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정악화·각종 규제·대학 평가 등 3중고 앓는 대학
19대 대선 이어 20대 대선에서도 ‘교육부 폐지’ 목소리
새 정부마다 흔들리는 대입제도·통제와 규제 중심 정책
전문가들 “신뢰 잃은 교육부 차기 정부에서 변화 필요”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고등교육 위기극복과 재정확충 방안 마련 공청회’에 참석한 대학 총장과 정종철 교육부 차관.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지난 5월 국회에서 열린 ‘고등교육 위기극복과 재정확충 방안 마련 공청회’에 참석한 대학 총장과 정종철 교육부 차관.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한국대학신문 이지희 기자] 높은 파고에 맞서 대한민국 교육의 항로는 어느 곳을 향하고 있나. 과감한 개혁과 혁신을 목표로 나아가야 할 대학 교육의 미래는 당장의 평가와 규제, 재정적 위기라는 폭풍 속에 갈 길을 잃어버렸다. 나침반 역할을 해야 할 교육부의 모습은 찾아보기 어렵다.

대학은 현재 열악한 재정, 코로나19 영향, 학령인구 감소라는 3중고의 위기 상황에 처해있다. 과거 대학의 어려움은 대학 자체의 위기관리에 영향을 받았다. 재단과 법인의 비리 등 일부 대학의 부정·비리로 인한 제재, 구성원의 반발과 이탈에 문을 닫는 경우가 그것이다. 그러나 이제 대학은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라는 변수의 등장으로 미래를 장담할 수 없게 돼 버렸다.

외부 변인은 재정적으로 취약한 대학에 더 큰 타격을 입힐 수밖에 없다. 13년간 이어진 등록금 동결, 신입생의 급감, 유학생 단절 등 재원 마련이 시급한 지방대는 어려움이 가속화되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교육계는 정부의 재정지원이 시급하다고 입을 모은다.

우리나라 대학 경쟁력은 약화되는 추세다. 2011년 IMD(국제경영개발연구원) 평가에서 39위를 차지했던 한국은 2019년 그 순위가 55위로 16단계나 하락했다. 전문가들은 그 이유로 재정여건 악화에 따른 교육의 질 저하를 꼽는다.

GDP 규모가 세계 11위권에 속하는 한국의 대학생 1인당 공교육비 수준은 29위 수준이다. OECD 평균 고등 공교육비 비율은 평균 1%이지만 한국은 0.6%에 그친다. 고등교육에 대한 정부의 투자는 낮은 반면 민간이 높게 부담을 하고 있기 때문이다. 고등교육 예산 중 국립대에 대한 운영·지원이나 국가장학금을 제외하면 실질적으로 대학에 지원되는 재정 규모는 매우 열악하다.

■ 교육부 폐지론 불붙인 19대 대선… 20대 대선에서도 데자뷔= 역설적이게도 대학 교육의 위기를 논하는 상황 속에서 등장한 가장 뜨거운 이슈는 ‘교육부 폐지론’이다. 교육부가 역할을 제대로 하고 있지 못하다는 지적에 따른 것이다. 19대 대선에 이어 20대 대선에서도 ‘교육부 폐지’가 반복됐다.

여권의 대선 후보로 나섰던 정세균 전 총리는 교육분야의 주요 공약으로 ‘교육부 폐지’를 앞세웠다.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법이 통과된 만큼 교육부의 역할을 일정부분 국가교육위원회로 이양한다는 취지이지만 그 이면에는 정권에 따라 달라지는 교육 정책에 대한 문제의식이 깔려있었다. 교육부는 폐지하되 인재혁신부를 신설하고 시도교육청이 유·초·중등 교육을 전담하는 방식이다.

특히 지난 19대 대선에서는 여러 후보들이 교육부 무용론을 외치며 교육 개혁을 외쳤다. 일부 대선 후보는 ‘교육부 폐지론’을 강력히 주장했다. 문재인, 홍준표, 안철수 후보의 교육부 공약은 제각각이었지만 ‘교육부, 이대로는 안 된다’는 개혁적 인식은 공통점을 보였다.

가장 강력한 드라이브를 건 후보는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였다. 안 후보는 교육부 폐지와 국가교육위원회 신설을 공약으로 내세웠다. 안 후보는 2017년 국회 교섭단체 대표연설에서 “지금의 교육부는 ‘교육통제부’”라며 “교육부가 주도적으로 결정하고 말 잘 듣는 대학에 돈을 주는 형태로 정책을 운영한다. 교육통제부는 폐지하는 것이 맞다”고 교육부 폐지를 강력히 주장했다.

문재인 당시 더불어민주당 후보는 교육부 폐지를 언급하지는 않았지만 교육의 개혁이 필요하다는 데는 인식을 같이하면서 대통령직속 자문기구 국가교육회의 설치와 국가교육위원회 설치를 약속했다. 2018년 3월 교육공약 발표 당시 “초중등 교육은 시도교육청에 완전히 넘기고 학교단위 자체기구도 제도화 하겠다”고 교육부 역할 분권화를 대안으로 제시했다. 홍준표 자유한국당 후보는 교육부는 존치하되 교육부의 기능은 조정하겠다고 밝혔다.

문재인 대통령의 당선으로 당장 교육부 폐지는 이뤄지지 않았다. 대대적인 교육부의 역할 조정과 개혁을 강조했던 문재인 정부에서도 교육부는 여전히 그 위상을 이어가면서 또 다시 ‘교육부 폐지론’의 빌미를 내줬다.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에서 미선정 된 대학 총장들이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에서 미선정 된 대학 총장들이 세종정부청사 앞에서 피켓 시위를 하고 있다. (사진= 한국대학신문 DB)

■ 반복되는 ‘교육부 폐지론’… 배경은 어디에= 이처럼 반복되는 ‘교육부 폐지’ 연가는 교육부의 역할론 부재에서 기인한다. ‘대학의 자율’을 앞세우는 교육부이지만 고등교육에 대한 정책 기조는 여전히 ‘살릴 대학만 살린다’는 방향으로 가고 있다. 지난 9월 발표한 2021년 대학 기본역량진단 결과에 따라 73%의 대학만이 정부의 일반재정지원을 받게 됐다. 52곳이 일반재정지원을 받지 못하는 것뿐만 아니라 지원을 받는 대학 역시 ‘강도 높은 적정 규모화’를 추진해야 한다.

이에 한국대학교육협의회는 “회생 불가능하거나 도덕성을 결여한 극소수의 한계대학에 국한하자던 대학 공동체의 한결같은 요구와 기대와는 달리 건전하고 회생 가능성이 높은 대학마저 권역별 줄 세우기에 입각해 이분법적 처분을 내렸다”면서 “대학의 앞길을 정치적 단견과 예산상 논리로 이분화했다”고 규탄의 목소리를 냈다.

대입제도 역시 정부가 바뀔 때마다 휘청거리는 정책 중 하나다. 문재인 정부는 초기부터 수시 확대, 정시 축소 기조를 분명히 했다. 그러나 각종 입시 부정으로 수시 확대에 대한 부정적인 목소리가 높아지자 돌연 정시 확대에 나섰고 서울 주요 대학에 정시 비중을 높이라고 요구했다. 이는 내년 시행될 고교학점제와의 충돌로도 이어질 수밖에 없다. 교육 정책에 있어 중심을 잡아야 할 교육부의 역할론에 힘이 빠지는 지점이다.

국가교육위원회의 신설로 교육부의 역할이 애매해진 탓도 있다. 내년 7월 신설되는 국가교육위원회의 주요 소관 업무는 국가교육발전계획 수립, 국가교육과정의 기준 내용 수립·고시, 교육정책 수립을 위한 국민 참여 등 상시적 공론화 시스템 구축 등 크게 세 가지다. 교육부도 초·중등 분야는 본격적으로 시도교육청으로 이양하고 향후 고등교육과 평생(직업)교육, 미래인재양성 등에 더 집중하겠다고 밝혔다.

다만 전문가들은 “예산, 부처, 정책이 다 연결 된 상태에서 업무를 무 자르듯 구분하기는 어렵다”며 역할 분리에 회의적인 의견을 보였다.

예산 싸움에서도 “고등교육에 재정 확대는 어렵다”는 기획재정부의 논리에 늘 밀리고 있다. 기재부의 교육 예산 절감 논리에는 학령인구 감소라는 전제가 깔려있다. 학령인구가 감소하기 때문에 투자도 줄여야 한다는 이유다. 초·중등 분야는 지방교육재정교부금법에 따라 자동적으로 내국세의 20.8%와 교육세 일부로 책정되지만 고등교육분야는 교육부가 편성하는 예산에 좌지우지된다. 그러나 이마저도 “사학에 공적재원을 투입할 수 없다”는 기재부 제동에 걸려 번번이 예산 삭감으로 이어진다.

■ 차기 정부에서의 교육부는 어떤 역할 해야할까= ‘교육부 무용론’ 혹은 ‘교육부 폐지론’의 기저에는 교육부의 제대로 된 역할이 필요하다는 교육계의 인식이 깔려있다. 또 다시 이와 같은 의제가 테이블에 오르지 않기 위해서는 차기 정부에서 교육부의 역할이 중요해 보인다.

유기홍 더불어민주당 교육특별위원회 위원장은 본지와의 인터뷰에서 교육부-국가교육위원회-시도교육청의 3자 정립 구조 정착을 강조했다. 유 위원장은 “고등교육의 위기상황에서 대책 마련으로 나온 것이 국가교육위원회”라며 “이 세 기관의 구조가 정착되기 위해 그 작업을 계속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전문가들도 당장 교육부의 변화는 크지 않을 것이라고 예상한다. 황홍규 전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사무총장은 “국가교육위원회가 신설되더라도 법적으로 확실한 역할을 하는 것은 교육과정에 관한 내용”이라며 “초·중등 교육과정 개편을 제외하고는 특별한 변화는 없을 것이다. 대부분의 정책에는 예산이 수반돼야 하기 때문에 그 역할은 결국 교육부가 하게 될 수밖에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다만 향후 교육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변화가 필요하다는 점을 강조했다. 황 전 사무총장은 “지금의 교육부 기능이 관리와 통제의 방향으로 가고 있다는 것은 분명한 사실”이라면서 “시대 상황에 맞는 그림을 그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예컨대 고등교육 정책과 평생교육 정책이 따로 가는 방향 등에 있어서 대학의 열린 교육 과정을 개설하는 등 개방적이고 유연한 제도적 변화가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수도 교육부 존립 필요성은 강조하면서도 변화를 촉구했다. 박 교수는 “신설되는 국가교육위원회가 큰 정책의 흐름을 정한다고 하더라도 직접 집행할 순 없으며 그에 따른 예산도 없다”면서 “세부 집행을 위한 하위 정책을 수립하는 것이 중요한데 결국 그 역할은 교육부가 할 수밖에 없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차기 정부에서 교육부의 역할에 대해서는 자성이 필요하다는 의견도 나왔다. 규제 일변도의 정책이 많다는 것이다. 박 교수는 “단순히 기재부 탓을 할 것이 아니라 교육부가 잘 못하고 있는 것은 없는지 스스로 돌아봐야 한다”며 “대학에 지원은 하되 그에 따른 문제나 불만을 완화시킬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결국 가장 중요한 것은 정부의 의지다. 대부분 교육부 장관에 정치인을 내세웠다”며 “국가교육위원회가 신설되니 정치적인 사람보다 교육의 방향을 잘 알고 챙길 장관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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