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0억 따로 배정해 놓고 수도권대학과 함께 평가

“왜 준비하느라 여러 사람 밤잠 못 자게 했는지 모르겠다.” “인문사회 분야는 포기하겠다는 뜻이나 마찬가지다.” “지방대학 추가 공고는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밖에 안 된다.” 사업의 실효성을 놓고 처음부터 비판이 많았던 ‘세계수준의 연구중심대학 육성사업’(이하 WCU사업)이 이번에는 평가방식을 둘러싼 잡음에 휩싸였다.

특히 교육과학기술부가 지난 7일 발표한 중간평가 결과 전공·학과신설 과제(1유형)와 개별학자 초빙과제(2유형)에서 전멸하다시피 한 인문사회 분야와 지방단위 사업을 중심으로 반발이 거세지고 있다.

WCU사업 중간평가 결과 1·2유형에서 인문사회는 총 44개 신청과제 중 3개 과제만 1차 국내 전공패널심사를 통과했다. 1유형에서는 단 1개 과제만 살아남았다. 전국단위 사업에서 1유형의 1차 심사 통과율은 평균 46%이지만 인문사회는 9%에 불과하다.

인문사회 중에서도 가장 신청이 몰렸던 금융공학 분야는 5개 대학(6개 과제) 중 서울대 한 곳만 1차 심사를 통과했다. 그러나 서울대는 인문사회 분야가 아니라 자연과학 분야로 ‘금융수학 전공’ 신설을 신청해 1차 심사를 통과한 경우다.

거꾸로 인문사회 분야에서 유일하게 2차 해외 동표평가를 받게 된 성균관대 ‘인터랙션 사이언스 : 인간, 로봇, 컴퓨터, 디지털미디어의 창조적 융합을 위한 과학’은 과제 명칭만 봐도 인문사회보다는 공학 분야에 더 가깝다는 평가다.

교과부는 “인문사회 분야 역시 자연과학이나 공학 분야와 융합해서 새로운 전공이나 학과를 만들라는 게 사업 취지”라고 밝혔지만 인문사회 분야에 신청했다 탈락한 대학들은 “이공계만 육성하겠다는 것 아니냐. 인문사회 홀대가 너무 심하다”라고 비판한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기획처장은 “자연과학은 저명한 SCI급 저널이 많지만 공학은 상대적으로 적고, 인문사회는 더 심하다”며 “연구 실적이나 논문들이 많이 나오는 분야가 있고 적게 나올 수밖에 없는 분야가 있는데 똑같이 계량화해서 평가하는 방식은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1유형에서 자연과학은 14개 신청과제 중 79%(11개)가 2차 평가를 받게 됐지만 공학은 44%(27개 과제 중 12개)만 1차 심사를 통과한 사실이 이를 뒷받침한다는 것.

지방대학들은 전체 사업비 1650억원 가운데 400억원을 지방에 따로 배정해 놓고도 수도권 대학과 같이 평가를 진행했다는 점 때문에 불만이 팽배한 상태다. 1차 심사 결과 경북대와 순천대가 1유형에서 1개 과제씩 선정됐을 뿐 나머지 거점대학들은 ‘전멸’했다. 지방단위 사업은 1차 심사를 통과한 9개(1유형 4개, 2유형 5개) 과제가 모두 최종 선정돼도 예산이 남아 추가 공고가 확정적이다.

김정석 부산대 산학협력단장은 “대학 입시에서 면접 결과 도저히 안 되겠다고 해서 정원 4000명 중 2000명만 뽑았다면 과연 면접을 잘 봤다고 할 수 있겠느냐”며 “지역 대학들의 열악한 여건을 감안해 수도권 대학과는 차별적으로 (평가)해달라고 했는데 반영이 안 됐다”고 말했다.

또 다른 지방 국립대 산학협력단장은 “단시간에 외국 우수학자를 유치하기 힘든 게 현실이고 보면 추가 공고가 나도 기존 신청과제를 보강해서 재신청할 가능성이 높다”며 “돈이 남았는데도 다 뽑지 않고 남겨놨다가 재공고를 하겠다는 것은 일부에서 (사업 실효성을 두고) 예산 낭비라는 지적이 일자 ‘눈 가리고 아웅’하는 것밖에 안 된다”고 비판했다.

중간평가 결과만 놓고 보면 WCU사업도 BK21사업처럼 ‘서울대 몰아주기’라는 불만도 나오고 있다. 서울대는 1유형만 11개 과제가 2차 심사를 받게 됐는데, 이는 1차 통과과제(31개)의 3분의 1이 넘는다. 서울지역 한 사립대 산학협력단 관계자는 “BK21사업과 마찬가지로 서울대, KAIST, 포스텍만 좋은 결과가 나왔다”라며 “처음부터 서울대에 몰아주겠다고 말을 하지 왜 사업 준비하느라 여러 사람 밤잠 못 자게 했는지 모르겠다”고 말했다.

교과부 관계자는 이에 대해 “WCU사업은 기존의 연구지원사업과 달리 이름 그대로 세계 최고 수준으로 성장할 수 있는 과제를 선정해 지원하는 사업”이라며 “지방대학도 현재의 수준을 정확하게 평가해 보자는 뜻에서 수도권 대학과 같은 엄격한 기준을 적용했다”고 말했다. 이 관계자는 “인문사회 분야에 대해서는 최종 심사 결과를 보고 추가공고 여부를 결정할 예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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