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R‧AR‧MR 강의 위해 신입생 320명 전원에게 VR 기기 제공
김무환 총장 “포스텍은 유니버시티(University) 아니라 메타버시티(Meta-versity)”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어두운 조명 아래 학생들의 손가락이 바쁘게 움직인다. 허공을 콕콕 찌르기도 하고 무언가를 집었다가 놓기도 한다. 마치 영화 속에 나오는 최첨단 시스템을 마음대로 조작하는 듯한 제스처다.
포스텍은 지난달 27일 LG연구동 1층 강의실에서 물리학 실험실습강좌에 도입한 가상현실(VR)을 활용한 수업을 공개하고 향후 온라인 강좌에 시도될 다양한 방법들을 소개했다.
코로나19 확산세로 인해 대학들은 정상적인 대면수업을 진행하지 못하는 상황에 놓였다. 다행히 1년이 지나자 각 대학도 비대면 수업에 실시간 화상 수업과 온라인 강좌의 안정화로 수업이 원만하게 진행됐다. 문제는 실험과 실습이었다.
포스텍은 이공계 연구중심대학으로 이 위기를 다른 ‘현실’에서 찾았다. 올해 신입생 320명 전원에게 VR 기기를 제공하며 가상현실에서 수업할 수 있는 환경을 구축했다. 2학점의 물리학 실험 강의에 사용된 VR기기 오큘러스 Quest2를 구매하는데 약 1억 4000만 원에 달하는 적지 않은 예산이 들어갔다. 2학기부터는 증강현실(AR)과 복합현실(MR)을 이용한 수업도 특수 제작 강의실에서 시범 도입한다.
현재 포스텍은 학부생 대상 강의 382개 중 81.2%에 해당하는 310개 수업을 비대면으로 진행하고 있다. 이런 환경에서 실험‧실습수업의 필요성을 인지하고 가상현실을 적극 도입해 수업의 질을 확보한 것이다. 국내‧외 일부 대학에서도 VR기기를 수업에 활용하고 있지만 신입생 전원에게 VR기기를 제공하고 학점을 부여하는 강좌에 적용한 경우는 포스텍이 최초다.
VR 기반 물리학 실험 실습 강의는 조교의 실제 실험과정 360도 카메라로 촬영한 후 가상 시뮬레이션을 만들어 학생들이 체험할 수 있게 한다. VR 기기를 착용하고 자신이 원하는 각도로 실험 과정을 볼 수 있고 온라인의 특성에 맞게 실험 장면을 반복해서 볼 수 있다.
또한 VR은 안전 때문에 체험할 수 없었던 실습도 가능하게 했다. 실례로 원자로를 입체적으로 구현한 화면을 요목조목 구현해 둬 학생들의 호응을 얻었다.
포스텍 첨단원자력공학부에서 학생들을 가르쳤던 김무환 포스텍 총장도 “실제 원자로는 방사선 피폭 때문에 접근할 수 없는 곳이다. 직접 볼 수 있는 기회가 손에 꼽히는데 교수 입장에서 봐도 실제 모습을 잘 구현했다”고 말했다.
지난해 2학기부터 VR 프로젝트를 준비해 해당 수업을 주도적으로 이끄는 김욱성 포스텍 전자전기공학과 교수는 “AR·MR 기반 강의 체계는 강의실에 있는 학생들과 원격 접속한 학생들이 가상의 물체를 활용해 강의를 들을 수 있다”면서 “학생들과 실험 조교, 강의 교수가 서로 다른 장소에 있어도 마치 한 곳에 있는 것처럼 강의 진행이 가능하다”고 설명했다.
포스텍은 VR수업을 진행하기 위해 6개월간 직접 실험에 참여하는 것처럼 생생하게 체험할 수 있는 동영상 확보에 주력했다. 고화질의 360도 카메라로 실제 실험 장면을 촬영했고 강의실에 앉아 있는 것처럼 현미경 등의 실험 기구를 다양한 각도에서 볼 수 있도록 편집 과정에도 여러 기술을 적용했다. 신입생 전원에게 한 대당 40만 원이 넘는 VR기기를 나눠줬다.
VR수업은 기대 이상의 호응을 얻고 있다. 비대면 강의인데도 마치 눈앞에 보는 것처럼 생생하게 실험 장면을 볼 수 있는 데다 원자로와 같은 위험하고 접근하기 어려운 시설도 체험할 수 있어 현장 강의보다 훨씬 낫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자과 석사 2학년 가종현 씨는 “비대면 수업임에도 몰입감이 높아 대면수업 느낌이 든다”고 말했고, 전자과 박사 1년차 박선근 씨는 “코로나19가 끝나도 VR‧AR‧MR 수요가 있을 텐데 이런 강의 콘텐츠를 개발하고 연구하는 것이 연구에 도움이 된다”고 흡족해 했다.
물리학 수업에 VR수업을 도입한 윤건수 포스텍 물리학과 교수는 “비대면 실험 수업이 고도화되면 코로나19 시대에 새로운 교육 패러다임을 만들어 낼 것이다. VR‧AR‧MR기반 수업을 통해 어떤 상황이든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 세계 어디에서든 학생 주도로 학업을 이어나갈 수 있다”고 말했다.
해결해야 할 부분은 콘텐츠 수급이 얼마나 원활히 제공될까 하는 점이다. 김 교수는 “포스텍 학생들은 콘텐츠의 수요자이기도 하지만 개발자이기도 하다”며 “학생들을 대상으로 수업 콘텐츠를 공모하고 해당 수업에서 나온 아이디어를 발전 시켜 우수한 제작사들을 통해 실제 콘텐츠로 구현할 것”이라고 계획을 밝혔다.
포스텍 전자과 박사과정을 밟고 있는 김지형 씨는 “온라인 수업 질은 날이 갈수록 높아지고 있고 스마트폰이나 태블릿을 이용한 온라인 수업은 집중도가 떨어진다. 반면에 VR기기를 활용한 수업은 수업 말고는 다른 활동을 쉽게 할 수 없는 환경을 조성해 집중도가 높다”고 분석했다.
포스텍은 이러한 도전을 ‘메타버시티(Meta-versity)’로 가는 길이라고 봤다. 이는 메타버스와 유니버시티의 합성어다. 김 총장은 “시공간을 뛰어넘어 어디서든 수업하고 연구할 수 있는 환경을 구현할 것이다. 올해는 실험 위주로 콘텐츠를 확장해 나갈 계획이다”고 자신감을 내보였다.
김 총장은 지역 대학의 경쟁력을 확보하려는 도전인가에 대한 질문에 “이는 국내 대학과 실력을 겨루기 위함이 아니다. 국내에서 경쟁하는 시대는 끝났다. ‘지방에 있는 대학이냐 서울에 있는 대학이냐’ 하고 경쟁할 때가 아니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이어 “이제는 외국 유수의 대학에서 비대면으로 졸업장을 주겠다는 시대다. 포스텍의 시도가 새로운 가능성을 제시할 것이라고 본다”고 덧붙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