전용 규정을 위반한 사례는 보도자료 3024건에서 7399개로 드러났다. 보도자료 하나마다 평균 2.4회를 위반한 셈이다. 2017년 같은 기간 평균 3.1회 위반한 것에 비하면 약간 줄었다.

한글전용 위반 횟수가 많은 부처는 기획재정부,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중소벤처기업부, 외교부, 농림축산식품부 순이다. 기재부는 보도자료 186건에서 1127개를 위반해 보도자료 하나마다 6.1회씩 로마자나 한자 표기를 했다. 이어 △과기정통부는 보도자료 하나마다 4.7회 △중소벤처기업부는 4.3회 △외교부는 3.6회 △농축산부는 3.1회로 나타났다. 

2017년과 비교하자면 기획재정부는 9.1회에서 6.1회로,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7회에서 4.7회로 많이 줄었다. 문화체육관광부, 통일부, 여성가족부는 작년과 마찬가지로 보도자료 하나에 채 1회가 나오지 않아, 국어기본법에 대한 이해가 높다고 평가할 수 있다. 한글전용 원칙을 예사로 어기는 부처와 한글전용 원칙을 잘 지키는 부처로 갈리는 양극화는 여전했다. 

외국 문자로 많이 쓴 낱말은 다음과 같다. 괄호 속의 숫자는 위반 횟수이다. R&D(544), ICT(222), AI(155), TF(154), EU(135), UAE(130), SW(118), FTA(104), MOU(82), G20(78), LNG(76), IMF(72), OECD(70), IoT(64), WB(63), ODA(62), IT(61) SNS(53), DB(48) 등이다.

한자는 美(110), 對(80), 新(46), 現(46), 比(44), 軍(30), 前(30), 駐(30), 故(28), 全(20), 下(16), 內(15) 순으로 나타났다. ‘旣확보된’, ‘無자녀’ ‘先선발 後교육’ 등 국한문혼용문을 쓴 곳마저 있다. 

■  보도자료에서 가장 많이 쓴 외국어는?= ‘프로그램’(과목, 교육), ‘시스템’(체계, 구조), ‘컨설팅’(상담), ‘콘텐츠’(내용, 목차, 알맹이), ‘인프라’(기반, 여건)와 같이 우리말로 표현할 수 있음에도 외국어를 소리 나는 대로 한글로 적기만 하는 비율도 작년보다 약간 줄었다. 

2017년 집계 당시 보도자료 하나마다 7.1회였지만, 2018년에는 보도자료 3024건에서 2만11개로 나타나 보도자료 하나마다 6.6회로 약간 줄었다. 외래어라고 볼 만한 ‘모바일, 드론, 블록체인, 디자인, 네트워크, 디지털, 벤처, 서비스, 소프트웨어, 하드웨어, 온라인, 오프라인’ 등과 같은 낱말은 조사대상에서 제외했다. 특히 ‘팀’과 ‘센터’는 문장 속에서 다른 기관을 일컬을 때 주로 쓰이는 점을 참작했다. 2017년과 같이 ‘팀, 센터’를 남용 대상에 포함하면 보도자료 하나마다 7.5회를 어긴 것으로 나타나, 별 차이가 없다.

우리말 대신 외국어를 사용하면서 한글로 적기만 한 순위는 중소벤처기업부, 문화체육관광부, 산업통상자원부, 농림축산식품부, 국토교통부 순이었다. 중소벤처기업부는 보도자료 하나마다 12.9회씩 쓸데없이 외국어를 남용하고 있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보도자료 하나에 11.4회, 산업통상자원부는 10.8회, 과학기술정보통신부는 9.8회, 농림축산식품부는 8.6회, 국토교통부는 8.2회씩 썼다. 

2017년과 비교해 외국어 남용 횟수가 크게 줄어든 곳은 과기정통부다. 2017년에는 보도자료 하나마다 18.2회씩 외국어를 남용했으나 2018년에는 크게 줄어 9.8회로 나타났다. 이는 ’센터, 팀, 드론, 모바일‘과 같이 과기정통부에서 불가피하게 사용하는 외국어를 조사대상에서 뺐기 때문이다. 

올해 중앙부처 3024건의 보도자료에서 사용한 외국어는 총 1191개였다. 이 가운데 자주 쓴 외국어 낱말은 프로그램(1,134), 시스템(757), 포럼(624), 컨설팅(547), 콘텐츠(533), 인프라(530), 아이디어(477), 홈페이지(455), 프로젝트(452), 데이터(435), 스마트(403), 모델(293), 스마트팜(287), 빅데이터(275), 그룹(244), 플랫폼(236), 캠페인(217), 스타트업(208), 워크숍(192), 세미나(185), 채널(180), 네트워크(172), 비전(171), 이슈(171), 바이오(166), 모니터링(162), 세션(149), 브로드맵(144), 마케팅(131), 매칭(124), 매뉴얼(120), 가이드라인(113), 뉴딜(108) 등이다. 

올해 눈여겨볼 특징으로, 권고안(가이드라인), 거점(플랫폼), 통제탑(컨트롤타워), 구매인(바이어), 경향(트렌드), 과정(포트폴리어), 대상(채널), 만남(라운드테이블), 묶음(패키지), 상담(컨설팅), 새싹기업(스타트업), 핵심품목(킬러아이템), 협력지구(클러스트)와 같이 우리말을 앞세우고 괄호 안에 외국어를 넣어 표현한 보도자료가 자주 눈에 띄었다. 

■ 국어기본법과 외국어 남용 사례 문장= 보도자료에서 국어기본법을 어긴 사례는 다음과 같다.

'또한, K-Move센터를 성과 위주로 개편하고(고용노동부, 6월18일)'
'기존 기술은 Chip을 접착테이프에서 떼어 낼 때(과학기술정보통신부, 5월8일)'
'창업 생태계의 주요 구성원인 액셀러레이터의 역량을 강화하고(과학기술정보통신부, 5월15일)'
'숙련된 퍼실리테이터의 안내에 따라 주요 쟁점에 대한 정보를 정리(교육부, 6월25일)'
'산업맞춤 단기직무인증과정 매치업(Match業) 프로그램(교육부, 6월29일)'
'성장단계 기업의 Scale-up을 위한 대규모 투자가(중소벤처기업부, 5월9일)'
'중소기업 氣살리기 붐을 확산하는 한편(중소벤처기업부, 6월14일)'

K-Move는 단어 앞에 한글을 표기해야 한다. 몇 해부터 외국 문자 표기에서 'K'를 앞세운 조합어가 유행하면서 'K-MOOC' 'K-MOVE' 등 잘못된 표기들이 여전히 고쳐지지 않고 있다. 또한 'Chip'은 한글 '칩'으로 바꿔쓸 수 있는데도 과도하게 외국어를 남용한 사례로 볼 수 있다. '액셀러레이터' '퍼실리테이터'는 외국어 표기조차 하지 않았다. '퍼실리테이터'는 팀이 그들 자신의 행동에 대해 더 잘 알도록 해 주는 '조력자' '촉진자'로 바꿔 쓸 수 있다. '매치업(Match業)'은 외국어와 한자가 결합한 예로 단어만 보면 무슨 뜻인지 한눈에 이해하기 힘들다. 'Scale-up' '氣살리기' 역시 불필요한 외국어 또는 한자어 남용으로 볼 수 있다. 

쓸데없이 괄호 속에 영어나 한자를 남용한 사례도 눈에 띄었다.

'장애인 케어(Care) 프로그램을 실시해'
'자국 내 프리터(Freeter)에 대한 고용지원정책 사례'
'장애물 없는 생활환경(BF: Barrier free) 홍보관'
'개선(리모델링)을 위해 대학'
'펜의 종류와 상관없이 예비 마킹(marking) 등'
'시스템리스크, 국가간 위험전이(spillover)가 심화되고 있음을 지적하면서'
'음 회의부터는 소(小)포럼 형태로 진행되며'
'연구개발(R&D)'
'다양한 통일 콘텐츠(contents)를 제작·보급해'

한글문화연대 측은 "우리말을 앞세우려는 고민의 흔적이다. 이는 한글문화연대와 국립국어원 등의 우리말 다듬기 사업의 성과"라면서도 "괄호 속에 영어 낱말이 없어도 다 알아들을 수 있는 표현인데 영어를 버리지 못하는 안타까운 태도"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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