의대 진학 시 교육비·장학금 환수, 교내대회 수상실적 취소
기존 방지책과 큰 차이 없어…‘근본적 해결책 아니야’
입시제도 일부 개선, 지역인재 확대 및 기출문제 공개 등

서울교육청과 서울과고가 의대 진학을 택하는 경우 장학금과 지원금을 전액 환수하고, 교내 수상실적을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기존 제재와 큰 차이가 없는 탓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사진=중앙대 제공)
서울교육청과 서울과고가 의대 진학을 택하는 경우 장학금과 지원금을 전액 환수하고, 교내 수상실적을 취소하는 등 강력한 제재에 나서기로 했다. 다만, 기존 제재와 큰 차이가 없는 탓에 실효성이 없을 것이라고 바라보는 시각이 팽배하다. (사진=중앙대 제공)

[한국대학신문 박대호 기자] 과학영재학교인 서울과학고등학교가 ‘의대 진학’으로 대표되는 이공계 인재 유출을 막기 위해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다. 내년 신입생부터는 의대 진학 시 1500만여 원의 지원금과 더불어 기존에 주어졌던 장학금도 일체 환수하고, 교내대회 수상실적도 취소하기로 했다. 이와 별개로 지역인재 우선선발 제도를 현 단위지역별 1명에서 2명으로 2021학년부터 확대하겠다는 계획도 함께 밝혔다. 

다만, 이번 제재 방안의 실효성이 높게 나타날지는 다소 의문이다. 기존에도 지원금·장학금 환수 등의 조치가 시행돼 왔지만, 의학계열 진학자를 줄이는 효과는 나타나지 않았다는 점에서다. 교내 수상실적 취소 조치가 새롭게 추가됐지만, 큰 효과를 거두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인다. 

■의대 진학시 교육비·장학금 환수, 교내 수상실적 취소 = 2일 서울교육청이 발표한 ‘서울과고 선발제도 개선 및 이공계 진학지도 강화 방안’에 따르면, 앞으로 서울과고 학생들은 의대 등 의학계열 진학 시 상당한 불이익을 감내해야 할 예정이다. 

당장 올해 입시를 거쳐 내년부터 서울과고 재학생이 될 현 중3학생들은 향후 의대 진학 시 △교육비 환수 △장학금 환수 △교내대회 시상 제한까지 다양한 불이익을 겪게 된다. 

교육비 환수는 3년간 주어진 교육비를 전액 반환하도록 하는 것을 뜻한다. 영재학교 학생들은 이공계 인재 양성이라는 목적 아래 일반고 대비 많은 교육비를 지원받고 있다. 서울교육청에 따르면, 영재학교 학생들의 교육비는 연간 500만원 수준으로 3년간 1500만원 안팎에 이른다. 앞으로 의학계열에 진학하는 학생들은 이 금액을 학교에 반환해야 한다. 

장학금 환수는 학교 재학 중 받은 장학금을 반환하도록 하는 조치다. 대략적인 금액이 정해져 있는 교육비와 달리 장학금은 학생 개개인마다 다소 차이가 있는 상황. 서울교육청은 “장학금은 개인별로 달라 특정할 수 없다”며, 의대 진학 시에는 받은 장학금을 전액 반환하도록 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교내대회 시상 제한은 기존 수상실적을 ‘삭제’하는 것을 의미한다. 학교 안에서 이뤄진 교내대회에서 수상한 학생이 의학계열 진학을 결정하는 경우 해당 수상실적을 취소하는 방식이다. 

서울교육청이 밝힌 세 가지 불이익 가운데 장학금 환수는 재학생인 현 고1, 고2 학생들에게도 내년부터 당장 적용된다. 교육비 환수와 교내대회 시상 제한은 내년에 입학할 현 중3 학생들부터 적용할 예정이다. 

■대책 수립 배경은? 과도한 이공계 인재 유출 = 서울교육청과 서울과고가 이토록 강제높은 ‘의대진학 방지책’을 들고 나온 것은 국고를 투입해 양성하는 이공계 인재들의 유출 문제가 여러 차례 지적돼왔기 때문이다. 

서울교육청이 밝힌 최근 3년간 서울과고 의학계열 진학자는 연 평균 28명이다. 2017학년에는 28명, 2018학년에는 26명, 2019학년에는 30명이 의학계열을 택했다. 서울과고 졸업생이 연 130명 안팎이라는 점을 고려하면 5명 중 1명은 의학계열을 선택하고 있다는 계산이 나온다. 

영재학교 학생들의 의대 진학 문제는 최근 들어서 불거진 문제가 아니다. 국정감사 등을 통해 여러 차례 해당 문제가 지적된 적 있다. 당시 공개된 자료들에 따르면, 서울과고 출신 의학계열 진학자는 2012학년부터 2019학년까지 8년간 총 199명이나 된다. 

서울교육청은 “영재학교 졸업생 상당수가 의학계열 대학에 진학한다는 문제점(이) 지적(돼 왔다)”며 “과학영재학교에 대한 사회적 기대와 요구에 부응하고, 의학계열 진학을 적극 억제하기 위해 이공계 진학지도를 강화한다”고 했다. 

■실효성 있을까…근본적 대책 아니기에 한계 분명 = 그간 서울교육청과 서울과고가 이 문제에 손을 놓고 있던 것만은 아니다. 2년 전인 2017년에는 교육부가 직접 영재학교 의대진학 제재 방안을 발표하기도 했다. 당시 교육부는 영재학교에서 의대로 진학할 시 △추천서 작성 거부 △장학금·지원금 환수 등을 학칙과 모집요강에 명시하도록 했다. 

교육부 방침에 따라 서울과고도 모집요강에 해당 내용을 명시했다. “(서울과고는) 과학기술 인재 양성을 위해 설립된 과학영재학교로 의·치·한의학 계열 대학으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은 본교 지원이 적합하지 않다. 해당 계열 대학에 지원할 경우 불이익이 있다. 재학 중 받은 장학금 등을 반납해야 하며, 본교 교원의 추천서를 받을 수 없다”는 내용이 요강에 담겼다. 

다만, 교육부가 직접 나서 칼을 빼들었음에도 불구하고, 제재의 실효성은 그리 높지 않았다는 게 중론이다. ‘추천서 작성 거부’는 추천서를 요구하지 않는 의학계열을 택하는 경우 무용지물이었다. 수시모집 가운데 학생부교과전형과 논술전형은 사실상 추천서를 요구하는 의학계열이 전무했고, 정시모집도 마찬가지였다. 수시모집 학생부종합전형과 특기자전형에서는 추천서를 요구하는 경우가 있었지만, 전체 의대 모집인원과 비교했을 때는 많지 않은 수에 불과했다. 

교육비·장학금 환수도 ‘근본적 해결책’이 되기는 어려웠다. 특히, 해당 금액을 기꺼이 내고 의학계열에 진학하겠다는 의지를 보이는 경우에는 이를 막을 방법이 없었다. 애당초 졸업 후 의무복무를 거부할 시 5000여 만원의 반환금을 내야 하는 경찰대학조차도 매년 의무복무 미이행 사례가 속출해 골머리를 썩이던 중이었다. 

지난 사례를 볼 때 이번 대책도 ‘구호’는 거창하지만, 실질적 효과로는 이어지기 어렵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고교 교사는 “입학-재학-졸업의 전 과정에서 아무리 의대 진학의 불합리함을 설명한다 하더라도 막판 학생·학부모가 의대 진학을 선택한다면, 이를 막을 방법은 없다. 미성년자인 고등학생이 학업 과정에서 진로희망을 변경하는 것을 무작정 부정적이라고 몰아세우기도 어렵다”고 설명했다. 

서울교육청과 서울과고는 일단 여러 제재안에 더해 진로진학교육을 강화, 의학계열 진학자를 줄여보겠다는 계획이다. 서울교육청은 “진로 상담을 강화할 예정”이라며 “의학 계열로 진학을 희망하는 학생들은 일반학교로의 전학(도) 권고할 것”이라고 했다. 

■기타 신입생 선발 제도 개선방안은? 지역인재 확대, 기출문제 공개 = 이밖에도 서울과고는 신입생 선발 제도를 일부 개선하기로 했다. 영재학교 신입생의 지역 편중 현상과 입시 사교육 과열 현상 등이 지적된 데 따른 것이다. 

우선 그간 시행해 오던 지역인재 우선선발은 내년 시행될 2021학년 입시부터 확대하기로 했다. 현재 서울과고는 16개 시·도와 서울 내 25개 자치구까지 총 41개 단위지역마다 1명을 ‘지역인재 우선선발’이라는 이름 아래 선발해 왔다. 내년부터는 이 인원이 단위지역마다 2명으로 늘어난다. 서울교육청은 “여러 지역의 타고난 재능과 잠재력이 높은 인재들의 지원을 늘려 영재들을 적극 발굴하려는 노력의 일환”이라고 우선선발 확대 배경을 소개했다. 

기출문제 공개도 이뤄질 예정이다. 입시 사교육이 과열돼 있다는 문제점을 개선하기 위해서는 투명한 정보공개가 필요하다고 봤기 때문이다. 당장 올해부터 평가 문항들을 서울과고 홈페이지를 통해 공개해 예비 지원자들에게 정보를 제공할 계획이다.

입시 평가 내용과 방법도 개선하기로 했다. ‘열린 문항’ 출제를 확대하는 방식이 현재 거론되고 있다. “선행학습 효과를 배제하고, 입시 사교육의 영향을 최소화(하기 위한 것)”이 서울교육청이 밝힌 평가 개선 이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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