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익고득점·해외연수로는 차별화 안돼…기업은 긍정적

박치완(26)씨는 지난 1월 고향인 부산으로 돌아왔다. 20개월간 2000t급 참치잡이 원양어선 선원 생활을 마친 뒤였다. 재작년 부경대 해양생산시스템공학과를 졸업했던 그. 전공을 살려 수산업 분야 대기업과 중견기업 곳곳에 원서를 넣었다. 모두 고배를 마셨다.

그래서 선택한 것이 '원양어선 선원 체험'이었다. 취업을 위한 '피눈물 나는' 경력 쌓기다. 그는 남태평양의 솔로몬제도와 마샬군도 인근 해역을 누비며 오전 5시부터 오후 7시까지 황다랑어와 가다랑어를 잡아 올렸다. 찢어진 그물을 수리하느라 일주일에 한두번 밤을 꼬박 샜다. 해파리에게 물려 몸져누운 적도 있었다.

28명 선원 중 대졸 이상 학력자는 선장과 박씨뿐이었다. 원양어선에서 하선한 그는 요즘 다시 수산분야 기업에 입사원서를 쓰고 있다. 박씨는 "남들이 쉽게 하지 못할 경험을 했고 원양어업 현실도 생생하게 체험했다"며 "일단 면접까지 올라간다면 뽑힐 수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다.

지난해 대학졸업자는 56만명. 새로 만들어진 일자리는 28만개. 졸업과 동시에 절반 이상 실업자가 되는 현실이다. 어학연수나 높은 토익 점수, 인턴사원 경력, 기업 공모전 수상 실적 등은 취업의 '기본 사항'이다.

지난해 하반기 SK텔레콤 공채 합격자 116명 중 73%(85명)가 인턴 경력을 갖추고 있었다. 현대자동차도 전체 합격자 700명 중 60% 이상이 인턴을 했거나 어학연수 경험자였다. 그렇다면 '바늘 구멍' 같은 취업문을 통과하기 위해 이제 자기만의 특별한 경력을 쌓는 수밖에 없다.

고려대 재료공학과를 졸업한 박종일(28)씨는 면접 때마다 2006년 해발 6189m인 히말라야의 '아일랜드 피크' 등정 경력을 집중적으로 홍보했다. 단순한 등산 애호가였던 그는 졸업을 1년 앞두고 이 봉우리를 등반했다. 입사 지원서를 낼 때마다 네팔산악연맹이 발급한 '정상 등반 증명서' 사본을 이력서에 첨부했다. 한 외국계 기업과의 면접 때 대표이사가 그 증명서를 보고 정상에 서본 소감을 묻자, 그는 "제가 에베레스트 정상까지 모시겠다"는 당돌한 약속까지 했다. 결국 그는 합격했다.

경희대 법대 4학년인 정주헌(25)씨는 2005년 8월 일본 도쿄에서 오사카까지 걷는 '700㎞ 노숙체험'을 했다. 잠은 길가나 다리 밑에서 잤고, 밥은 아무 집에나 찾아가서 얻어 먹었다. 걷다가 지쳐 길에 쓰러진 적도 대여섯 번 된다. 정씨는 "남과 확실히 차별화할 수 있는 경력을 만들겠다고 시작했지만 '이게 무슨 짓인가' 하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고 말했다.

아예 특정 기업에 취업할 목표를 세우고 '맞춤형 경력'도 만든다. 지난해 고려대 경영학과를 졸업한 이성찬(27)씨. LG전자에 입사할 생각으로 4학년 때인 2006년 여름방학 때 경북 구미의 LG전자 컴퓨터 모니터 생산공장에서 두 달간 '계약직 생산직원'으로 일했다. 하루 9시간씩 모니터 나사를 조이는 일을 하고 한 달에 70만원을 받았다.

그는 과외 아르바이트로 한 달에 200만원 가량을 벌었던 적도 있었지만 "돈보다 장래 전자 업체 취업을 생각해 '경력'을 만드는 게 더 중요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이런 노력도 늘 실효를 거두는 것은 아니다. 결국 그가 취업한 곳은 LG전자가 아니라, 금융업종의 한 협회였다.

학생들의 이런 분투에 대해, 기업 인사담당자들은 대체로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그러나 가끔은 냉정한 반응도 없지 않다. LG전자 본사 인사팀의 이동진 부장은 "색다르고 다양한 경험을 많이 했다는 건 그만큼 다양한 도전을 한 증거이므로 면접에서 분명 가산점이 주어진다"며 "하지만 그런 경험 자체보다 그것을 통해 무엇을 배웠는지 명확하게 말할 수 있는 능력이 더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우증권 박동복 인사부 과장은 "경쟁이 치열하니 자기 경력을 과장해, 같은 대학 입사 지원자들 중에서 같은 기간에 같은 대학 동아리의 회장을 지냈다는 사람이 3명이나 있었던 적도 있었다"고 말했다. (조선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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