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별대담]이기우 전문대교협 회장 “쉬지 않고 달려온 삶의 원칙과 도전…거제와 함께 하는 것, 내 새로운 도전”
[특별대담]이기우 전문대교협 회장 “쉬지 않고 달려온 삶의 원칙과 도전…거제와 함께 하는 것, 내 새로운 도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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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60대와 70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에게 어릴 적 이야기를 물어보면 늘 배가 고팠던 기억이 대부분이다. 쌀밥을 원 없이 먹어 보는 것이 소원이었던 시절, 그가 어렸을 시절도 마찬가지였다. 어렸던 시절 그에게 기다려지는 날이 있었으니, 그것은 바로 제삿날이었다. 제삿날에는 그래도 쌀밥과 기름진 음식이 제상에 올라가고 생선에 전이라도 주변 이웃들과 나눠 먹게 되니, 늘 배를 곯던 그에게는 이보다 반가운 날이 또 없었다고 했다.

어려웠던 어린 시절 생각에 눈물이 그치지 않았던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하고 9급 공무원 시험에 합격했다. 나중에 교육부 차관에까지 오른 그는 고졸 신화, 100년에 한 번 나올까 말까 한 공무원 신화 등 그야말로 쉽게 지워질 수 없는 족적을 남겼다. 이기우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인천재능대학교 총장)의 이야기다.

이기우 전문대교협 회장은 지난달 25일 자서전 《이기우의 행복한 도전》을 출간했다. 9급 공무원에서 교육부 차관, 대학 총장 4선 연임까지 쉬지 않고 달려온 인생 여정에서 지켜 온 삶의 원칙과 도전, 그리고 숨겨진 뒷이야기들을 진솔하게 소개했다.

지난달 31일 서울시 금천구 한국대학신문사 사옥을 찾은 이기우 회장과 이야기를 나눴다. 그는 “자서전을 펴내는 것이 부끄럽고 또 내게 어울리지 않는 일이지만, 지금까지 지나온 삶을 한 번쯤 글로 정리하고 싶은 마음은 늘 있었다”며 “삶에 대한 자기 성찰의 한 방법으로 이해해 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는 자서전을 펴내게 된 이유에 대해 “젊은이들에게 꿈과 희망을 품어야 함을 억지로 강요하고 싶지는 않다. 그들보다 조금 앞서 살아간 인생 선배 이기우의 삶을 통해 자연스럽게 감동을 전하고 싶다”고 했다.

이어 인생을 되돌아보며 인연을 맺은 주변인들과의 관계에 감사한 마음을 전하며, 앞으로도 교육 현장과 자신이 태어난 고향 거제를 지키며 헌신하고 싶다는 소망도 전했다. ‘행복한 도전’이라는 자서전의 제목처럼, 이제까지 수많은 변화를 이끌어 낸 그의 용감한 도전은 멈출 줄 모른 채 지금도 진행 중이다.

- 책을 보면 이 시대의 청춘들에게 큰 위로와 격려가 될 것 같은 내용이 많다. 이기우 회장이 본, 현시대의 청춘들은 어떤 아픔을 가장 크게 느끼고 있다고 보는지.
“‘아프니까 청춘이다’나 ‘젊어 고생은 사서도 한다’라는 말들이 더 이상 젊은 친구들에게 힘이 될 수 없다는 사실을 잘 안다. 젊은이들 입장에서는 아파도 봤고 고생도 해봤는데, 여전히 취업난, 비정규직, 구조화된 저성장 등이 자신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에 어깨가 처질 수밖에 없다. 술 안 마시고 노름 안 하고, 그저 성실하기만 하면 기회가 주어졌던 이전 사회보다 현재 상황은 분명 청춘들의 표현대로 ‘대략 난감’한 것이 사실이다. 우리나라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왔던 기성세대로서 참으로 안타까운 상황이다.”

- ‘아이들의 아픔과 상처는, 그들 때문이 아닌 우리 어른들의 잘못’이라는 말이 있다. 결국 현재 청춘들의 아픔은 지금 기성세대의 잘못이 크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든다.
“크게 공감되는 말이다. 현재는 과거의 거울이기 때문에 기성세대로서 무한책임을 져야 할 부분이다. 역사적으로는 그것으로 인해 신구갈등이 표출되기도 했다. 그러나 나는 우리 청춘들이 기성의 오류와 한계를 넘어설 수 있는 저력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기성세대들보다 지식과 정보에서의 전문성과 다양성이 월등하게 향상됐으며 자구능력은 물론 스스로에 대한 자존감에서도 기성보다 우월하다고 생각한다. 나는 청춘들을 만날 때마다 항상 자기 자신을 소중히 여기고 무엇이든 열정을 갖고 최선을 다하자고 말한다. ‘지금 이 순간’을 어떻게 사용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판이하게 달라진다. 현재 시점에서 자기 자신을 가장 큰 ‘빽’으로 삼아 승부를 건다면 좋은 결과를 가져올 수 있으리라 확신한다.”

- ‘행복한 도전’이라는 말을 책 제목으로 썼다. 특별한 의도가 있는지.
“책 제목을 정하는 데에 다른 의미나 의도는 담지 않았다. 나와 내 인생에 대한 이야기를 담은 책이니 나를 가장 잘 상징할 수 있는 나 다운 타이틀을 붙이고자 했고, 그것이 바로 ‘행복한 도전’이었다. 나는 영업부 대리처럼 살아왔다. 그것이 내 삶의 원동력이었다. 반도의 끝자락 거제의 누항(陋巷)에 태(胎)를 묻은 9급 공무원이 교육부 차관을 하고 대학 총장을 거쳐 다시, 새로운 도전에 나설 수 있는 것도 그 치열함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지인들은 그 과정을 지난(至難)했다고 위로를 많이 했지만, 나는 한 번도 어렵거나 힘들다고 생각해 본 적이 없다. 하루하루가 도전이었고, 나는 그 도전이 행복했다. 도전이 성공했거나 실패했거나 하는 결과와는 전혀 상관이 없다. 성공한 것도 이기우고, 실패한 것도 이기우다. 성공이든 실패든 그것이 오늘의 이기우를 만든 자양분이 됐고, 오늘의 나는 행복하다. 그러므로 지난 모든 과정들이 나에게 ‘행복한 도전’이 된 것은 당연한 이치다.”

- 책을 보면 ‘책상이 사라진 그날은 내가 진짜 공무원으로 태어난 첫날이라고 할 수 있다’고 돼 있다. ‘진실’ ‘성실’ ‘절실’ 등 ‘삼실철학’을 강조한 이기우 회장에게 근무태만이라니, 믿을 수 없다. 이 일화에 대해 짤막하게 소개한다면.
“고교 시절 병마와 싸우고 또 입주 과외교사로 생활할 수밖에 없는 처지였다. 대입준비를 제대로 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첫 대학 시험에서 떨어진 뒤 부산 대연동우체국 서기보로 들어갔다. 친구 따라 강남 간다는 말처럼 우연찮게 공직에 입문하게 된 것이다. 그러나 나는 이것이 내 일이 아닌 것으로 생각했다. 고향에서 일하며 재수하려고 다시 시험을 쳐 거제교육청 서기보로 옮겼다. 처음 거제교육청에서 공무원으로 근무할 때도 ‘빨리 돈 벌어서 대학 가야지’하는 생각으로 일은 뒷전이었다. 그러니 일을 제대로 배우고 또 할 수 있었겠나. 그렇게 시간을 보내다가 어느날 출근을 했더니 내 자리가 없는 것이다. 그때 내 상사가 내 책상을 밖으로 치우고 시설계로 보냈다. 3개월 동안 먹지로 글을 베끼는 작업만 시키는데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그때부터 ‘기왕에 할 일이라면 제대로 해서 인정받는 사람이 되자’라는 결심으로 정말 최선을 다해 열심히 노력했다. 그리고 다시 서무계로 원위치 됐다. 나는 이때 상당한 충격을 받았지만 동시에 삶의 큰 교훈을 얻었다. 가장 쉽고 간단한 일 하나도 제대로 하지 못하면서 큰일을 어떻게 감당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었다. 이때부터 하나를 해도 제대로 또 될 때까지 하자는 각오를 하게 됐고, 과거 혹은 어제의 나와 단호하게 결별하는 마음, 자세를 가지게 된 것이다. 부산고를 졸업했으니 좋은 대학에 진학해야 한다는 생각을 가진 과거의 이기우 또는 어제의 나태했던 이기우를 철저히 죽임으로써 오늘, 현재에 보다 집중할 수 있는 나를 만들어갈 수 있었다.”

- 요즘에야 ‘능력중심사회’ ‘고졸 성공시대’라는 말을 정부에서부터 쓰고 있지만, 사실 ‘고졸 신화’는 이기우 회장의 트레이드 마크다. 고졸 출신 성공의 대명사가 된 특별한 배경이나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생각하는지.
“‘고졸 출신 성공의 대명사’라는 평가는 좀 과장된 것 같다. 9급 공무원으로 공직에 입문했을 때나 교육부 차관이었을 때, 그리고 대학 총장과 전문대교협 회장으로 일하고 있는 현재에도 변함없이 하루를 인생의 전부인 것처럼 최선을 다해 노력한 결과가 아닐까 싶다. 앞서도 말했지만 나는 나를 ‘영업부 대리’의 마음과 자세로 일하고 있다고 자주 소개하는데, 그것은 빈말이 아니다. 영업부 대리의 입장이 되면 못할 일도 없고 못 갈 데도 없다. 또 이유를 물었는데, 한마디로 말하자면 일이 재미있었다. 남들이 모두 풀기 어려운 문제라고 손 놓아버린 일을 하나하나 해결하는 과정이 나에게 큰 성취감을 줬다. 그렇다고 성취감 때문에 일을 열심히 한 것은 아니었다. 공공의 영역에서 꼭 필요한 일들이 중첩된 난관 때문에 방기되고 있는 것을 두고 보지 못하는 ‘못된 성질머리’(웃음)도 일을 추진해 나가는 데 주요한 동력이 됐다고 자평하고 있다.”

- 9급 공무원에서부터 국무총리 비서실장, 교육부 차관, 대학 총장 4연임까지, 인생의 여정만 보면 탄탄대로였다. 하지만 우여곡절도 분명 있었을 텐데.
“탄탄대로라 (웃음). 겉으로만 보면 그럴 수 있다. 하지만 여러 우여곡절이 있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남들이 보면 난관이거나 좌절이었겠으나,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난관과 좌절이라고 생각하면, 긴장감이 더 커져 경직되거나 자신감을 잃을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항상 행복하다고 생각했고 할 수 있다고 마음을 먹었다. 예전 1급인 기획관리실장을 4년 가까이 했을 때다. 내가 차관으로 승진한다는 이야기가 많았지만, 결국 잘 안 됐다. 나는 인사 발표 당일 부부동반으로 지인들과 약속했던 저녁을 먹고 잘 놀고 잘 잤다. 그날이 마침 내 생일이기도 했다. 이것은 ‘차관이 돼야겠다’는 ‘예전의 나’를 버렸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과거와 미래는 몰라도 오늘은 내가 통제할 수 있는 것이다.”

- 반대로 ‘야, 이건 정말 잘했다’나 ‘이기우라서 해냈다’ 했던 적도 있을 것이다. 지금도 이기우 회장이기에 가능했다는 주변의 평이 있지 않나.
“내가 잘했다기보다는 주위 많은 분의 도움 덕분에 그나마 열심히 했다는 평가를 받았던 것 같다. 내가 가장 잘 한 것을 사례를 들어 말하기는 좀 어렵다. 다만 공직에 있을 때부터, 잘 한 것은 동료나 후배들에게 보고하게 하고, 잘 안 되는 것은 내가 보고를 했던 점이라고 생각한다. 내가 일과 성과를 모두 독점하거나 욕심부리지 않았다. 그러니 나와 함께 일하고 싶어 하는 사람들이 늘어나고 또 마음을 다해 도와주는 분들도 많아지게 됐다. 그 덕분에 나는 새로운 일을 맡을 기회를 더 많이 얻을 수 있었고, 좋은 결과도 획득할 수 있었다.”

- 거제와 함께 가고 싶다고 했다. 이기우에게 ‘거제’란.
“나에게 거제의 의미는 단일하지 않다. 유년시절 거제는 ‘따스한 가난’이라고 기억하고 있다. 이 역설적인 표현이 어떻게 들릴지 모르겠으나, 철없던 어린 시절처럼 즐거웠던 기억과 동시에 찢어지게 가난해서 늘 배가 고팠던 기억이 공존하기 때문에 그렇다. 그리고 고향 밖에서 공무를 담당하고 있을 때의 거제는 ‘동병상련’이었다. 고향 거제가 산업도시로 활성화될 때는 같이 기뻤다가 침체기로 접어들 때면 너무나 아팠다. 거제와 내가 두 몸으로 떨어져 존재한다고 여긴 적이 단 한 번도 없다. 고향의 일이라면 뭐라도 적은 힘이나마 보태야 한다는 일종의 강박이 있었다고 하는 것이 좋겠다. 최근에는 나를 배태(胚胎)하고 성장시켰던 그 공간을 외면하고는 잘 살았다고 자신할 수 없겠다는 생각을 한다. 죽음을 무릅쓰고 모태(母胎)의 강을 찾아 거슬러 올라가는 연어처럼 현재 여러 어려움에 처해 있는 거제에 치유와 재생을 산란하지 않고서는 내 삶이 완성됐다고 말할 수 없을 것 같다. 지금 나는 거제를 통해 내 인생의 수미상관(首尾相關)을 이루고 싶은 것이 마지막 바람이다.”

-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당 대표가 추천사를 통해 ‘이기우는 꾸준한 사람이다. 삶 전체를 관통하는 분명한 자기 철학이 있다. 이기우를 좋아하는 사람이 많고, 나도 그렇다’고 말했다. 이해찬 당 대표와는 국무총리 시절부터 함께한 사이다. 이기우가 생각하는 이해찬 대표를 들어볼 차례인 것 같다.
“현직 여당 대표에 대해 말하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내가 경험한 이해찬 대표에 대해 간단히 말하겠다. 그 분을 몇 마디로 단순화하기는 힘들지만 ‘원칙과 소신’ ‘명석한 판단과 빠른 추진력’ ‘신뢰와 의리’의 대명사라고 할 수 있겠다. 국무총리와 교육부 장관으로 함께 일해 본 경험을 돌이켜 보면, 국정과 교육에 대한 분명한 자기 철학이 있는 분이었다. 사실 급변하는 정치와 사회지형에서 일관된 원칙과 소신을 갖는 것이 그리 쉬운 일은 아닌데 말이다. 또한 문제를 이해하는 능력이 남달랐다고 기억하고 있다. 사전에 매우 세밀하고 연구하고 준비한다는 말이다. 따라서 한 번 결정된 사항에 대해서는 두 말을 하지 않았던 것 같다. 그리고 그 분의 인정을 얻는 것이 그리 쉽지는 않지만, 일을 통해 한 번 신뢰가 형성되면 일을 책임지고 수행해보라고 하는 믿음의 리더십을 보여주는 그런 분으로 나는 알고 있다.”

- 국무총리 비서실장과 교육부 차관을 거치면서 우리나라 교육제도의 근간을 만든 것으로 안다. 현재 교육에 관한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보는가.
“현재의 교육은 좋은 대학에 가야 한다는 이유로 ‘이론바보’만 양성하고 있다. 초등학교 6학년, 중학교 3학년, 고등학교 1학년까지 총 10년간 배우는 교육을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이라고 한다. 이 국민공통 기본교육과정은 각 개인이 자신의 삶을 성숙시키고 가치 있게 영위할 수 있도록 성장 단계별로 필요한 교육과정을 편성해 운영하도록 돼 있는데, 안타깝게도 입시 위주의 교육으로 파행 운영되고 있다. 문제해결 능력과 창의력 그리고 민주시민으로서의 기본 소양이 요구되는 시대에서 학생의 흥미, 소질, 적성, 능력 등을 고려하지 않고 획일화된 교육내용을 수능에 중점을 둬 암기 위주의 주입식으로 교육함으로써 전인교육을 어렵게 하고 있다. 이러한 교육행태는 교육의 본질적 의미를 퇴색시키고 성장 과정에 있는 자녀들의 정신적, 신체적인 발달에 지장을 주며 공교육의 부실화, 과도한 사교육비 지출, 지나친 경쟁의식 조장, 학교폭력 증가, 교권 약화 등의 각종 문제를 유발하는 원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고등학교까지의 교육은 무엇보다도 인성과 품격을 올바른 방향으로 이끌어 주고 또 이루게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본다. 자녀가 한두명뿐인 시대가 되다 보니 부모의 기대와 간섭이 지나쳐 자율성이 약화하고 의존성이 높아지게 돼 인내심과 의지력도 부족할 뿐 아니라 인성도 부족하다는 우려도 낳고 있다.”

- 그렇다면 이에 대한 해결 방안에 대해서도 한 말씀 부탁한다.
“변화의 속도가 갈수록 빨라지고 있는 시대적 흐름 속에서 새로운 변화에 적절하게 대응하고 사회의 구성원으로서 자신의 몫을 다할 수 있게 하기 위해서는 서둘러 지금 우리가 안고 있는 교육에 관한 문제점들을 꾸준히 고쳐나가야 한다. 그러나 교육의 문제들은 각 구성요소 간 이해관계도 복잡하고 상관성도 깊어 짧은 시간 내에 개선의 성과를 거두기가 쉽지 않은 것도 사실이다. 정부의 정책적 의지만으로 또는 학교의 노력만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고 본다. 국민적 공감대 형성과 사회적 협조가 선행돼야 할 문제다. 가정교육, 학교교육, 사회교육이 함께 어우러져 변화돼야 가능한 일이다. 사회적으로는 교육의 공정성을 보장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하다. 그리고 가정에서는 자녀가 스스로 문제를 선택하고 해결하도록 부모의 생각이 바뀌어야 하고 제대로 된 학교교육과 올바른 사회 생활을 할 수 있도록 밥상머리 교육도 필요하다고 본다. 사교육의 폐해와 부담이 줄어들도록 학교교육은 정상화돼야 하고 사회는 학벌이 아닌 능력 중심의 사회가 되도록 여건을 조성하는 데에 협조와 노력을 아끼지 말아야 한다.”

[TIP] 이기우 회장 “내년 4월 거제서 총선 나서겠다” 의지

이기우 전문대교협 회장이 자신의 고향인 거제에서, 내년 총선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지난달 31일 본지와의 인터뷰를 통해 거제에서 내년 총선에 출마할 계획을 세우고 있다는 사실을 전한 것이다.

이기우 회장은 “거제에서 태어나 중학교까지 다니고 부산고를 졸업한 이후 공직에 입문했다”며 “50년간을 공직생활과 대학 총장을 하면서 거제의 어렵고 힘든 일을 음으로 양으로 도와주고 있었다. 나중에는 안 되는 일이 있으면 무조건 나를 찾아와서 해결해 달라는 민원이 쇄도하는 상황이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어 “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국무총리였던 시절 비서실장부터 교육부에서 일곱 분의 장관을 모신 최장수 기획관리실장,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 등을 거치면서 일하는 방법과 일이 되는 경로에 대해서 제대로 배우고 실천했다고 자부한다”며 “특히 책임총리였던 이해찬 총리의 비서실장으로 모든 부처의 일을 관리하고 조율하면서 경험과 능력을 크게 키울 수 있었다. ‘문제 해결에서는 이기우가 1인자’라는 평가를 받기도 했다”고 덧붙였다.

특히 내년 총선 거제 지역구 출마 의향을 묻는 질문에서 “거제에서는 이제 ‘남이 가지지 않은 그 능력을 거제를 위해 써달라’는 목소리가 점점 커지고 있다”며 “현재 거제에는 여러 발전 과제가 산적해 있다. 이를 해결해 달라는 요청을 거부할 수만 없는 상황인 것”이라고 답했다.

그는 “혹자는 ‘다 늦게 정치하려 하나’라고 말하기도 한다”며 “하지만 나는 단호하게 말한다. ‘정치하러 가는 것이 아니라, 일하러 간다’고. 정치하기로 마음먹었다면 진작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또 “수많은 제의가 있었고, 지금보다 정치적 상황이 내게 훨씬 좋을 때도 있었다”며 “하지만 정치를 하려는 것이 아니라 일을 하고자 했으니, 어려운 일이 가장 많은 지금 시작하려고 하는 것”이라고 밝혔다.

그는 이어 “총선에 나서겠다는 것이 내게 새로운 도전이다. 지금껏 최선을 다해 모든 것을 불태우고 살아왔다”며 “총선 결과와는 상관없다. 도전하는 이 과정이 내 인생에서 가장 빛날 것이다. 오직 거제와 일만 보고 달려갈 것”이라고 덧붙였다.

■이기우 회장은…
경남 거제 출생. 부산고를 졸업하고 부산대와 경성대에서 교육학 석사와 박사를 취득했다. 한국해양대에서 경영학 명예박사를 받았다. 고향인 거제시의 거제교육청에서 9급 공무원으로 시작해 진주여고‧창원기계공고 서무과장, 한국해양대‧충북대 사무국장, 부산시교육청 부교육감을 지냈다. 김대중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전문위원, 교육부 기획관리실장을 역임한 뒤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을 지냈다. 국무총리 비서실장(차관급)과 교육부 차관을 역임했다. 현재 인천재능대학교 총장(4선 연임)과 한국전문대학교육협의회 회장(4선 재임), 대통령 직속 국가교육회의 위원, 교육부 대학구조개혁위원회 위원, 교육부 출신 퇴직 공무원 모임인 문우회 회장으로 활동하고 있다. 주요 상훈으로는 대한민국 정부로부터 대통령 표창, 근정포장, 녹조근정훈장, 황조근정훈장 등이 있다.

<대담=최용섭 발행인 / 사진=한명섭 부국장 / 정리=김의진 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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