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통일만큼 한반도 전체 성원이 절절히 염원하면서도 쉽사리 도달하기 어려운 민족적 과제는 없을 것이다. 남북관계의 획기적 진전에도 불구하고 한반도의 통일은 유감스럽지만 여전히 '비현실'이다.
물론 정상회담을 비롯하여 고위급 회담, 이산가족 상봉 및 북한 +국립교향악단의 서울공연에 이르기까지 과거에는 상상조차 못할 남북관계개선의 획기적 전기가 지속적으로 마련되고 있다는 점에는 의문에 여지가 없다. 또한 앞으로 예정되어 있는 국제외교무대에서의 남북대화에도 커다란 기대를 걸어봄직 하다. 이 모든 변화의 징조들은 분명 남북관계가 냉전시대에 걸어 왔던 도정과는 전혀 다른, 일찍이 그 +누구도 밟아 본 적이 없는 신세계로 한민족을 이끌어 나갈 것이라는 낙관적 전망에는 나름의 타당한 근거가 없지 않은 것이다.
분명 오늘의 시점은 민족사적 전환점에 해당할 것이다. 과거의 역사가 +가르쳐주듯이 민족의 격변기에는 뜨거운 의지와 힘있는 열정이 요구되는 것만큼이나 차가운 지성과 신중한 사려가 반드시 필요하다. 민족의 역량을결정하는 두 가지 요소가 어느 정도 균형을 이룰 때 비로소 우리는 +새로운 시대를 개척해 나갈 수 있다. 이것이 다가올 통일시대를 +준비하려는 남북한 지도자와 국민들이 기억해야 할 역사의 교훈이다.
새로운 시대는 새로운 사고를 요구한다. 만약 우리가 아직까지 통일을 단일국가의 수립이라는 20세기의 틀 속에서만 상상하고 있다면, 앞서 지적한 것처럼 여전히 통일은 멀기만 하다.
현재의 조건에서 중앙집권적 국가권력을 전제로 하는 단일국민국가(nation state)의 형성은 다음의 세 가지 가운데 어느 하나의 현실화될 때만 가능할 것이다.
첫째, 남북한의 협상을 통해 단일국가로 합의하는 방법, 둘째, 내전 혹은 내부의 모순에 의해 어느 한 국가가 붕괴하여 다른 한 국가로 흡수되는 +방법, 셋째, 두 국가가 동시에 붕괴하여 새로운 국가를 구성하는 방법이 그것이다.
이 가운데 두 번째와 세 번째의 방법은 현상유지보다도 바람직하지 않은 또 다른 형태의 민족적 비극으로 귀결될 가능성이 높다. 첫 번째의 방법이 가장 바람직하다는 점은 의심의 여지가 없지만, 현실적으로 전쟁에 의해 점령당하지 않는 한 누가 자신의 체제와 이념을 상대방에게 양보할 수 있을지 의문이 아닐 수 없다. 다시 말하면, 단일국가수립과 통일을 동일시하는 인식의 지평 아래에서는 역설적으로 통일이 불가능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통일과 단일국가수립을 분리하여 이해하는 인식의 확산은 민족공동의 이익을 추구하기 위해서 필수 불가결한 작업이다. 작금의 +현실에서 민족의 공존·공영의 정신을 바탕으로 한 남북 상호간의 장기간에 걸친 교류, 협력과 평화공존을 통한 민족공동체의 형성은 남북관계 개선의 최대목표라고 할 수 있다.
단일국가 수립을 전제로 한 통일은 장기간에 걸친 화해와 협력의 산물로서 경제공동체와 다자간 안보공동체 형성을 중심으로 한 국가연합의 형성 이후에 발전적 형태로 제기될 수 있는 이상적 목표이지 민족적 당위나 +역사적 필연은 아닌 것이다.
어쩌면 민족공동체 형성을 지향하는 이 새로운 통일론은 세계화의 압력이 거세어지고 있는 오늘날 남과 북이 '공존'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인지 +모른다. 이제야 말로 통일논의의 발상을 전환할 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