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에 불어온 메타버스 바람, 다양한 범주로 활용되는 저력 보여
메타버스 전문인력 양성하고자 하는 움직임도 활발
‘기술결정론’에 휘둘리지 말고 ‘디지털 디바이드’ 대응해야

영산대 패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메타버스에 구현된 모닥불 앞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사용해 춤을추고 있다. (사진 = 영산대)
영산대 패션디자인학과 학생들이 메타버스에 구현된 모닥불 앞에서 자신의 캐릭터를 사용해 춤을추고 있다. (사진 = 영산대)

[한국대학신문 허정윤 기자] 수업을 마친 학생들이 모닥불 앞에 모여 춤을 춘다. 백일장에 참석하기 위해 모인 세계 각국 외국인 유학생들이 제시어를 받아들고 진지하게 작문에 임한다. 가고 싶은 기업의 정보를 알기 위해 ‘상담 카드’를 작성해 전송하고 질의응답 세션에 참여해 질문을 던진다. 이 모든 일이 ‘메타버스(Metaverse)’에서 일어나는 일상들이다.

추석 명절 이후 코로나19 신규 추가 확진이 최대 인원을 경신하고 있는 가운데 대학들의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대면수업에 대한 갈망이 있는 학생이 있는가 하면 이제는 비대면수업이 더 익숙하고 수업 효과도 좋다고 여기는 학생들도 많아졌기 때문이다. 코로나19가 ‘처음’에서 ‘일상’이 된 지금, 대면수업과 비대면수업의 장점을 아우를 플랫폼으로 메타버스를 선택하는 대학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는 상황이 도래한 것이다.

■ 메타버스 활용 수업 늘리고 전문 인력 양성에도 박차 가하는 대학가 =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범위는 시간이 갈수록 넓어지고 있다. 입학식‧졸업식‧축제 등 단기 이벤트에 국한됐던 올해 초와 달리 하반기에는 메타버스로 정규 수업을 진행하는 대학들이 속속 등장했다. 더 나아가 관련 석‧박사 과정까지 운영하려는 대학까지 생겼다. 

영산대는 패션디자인학을 가르치기 위해 메타버스를 활용했다. ‘SW융합교과 쇼핑몰앱스토어’ 강의를 메타버스로 옮긴 김지형 패션디자인학과 교수는 “메타버스 플렛폼 종류도 여러 가지라 어떤 메타버스를 이용할지 검토해야했다”면서 “대표적으로 비교한 플랫폼이 제페토(ZEPETO)와 이프랜드(ifland), 수업 활용도 측면에서는 이프랜드가 더 적합하다고 판단했다”고 말했다.

두 플랫폼은 쌍방향 소통을 제공하지만 △수용 가능 인원 △맵(방) 개설 난이도 △창작자 참여 가능 콘텐츠 여부 △메타버스 내 외부 데이터 활용 가능 등에서 차이점을 보인다. 김 교수는 “제페토가 사용자의 개성을 더 돋보이게 하는 기능들이 많지만 이프랜드의 수용 인원이 131명인 반면에 제페토는 16명밖에 안돼 해당 수업에는 적합하지 않았다”며 “수업을 위한 자료들을 학생들에게 보여주고 토론식 수업을 해야 했는데 제페토는 외부 데이터 활용을 할 수 없어 최종적으로 학생들과는 이프랜드에 만든 강의실에서 만났다”고 설명했다.

‘SW융합교과 쇼핑몰앱스토어’는 메타버스 내 대형 스크린으로 수업자료를 전송하고 학생들이 각자의 ‘부캐릭터’를 가지고 음성으로 질문을 던지고 토론하는 등의 방식으로 진행됐다. 김 교수는 “팬데믹 초창기 줌(zoom)을 사용한 화상 수업도 여전히 실용성이 높지만 자신의 얼굴을 직접 보이지 않고 ‘부캐’로 활동하게 되면 학생 본인이 생각하는 자신의 개성을 구현해 볼 수 있는 경험도 해볼 수 있고 질의응답도 더 활발히 이뤄지는 현상을 목격했다”고 말했다.

대학들은 단계적으로 메타버스에 접근하려고 노력하고 있는 모습이다. 광운대는 메타버스를 활용한 수업을 대폭 늘리기 위해 교내 교수들을 대상으로 메타버스에서 수업할 교수를 모집하는 공문을 띄웠다. 그 결과 총 34명의 교수가 관심을 보여 오는 25일부터는 교과목 43개가 메타버스에서 진행될 예정이다.

광운대에서 메타버스 수업관련 업무를 맡은 한 실무자는 “평소에도 교수학습개발에 관심 있는 교수들이 많이 참석했다”며 “여러 시행착오가 있을지도 모르지만 과정을 통해 노하우를 체득하고 잘 된 교수법을 공유할 예정”이라며 기대감을 보였다. 이어 “메타버스를 활용한다는 게 달라진 것이지 가장 중요한 건 ‘수업설계’”라며 교수자의 중요도가 훨씬 높아질 것이라고 내다봤다.

메타버스에 캠퍼스 강의실을 구현한 광운대 (사진 = 광운대)
메타버스에 캠퍼스 강의실을 구현한 광운대 (사진 = 광운대)

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은 메타버스 산업 자체에 투입될 인재를 기르겠다는 포부를 가지고 그 시작을 알렸다. 서강대 메타버스전문대학원은 기존의 서강대 영상대학원이 명칭을 변경하며 개원했다. 메타버스전문대학원이 운영하는 전공으로는 △메타버스비즈니스전공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전공 △메타버스테크놀로지전공 등이 있다. 메타버스비즈니스전공과 메타버스엔터테인먼트전공은 학위과정에 따라 ‘메타버스학석사’와 ‘메타버스학박사’를 취득할 수 있으며 메타버스테크놀로지전공은 ‘공학석사’와 ‘공학박사’를 취득할 수 있도록 했다.

현대원 서강대 메타버스대학원장은 “영상대학원 설립 시절을 생각해보면 영상‧방송산업 인력이 많이 필요했던 때였고, 영상대학원은 산업의 변화와 확장에 맞춰 전문 인력을 배출하는 곳이었다”고 설명했다. 현대원 대학원장은 “결국 산업 현장에서 말하는 ‘구직난’은 메타버스 기술 개발과 메타버스 기반 콘텐츠를 만들 ‘전문 인력’의 부족이다. 지금의 학부 수준의 대학교육이 산업계의 수요를 맞추기는 쉽지 않은 상황”이라고 분석했다. 그는 “석‧박사 과정을 거친 전문 인력들이 산업과 학문의 격차를 줄이고 메타버스를 통해 미래 고부가가치 창출을 꾀할 수 있도록 현장밀착형 수업을 해나갈 것”이라고 포부를 전했다.

■“메타버스, 우리도 하고 싶지만”… 갈피 못 잡는 대학들, 변화 속에서 ‘교육’으로 중심 잡아야 = 메타버스를 이용해 교육 혁신을 꾀하려는 수많은 도전 속에서도 정의조차 모호한 대학들도 여전히 공존하고 있다. 일부 대학에서는 메타버스를 구현해 보고 싶지만 이를 위해 들어갈 비용이 가늠되지 않는다는 푸념도 나온다.

대학 현장에서 “메타버스로 캠퍼스를 구축하는 비용이 총 얼마나 들까?”라는 질문이 심심찮게 들려온다. A대학 관계자는 “메타버스 업체에 수주를 맡겨 캠퍼스를 구현‧운영한 모 대학에 운영 방법과 사용 비용을 물어보니 정확히 말해주지도 않을뿐더러 대략적으로 1억 원이상 들었다는 답변만 받았다”고 말했다. 

B대학 홍보실 관계자는 “많은 대학이 어떤 형태로든 메타버스 활용을 시도하는 것을 보고 ‘돈을 얼마 줄 테니 만들어 와라’는 식의 지시가 내려온다”며 “메타버스가 대세인 건 인정하지만 메타버스에 대한 이해도 없는 상황에서 지원 없이 그저 예산만 편성하면 다 되는 줄 아는 것 같다. 정해진 협력부서도 명확하게 없다”고 어려움을 토로했다.

앞서 메타버스를 활용한 다양한 시도를 소개했지만 이렇게 메타버스 그 자체를 플랫폼으로밖에 이해하지 못하는 경우도 부지기수다.

우운택 KAIST 문화기술대학원 원장은 “메타버스를 단순한 ‘디지털 공간’의 의미로만 받아들여서 생기는 문제들이 많다”며 “메타버스는 가상으로 증강된 현실과 실제 현실을 연동해 융합을 실현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즉 비용문제를 고민하는 대학들도 결국 기술적으로 메타버스에 캠퍼스나 수업 공간을 구현하는 데 집중하고 있어서 고민이 깊어진다는 말로도 해석 가능하다. 실제로 메타버스에서 캐릭터나 공간을 주문제작 하려면 가격이 비싸진다. 여기에 공간을 유지‧보수하는 비용도 추가 발생하게 된다.

원종원 순천향대 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는 “대학들이 ‘기술결정론’에 빠지지 않길 바란다”며 “메타버스를 활용하더라도 결국 사람이 하는 일이라는 것을 기억하고 학생들과 정서적으로 어떻게 교류할지, 어떤 수업을 어떻게 하면 교육적 효과를 높일 수 있을지 연구하는 자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현대원 서강대 메타버스 대학원장은 메타버스로의 흐름은 결코 유행이 아니고 ‘패러다임’이라고 판단했다. 현 대학원장은 “‘유행’에 뒤처진다고 생각하면 조바심으로 일을 진행하게 된다”며 “당장 메타버스 업체를 섭외하고 급하게 메타버스 콘텐츠를 개발하는데 천착할 게 아니라 중‧장기적인 호흡으로 제대로 준비하는 게 중요하다”고 조언했다.

다만 현 원장은 ‘메타버스 디바이드’ 현상이 심각한 격차를 만들 수 있다고도 우려했다. 노력해도 점점 소외될 수밖에 없는 상황이 ‘디지털 디바이드’ 때처럼 생길 수도 있다는 의미다. 현 원장은 “메타버스로 발생한 간극을 줄이기 위해 교육이나 훈련이 필요한 시기가 올 것”이라며 “이런 작업은 추후에 정부 차원에서 이뤄져야 할 수도 있다”고 내다봤다.

[인터뷰] “메타버스=도구, 결국 대학에서 어떻게 활용할 것인지가 중요”

원종원 브랜드전략실장과 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취재기자 (사진 = 허정윤 기자)
원종원 브랜드전략실장과 줌 인터뷰를 하고 있는 취재기자 (사진 = 허정윤 기자)

“‘처음’이 어렵죠. 그래도 대학 구성원들과 ‘함께’ 해보니 보람이 있습니다. ‘발상의 전환’에 대해서 고민하고 콘텐츠까지 제작하다 보니 다시 현장 PD가 된 느낌마저 듭니다.”

원종원 순천향대 브랜드전략실장(미디어 커뮤니케이션학과 교수)은 코로나19 속에서도 순천향대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알리고 ‘교육 잘하는 대학’으로 만들지 고민하고 있다. 그는 요즘 들어 “대학에서 어떻게 메타버스를 활용해야 하나요?”, “어디서부터 메타버스를 시작해야 하나요?” 등의 질문을 자주 듣는다. 순천향대가 올해 3월 ‘메타버스 입학식’을 통해 대학의 메타버스 활용 가능성을 처음으로 선보인 곳이기도 하고 그 이후에도 다양한 메타버스 콘텐츠를 활용해오고 있기 때문이다. 본지는 원 실장에게 어떻게 순천향대가 ‘메타버스의 길’을 걷게 됐는지 물었다.

- 메타버스를 대학 환경에 도입하겠다는 생각을 어떻게 떠올리게 된 건가?
“코로나19 전에도 대학 전반에 기술을 어떻게 도입할지 꾸준히 고민해왔다. 정확히 메타버스를 준비했다기보다 융합적인 사고를 하려고 노력했다고나 할까. 처음에는 캠퍼스를 360도로 구석구석 촬영해 콘텐츠로 만들고 증강현실(VR) 헤드마운트디스플레이(HMD)로 볼 수 있도록 키트를 학생 모두에게 제공했다. 그러다가 입학식도 해볼 수 있지 않겠냐는 의견이 나왔고 쌍방향 소통 체계를 갖춘 플랫폼을 찾게 됐다. 공동작업으로 메타버스 환경을 구현할 기술업체를 찾았고 SKT ‘이프랜드(if-land)’(당시는 점프VR)와 협업했다. 순천향대가 가지고 있는 자부심은 이런 콘텐츠 아이디어가 기업에서 대학으로 제시된 게 아니라 대학이 먼저 시도했다는 점에 있다.”

- 메타버스를 활용하려는 대학들에 빠지지 않는 고민 중 하나가 비용 문제다. 
“메타버스로 캠퍼스를 어느 정도로 구현할지 또 어떤 업체와 진행할지에 따라 비용은 천차만별이다. 하지만 결국 업체는 구현해줄 뿐 기획은 대학의 몫이다. 또 메타버스에서 공유될 콘텐츠에 대한 비용도 생각할 수밖에 없다. 순천향대는 콘텐츠 기획 관련 실무에서 실력을 쌓은 교수들이 많다. 뮤지컬‧공연연출가로 명성이 자자한 김규종 교수나 프로덕션까지 운영 중인 김석호 겸임교수 같은 분들이 창작에 힘을 보태줬기 때문에 비용이 많이 절감됐다. 또 기존에 대학 부처들이 가지고 있던 예산과 대학혁신지원사업의 일부를 기획 성격에 맞게 사용했다. 메타버스만을 위한 예산을 추가로 지정하는 방법은 지양하는 편이다.”

메타버스에서 피닉스 열린강좌를 진행한 순천향대 (사진 = 순천향대)
메타버스에서 피닉스 열린강좌를 진행한 순천향대 (사진 = 순천향대)

- 메타버스를 위한 별도조직이 있나?
“없다. 오히려 조직을 만들었다면 이렇게 메타버스를 활용하지 못했을 것 같다. 교무처, 브랜드홍보실, 입학처, 학생처 등이 모여 콘텐츠 기획위한 회의를 진행하는 정도였다. 담당처장과 실무 교직원들이 자유롭게 아이디어를 제시하고 그중에서 발상의 전환이 실현된 좋은 아이디어를 수용하고 접목하는 작업을 꾸준히 했다. 메타버스가 무엇인지 공부하시는 시간도 함께 가졌고 그 필요성에 대해 모두가 공감했다. 하지만 무엇보다도 서로에게 일을 미루지 않고 ‘협업’하는 것이 중요하다.” 

- 메타버스를 활용하는 기획을 할 때 가장 중점을 두는 부분이 있다면?
“메타버스를 통해 다양한 체험을 할 수 있도록 돕고 궁극적으로는 그 안에서 학생들 스스로가 메타버스에서 새로운 시도를 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게 목표다. 학생들이 메타버스에 적응하는 것에 대해 걱정을 하지는 않았다. 대학은 메타버스 공간을 지속해서 활용할 수 있도록 정확한 콘텐츠를 제공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도구’는 죄가 없다. 메타버스를 도구로 활용하는 사람의 창의력이 핵심이다.”

- 마지막으로 다른 대학에 ‘메타버스 운영 팁’을 준다면?
“늘 학생들과 함께하길 바란다. 대학이 콘텐츠를 만들어서 학생들에게 제공하는 것을 전부로 생각하는 시대는 지났다. 기성세대의 정체된 사고로는 그들의 아이디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자. 서로가 가진 장점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방법을 찾는 고민을 한다면 충분히 위기를 기회로 바꿀 수 있으리라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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