포스텍은 “기부채납 의견이 이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디어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포스텍 공학관 전경 (사진 = 포스텍 제공)
포스텍은 “기부채납 의견이 이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지만 아이디어 수준”이라고 해명했다. 포스텍 공학관 전경 (사진 = 포스텍 제공)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기부채납은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기 위한 장기적 아이디어 수준에 불과할 뿐이다.”

2019년 9월부터 포스텍(POSTECH)을 이끌고 있는 김무환 포스텍 총장은 ‘포스텍 기부채납’에 대한 언론 보도가 실제 논의된 것과 다른 의도로 해석됐다고 주장했다. 

■포스텍, ‘기부채납 논의’ 이슈에 반박 = ‘포스텍 기부채납’이 이슈가 된 이유는 올해 초 열린 이사회에서 나온 의견 때문이었다. 이달 초 일부 언론은 학교법인 포항공과대학교 주최로 열린 ‘2020학년도 제4회 이사회 회의록’을 통해 포스코 회장인 최정우 법인 이사장이 포스텍을 국가에 기부채납하는 방안에 대해 언급했다는 사실을 파악했다. 

최 이사장은 포스텍 재정건전성 향상 방안에 대해 논하다가 참석 이사들에게 기부채납에 대한 의견이 어떤지 물었다. 이에 대다수 이사가 여타 다른 과학기술원과 다르게 사립대였기에 누릴 수 있었던 독립성과 발전동력을 지켜야 한다고 봤다. 지속적인 대학 발전을 위해 기부채납을 고려할 수 있는 대안으로 꼽은 이사도 있었지만 김 총장은 “이공계지원 특별법 개정 등을 통한 정부 인건비 지원 방안은 노력하겠다”고 답했다.

이사 중에는 “포스텍이 국가에 소속된다면 현재의 독립성도 잃게 되고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산하기관이 될텐데 현재 4개 국립 과기대가 공존하는 상황에서 그런 방향(기부채납)으로 간다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은 것 같다”는 의견을 밝히기도 했다.

포스텍 측은 “기부채납 의견이 이사회에서 나온 것은 사실이나 찬반이 팽팽하게 맞선 부분도 아니고 국가로부터 인건비 지원을 받을 방안에 대해서 이야기하다가 나왔다”며 “언론이 논의의 맥락을 읽기에는 부족한 회의록만 가지고 실제와는 다르게 이야기를 풀어냈다”고 해명했다. 

김무환 포스텍 총장 (사진 = 포스텍)
김무환 포스텍 총장 (사진 = 포스텍)

■운영 힘든 포스텍? 자산은 오히려 증가… 적은 발전기금은 숙제 = 포스텍이 운용할 수 있는 재정이 국내외 유수 대학보다 부족하다는 정보는 사실일까. 김 총장은 “대학 자산은 현시점에서 2020년 2월 대비 약 3691억 원이 증가했다”며 포스텍 운영에 어려움이 없다고 설명했다. 

그럼에도 기부채납 논의가 나올 정도로 재정을 확보하려했던 이유는 ‘미래 대비’를 위함이다. 포스텍은 해를 거듭할수록 커지는 지출에 대비하고 미래 먹거리에 대한 연구와 교육투자를 위해 미리 재원을 확보하는 방법에 대해 고민해왔다.

대학의 경쟁력 강화는 인재 확보에 있다. 포스텍은 포스텍의 건학 이념에 맞는 우수한 학생을 끌어들이기 위해 학생 1인당 교육비를 높이 책정했고 이는 해마다 높아지고 있다. 1인당 교육비는 대학교육 여건을 나타내는 가장 중요한 지표다. 2020년 대학알리미가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포스텍은 2020년 기준 학생 1인당 교육비가 1억 227만원으로 전국 일반 대학 가운데 학생들에게 가장 많이 투자하는 대학으로 밝혀졌다. 포스텍 측은 인재 육성을 위한 투자를 점차 늘려가기 위해서라도 안정적인 재정 확보가 필요하다고 본 것이다.

현재는 1조원이 넘는 자산과 주식 배당금, 연구비 수주, 학생 등록금과 기타 수입 등으로 대학 재정을 운용하고 있다. 하지만 포스텍이 현재 재정에 안주하지 않고 돌파구를 찾는 이유는 투자가 이뤄져야 발전 동력을 얻을 수 있는 연구 분야가 늘고 있고 벤처 산업 육성을 위한 투자금도 확보해야 하는 상황이기 때문이다. 포스텍의 경우 등록금은 예산 중 8%를 차지하고 있고 기부금 및 국고보조도 6%밖에 되지 않는다.

코로나19라는 위기 속 경기불황을 겪고 있지만 유수의 대학들은 이런 환경 속에서도 4차 산업혁명과 미래 먹거리 확보를 위한 투자를 아끼지 않고 있다. 이에 김 총장은 “국립 이공계특성화대학들은 국가로부터 많은 지원을 받고 있지만 사립대는 자산투자부터 등록금에 이르기까지 종합사립대학을 기준으로 하는 정부 방침에 따라야 하는 상황 속에서 이들과 경쟁해야 하는 약점이 있음을 부정하기 어렵다”고 고백했다.

김 총장은 “포스텍은 국립대학 이상으로 우리나라 과학기술 발전에 이바지해왔음에도 대기업이 설립한 대학이라는 대외적 이미지나 사립대학이라는 이유로 발전기금 유치 역시 상대적으로 녹록치 않은 것도 사실”이라고 분석했다. 이런 사정을 배경으로 지속적인 재정유치에 대한 고민을 풀고자 기부채납까지 언급된 것으로 볼 수 있다.

실제로 포스텍은 가지고 있던 방사광가속기를 기부채납한 경험이 있어 이번 기부채납이 단순히 해프닝으로 들리지 않을 것이라는 추측도 가능하다. 방사광가속기는 운영비만 한 해 수백억 원이 소요됐던 터라 이에 재정 부담을 느낀 포스텍이 2010년부터 방사광가속기의 소유권을 기부채납을 통해 국가로 이전하는 방안을 추진했고 2017년 9월 국유재산이 됐다. 포스텍은 20년이 넘는 경험을 내세워 2018년 1월부터 방사광가속기 위탁 운영 기관으로 선정됐다. 포스텍은 5년 동안 정부에서 580억 원을 지원받는다.

4세대 방사광가속기 (사진 = 포스텍)
4세대 방사광가속기 (사진 = 포스텍)

■한국 과학 발전 역사의 한 축을 담당한 포스텍, 미래를 향한다 = 포스텍 앞에는 ‘최초’라는 수식어가 익숙하다. 포스텍은 1986년 국내 최초로 ‘연구중심대학’이라는 이름을 사용하며 출범했다. 이후에도 1994년 3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 1996년 석·박사 연계 진학제, 2000년 교원 연봉제 채택, 2008년 기숙형 대학 전환, 2010년 학부생 전원 수시 선발 및 영어 공용화, 2016년 무크(MOOC) 수강 학점인정제 시행, 2016년 4세대 방사광가속기 준공, 2018년 무학과 선발, 2019년 블록체인 캠퍼스 구축, 2020년 전교생 인공지능 교육까지 포스텍은 ‘최초’의 역사를 써 내려가며 교육 혁신과 과학 발전을 이끌어 왔다.

특히 방사광가속기 준공은 한국 과학 기술 발전의 큰 축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방사광가속기는 쉽게 표현하자면 ‘거대한 현미경’이라고 볼 수 있다. 방사광가속기는 입자를 광속에 가까운 속도로 가속해 빛의 속도로 가속한 전자에서 나오는 방사광을 만들어낸다. 이 방사광은 물질의 미세한 구조와 현상을 관찰할 수 있다. 특히 4세대 방사광가속기는 신약을 개발하고 바이러스 단백질의 움직임을 관찰하는 데 활용할 수 있다. 에너지, 반도체, 자동차 등 산업기술에도 도움이 될 전망이다.

이런 방사광가속기는 물리학자이자 가속기 전문가인 고 김호길 포항공대 초대 총장의 제안으로 설치될 수 있었다. 김 총장은 포항공대 초대 총장으로 와달라는 박태준 포항제철 회장에게 총장직을 맡는 조건으로 크게 두 가지를 제시했다. 하나는 건설 비용만 1400~1500억원에 달하는 방사광가속기를 들여오는 것, 또 하나는 대학 운영의 전권을 일임하는 것이었다. 박 회장은 이를 모두 수용했고 한국은 이공계 인재의 산실인 포스텍과 3·4세대 방사광가속기를 가진 나라가 될 수 있었다.

포스텍의 현 수장인 김무환 총장은 앞으로의 목표를 그간 롤모델로 삼았던 미국 캘리포니아공과대학(Caltech)을 넘어서는 것으로 정했다. 김 총장은 “포스텍은 캘텍과 교수·학생 수가 비슷하지만 재정 규모를 비교해 볼 때는 3분의 1 수준으로 운영되고 있다”며 “이런 재정 상황으로 여기까지 이룰 수 있었는데 캘텍 정도의 재정을 운용할 수 있다면 충분히 캘텍을 넘어설 수 있다”고 의지를 보였다.

이를 위해 김 총장은 포스텍 구성원들에게 “포스텍의 비상(飛上)을 위해 함께 뛰자”고 요청했다. 포스텍은 이른바 ‘배터리대학원’으로 불리는 철강대학원을 철강·에너지소재대학원으로 개편한다.  경북 지역의 의료 환경을 개선하기 위해 공대 최초로 의대를 유치해 ‘의사과학자’를 키운다는 계획도 추진 중에 있다. 포스텍이 앞으로도 명문 사립 공대의 입지를 지킬 수 있을지 관심이 쏠릴 수밖에 없는 시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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