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 재정지원 형평성 잃어



경쟁의 시대, 약해지는 전문대

시장원리가 상아탑을 지배하고 있다. 대학은 더 이상 지성의 전당이 아니다. 살아남으려면 투자해야 한다. 다른 대학과 경쟁해 이겨야 한다. 일류 대학이 되려면 유능한 교수를 뽑고, 좋은 환경을 만들어야 한다. 그래야 학생이 몰린다. 그러지 못하면 자칫 존폐의 갈림길에 서게 된다. 현재 대학가의 현실이다.

2000년부터 시작된 정원 부족 현상은 전문대학을 뿌리부터 흔들고 있다. 8년 동안 전문대는 11개교·14만 1200여명이 감소한 반면, 4년제 대학은 13개교·21만 7000여명이 증가했다.

4년제 대학과의 양극화는 앞으로 더욱 심해질 전망이다. 2015년 이후 고교 졸업생은 60만명에서 40만명으로 줄어든다. 전문대학의 타격은 불을 보듯 뻔하다. “전문대학 절반이 문 닫아야 한다”는 소리가 나온다. “학장은 물론 교수들 입이 바싹 마를 지경이다. 사태가 심각하다.” 어느 전문대학 기획처장의 토로다.


불평등 예산 구조부터 바꿔야

전문대학 위기 타개에 가장 좋은 방법은 무엇일까. 우선 재정지원을 꼽을 수 있다. 무엇보다 4년제 대학과의 ‘불평등’부터 해결해야 한다.

전체 147개 전문대학 중 사립전문대학의 숫자는 137개다. 93.2%에 달하는 수치다. 이들은 전체 재원 중 80% 이상을 등록금에 의존하면서 학교를 운영하고 있다. 재단전입금, 국고보조금, 기타 산업체 기부금은 4년제 대학에 비할 바가 못 된다. 사정이 이런데도 재정지원은 인색하기만 하다.

김정길 전문대교협회장은 “전문대학 입학정원이 고등학교 졸업생의 42%를 차지하고 전문대 졸업생들의 취업률도 일반 대학보다 평균 20% 가까이 높다. 그런데 전문대에 대한 지원은 턱없이 부족하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3조 5000억원의 고등교육 예산 중 전문대학에 돌아오는 것은 7%인 2500억원에 불과하다. 김 회장은 “졸업생 비율에 맞춰 전체 고등교육예산을 42%까지 올려 달라는 이야기가 아니다”라며 “적어도 현재의 두 배 이상은 늘려야 한다”고 말한다.


포뮬러 펀딩 효율성 의심

재정지원 시 고려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요소가 있다. 형평성과 효율성이다. 형평성은 두말 할 나위가 없지만, 전문대학 재정지원의 효율성도 의문이다. 특히 이명박 정부의 우수인력양성사업 선정방식인 ‘포뮬러 펀딩’에 대해 말이 많다. 포뮬러 펀딩은 객관적·정량적 지표로 사전에 구성된 공식(포뮬러)에 따라 지원하는 방식이다. 취업률, 재학생 충원율, 전임교원 확보율, 장학금 지급률, 1인당 교육비 등 5개 지표가 있다.

가장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 지표는 취업률이다. 그렇지만 정량적 요소로만 측정하기 때문에 문제가 불거진다. 취업률이 높은 보건계열이 상위권을 차지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취업률 자체에 대한 신뢰성도 문제다. 취업률을 부풀리는 이른바 ‘뻥튀기’에는 별다른 대처방법이 없다. 승융배 교육과학기술부 전문대학지원과장은 “문제가 발생하더라도 우선은 지원금의 규모부터 키우는데 노력하고 있다”고 말한다.

내년 교육예산은 8.8% 늘어났다. 고등교육 예산 요구액도 6.6% 증가했다. 그렇지만 전문대학 우수인력양성사업 예산은 예정된 2500억원에서 2200억원으로 되레 줄었다. 작은 밥그릇을 두고 전문대학끼리 더 치열하게 싸워야 할 판이다.

이승근 전문대교협회 기획조정실장은 “4년제와의 예산지원 불균형을 해소하기 위해서는 재학생 수를 고려해도 5000억원은 되어야 한다”고 거듭 강조한다.


교부금법 제정, 고용기금 풀자

방법은 없을까. 전문대학은 고등교육재정교부금법(가칭)을 제정하고 고용기금을 풀어서 지원해 달라고 주장하고 있다.

김호동 서울예술대학 교수는 “고등교육재원을 안정적으로 확보하려면 고등교육도 보통교육처럼 교부금의 교부율을 법률로 정해야 한다”고 지적한다. 고등교육 투자를 민간영역에만 의존하지 말고, 국가 재정투자 우선순위로 조정하자는 뜻이다. “대학의 교육역량을 감안하되, 대학의 평가·인증 결과와 대학의 특성화 및 구조조정 등 요소를 고려하면 된다”는 게 김 교수의 주장이다.

고용보험기금을 풀어 지원하자는 주장도 설득력 있다. 고용보험기금을 재설계해 전문대학 재학생에 대한 재정지원을 확대하자는 것이다.

전문대학은 현재 다양한 직업능력 개발 활동을 수행하고 있다. 그렇지만 대학 학위과정은 훈련으로 인정받지 못하고 있다. 폴리텍 대학은 기능인력 양성기관이라는 점에서 전문대학과 본질적 차이가 없다. 그럼에도 연간 총 예산의 92.1%를 국고로 지원받는다. 등록금도 전문대학의 3분의 1수준이다.

산업체 위탁·전공심화과정의 재학생, 기타 산업체 근무 경력자나 재직자는 고용보험기금에서 등록금의 전액 또는 일부를 부담하자는 게 핵심이다. 이 방안이 실현되면 학습자 중심의 직업교육 및 훈련체제가 확립된다는 이점이 있다. 전문대학의 직업교육 역시 현장적합성이 낮다는 단점을 극복할 수 있다. 전반적으로 직업교육과 직업훈련 모두 효율성이 올라가는 효과도 있다.


외국의 고등교육 재정지원-일본은 대학유형 구별없이 균형지원

일본은 대학 유형과 관계없이 학습자 1인당 정부지원금이 거의 비슷하다. 경상비 지원을 학생 수로 환산해 보면 4년제 대학과 2년제 대학 모두 유사하다. 우리나라처럼 재정지원 사업이 있긴 하지만 특별보조형태로 지원한다.

지원 사업 숫자는 많지 않고, 예산 비중 또한 일반지원에 비해 크지 않다. 특별보조금 지원액도 학교 간 차이가 크지 않다. 재정지원에 대한 구체적인 기준과 원칙은 법규로 뒷받침한다.

영국은 정부가 고등교육과 직업교육 예산을 직접 배분하지 않는다. ‘HEFCE’와 ‘LSC’라는 독립적인 기구가 한다. 또한 고등교육예산의 60% 이상을 교육 분야에 집중하며, 포뮬러 펀딩에 의해 총액 교부금으로 배분한다. 재정지원 사업은 경쟁입찰방식을 적용하지 않고 가능한 한 모든 대학에 골고루 지원한다.

미국은 재정지원의 대부분이 장학금, 대부 등 학생들의 학습비 지원이다. 저소득층 등 소외계층에 대한 학습 지원에 치중되어 있는 게 특징이다. 직업교육 지원은 영국처럼 포뮬러를 적용하지만, 주로 중등단계에서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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