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들의 선제적 학내 구조조정, 직원들은 ‘부정적 반응’
정부 정책에도 ‘비판 일변도’…“정부가 오히려 상황 악화시켜”
실직 위기 놓인 직원들, “생존권 보호 위한 장치 필요”
일본 ‘선례’, 대학존립·직원보호 위해 정부가 앞장서 보조금 지원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이 악화되면서 대학들이 직원들에 대한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이 악화되면서 대학들이 직원들에 대한 인력 조정에 나서고 있다. 

[한국대학신문 이중삼 기자] 수년간의 등록금 동결로 인한 재정난, 학령인구 감소라는 위기가 대학들을 덮쳤다. 전문대들의 생존 위기는 말 그대로 ‘최고조’다. 특히 올해 수시모집에서 전국 전문대의 절반이 넘는 80여 개교가 80% 미만의 충원율을 기록하는 처참한 성적표를 받아든 상황이다. 일반대도 ‘벚꽃 피는 순서대로 망할 것’이란 예언이 현실로 다가오는 등 대학의 존폐 위기가 대두되고 있다. 

대학가 전반에 흐르는 이상 기류를 가장 뼈저리게 체감하는 것은 내부 구성원들이다. 대학 직원 대다수는 향후 10년간 대학 위기가 더욱 심해질 것으로 전망했다. 현 정부의 대학기본역량진단이 대학의 위기를 더욱 심화시킬 것이라는 비판의 눈초리도 매섭다. 

대학들은 위기에 대응하기 위해 학과 통폐합, 직원 신규채용 중단, 임금 삭감 등 학내 구조조정에 나선 상태다. 대학의 생존 위기가 걸린 만큼 직원들의 인력 조정은 불가피하다는 게 중론이다. 직원들의 고용불안 문제가 한동안 심화될 것으로 보인다. 

전국대학노동조합(대학노조)은 ‘대학위기 상황에서의 2021년 이후의 고등교육정책 방향에 대한 대학 직원 설문조사 결과’를 최근 발표했다. 대학 직원들에게 받은 올해 주요 고등교육정책방향에 대한 생각들을 한 데 모아 발표한 것이다. 지난해 11월 18일부터 12월 24일까지 진행된 해당 설문조사에는 일반대 630명, 전문대 220명, 산업대 1명, 교대 6명, 무응답 1명 등 총 857명의 대학 직원이 참여했다. 

대학 직원들은 현재 대학이 처한 상황을 부정적으로 바라봤다. ‘현재 대학이 위기인지’를 묻는 질문에 응답자의 95%가 현 대학들이 처한 상황을 상당히 어렵게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매우 위기’라고 응답한 사례가 55.2%로 절반이 넘었으며, ‘위기’로 응답한 사례도 40.7%나 됐다. 

미래 전망에 대해서도 부정적인 답변이 이어졌다. 향후 10년 대학의 상황을 묻는 질문에 10명 중 8명이 전망이 어둡다는 답을 내놨다. ‘심각해질 것’이라는 응답이 53.8%, ‘매우 심각해질 것’이라는 응답이 26.1%였다.

대학이 위기에 처했다고 생각하는 이유로는 ‘학생모집의 어려움’이 79.6%로 가장 많았다. ‘교직원 신규채용 중단 및 임금삭감’이 54.7%, ‘졸업생 취업률 저조’가 48.2%, ‘교육 및 연구여건 하락’이 37.5%로 뒤를 이었다.

대학 위기의 원인에 대해서는 대다수 응답자가 ‘학령인구 감소’(75.8%)와 ‘대학재정 부족’(58.1%)을 들었다. 이어 △수도권 대학 중심의 정부 고등교육정책 △설립·운영자의 부실운영과 부정·비리 △민주적 의사결정구조의 결여 등도 주요 원인으로 꼽혔다.

이처럼 대학을 둘러싼 여건이 좋지 못한 가운데 정부 정책도 적절치 못하다는 게 대학 직원들의 반응이다. 문재인 정부가 추진한 고등교육 정책에 대해 비판적인 시각이 많았다. 응답자의 49.2%가 ‘이전과 달라진 것이 없다’고 답했고 ‘오히려 악화됐다’는 응답도 38.7%에 달했다. 정책 변화를 현장에서 느끼기 어렵다는 응답이 주를 이룬 것이다. 

이러한 비판의 중심에는 ‘대학평가’에 대한 비판이 자리 잡고 있다. 56.3%에 달하는 응답자는 고등교육의 지원과 육성을 위한 뚜렷한 정책이 없다고 답해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응답자의 47.3%는 3년마다 시행되고 있는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가 대학의 위기를 오히려 심화시킬 것으로 봤다.

이같은 위기를 헤쳐 나가기 위해 소속 대학이 어떤 대응을 하고 있는지를 묻는 질문에 직원들은 △폐과·학과 통폐합(50.2%) △비정년트랙 교원·비정규직원 채용(42.3%) △교직원 감원·임금삭감(41.6%)을 꼽았다. 학내에서의 대학 구조조정이 이미 선제적으로 이뤄지고 있는 것이다. 

한 전문대 관계자는 “우리 대학의 경우 직원과 학생 수를 비교했을 때 직원 수가 많아 이미 명예퇴직을 권장하는 등 직원 수를 줄여나가고 있다. 업무가 많은 부서의 경우 다른 부서 직원을 인사 이동시키고 있다.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재정 상황이 악화되면서 직원 인력 조정은 불가피한 상황”이라고 말했다.

직원 인력 조정을 예고한 대학도 있다. 최근 박승호 계명문화대 총장은 신년사에서 학사구조의 통폐합과 직원에 대한 인력 조정을 하겠다고 선언했다. 학령인구 감소에 따른 대학 재정 악화로 직원의 인력 조정이 불가피하다는 것이다. 박 총장은 신년사에서 “재정적 압박 속에서 대학 간 경쟁 심화와 신입생 유치 경쟁에서 생존하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필요한 때”라며 “학사구조의 통폐합과 교직원의 인력 조정에 나서겠다. 올해 예정된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좋은 결과를 얻기 위해서라도 우리 대학의 학사개편은 선택이 아니라 필수다. 구성원 모두의 이해와 협조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이같은 대학의 대응방법을 바라보는 직원들은 부정적인 반응을 쏟아냈다. 54.9%의 응답자가 ‘잘못하고 있다’고 답하는 등 대학들의 대응에 한계가 많다는 인식이 뚜렷했다. 직원들 입장에서는 생존권을 뒤흔드는 대학의 조치가 달가울 리 없다. 

대학 직원들의 생존권 문제는 예전부터 지적돼 왔다. 국회입법조사처가 2018년 12월 발간한 ‘대학구조개편에 따른 문제와 입법적 대안에 대한 연구’ 보고서는 대학이 처한 현실에 따라 학과통폐합을 하는 경우 직원들의 실직 문제로 이어질 수 있다”고 진단한 바 있다.

전윤구 연구책임자는 “재정적 압박 속에서 대학 간 경쟁심화와 신입생 유치 경쟁에 내몰린 각 대학은 교육부의 대학특성화나 목적사업 재정지원을 따내기 위해서든, 대학구조개혁평가에서 유리한 평가를 받기 위해서든, 신입생 미달현상 생존을 위해서든 관련 구성원들의 반발을 무릅쓰고 학과 통폐합에 나서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직원들은 일방적 임금삭감이나 체불, 전공과 관련 없는 학과 배치, 고용보험의 보호도 없는 실직 위험에 노출돼 있다”고 분석했다. 

대학 직원들은 대학 구조조정이 불가피하다는 점에는 공감하면서도 직원들의 생존권 보호대책은 반드시 마련돼야 한다고 주장한다. 전문대 직원 A씨는 “학령인구 감소로 대학의 위기는 예견된 일이었지만 문제는 직원에 대한 보호대책이 없다는 것이다. 구조조정에 들어가면 직원이 첫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직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장치가 필요하다”고 말했다. 

또 다른 전문대 직원 B씨는 “올해 수시모집 등록인원이 현격히 줄어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 문제는 직원들을 보호해줄 수 있는 대책이 없다는 점이다. 직접적인 피해를 볼 수밖에 없다. 실제로 주변에 이직을 심각하게 고려하고 있는 신입 직원도 있다”고 말했다. 

다만 불가피한 구조조정 상황에서 직원들이 스스로 살아남기 위한 경쟁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견도 제시된다. 전문대 직원 C씨는 “불가피한 구조조정으로 인해 직원들의 생존권이 위험에 처했다. 직원의 생존권을 보호하면서 대학을 지켜내는 것이 가장 좋은 방안이겠지만, 살아남기 위한 구조조정은 어느 정도 필요하다고 본다. 특히 고령자에 대한 명예퇴직 유도와 임금피크제 도입 등을 통해 체질을 개선하는 것이 필요하다. 인원이 줄어드는 조직 내에서 직원 스스로 역량을 키우는 것도 중요하다”고 말했다.

대학 직원들은 현재 대학이 처한 위기 중에서도 특히 재정 문제를 극복하기 위한 방법으 ‘정부의 재정지원 확대’를 들었다. 79.2%의 응답자가 정부 재정지원이 늘어나야 한다고 답했으며, 10년이 넘게 동결된 ‘등록금 인상’이 필요하다는 응답도 39.2%나 됐다. 이밖에도 ‘사학재단들의 법인전입금 확대 등 책무강화’(26.4%), ‘유학생 유치’(18.3%), 산학협력 수입 확대(17.5%) 등 다양한 의견이 있었다.

일본의 사례는 우리가 참고할 만한 좋은 선례가 될 것으로 보인다. 한국과 대학 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대학 구조조정에 있어 한국과 달리 직원들의 생존권 보장을 위해 힘쓰고 있다. 해외직업교육선진국 사례에 정통한 이정표 한양여대 교수는 “한국과 대학 구조가 비슷한 일본은 이미 국가가 나서 문제를 해결하고 있다”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일본은 특히 대학이 안정적으로 운영할 수 있도록 경상비 이외에 추가로 지원해줄 수 있는 법을 만들어 대학에 보조금을 지원해주고 있다. 보조금에는 직원 인건비, 시설 개선비 등이 포함돼 있다. 일본은 10년 전부터 입학정원 미충원 현상이 발생한 국가다. 한국과 달리 일본은 사립대에 대한 지원을 아끼지 않고 있다. 특히 일본은 '사립대학 경영 강화 집중 지원 기간'등과 같은 대부분 정책이 모두 5년 이상의 장기 계획으로 이뤄져 있다”고 말했다. 

이어 “직원 문제는 굉장히 중요하다. 직원의 역량은 대학의 발전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직원 문제는 대학만의 문제가 아니라 국가에서 다뤄져야 할 중요한 사안이다. 국가가 나서 직원의 노동권리, 보호방안 등을 적극적으로 고민해야 하며, 이와 함께 직원 스스로도 필요한 역량을 키워나가야 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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