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정원희 유한대학교 사업통합관리본부 팀장

대학 3학년 때쯤 일이다. 지방에서 상경한 후배가 최신형 삼보 트라이젬(TG) 386 컴퓨터를 샀다는 첩보를 듣고 자취방을 습격했다. 일본 밀수 B급 게임팩만으로 놀던 우리들에게는 신세계였다. 며칠 밤낮 후배방에서 잠도 멀리하며 마지막 라운드 달성을 위해 게임, 또 게임, 오직 게임에만 열중했다.

그러던 중, 함께 놀던 친구들이 뜬금없이 컴퓨터 바이러스를 하나 만들어 보기로 취중 의기투합했다. 당시 안철수 바이러스연구소에서도 절대 찾을 수 없는 바이러스. 우리가 근거 없는 자신감으로 수많은 밤을 지새면서 만든 바이러스가 바로 ‘백수 바이러스’이다.

‘백수 바이러스’는 단어 그대로 당시 바이러스 퇴치 프로그램 V3 백신에서도 절대로 퇴치되지 않는 바이러스다. 그런데 이 바이러스의 특징은 컴퓨터 내에서 어떠한 해로운 짓을 하지 않고 그냥 가만히, 조용히, 피해를 주지 않고 놀고먹기만 하는 바이러스이기에 말그대로 ‘백수’인 것이다.

당시 친구들과 만든 백수 바이러스 컨셉은 수업시간에 조별 발표도 하고 실제로 만들어 보려고 했으나, 우리가 백수이기에 만들기를 포기하고 지금까지 창작노트에 간직만 하고 있었다.

20여 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컴퓨터 바이러스가 아닌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해 생활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 멋을 내기 위해 쓴다는 마스크는 삼시세끼보다 중요한 필수가 됐다. 대중교통에서 넓게 혼자 앉아 가는 사람에 대해 따가운 눈초리는 바른 예의가 됐으며 대형건물 입구의 출입 신분증 확인 절차는 발열체크로 변경, 상식이 됐다.

웃픈 생각이지만, 지금 우리에게는 코로나 바이러스를 무용지물로 만들 수 있는 백수 바이러스가 필요하다. 대학시절에는 말도 안 되는 생각이었지만, 이제는 현실에 있었으면 하는 생각이 왜일까?

신입생들의 싱그러운 모습이 그리워지고, 삼삼오오 모여 수다를 떠는 학생들이 보고 싶으며, 강의실의 수업 소리를 듣고 싶은 그리움에 기다리다 지쳐 정신이 오락가락하다 보니 백수 바이러스의 추억까지 생각하게 된 것 같다.

이제 우리 모두는 다시 멋을 내기 위해, 눈초리(?)를 받기 위해, 자유로운 통행을 위해 모든 사람들이 하나씩 조심해서 되돌아가기 위한 준비를 시작하고 있다.

대학도 바이러스 확산 방지를 위해 하루하루 바쁜 시간을 보내고 있다. 발열체크부터 방역소독까지, 아침부터 저녁까지 본연의 업무 이외의 일을 하고 있다. 교원은 여태껏 학기 동안 몇 번 정도만 사용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강의를 능숙하게 할 수 있으며, 학생은 PC방 게임에서나 했던 온라인 게임을 수업으로 듣게 됐으며, 행정은 방문해 직접 업무를 처리하기보다는 실시간으로 언택트 업무를 시작하게 됐다.

몇 차례의 개강 연기뿐만 아니라 비대면 이론 수업, 사회적 거리를 유지한 20명 이하 실습 수업 등 대학에서는 정말 준비하고, 점검해야 할 것들이 너무너무 많다. 하지만, 이 모두 학생들을 위한 것이라는 생각만으로 묵묵히 개강을 기다리고 있다.

19세기 초 ‘페스트’라는 비극적인 현실 속에서 의연히 운명과 대결하는 인간의 모습을 그린 알베르 카뮈(Albert Camus) 소설 『페스트(La Peste』처럼 이렇게 기록되면 어떨까 생각한다.

“도시는 코로나 바이러스로 인한 고통의 시간이 끝난 것을 축하하고 있었다. 강의실이란 강의실에는 웃고 떠드는 학생들로 가득 찼고, 푸른 잔디밭에는 햇빛을 보며 누워 있는 연인들로 붐볐으며, 교정에는 교내방송이 울려 퍼졌다. 내일에 대한 걱정을 모두 떨쳐버린 학교 앞 카페에서는 우리 모두 큰 소리로 웃고 떠들며 덤으로 사는 인생이 시작된 것처럼 즐거워했다.”

엉뚱한 상상이지만, 어서 빨리 코로나 바이러스를 백수 바이러스가 무찔러 학생들을 교정에 봤으면 한다는 상상이 현실로 이뤄지는 꿈. 그 꿈이 이뤄지기를 그저 바랄 뿐이다.

“얘들아! 정말 보고 싶다. 지금 당장.”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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