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 적립금 3조 2561억 주식시장으로...


 

대학기금을 유치하기 위한 증권사·자산운용사의 경쟁이 뜨거워지고 있다. 오는 12월부터 사립대학이 보유한 적립금의 2분의 1까지 주식 등 고수익 상품에 투자할 수 있게 됐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대학 적립금 총 6조 5122억 중 절반인 3조 2561억원이 주식시장 등에 몰릴 전망이다.

대학은 여태껏 묶였던 돈을 좀 더 공격적으로 운용할 수 있어 환영 의사를 보이면서도 ‘일단은 지켜보자’는 태세다. 고수익이 보장되는 만큼 위험 부담도 높아지기 때문이다.

5307억원의 적립금을 보유한 이화여대와 2938억원을 보유한 홍익대, 1804억을 보유한 동덕여대 등은 “당분간 지금까지의 투자기조를 바꾸지 않겠다”고 밝혔다.

이에 반해 연세대, 서강대, 중앙대 등은 안정성을 추구하던 투자방식에서 벗어나 외부 투자 전문가를 영입하는 등 높은 수익을 향해 눈을 돌리고 있다.


대학의 뭉칫돈을 노리는 증권사·자산운용사는 “대학이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할 때가 됐다”며 기금 운용 방식을 바꾸라고 제안하고 있다.

이들은 한 군데에만 예금을 넣어두지 말고 채권이나 펀드, 주식 등 투자 상품을 다양화하는 전략과 함께 운용 목표에 따라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방법 등 고수익을 향한 다양한 카드를 제시하고 있다.

대학은 우선 보유한 적립금 중 투자 가능한 금액이 어느 정도인지 잘 살피고 예상 목표 수익률과 어떻게 투자할지를 결정해야 한다. 바야흐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하는 시점이 된 것이다.


이번에 개정한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개정령 22조의2(적립금의 사용) 제 2항은 교육부가 묶어둔 적립금을 풀어주겠다는 의미로, 쌓아둔 적립금을 대학이 좀 더 자유롭게 운용해 재정확충을 꾀할 수 있게 했다.

물론 적립금을 무분별하게 투자해 자칫 막대한 손실이 날 것을 우려해 투자 한도를 2분의 1로 제한했다. 교육부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현재 사립대학 총 적립금은 6조 5122억원. 개정령이 시행되면 최대 3조 2561억이 시중에 나온다는 이야기가 된다.



적립금 주식에 ‘올인’했으면 작년 9117억 수익


현재 국내 사립대 재원은 미국 대학과 비교할 때 그다지 다양하지 못하며 비효율적으로 운용되고 있다.

우리나라 사립대학의 재정 수입 구조는 등록금·수강료가 69.0%, 전입금·기부금이 20.3%이며, 국고보조금은 4.0%, 투자수익이나 대학부설 기업 운영으로 얻는 교육 외 수입 역시 고작 4.0%에 불과하다. 미국 대학은 등록금·수강료가 33.96%, 전입금·기부금이 13.62%지만 국고보조금이 17.60%, 투자수익이 31.95%나 된다.(2003년 회계연도 결산서 기준)


국내대학에서 등록금이 학교 재정의 대부분을 차지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정부에서 주는 돈은 적고, 투자로 얻을 수 있는 돈줄은 은행에 예치하게 한 ‘사학기관 재무·회계 규칙 제 7조’(자금의 관리)로 묶어 제대로 굴리지 못한 것.


그렇다면 대학 적립금이 풀릴 때 얻을 수 있는 수익은 어느 정도일까. 작년도 기획예산처 자료에 따르면 투자 상품 중 MMF가 4.16%, 채권형이 4.78%, 주식형이 28.02%, 혼합형이 8.99%의 수익을 냈다.

3조 2561억원을 4등분해 투자 상품에 골고루 넣었다면 총 수익은 3741억. 작년도 정기예금 5.7%를 적용, 시중은행 정기예금에 넣었던 기금의 수익은 1856억원이다. 입법예고한 법령대로라면 1885억원을 더 벌 수 있었다는 결론이 나온다.

극단적인 예이지만, 만약 4곳에 분산투자하지 않고 주식형에 ‘올인’했더라면 무려 9117억을 벌수 있었다는 계산도 가능하다.



대부분 신중, 일부 대학은 적극적 움직임 보여


개정법안이 발표되자 대학은 환영 의사를 보이면서도 좀처럼 움직일 기미를 보이지 않고 있다. 5307억을 보유, 대학 중 가장 많은 적립금을 쌓아둔 이화여대는 “단기적으로 변화는 없을 것”이라고 밝혔다.

신경식 재무부처장은 “리스크를 비롯해 내부적으로도 고민해야 할 부분이 많다. 일단 지켜보고, 중·장기적으로 수익성 있는 자산에 투자를 ‘고려’해보자는 방침을 세웠다”고 설명했다.


이화여대에 이어 적립금 2938억을 보유, 2위인 홍익대 역시 “일단 시행이 된 후 다른 학교가 어떻게 하는지 보고 참고할 것”이라고 밝혔다. 이상규 경리과장은 “그동안 운용한 정기예금이나 양도성 예금 증서, 원금 보장형 예금에 투자하던 방식을 갑자기 바꿀 생각은 없다”며 “당장 급하지도 않아 일단 ‘연구해보자’는 정도”라고 설명했다.


동덕여대의 유광철 기획과장도 “특별한 방향을 설정하지도 않았고, 특별히 금융권과 접촉을 하지도 않았다. 우선 정보부터 모으기로 했다”면서 “나중에 (주식투자를) 하더라도 일부를 굴려본 뒤 점차적으로 늘려볼 생각”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쌓아둔 적립금을 적극 운용해 자산을 늘려보겠다는 학교도 있다.

적립금 2272억을 보유한 연세대는 올해 5월에 이미 구재상 미래에셋자산운용 대표와 우재용 한국투자평가 사장 등으로 자금운용자문위원단을 구성해 기금 운용의 자문을 받고 있다.

손성규 재무처장은 “우리는 ELS, 웹 투자, 해외펀드 등 다양한 곳에 자금을 분산하고 있으며, 모 증권사에도 돈을 맡겼다. 시행령이 개정되면 다른 쪽으로도 운용할 생각”이라면서 공격적인 투자를 계획 중이라고 밝혔다.

서강대는 “제1금융권 투자로는 이익이 거의 나질 않는다”며 고수익을 노린 포트폴리오 구성에 힘쓰고 있다. 현재 주식전문가 2명과 채권 전문가 2명을 활용해 좀 더 전문적인 운용에 힘쓸 채비를 갖췄으며, 하버드 대학의 수익모델 등도 연구 중인 것으로 알려졌다.

중앙대 역시 자금운영회를 구성, 입법이 되면 바로 공격적인 투자에 나설 예정이다.



금융권 “다양화를 기조로 포트폴리오 재구성해야”


한편 금융권은 대학이 우선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고 있다. 삼성증권은 지난 9월 보수적인 대학의 투자를 고려해 기대수익률을 7~9% 수준으로 자산을 배분하는 ‘대학기금을 위한 최적 자산배분 전략’을 내놓았다.

전략의 핵심은 ‘투자 상품의 다양화’다. 삼성증권 자산배분전략파트는 “사립대학은 수익성이 낮은 토지의 비율이 높고 유가증권과 신탁예금은 비중이 낮아 운용수익률이 정기예금 수익률 수준인 4%에 불과하다”며 국내외 주식에 40% 이상을 투자하며 자산군별 장기분산투자를 하고 있는 하버드대와 예일대를 벤치마킹하라고 조언했다.

이와 함께 “위험을 가능한 효율적으로 관리하는 자산 배분안에 초점을 맞추라”며, 목표수익률을 6%, 7.5%, 9%로 겨냥하는 세 가지 자산배분안을 설정해 각각 주식을 7.5%, 17%, 25%씩 배분 투자하라고 주문했다.


미국동부에 위치한 웨슬리언대에서 10억달러 규모의 기금을 직접 운용하는 톰 캐남 역시 지난 9월 방한, 벨스타그룹이 주최한 ‘사립대학 기금운용 국제 세미나’에서 대학의 포트폴리오 재구성을 역설했다.

그는 이 자리에서 “운용목표에 따라 주기적으로 포트폴리오를 재구성하는 ‘리밸런싱(Rebalacing)’이 중요하다”며 포트폴리오 조정 원칙부터 세우라고 강조했다. 그렇지 않으면 시류에 휩쓸려 ‘저가매도, 고가매수’를 범할 수 있다는 것.

그는 1987년 주식시장 붕괴 이후 리밸런싱 원칙을 세워 크게 성공한 예일대의 예를 들어 “대학기금은 장기적으로 운용되기 때문에 유동성이 다소 떨어지는 자산에 투자해 관리하면 초과 수익을 기대할 수 있다”고 조언했다.


하지만 이번 개정안 발표로 대학이 12월부터 바로 주식시장에 뛰어들 것이라는 관측은 불투명하다.

한 대학관계자는 “자금운용은 기본적으로 ‘책임’에 민감한데, 대학은 더 민감하다”며 대학이 이번 개정안 뒤에 어떤 투자 기조를 유지하느냐에 따라 향후 기금운용 행태도 달라질 것이라고 설명했다.

무엇보다 ‘윗선’에서 안정적으로 갈 것인지 공격적으로 갈 것인지 투자 가이드라인을 확실히 하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이다. 그는 이에 대해 “보수적인 대학의 속성으로 보아 몇몇 대학이 공격적인 투자로 성공했다는 소문이 나야 나서지 않겠나”라고 예상했다.

김정수 한국증권업협회 회원업무팀장은 “처음엔 다른 대학이 얼마나 수익을 내는지 눈치를 보고 투자에 뛰어들 것”이라며 “짧게는 1년 정도에서 4~5년 정도 지나야 대학도 적극 나서지 않겠나 ”고 내다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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