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훈 서정대 대외협력처장

조훈 서정대 대외협력처장
조훈 서정대 대외협력처장

한국 대학의 절대위기 시기가 왔다. 이유는 단순하다. 인구절벽으로 인한 학생 수 감소가 그 원인이다. 4차 산업혁명보다도 코로나19보다도 무서운 인구절벽의 시기를 대학은 경험하고 있다.

이미 예견된 일이었다. 한 번도 경험하지 못했던 일이라 절감하지 못했을 뿐이다. 정부도 대학도 그리고 대학의 구성원들도 속수무책이다. 더 답답한 것은 나아질 기미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것이다. 산술적으로 보면 50% 대학이 문을 닫을 때까지 이 절망은 계속될 것이다.

메가트렌드란 인간의 힘으로 어쩔 수 없이 다가오는 거대한 변화의 물결을 의미한다. 적어도 한국사회에서 인구감소는 어쩔 수 없는 메가트렌드다. 획기적인 출산장려정책도 이민정책도 기대하기는 어렵다. 결국 생존의 열쇠는 대학이 가지고 있다.

얼마 전 흥미롭게 읽었던 사피 바칼의 《룬샷(loonshot)》 내용들이 떠오른다. 1970년대 초반 핀란드에서 고무장화를 만드는 회사였던 노키아는 세계 최초로 만든 카폰이 대대적인 성공을 거두면서 휴대폰 시장의 절대 강자로 군림했다. 2004년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은 인터넷이 가능하고 커다란 터치스크린과 고해상도 카메라가 달린 전화기에 온라인 앱스토어를 만들자는 제안을 경영진에게 했다. 하지만 성공에 취해 있던 노키아의 경영진은 그들의 의견을 무시했다.

불과 3년 후인 2007년 애플의 스티브 잡스가 바로 노키아의 엔지니어들이 제안했던 모든 기능을 가진 아이폰을 출시한다. 그로부터 5년 후인 2013년 노키아는 거짓말처럼 모바일 사업부문을 매각한다. 《룬샷》은 나사 빠진 사업으로 취급하며 다들 무시하고 홀대하는 프로젝트를 의미하는 말이다. 성공에 취해 있던 사람들이 자신들에게 닥친 위기를 빠져 나오기는 쉽지 않다.

1997년 정부의 대학설립준칙제도 시행 이후 한국 대학의 숫자는 양적인 면에서 크게 늘어났다. 베이비부머 세대들의 자녀 성장과 맞물려 불과 5년 전까지만 해도 큰 어려움 없이 대학들은 학생 수를 유지할 수 있었다. 하지만 2년 전부터 시작된 대입 학령인구의 급격한 감소는 일부 대학을 제외한 대부분의 대학들에게 엄청난 쓰나미가 돼 돌아오고 있다. 개학을 앞둔 2021년 대학가의 풍경은 쓸쓸하기 그지없다. 장기불황의 늪 속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는 기업, 코로나 바이러스 때문에 어려움을 겪고 있는 자영업자의 모습과도 같다.

지금 대학에게 필요한 것은 뛰어난 혁신가 몇 사람이 아니다. 잘 구조화 된 설계의 힘이 필요하다. 사피 바칼은 《룬샷》에서 가장 하수는 ‘전략 자체가 없는 실패를 전혀 분석하지 않은 팀’이라고 말한다. 대부분 조직에서 하는 ‘실패원인 분석 후 앞으로 잘 해보자’고 외치는 ‘결과주의적 사고’는 중수쯤으로 여긴다. 가장 상수는 결과 분석뿐만 아니라 의사결정 과정을 분석하고, 구성원들의 참여방식, 동기부여, 조직 구성 방법 등 모든 과정을 용의주도하게 분석해 대안을 제시해 나가는 ‘시스템적 사고’라고 강조한다.

대학과 기업의 의사결정 방식은 다르다. 하지만, 위기와 절망을 극복하는 방향은 다르지 않다. 정조의 총애를 한 몸에 받으며 마흔까지 승승장구 했던 다산 정약용도 갑작스레 겪게 되는 신산한 귀양살이에서 비로소 자신의 모습을 찾았다고 고백한다. 복숭아뼈에 세 번이나 구멍이 날 정도로 극한의 고통 속에서도 매일 글을 쓰면서 그는 자신의 진정한 모습을 찾아갔다. 그리고 우리에게 많은 위대한 유산을 남겼다.

성공을 버리면서 비로소 성장할 수 있다는 사실을 2021년 한국 대학의 구성원들이 어쩌면 절실하게 깨달아야 할 때인 줄도 모르겠다.

<한국대학신문>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