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애란 울산과학대 학생생활관장

이애란 울산과학대 학생생활관장
이애란 울산과학대 학생생활관장

수백 명이 공동생활하는 기숙사에 식당이 없으면 어떨까. 전국대학교생활관리자협의회가 130개교를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2021년 1학기 기준 전국 대학기숙사에서 식당을 운영하지 않는 곳이 44%나 됐다. 2년간 지속되고 있는 코로나19 상황 속에서 기숙사에서 생활하는 학생들이 감소한 것과 질병 확산의 우려로 식당을 운영 못 한 탓도 있다.

여기에 코로나19 이전부터 기숙사 식당 운영에 따른 재정이 악화하자 많은 대학은 직영보다는 외주업체에 위탁해 급식을 제공해 왔다. 전문성을 갖춘 외주업체마저 자유 혹은 선택 급식(이하 자유식)으로 식수 인원이 많이 감소하자 타산이 맞지 않는다며 식비를 올리거나 의무급식(이하 의무식)을 촉구했다. 

코로나19 사태에 가격 인상도 어렵고 교육부의 자유식 권고를 간과하기가 어렵다는 기숙사 측의 답변에 식당을 접는 업체가 속출했다. 이런 환경·재정적 여건과 맞물려 기숙사 학생들의 급식이 어려운 상황에 처했다.

한 대학은 기숙사가 생긴 이래 외주업체가 식당을 운영해 왔다. 급식 방식은 의무식에서 자유식으로 변경했다. 입사생들에게 식권을 의무적으로 사도록 하는 관행이 거래강제행위라는 공정거래위원회(이하 공정위)의 시정 권고 때문이었다. 자유식이 시행되자 급식 신청자는 45%도 채 되지 않았다. 외주업체는 ‘한끼에 낮은 급식 단가로 최소 2식을 제공하면 인건비와 재료비 충당이 어렵고 그 손실을 결식률이나 대학 내의 매점 수익으로 보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한편 기숙사 식당을 이용하지 않는 나머지 55%의 학생들은 식사를 어떻게 하고 있을까. 급식 이용자의 아침 결식률이 40%이니 급식 미신청자도 결식률 만큼 굶는다고 볼 수 있다. 점심은 대학 식당보다 배달 음식점을 선호했다. 저녁에도 패턴은 비슷했다. 먹고 싶은 음식을 골라 전화로 주문하고 기숙사 입구까지 배달한 따뜻한 음식을 즐겼다. 맛도 기숙사 식당보다 좋으니 의무식 선택에 반발할 수밖에 없다. 배달음식비가 대학식당의 급식비보다 비싸더라도 식당까지 가는 시간 절약이나 좋은 맛에 비용을 감수했다. 공정위가 자유식 도입으로 학생들의 자율적 선택권은 보장할지언정 생활비 부담을 완화한다는 취지와 부합되지 않았다. 이렇듯 배달음식이 일상화된 식문화의 배경에는 코로나19라는 환경적 요인도 크게 작용했다. 

특히 기숙사에서 식사를 만드는 주방이 거의 없는 것도 큰 영향을 미쳤다. 기숙사에 마련된 소규모의 간이주방은 달걀프라이나 라면을 끓이고 간편식 식품을 전자레인지에 데워 먹는 정도에 불과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보니 자택에 거주하는 학생보다 가공식품 섭취율이 높고 자신이 좋아하는 음식 위주로 편식할 가능성도 높다. 기숙사 식당에서 영양사가 만든 식단을 이용하지 않고 한 학기 동안 간편식 위주로 형성된 식습관은 학생들의 건강을 위협하기에 충분하다. 

간편식에 익숙해진 입사생들의 건강에 대한 우려나 기숙사 취식의 중요성을 인지하고 의무식으로 되돌린 대학도 있었다. 일례로 급식 신청자가 40%이하로 급감한 대학은 인건비 지원 등 식당 유지가 어렵게 되자 식당 운영 폐쇄 대신 의무식을 선택했다. 또한 자유식 실시로 신청자의 수가 적정선에 미달되자 식당을 맡을 업체가 없어 의무식으로 변경한 대학도 있었다. 대학의 급식운영 방식이 바뀌자 학생들은 의무식의 부당함을 공정위에 신고하기도 했다. 

기숙사 측은 사생회이나 기숙사운영위원회, 기숙사의 의무식을 명기한 안내자료, 기숙사 식당의 수지 현황 등 소명자료를 제출해야만 했다. 이들 대학에 공정위의 시정조치를 내리지 않은 이유는 학생 대상의 설문조사나 입사생 협의체를 통해 의무식을 선택한 경우에는 강제행위가 아니라고 판단한 것과 의무식을 없앨 시 식당이 폐쇄될 우려가 있거나 식대의 상승으로 학생들에게 불편이 커질 수 있다고 여겼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의무식이 무조건 법에 저촉되는 것이 아니고 예외 지침에 따른 것이다. 다행히 이들 대학기숙사의 식당은 의무식으로 변경한 이후 식당 측에 음식 품질과 매뉴의 다양성을 요구하며 안정적인 급식을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었다. 

사실 급식의 품질이 일정 수준 이상 되려면 최소한 의무식 유지가 필요하다는 기숙사 관리자들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일 필요가 있다. 전국에 있는 대학기숙사의 규모나 시설 그리고 재정 여건이 다른데 천편일률적으로 급식 선택을 자유식으로 밀어붙이면 대학기숙사 식당의 폐점은 증가할 것이다. 이로 인한 피해는 고스란히 기숙사 생활자의 몫이 될 것이다. 대학기숙사의 식당 밥맛은 배달음식보다 단짠맛이 떨어지더라도 매일 엄마가 챙기는 집밥은 돼야 학생들의 건강을 담보할 수 있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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