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0회 우당기념강좌 비대면 진행, ‘대학은 진화할 것인가, 소멸할 것인가’
박 총장 “소크라테스 관점에서 보면, 온라인 강의도 ‘그림자’”
교육변화 역사 더듬기, 다양한 교육실험 통해 대안 모색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 제10회 우당기념강좌의 연사로 나서서 '대학'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이 제10회 우당기념강좌의 연사로 나서서 '대학'을 주제로 강연했다. 이번 강좌는 코로나19 확산 방지를 위해 온라인으로 진행됐다.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대학들이 어려운 시기, 대학 교육의 지난 역사를 바탕으로 변화를 모색하는 것이 해결책이라는 관점의 강의가 열렸다. 박형주 아주대 총장은 서울대에서 열린 제10회 우당기념강좌에서 ‘대학은 진화할 것인가, 소멸할 것인가’를 주제로 강연을 펼쳤다. 박 총장은 역사적인 관점으로 대학 교육의 현실을 분석한 뒤 고등교육의 지형변화를 짚었다. 이어 ‘대학이 현재 모습으로 존속할 수 있는지’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다양한 사례를 통해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학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 생각을 나눴다.

■11세기 이탈리에서 미국 대학 교육에 이르기까지 = 박 총장은 ‘역사적 관점’(Historical perspective)을 차례로 돌아보며, 시간 순서대로 교육 방식을 훑었다. 근대적 대학의 시작은 11세기 이탈리아 볼로냐. 이들은 ‘학생중심’의 교육체제를 가졌다고 봤다. 도시로 몰려든 젊은이들의 수요를 만족하기 위해 대학 교육이 마련됐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12세기 파리에서는 노트르담 수도원을 중심으로 교수 중심의 교육체계가 설립됐다. 영국에서는 옥스퍼드대(University of Oxford)의 사례처럼 학장 감독 하에 학생들의 독립적 생활이 구현되는 ‘컬리지 시스템’이 운영됐다.

이러한 대학들의 초기 교육방식은 철학자 소크라테스의 교육방식을 따랐다. 소크라테스는 책을 통한 배움을 불신한 대표적인 인물이다. “문자를 통해서는 저자가 가진 원래 생각의 그림자만을 얻는다”고 여겼다. 박 총장은 “소크라테스의 말을 곱씹어 봐야 한다”며 “소크라테스의 관점에서는 동영상 강의도 문제가 있다고 본 것”이라고 해석했다. “교육에서는 인터랙션(Interaction, 상호작용)이 중요한데, 녹화된 동영상만으로는 불가능하다. 어떠한 형태로든 라이브(실시간) 소통이 필요하다는 현대적 해석이 가능하다”라고 덧붙였다.

중세 유럽 시기에는 금속 활자가 출현해 교육방식의 대전환으로 이어졌다. ‘책’이 희귀했던 시절에는 책을 읽어주고 필기하는 형식으로 수업이 진행됐다. 일방적인 강의실의 모습이 형성된 이유이기도 하다. 그 결과 교과과정에서는 소리 내어 읽는 것이 중요하게 여겨졌다. 하지만 구텐베르크의 인쇄술이 출현하자 교수법에는 일대 혼란이 왔다. 그럼에도 14세기 파리의 대학은 학생의 묵독을 금지할 정도로 기존 교수법을 고수했다. 학생이 무엇을 읽고 있는지 모르면 교수가 학습을 도울 수 없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왼쪽부터 14세기 파리 대학 철학강의 모습, 파리 대학교 심벌, 볼로냐 대학교 심벌, 볼로냐대가 있었던 구 도심
왼쪽부터 14세기 파리 대학 철학강의 모습, 파리 대학교 심벌, 볼로냐 대학교 심벌, 볼로냐대가 있었던 구 도심

17세기 미국에서는 대학교육이 ‘지식 창출’을 위한 창구가 아니었다. 당시에도 대학교육은 중세 유럽 방식으로 진행됐다. 연구하는 장소로서의 역할은 하지 못했다. 박 총장은 “흔히들 대학의 미션을 ‘연구중심’, ‘경제적 수요에 따른 실용학문’, ‘인문교육’ 세 가지로 나눈다. 하지만 과거에는 세 마리 토끼를 다 잡을 수 없다고 봤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이에 대응해 대학의 역할 세 가지를 모두 추구하는 대학이 나타났다. 박 총장은 찰스 엘리엇(Charles Eliot) 하버드대 총장이 40년 동안 총장을 맡으면서 세 가지 미션을 구현했다고 봤다. 찰스 엘리엇은 제일 먼저 학부와 대학원의 역할을 구분하고, 연구자를 위한 대학원을 만들었다. 대학원에 가려면 학사 학위 보유가 의무화된 것도 이때부터다. 

물론 비판적인 견해도 있다. 박 총장은 “교육이 수요에 의해서 결정되다 보니 인기분야에 몰리게 됐다. 소외분야에는 학생이 없다”고 지적했다. 연구 중심 대학을 표방하자 교수채용제도에서는 연구능력만을 보고 채용하는 게 일반적인 상황이 됐다. 박 총장은 “연구 능력만으로 채용하다 보니 은퇴할 때까지 수업 분야에서 아마추어로 남는 전임교수도 나왔다”고 설명했다.

■“기업들 ‘대학 졸업장’ 원하지 않는 추세”, 고등교육 지형 변화 불가피 = 박 총장은 고등교육의 변화를 글로벌 이슈와 로컬 이슈로 나눴다. 한국을 하나의 로컬로 보면, 2018년 대학 진학률은 70%로 OECD 평균인 45%보다 훨씬 높다. 박 총장은 “이는 많은 사람이 고등교육을 받았다는 점에서 장점이지만, 대졸 실업자 양산의 근거가 된다는 비판에도 일조한다”고 말했다.

더불어 한국의 외국인 학생 비율은 약 2%다. OECD 평균이 약 5%인 것을 감안할 때 한국은 아직 외국 유학생들에게 인기 있는 국가가 아님을 확인할 수 있다, 박 총장은 ”한국은 외국인 유학생들을 받아들일 여력이 있다고 본다”며 ”지금의 2배 정도 유학생 수도 한국의 고등교육이 수용할 수 있다”고 예상했다.

박 총장은 입시 제도 변화에 대한 우려도 표했다. 단답형 수능 중심으로 회귀할 가능성을 높게 본 것이다. 수능이 학생을 평가할 수 있는 하나의 기준이라는 것은 부정할 수 없지만, 학원 배치표 의존도가 높아질 가능성이 높다는 문제가 존재한다. 박 총장은 “다시 말해 ‘네 성적이면 무슨 대학 무슨 과에 가면 돼’ 식으로 진학한 학생들로 인해 대학 중도 탈락률이 높아질 가능성이 크다”고 분석했다. 

박 총장은 한 기사를 인용해 글로벌 이슈를 소개했다. 구글, 애플, IBM 같은 글로벌 기업들이 신입 직원을 선발할 때 대학교 학사 학위를 요구하지 않겠다고 선언한 내용이다. 세계적 회계기업 어스트앤영(Ernst&young)은 “대학학위가 회사에서의 성공을 의미한다는 증거가 없다고 판단한다”라고까지 말해 대학 사회에 큰 충격을 줬다.

실제 2년마다 주요기업 인사 담당자들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한 결과 특정 영역을 위주로 훈련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줄어드는 추세다. 이제는 기업이 한 영역에서 다른 영역으로 커리어 이동이 쉬운 사람을 선호한다는 방증으로 볼 수 있다.

박 총장은 “미국 대학은 이미 74%가 대학생이 아닌 평생학습자”라며 “미국의 평생학습은 그 위치가 우리나라보다 훨씬 더 높다”고 평가했다. 학위를 중요치 않게 여기는 기업들의 신입 채용 추세는 한국에도 시차를 두고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도 덧붙였다. 

■‘배움’ 그 자체가 중요한 시대가 온다 = 박 총장은 미래학자 엘빈 토플러(Alvin Toffler)의 말을 인용하며, 대학에서 지식‘만’ 전달할 때의 위험성을 꼬집었다.

엘빈 토플러는 “미래의 문맹은 읽지 못하는 사람이 아니라 배우는 법을 못 배운 사람”이라고 자신의 책에 적었다. 그의 말은 현실이 되고 있다. 통계를 보면 자신의 전공과 무관한 직군을 가지게 되는 사례가 많다. 이는 전공교육에 대한 위기로 비춰진다. 앞으로는 서로 무관한 것만 같은 분야들이 융합되고, 지금은 생각지도 못한 일자리가 미래에는 나올 것이라는 예측이 제시된다. 

코세라에서 제공하는 통계 수업(=코세라)
코세라에서 제공하는 통계 수업(=코세라)

박 총장은 “코세라(Coursera) 홈페이지를 보면 TOP10 강의 순위가 나온다. 2위 강의는 ‘Learning How to Learn’으로 ‘배우는 법을 배우기’”라고 소개했다. 대학의 역할이 지식 전수를 강조하는 곳에서 학습 능력을 갖추는 것을 중요시하는 곳으로 변모해야 한다는 박 총장의 견해를 뒷받침하는 일면이다. 

온라인 교육 플랫폼의 비즈니스 모델도 한 가지만 있는 게 아니다. 미국 에덱스(Edx)의 경우는 코세라와 다르게 하버드대, 매사추세츠공대(MIT)만 참여하고 있다. 코세라는 참여 대학들이 각자의 대표강의, 즉 대표상품을 동영상으로 제공하고 일정 수익을 나눠 가진다.

박 총장은 “한국의 일부대학이 에덱스 모델을 시도하는 것으로 보인다. 코세라 모델은 없다”고 봤다. “K-MOOC가 코세라와 비슷하다고 보지만, 기본적으로 참여 대학들이 자신들이 자랑하는 콘텐츠를 올려야 한다는 동기부여와는 거리가 멀다”고 분석을 덧붙였다. 코세라의 성과를 지금의 K-MOOC로는 이룰 수 없다는 의미다.

박 총장은 “탄 엥 체(Eng Chye TAN) 싱가포르국립대 총장은 78%가 온라인에서 무료로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대학이 어떻게 돈을 받고 (교육을) 팔고 있는지 모르겠다고 도발적으로 말했다”며 대학 변화의 필요성에 목소리를 높였다.

■'How to'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학교육= 박 총장은 끝으로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학이 어떻게 변화를 모색해야 할지를 놓고 앞으로 대학이 지향해야 할 방향을 제시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가장 주목받는 대학을 꼽으라면 단연 미네르바 대학이다. 이 대학은 interactive learning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모든 수업은 19명 이하의 학생들이 참여하는 실시간 온라인 수업 방식으로 진행한다. 인공지능이 화상수업 플랫폼을 통해 평가 관리까지 함으로써 개별 학생의 성취를 기록하고 변화를 추적한다. 이는 지식전달 중심의 교육이 상호작용과 학습자 중심으로 변모했음을 보여준다.

스위스 로잔연방공대(EPFL)는 전 교과목의 반 이상을 프로젝트 중심인 ‘Thinking Class’로 전환하는 것이 단기 목표일 정도로 철저히 미래를 준비하고 있다. 박 총장은 “EPFL은 스위스에 있는 IBM 연구소와 협약해 문제해결 기반 방식의 학습을 진행하고 있다. 유럽에서 가장 많은 동영상 강의를 보유한 대학”이라며, ‘야망 있는 도전’을 하는 대학으로 소개했다.

NTU의 건물 'The Arc' (=위키피디아)
NTU의 건물 'The Arc' (=위키피디아)

소프트웨어가 아닌 하드웨어를 바꿈으로써 혁신을 이룬 대학도 있다. 싱가포르 난양공대(NTU)는 말 그대로 ‘강의실’을 바꿨다. 공간을 더 만들고, 강의실도 새롭게 디자인했다. 박 총장은 “한국에서는 ‘아이디어가 빈곤한 사람이 건물 짓는다’라며 비판하지만, NTU는 4000억원을 들여 러닝 센터를 세움으로써 학생들의 학습 상호작용을 촉진했다”고 말했다.

실제 NTU는 캠퍼스 랜드마크 건물로 벌집(The Hive)과 방주(The Arc)를 만들고 interactive learning environment를 구축했다. 강의실 내부에는 360도로 화면이 설치됐으며, 책상은 토론 형식에 가장 적합한 형태로 배치했다. 박 총장은 “평생 익숙해진 교육 방식을 바꾸는 것은 힘들다. 때문에 이를 바꾸기 위해서라도 하드웨어를 바꾸는 자극을 줘야 한다”라며 하드웨어가 교육방식을 바꾼다는 말에 동의했다.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대학교육을 두고 박 총장은 “동영상을 최대한 활용하면 교과학습은 가능하지만, 수업 전후 교수 역량이 문제해결 학습을 진행하는 데 집중돼야 한다”고 진단했다.

문제해결 학습에 집중하기 위해서는 ‘제도’의 뒷받침이 필수라는 견해를 덧붙였다. 박 총장이 방향타를 거머쥔 아주대의 사례는 문제해결 학습을 위해 어떤 제도가 필요한지를 잘 나타내는 사례다. 아주대의 경우 1000명이 넘게 듣는 대형과목은 먼저 교수진이 온라인 강의를 촬영해 공유한다. 수업 전후 문제해결수업은 30명 내로 분반해 진행한다. 교수들의 수업 시수를 맞추는 동시에 학생들의 학습 능력을 높이기 위해서다. 이밖에도 아주대는 문·이과 통합 1세대인 현 고2 학생들의 기초 학습능력 향상을 위해 인공지능 기반 교육 알렉스(ALEKS)에게 한국 수학을 학습시키는 방법도 도입할 예정이다.

박 총장은 마지막으로 대학이 주는 유·무형의 기회를 놓치지 말아야 한다고 조언했다.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친구들과 만남, 동아리 활동, 캠퍼스 시설을 누리지 못하는 게 가장 문제라고 지적했다. 아주대는 이를 ‘광장문화 재건’으로 돌파할 계획이다. 박 총장은 “학생회관 근처 실외 광장에 학생들이 안전하게 모일 수 있는 공간 환경을 만들어 비교과 활동도 학교에서 안전하게 있을 수 있게 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 총장의 강연이 대학들에 시사하는 것은 직면한 문제와 처한 상황이 아이러니하게도 ‘같으면서도 다르다’는 점에 있다. 결국 대학별 고유의 특성을 파악해 자기만의 방식을 찾는 것이 해결책으로 남는다. 

2015년 시작된 우당기념강좌는 독립운동가 우당 이회영 선생의 삶과 정신을 기리기 위해 시작된 강좌다. 서울대, 우당교육문화재단, 유네스코 아시아태평양국제이해교육원, 동북아평화연대 주최·주관 하에 매년 봄·가을 진행된다. 하지만 올해 봄 강좌는 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해 열리지 못했다. 사회를 맡은 양일모 서울대 자유전공학부장은 “감염병의 시대라고 해서 우당기념강좌를 중단할 수는 없었다. 온라인 형식으로 강좌를 진행하게 됐다”라고 개최의 변을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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