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재희 서강대 교수
서강대학교 가브리엘관 2층은 메리홀과 외부로 연결돼 있고 2층 현관을 나가면 정면에 위풍당당한 나무가 한 그루 있다. 학부 시절, 동기 그리고 선·후배들과 담배도 피고 커피도 마시면서 얘기를 나누던 장소였다. 졸업 사진을 보면 그 나무 바로 아래에서 꽃다발을 들고 서 있는 28년 전의 나를 볼 수 있다. 환경에 대한 관심이 생기면서 내 주변의 나무들을 하나씩 알아가는 동안 사진 속의 그 나무가 ‘메타세쿼이아’라는 나무임을 알게 됐고 현재 살고 있는 아파트 단지에서 가장 큰 나무들 또한 메타세쿼이아인 것을 알게 됐다.
학교 주변을 관찰하는 과정에서 한 가지 흥미로운 점을 발견하게 됐는데 가브리엘관과 메리홀 사이의 벽돌 길이 울퉁불퉁하고 나무 바로 밑 벤치 옆의 벽에 금이 갔으며 계단도 한쪽이 솟아오르면서 기울었다는 점이다. 메타세쿼이아가 자라면서 뿌리가 굵어지고 땅 밖으로 나오면서 나무 근처가 울퉁불퉁해 진 것이다. 얼핏 보면 불균형한 바닥이 흉하게 보일 수 있지만 조금만 떨어져서 나무와 함께 바라보면 ‘어우러짐’과 ‘경이로움’을 느낄 수 있다.
주변을 바라보기 시작한 것은 환경 문제에 대해 예전부터 관심이 많았기 때문일 수도 있지만 그보다 근본적인 이유를 생각해 보면 ‘향수’라고 볼 수 있다. 어릴 적 시골에서 살았고 자연에서 친구들과 뒹굴면서 자랐기 때문에 자연은 내 기억속에 엄연히 큰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가장 일차원적인지만 강력한 지식 습득의 방법은 직접 경험이며 어릴 적 자연에 대한 나의 경험은 내가 왜 환경을 보존하는 데 행동해야 되는가에 당위성을 부여한다. 이에 아마도 비슷한 배경에서 자랐던 사람들은 환경 보존의 필요성을 이해하는 데 어려움이 상대적으로 적을 것이다.
하지만 벤 윌슨이 ‘메트로폴리스’에서 지적하듯이 인류의 역사에서 도시화는 인류 문명을 발전시키고 현대 사회까지 이끌어 오는 데 큰 역할을 해왔고 사람들은 도시로 끊임없이 이동하면서 자연으로부터 멀어져 왔다. 지금은 애써 시간을 내서 자연을 찾아야만 잠시나마 자연을 감상하고 느낄 수 있다. 이처럼 자연에 대한 직접적인 경험이 적으면 자연스럽게 심리적 거리감이 생길 수밖에 없기 때문에 주변의 환경에 문제가 생겨도 내 문제가 아닌 누군가 다른 이들의 문제로 간주하고 행동에 대한 동기가 발현되지 않는다.
자연에 대한 일차원적인 직접 경험이 절대적으로 부족한 상황에서 가장 현실적인 대안은 이차적인 간접 지식을 적극적으로 전달하는 것이다. 환경 교육을 통해 청소년과 유아들에게 환경의 중요성을 일깨워 주는 것은 간접 경험을 제공하기 위한 적극적인 개입이라고 볼 수 있다. 또한 현재와 같이 디지털 기기에 대한 의존이 빠르게 증가하고 있고 디지털 기기의 이용을 시작하는 연령은 계속 어려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디지털 콘텐츠를 통해 환경에 대한 지식을 전달하는 것은 가장 현실적인 대안 중 하나라고 볼 수 있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것은 자연 혹은 환경에 대해 기억에 뚜렷하게 남는 방송 콘텐츠가 얼마나 될 것인가라는 점이다. ‘자연’이라는 단어와 연계되는 프로그램을 누군가에게 떠올려 보라고 했을 때 2021년 현재 가장 자주 떠올릴 만한 방송 프로그램은 MBN이 제작하고 있는 ‘나는 자연인이다’라고 조심스럽게 예상해 본다. 종합편성채널이 제작하는 전통적인 예능이나 드라마가 아님에도 불구하고 시청률이 5~7%에 이른다는 점은 해당 프로그램의 인기를 잘 보여준다.
하지만 비록 KBS가 8년 만에 ‘환경스페셜’을 지난 3월부터 9월 사이에 25편을 방영했고 시청률 또한 5%가 넘으면서 고무적인 출발을 했지만 환경스페셜을 바로 떠올리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오히려 2008년부터 MBC가 제작해서 방영했던 ‘북극의 눈물’과 ‘아마존의 눈물’로 대표되는 ‘지구의 눈물’ 시리즈를 오히려 더 많은 이들이 떠올릴 것이다. 해당 프로그램이 종영된 지 10년이 지났지만 이 간극을 메꿀 수 있는 방송 콘텐츠를 쉽게 떠올리기 어렵다는 점은 자연 혹은 환경에 대한 간접 경험을 전달하는 데 있어서 큰 통로를 잃은 것이라는 해석도 가능하다.
혹자는 레거시 미디어의 영향력이 줄어들고 있고 유튜브를 포함한 소셜 미디어의 이용과 영향력이 빠르게 커진 상황을 고려했을 때 소셜 미디어를 통한 정보의 확산이 더욱 중요하다고 주장할 수 있다. 물론 소셜 미디어를 통해 개인들에게 익숙한 형식의 글과 영상을 통해 내 주변의 환경에 대한 이야기를 풀어나가는 것은 매우 중요하다. 심리적 거리감을 줄임으로써 사람들로 하여금 직접적인 참여를 이끌어낼 수 있는 좋은 방법이라는 점에도 동의한다.
그러나 왜 자연을 보호하고 환경을 보존해야 하는가를 설득하기 위해서는 현재 지구에서 어떠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보존해야 될 자연이 어떻게 변화하고 파괴되고 있으며 이것이 결국 인간에게 얼마나 심각하게 영향을 미칠 수 있는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많은 시간과 자금을 투입해서 말 그대로 ‘단단한’ 프로그램을 제작할 필요가 있다.
이 지점에서 미디어 기업의 역할이 중요해진다. 많은 사람에게 기억될 수 있는 단단한 프로그램을 만들 수 있도록 미디어 관련 기업들이 인적 그리고 물적 지원을 늘려야 한다. 미디어 기업의 공적인 특성을 고려했을 때 해당 기업들은 “지구를 살린다”는 그 무엇보다도 공적인 목적을 위해 지원을 아끼지 않아야 한다. 국민에게 도움이 되는 프로그램을 제작해야 하는 공적 역할을 담당하는 공영방송은 환경 보존을 위한 프로그램 제작에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 미디어 관련 학회에서도 환경 보존을 위한 사회적 움직임에 발맞출 수 있는 연구 및 교육 사업을 추진할 필요가 있다.
서강대학교 메리홀 앞에서 계단을 기울이고 벽에 금을 가게 하고 있지만 묘하게 어우러져 살아가고 있는 메타세쿼이아를 알아봤을 때 느꼈던 희열을 잊을 수 없다. 비록 어릴 때 주변에서 익숙했던 버드나무나 미루나무, 혹은 참나무와는 매우 느낌이 달랐지만 하루 대부분의 시간을 보내는 연구실 바로 밖에 웅장한 나무가 있다는 점이 반갑고 고맙다. 지금 이 글을 노트북을 통해 작성하고 있고 아마도 온라인 기사를 통해 누군가에게 전달이 될 것이며 이는 결국 이차적인 지식 전달 과정일 것이다. 비록 이러한 움직임은 지극히 작지만 언젠가 눈덩이처럼 불어나서 미디어 기업도 공영 방송도 더 나아가 수많은 기업들이 적극적으로 미디어로 환경을 이야기하는 데 적극적으로 나설 수 있으면 하는 바람이다.
“한국대학신문의 창간 33주년을 진심으로 축하합니다. ‘혁신’은 상대적이기에 영원히 멈출 수 없고 한국대학신문 또한 대학 혁신을 위한 꾸준한 발걸음을 멈추지 않길 기원합니다.”
<한국대학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