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통일 전쟁인 황산벌 전투는, 그 자체로 의미 없는 희생으로 보일지 몰라도, 고대사에 큰 획을 긋는 대사건이었다. 왜냐하면, 이로 인해 장기간 지속되었던 세 나라의 전쟁이 종식되고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와 안정이 한반도에 도래되었기 때문이다. 적대적인 세 나라가 공존했던 삼국시대는, 끊임 없는 전쟁으로 백성들은 전쟁에 동원되거나 또는 적의 침략에 의해 목숨을 읽거나 또는 전비로 인한 과도한 착취 때문에 비참한 삶을 살았을 때이다. 이 때 일반 민초들의 삶은, 오늘날 우리에겐 단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매우 끔직한 것이었는지도 모른다. 그런데, 바로 신라의 통일이 이러한 참상에 종지부를 찍는 것이었으므로, 황산벌 전투의 의미는 결코 폄하될 수 없는 것이다. 만약 그 때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못하고 삼국이 지금까지 존속되었다면, 물론 그럴리야 없었겠지만, 한반도는, 지금의 북한처럼, 살아 있는 지옥의 하나가 되었을 것이다. 당시 세 나라의 싸움은 오늘날의 내전과 비슷한데, 그 전쟁이 천년 이상 그리고 지금까지 지속하고 있다고 생각해보라!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소름 끼치지 않는가? 물론 고대였기 때문에 전쟁에서 죽는 자는 오늘날처럼 많지 않았겠지만, 장기간의 내전은 대다수의 백성들로 하여금 인간 이하의 삶을 살도록 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만약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지 않았다면, 반드시 다른 나라가 통일했을 것이다. 왜냐하면, 삼국 항쟁기의 민초들의 비참한 삶은, 통일에의 열망을 그 시대의 식자들에게 불어넣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어쩌면 삼국이 그렇게 치열하게 싸웠던 이유가 민초들의 통일에의 열망 때문일 수도 있다. 왜냐하면, 좁은 땅 덩어리에 세 개의 정부가 있다는 것은, 백성들에게는 매우 고달픈 현실이었을 테이고 생각있는 자라면, 이 상태를 바꾸는 것이 바로 국가 번영의 반석이라고 믿었을 것이기 때문이다. 이러한 사실은, 중국 영화 “영웅”에서 잘 나타난다. 잃어버린 조국에 대한 복수를 하기 위해 자신의 생명마저 초개처럼 여겼던 최고의 영웅들이, 복수를 포기하고 암살하려고 했던 진시황을 살리기 위해 죽음을 선택한다. 왜 그랬을까? 왜 조국의 원수를 갚는 것을 포기하고 자기 가족과 민족의 복수를 포기하고 자신의 철천지 원수를 위해 오히려 자신의 생명을 버렸을까? 그것은, 비록 진시황의 통일 전쟁이, 당하는 나라의 입장에서는 매우 참혹한 것이었을지라도, 그래서 멸망당한 나라의 후손들에게 그에게 복수하는 것이 평생의 소원이 되었을지 몰라도, 그의 통일이 중국 민중의 삶을 평화와 안정으로 인도할 것으로 믿었기 때문이다. 그 이후 그들의 죽음이 헛되지 않게 중국 대륙은, 가끔 분열되어 혼란을 겪은 적이 몇 번 있었지만, 하나로서 통일된 제국을 이루었다. 그리고 그것은, 일반 백성들에게는 안정적이고 평화로운 삶의 보장을 의미하는 것이다. 혹자는 신라의 통일을 불완전한 것으로 생각하고 이로 인해 광대한 고구려 땅을 잃어버렸다고 생각할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통일에 있어서 중요한 것은, 땅 덩어리의 크기가 아니다. 만약 그렇다면, 토요토미 히데요시의 조선 침략과 일제의 내선일체도 바람직한 것이 될 수 있다. 왜냐하면, 누가 주인이 되든, 일본과 한반도의 하나됨은 초강국의 기반이 될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통합된 지역 모두가 평등한 구성원이 되지 못한다면, 그래서 지역 차별과 지역간 대립이 존재한다면, 서로를 위해 갈라서야 한다. 맨날 다툴 것이면서 왜 함께 지내야 하는가? 특별한 이유가 없다면, 그것만큼 미련한 행위가 세상에 없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통일이 우리에게 반드시 좋은 것을 보장한다는 근거는 없다. 만약 고구려가 삼국을 통일해서 모든 것이 만주를 중심으로 돌아가고 한반도 지역 주민들이 차별 받는다면, 어쩌면, 한반도도 아일랜드가 영국에 대해 독립 운동을 했던 것처럼, 고구려 제국과 독립을 위해 끊임없이 싸웠을 지도 모른다. 고구려 중심의 통일보다는 한반도 자치가 우리에겐 훨씬 좋은 것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역사에서 “만약 그렇지 않았다면”이라는 가정은 의미가 없다. 또한 혹시 더 좋게 전개되었을지도 모르는 상황을 전개하고 특정 시대의 사건의 의미를 폄하하는 것은, 부당하다. 그 사건의 부재로, 더 좋았을 가능성도 있지만, 더 나빴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신라의 삼국통일이 미흡하게 보여도, 그로 인해 우리의 역사가 더 나은 단계로 나아갔다면, 우리가 생각하는 이상적 상태에 맞지 않았다고 해서 그 의미를 폄하해서는 안될 것이다. 어쩌면 그것이 우리에게 일어날 수 있는 가장 최상의 사건인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황산벌 전투의 피는, 영토 확장에 눈 먼 군주의 야욕이나 헛된 명예를 위해 흘려진 것이 아니다. 삼국 모두 전쟁으로 피폐했고 그래서 삼국 지도부는 그 피폐를 극복하기 위해, 그 결과 민초들이 인간다운 삶을 살기 위해 통일의 필요성을 절감했는지도 모르기 때문이다. 그렇기 때문에 비록 그 곳에서 흘린 백제 5천 결사대의 피가 헛되 보여도, 당장은 신라 중심의 통일로 백제 유민의 삶이 비참한 것처럼 보여도, 신라의 통일이 고려의 민족화합으로 이어짐으로서 이 땅 민초들의 삶은 개선될 수 있었던 것이다. 더 이상 그런 험한 전쟁이 장기간 한반도에 지속되지 않음으로서 한반도는 진정한 의미에서의 평화를 그 때부터 경험할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다. 박지웅 객원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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