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2년 1월 1일부터 임용기간, 근무조건, 연봉을 계약으로 정하는 교육부의 '교수계약제 임 용 및 연봉제 실시' 의무화 방침에 따라 교수사회가 연봉제 준비로 때아닌 몸살을 앓고 있다.

연봉제는 전임강사 이상 모든 교수에게 적용하고 연봉은 직급 및 호봉에 따른 기준 연령과 업적평가에 따른 성과 연봉을 합해 산정하도록 되어 있다. 그리고, 직급에 관계없이 신규 임 용 교수는 3년 이내에 기간을 정해 임용하고 정교수 가운데 일정 비율 이내에서 공개 전형 을 통해 대학이 자율적으로 '정년보장교수'를 임용토록 하고 있다.

교육부는 이들을 대학교수 사회의 경쟁력을 고양할 수 있는 새로운 제도로 내세우면서 끊임없는 학문 탐구와 건전한 경쟁 풍토를 창출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과연 대학교수의 창의적 이고 생산적인 교육활동이 적자생존의 논리를 바탕으로 크게 향상될 수 있고 교육 투자의 효율성과 능률성이 획기적으로 증대될 수 있을까. 학문은 이윤 추구만을 목적으로 하는 기 업과는 그 궤를 달리하기 때문에 창의적인 학문 활동이 임금을 올리는 성과급에 의해 증진될 수는 없다. 오히려, 이들 제도는 교육부와 사학재단에 의해 교수들에 대한 통제 수단으로 악용될 소지가 더 많다는 데에 문제의 심각성이 있다.

다시 말해서, 연봉제는 아무리 교수가 우수한 강의와 연구 실적을 쌓았다고 해도 그것이 대 학당국이 추구하는 목적과 불일치하다면 그것을 철저히 무시하고 도태시킬 수 있는 제도이 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교육부와 사학재단은 교수들의 저항에 반하여 그들의 정책이나 제도를 관철시키고자 할 때 언제든지 연봉제를 무기로 삼을 수 있다.

이와 같은 과정에 서 그들의 뜻을 잘 알고 따르는 극소수의 교수들은 고액 연봉을 받는 스타 교수로 탄생하겠 지만, 그렇지 못한 대다수의 교수들은 학문과 교육자의 길을 택한 것이 돈벌이 때문이 아님 에도 불구하고 평균 이하의 연봉을 받으면서 명예와 위신마저 실추 당하는 고통을 감내해야 할 것이다. 결국, 교수들은 봉급 인상이나 승진과 직결되는 활동에만 촉각을 세우고 학교와 학과를 위한 서비스 차원의 일은 필사코 외면하는 이중적 태도를 갖게 될 것이다.

그렇다면 연봉제가 대학에서 제대로 정착되기 위한 최소한의 전제 조건은 무엇일까.첫째, 정부와 교육당국 차원에서 교수 시장 형성을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어야 한다. 즉, 타 대학 출신의 교수를 임용하거나 본 대학 교수가 타대학으로 자유롭게 옮겨갈 수 있는 자 유 이동의 기회가 보장되어야 한다. 한번 자리를 잡으면 평생 직장으로 삼을 수밖에 없는 현재와 같은 상황과 구조하에서의 연봉제는 교수를 옥죄는 또 다른 수단이 될 가능성이 높 다.

둘째, 임용권자와 교수가 대등한 계약 당사자로서 합리적으로 계약을 맺을 수 있는 풍토가 선행되어야 하며 계약이 공정성을 잃었을 경우, 그 피해를 중재하고 구제해 줄 수 있는 법 적·제도적 장치가 확보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거의 모든 대학에서 현재 임의 단체로 설치 운영중인 교수협의회나 평의회를 정식 의결기구로 합법화해야 한다. 이것이 현실적으로 어 려울 경우에는 집행부 대표와 교수 대표가 참여하는 사법부와 같은 독립성을 갖는 「중재위 원회」를 대학 내에 의무적으로 반드시 설치해야 한다.

세째, 전문 행정인의 양성이 제도화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우리 나라 대학의 관행상 '돌아가면서 하기'식인 2년 임기제의 학과장, 학부장, 학장에게는 실권이 없다. 그리고 인사권 등 실 권이 집중되어 있는 총장이나 이사장은 실제로 모든 교수들의 일상 활동을 세세히 알 도리 또한 없다. 이런 풍토에서 교수업적평가를 전제로 한 연봉제가 도입된다면 대학 당국과 일 반 교수 사이에 불화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이런 딜레마를 해결하려면 연봉제에 앞서 학과장, 학부장, 학장을 전문 행정인으로 적극 양성해야 한다. 전문 행정인은 행정 능력에 자신이 생길 것이며 스스로 행정인으로서 평가받는 모범을 보일 것이다.

결국, 연봉제가 도입된다는 것은 대학 개혁을 위해 교수사회에서도 명실상부한 경쟁메커니 즘이 형성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대학에서의 연봉제와 같은 경쟁메커니즘이 도입될 경우 교 수의 교육열이 높아지고 연구 실적이 향상되는 등의 '과도기적 특효'를 낼 수도 있겠지만 교수간의 경쟁심을 부추겨 자칫 연공 서열적 질서는 물론 교수 상호 간에 협력 관계를 파괴 하고, 개혁에 대한 반발심만 증폭시키는 역기능을 촉발할 가능성은 그보다 훨씬 높다는 사 실을 교육부와 대학 관계자들은 곱씹고 또 곱씹어야 한다.

저작권자 © 한국대학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