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규모 유혈 사태 이후에도 소강상태 기미 없어
유학생들 “현지 곳곳이 위험…싸우고 있는 청년들에게 미안”
전문가들 “중재자 역할 시급…국제사회 공조로 타협안 찾아야”

재한미얀마청년연대 소속 미얀마 유학생과 청년들이 대전역 앞에서 미얀마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며 시위를 벌이고 있다. (사진= Myanmar Youth Organization In Korea 페이스북)
재한미얀마청년연대 소속 미얀마 유학생과 청년들이 대전역 앞에서 미얀마를 위한 국제사회의 지원을 호소하고 있다. (사진= Myanmar Youth Organization In Korea 페이스북)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미얀마의 잃어버린 봄은 돌아올 수 있을까. 미얀마 군부가 쿠데타를 일으킨 지 한 달 하고도 열흘이 지났다. 군부의 대규모 유혈진압 이후로 마을에서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총성이 울려 퍼지면서 사태는 더욱 격화되고 있다. 국내에서도 미얀마 군부의 폭력 진압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있다. 미얀마 시민들은 민주화를 위해 국제사회에 관심과 지원을 요청하고 있다. 이에 본지는 한국에 거주 중인 미얀마 유학생들의 인터뷰와 전문가의 진단을 통해 미얀마 민주화 시위를 집중 조명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여성들은 타메인(미얀마 전통치마)과 피 묻은 생리대를 내걸었고 청년들은 혈액형과 전화번호를 몸에 지닌 채 거리로 뛰어 나갔다.

군부 쿠데타 사태로 미얀마는 지금 전시 상태를 방불케 하고 있다. 곳곳에서 유혈 충돌이 일어나는 가운데 10~20대 젊은이들이 민주화 시위를 벌이며 쿠데타 정권에 맞서고 있다. 2015년 아웅산 수치 여사의 총선 압승으로 53년 만에 미얀마는 군부 독재를 청산하고 민주 정부에 대한 기대로 가득 차 있었지만 5년 만에 민주화의 꿈은 물거품으로 돌아갔다.

미얀마 사태 어떻게 흘러가고 있나= 2월 1일 새벽. 미얀마 군부는 전격 쿠데타를 일으켰다. 아웅산 수치 국가고문을 비롯한 정부 고위 인사는 구금됐고 군부는 1년간의 비상사태를 선포했다. 이날 성명에서 군부는 민 아웅 흘라잉 국방군 총사령관에게 권력이 이양됐다고 설명했다. 쿠데타 이후 미얀마 방송사는 방송 송출을 중단했고 곳곳에서는 인터넷 접속 불량이 일어났다. 거리에는 군인과 장갑차가 심심치 않게 보이기 시작했다.

미얀마의 ‘피의 일요일’로 불렸던 지난달 28일에는 대규모 유혈 사태가 일어났다. 군부 쿠데타에 항의하는 시위대를 향해 군경이 실탄을 발포하면서다. 유엔인권사무소는 군경의 총격으로 최소 18명이 숨지고 30명이 부상을 당했다고 밝혔다. 위험한 것은 시위대뿐만이 아니다. 경찰과 군인은 실탄과 최루탄으로 무장한 채 무자비하게 시민들을 진압하고 있다. 참상을 고발하기 위해 숨어서 촬영하는 시민에게도 총탄이 날아들었다.

여성들은 미얀마의 옛 미신을 저항의 수단으로 활용하고 있다. 여성들이 입는 전통 통치마인 타메인을 마을 입구에 내걸어 군경의 진입을 막고 있다. 미얀마 마을 곳곳에는 이렇게 타메인을 비롯해 생리대와 속옷이 여기저기 걸려있다. ‘타메인을 걸어놓은 곳 아래로 걸어가면 남성성을 잃는다’는 미신을 역으로 이용한 것이다.

8일에도 미얀마 군경의 총격이 있었다. 로이터 통신은 이날 북구 카친주 미치나시에서 시위대 2명이 총에 맞아 숨졌다고 보도했다. 무기로 무장한 군경 앞에 미얀마 국민들은 맨몸으로 저항하고 있는 가운데 쿠데타 상황은 쉽게 정리될 기미가 보이지 않는다.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내고는 있지만 제재력이 없고 군부와 밀접한 관계를 맺고 있는 중국과 러시아는 이 사태에 미온적인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이다.

울산대 미얀마 유학생들이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하며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 울산대 에브리타임)
울산대 미얀마 유학생들이 미얀마 쿠데타를 규탄하며 한국에 도움을 요청하는 피켓 시위를 벌였다. (사진= 울산대 에브리타임)

한국에 온 미얀마 청년들의 외침…실상은 더욱 참혹= 외부의 도움이 절실한 상황에서 한국의 청년과 대학생, 미얀마 유학생들이 힘을 보태고 있다. 미얀마에서 한국으로 유학 온 서예은 재한미얀마청년연대 회장(‘미얀마 여자’ 페이스북 페이지 운영자)은 미얀마 쿠데타 이후 단체를 구성해 서울과 대전에서 미얀마 민주화 운동을 주도하고 있다. 미얀마 사태를 목도하고 가만히 있을 수 없다는 생각으로 페이스북 페이지를 만들었고 한국의 대학생, 유학생들이 함께 모이게 됐다.

내부에서는 서로의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미얀마 현지 상황을 공유하고 있다. 며칠 전에는 양곤의 한 동네를 경찰이 포위했다. 시위에 나갔던 학생들이 일반 시민 집에 숨어있었다. 새벽 3시까지 군경은 집을 돌며 시위자 색출에 나섰다고 한다. 그들은 모두 무장 중이었다. 상황이 점점 나빠지자 미얀마 청년들은 미국, 영국 대사관에 신변보호를  요청했다.

서 씨는 “미얀마 언론이 모두 통제된 상황에서 현지 상황은 언론이 보도되는 것보다 훨씬 심각한 상황”이라고 설명했다. “신문, 방송사는 군부의 사업 취소로 문을 닫았고 기자 개인이 취재에 나서고 있다”고도 덧붙였다.

보이는 것보다 실상은 더욱 참담하다. 서 씨는 며칠 전 충격적인 사진을 봤다. 팔에 총을 맞아 엄청나게 큰 구멍이 난 사진이었다. 지난밤에는 국민민주연맹(NLD) 책임자 한 명이 잡혀갔다. 갈 때만 해도 건강했던 사람이 다음 날 바로 사망했다고 한다. 사진에는 가슴 쪽이 뚫려있었고 이를 꿰맨 자국이 보였다. 이런 모습은 방송에서는 볼 수 없다.

미얀마 유학생 한수민 씨(숭실대 1)는 학업을 위해 한국에 온 지 1년이 됐다. 한국에 머무는 미얀마 사람으로서 어떻게 도울 수 있을지 고민하다가 단체에 들어와 함께 목소리를 내고 있다. 소셜네트워크를 통해 미얀마의 소식을 알리고 있지만 한국뿐 아니라 다른 해외에도 널리 퍼져 도움이 됐으면 하는 마음에서다.

한 씨 역시 가족을 통해 현지 소식을 듣고 있다. 그의 가족이 거주하는 마을은 양곤만큼 위험하지는 않지만 안심할 수는 없는 상황이다. 한 도시에서 시위 중 화재가 난 적이 있는데 이런 상황을 걱정해 한 씨의 동네에서도 밤마다 불침번을 서듯 지켜보고 있다고 했다.

또래 청년 시위대 가슴 아파…국제사회 동참 호소= 무엇보다 이들은 시위의 주축이 동년배라는 사실에 자극을 받았다. 한 씨는 “나와 똑같은 대학생들이 미얀마에서 시위하고 있는데 나는 여기서 공부만 하고 있다는 사실에 마음이 아프다”며 “눈으로 직접 보는 것이 아니기에 더욱 걱정된다”고 토로했다.

서 씨는 “젊은 청년들이 이렇게 시위에 나설 것이라곤 생각도 못 했다”고 말했다. 2007년 군부에 대항한 반정부시위 ‘샤프란 혁명’을 떠올려봐도 그렇다. 정치에 아픔이 있는 사람들만 시위에 나설 것이라 생각했지만 10~20대의 청년들은 용감했고 더 현명한 방법으로 싸우고 있었다. 이들은 인터넷 소셜네트워크를 활용해 세계에 미얀마의 참상을 알리고 있다. 서 씨는 이를 “새로운 방식의 방어를 하고 있다”고 표현했다.

재한미얀마청년연대는 8일 김영호 더불어민주당 의원실을 방문했다. 미얀마에 필요한 요구 서한을 전달하기 위해서다. 이들은 미얀마 사태의 실상을 알리고 대한민국 국회와 정부에 연대와 지지를 요청했다. 김 의원 측은 해당 서한을 정부에 전달하겠다고 밝혔다.

서예은 씨는 “(미얀마 사태는) 언제든 민주주의에 위기가 닥칠 수 있다는 경고”라며 “국제사회가 방관하지 말고 함께 연대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재한미얀마청연연대 회원들이 8일 김영호 의원실을 찾아 요구 서한을 전달했다. (사진= Myanmar Youth Organization In Korea 페이스북)
재한미얀마청연연대 회원들이 8일 김영호 의원실을 찾아 요구 서한을 전달했다. (사진= Myanmar Youth Organization In Korea 페이스북)

현재로선 양쪽 다 벼랑 끝 전술, 상황은 더 악화할 것= 전문가들은 미얀마 사태를 어떻게 전망하고 있을까. 박현용 덕성여대 국제통상학과 교수는 앞으로도 계속해서 대규모 유혈 진압이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고 봤다. 외부에서 군부나 시위대의 톤을 낮춰주거나 태도를 변화시킬 중재자가 없다는 이유에서다. 양쪽 진영 모두 벼랑 끝에 서 있는 상황이지만 문제는 퇴로를 열어줄 중재자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장준영 한국외대 동남아연구소 교수 역시 “앞으로 소강상태를 보일 기미는 거의 없어 보이며 군부가 더 강력하고 잔인한 무력진압을 할 가능성이 높다”고 분석했다. 지금까지 군부의 통치전략을 봤을 때 외부의 시각을 크게 개의치 않고 있다는 게 장 교수의 설명이다.

유엔을 비롯해 미국과 유럽 등 국제사회가 목소리를 내고 있지만 상황이 더 나아지지 않는 부분도 의문이다. 박 교수는 “미국의 입장에서는 군사적 개입을 제외한 경제제재와 군부 관련 금수 조치 등 최대한의 강제력을 동원했지만 쿠데타 이전부터 이미 여러 상황으로 미얀마에서 한발 뒤로 물러나 있는 상태였다”며 “미국이나 유럽이 미얀마에 영향을 줄 수 있는 힘이 상대적으로 취약하다”고 말했다.

중국과 러시아의 미온적인 태도도 사태 봉합의 걸림돌이다. 앞서 유엔 안전보장이사회(안보리)는 미얀마에 대한 추가조치를 위협하는 성명의 문구를 두고 합의를 이루지 못했다. 중국과 러시아 등이 일부 내용에 대해 삭제를 요구하면서다. 장 교수는 “중국이나 러시아의 역할을 전혀 기대할 수 없을 것”이라면서 “기본적으로 중국과 러시아는 내정간섭을 원치 않으면서 구성원의 입장을 들어주라는 원론적인 입장”이라고 덧붙였다.

주변국의 중재가 절실한 상황에 공감…재선거냐 제3의 길이냐= 두 전문가 모두 해결 방법은 ‘중재자의 역할’이라는데 동의했다. 다만 세부 방법론에서 차이를 보였다.

장준영 교수는 ‘중재자의 역할 부재’가 현재 가장 큰 위험 요소라고 봤다. 군부와 시민불복종 세력 간 타협을 이루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지만 현재로선 외부의 중재자도 시민불복종 세력을 이끌 리더도 부재한 상황이다. 장 교수는 아세안의 역할도 제한적이라고 설명했다. 미얀마와 비슷한 정치 사태를 겪고 있는 국가들에는 선례가 될 수 있어서다.

이 때문에 장 교수는 “미국을 포함한 국제사회의 중재를 통해 군부와 시민불족종 세력 간 타협을 이룬 뒤 향후 연합정당을 꾸려 제3의 길을 모색하는 게 현재로선 가장 현실적인 방안”이라고 밝혔다.

박현용 교수도 “미국과 유럽, 중국과 러시아가 모두 한 발 뒤로 물러난 상황에서 아세안 국가들에서 노력을 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아세안 국가는 미얀마와 비슷한 국가의 형태로 서로 이해가 되는 부분이 있다. 미얀마 역시 아세안 국가의 목소리는 무시하지 못할 것”이라고 분석했다.

중재안으로는 재선거를 꼽았다. 5년 전 선거 결과가 이번 쿠데타에 큰 영향을 가져왔기 때문이다. 군부로서는 쿠데타가 권력 유지를 위한 최후의 수단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박 교수는 아웅산 수치와 군부의 중재안으로 재선거를 하는 방식이 가장 현실적이라고 짚었다.

박 교수는 한국 내 정치인과 시민사회가 계속해서 목소리를 내는 사례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 이어 “모든 정보가 막혀있던 과거와는 다르다. 지금은 SNS를 통해 전 세계가 미얀마 사태를 알고 있고 미얀마 국민들 역시 해외에서 지지를 보내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면서 “한국이 다른 국가들과 연대하며 목소리를 내는 것은 시위대에게는 지지가 되고 군부에는 압박이 될 수 있다. 계속해서 메시지를 내 달라”고 당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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