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진한 영진전문대 학술정보지원팀장

정진한 영진전문대 학술정보지원팀장.
정진한 영진전문대 학술정보지원팀장.

대학에서 화학과를 졸업한 한 청년이 있었다. 실험실에서의 몇 차례 폭발 사고를 경험하면서 화학전공이 자신과 맞지 않음을 깨달게 된다. 이후 청년은 도서관학(문헌정보학)으로 전공을 바꾸게 된다. 우리식으로 얘기하자면 이과에서 문과로 전공을 바꾼 것이다. 이과와 문과가 만나자 시너지를 발휘하기 시작한다. 도서관학을 전공하면서 대학도서관에서 연구를 거듭하던 그는 학술자료들 간의 관계에 주목하기 시작했다. 

이를테면 뉴턴의 만유인력의 법칙이란 논문이 나오고 그 뒤에 수많은 논문에서 이를 인용하면 뉴턴의 논문 가치는 상승한다는 것이고 이 원리를 적용하면 핵심논문을 밝혀낼 수 있다. 바로 인용(citation)이란 개념이다. 이 청년은 과학정보연구소(ISI)란 회사를 설립하고 인용이란 개념을 활용해 SCI(Science Citation Index)를 만들어냈다. 언론에서 가끔 세상을 바꿀만한 연구를 소개할 때 많이 쓰이는 문구 중 하나가 ‘세계적 SCI급 학술지 등재’란 문구는 누구나 한 번씩 들어봤을 것이다. SCI로 인해 ISI사는 글로벌 기업으로 성장했다.(현재 톰슨 로이터스) 

이 청년의 이름은 유진 가필드(Eugene K. Garfield) 박사다. 가필드 박사의 인용 개념은 구글(Google)의 탄생에 직접적 영향을 주게 된다. 구글 검색의 핵심적 요소가 인용이기 때문이다. 가필드 박사와 대학도서관의 만남은 구글로 이어진 것이다. 초등학교에 입학한 지 3개월 만에 질문이 많은 아이란 이유로 학교에서 쫓겨난 학생이 있었다. 아이의 엄마는 학교로 돌려보내는 대신 도서관에 아이를 보내 책을 읽게했다. 도서관은 그 아이에게 질문이 많다고 타박하지 않았다. 천천히 그리고 꾸준하게 아이가 궁금하게 여기는 질문에 대한 답을 찾도록 도와줬고 그 아이는 결국 답을 찾아냈다. 

놀랍게도 그 아이는 철학에서부터 자연과학까지 도서관의 모든 책을 섭렵했다. 성인이 된 그는 세계 과학사에 전무후무한 1093개의 특허를 보유하게 된다. 그 아이의 이름은 토마스 엘바 에디슨(Thomas Alva Edison)이다. 그는 백열전구를 발명함으로써 인류에게 빛을 선사했다. 지금의 GE(General Electric Company)는 에디슨 종합전기회사로 시작됐다. 에디슨의 위대한 업적에는 모든 주제의 학문분야를 접할 수 있었던 도서관이 원천이었다. 가필드 박사와 에디슨 모두 도서관을 통해 세상을 바꾼 것이다. 

영국의 대학평가 기관인 THE(Times Higher Education)는 매년 세계대학평가 순위를 발표하고 있다. 상위 10권 대학 중 8개교는 미국이다. 우리나라의 서울대는 54위, KAIST는 99위이다. 노벨상 수상 국가 중 세계 최다 역시 미국이다.(출처 나무위키)

미국은 397명으로 2위 영국 135명에 비해 그야말로 압도적인 차이를 보이고 있다. 노벨상 수상자의 대학별 분류에서도 미국이 가장 많다. 가장 많은 대학은 하버드대학교로 161명의 수상자를 배출했다. 학술연구는 연구 자체로 머물지 않는다. 학술연구의 결과는 기업을 통해 직접적으로 인류의 삶을 향상시킨다. 전 세계 시가총액 상위 10위 중 7개는 역시 미국이다. 이러한 초격차는 어디에서 기인하는가? 그것은 바로 대학도서관이다. 하버드대 도서관은 700명 이상의 사서와 2100만 권의 장서 및 약 3000억 원의 예산으로 운영되고 있다. 미국은 기본적으로 도서관의 나라다. 미국은 맥도날드 가게보다 공공도서관의 수가 더 많다.(1만 2000 vs 1만 7000) 

모든 도서관의 수는 12만 2000개이다. 이것이 세계대학순위와 노벨상 수상 및 세계 시가총액에서 미국의 압도적 차이를 만들어내는 원인이다. 국가직공무원 신분의 대학도서관 사서가 있었다. 그는 대학도서관진흥법을 만들기 위해 함께 할 사서들을 모으고 초안을 작성하고 국회의원을 만나고 다녔다. 그는 가만히 있어도 안정적 삶이 보장된 사람이었다. 그런 그의 열정이 대학도서관진흥법 제정을 이끌어냈다. 대학도서관평가와 그로 인한 국가 재정지원이 핵심인 법이었다. 대학도서관과 사서 스스로 평가를 받겠다는 것은 세계에서도 유례를 찾아보기 힘든 일이다. 평가는 피하고 싶은 시험이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이를 핵심으로 한 법을 추진하고 제정한 것은 대학도서관에 국가재정의 투입이 절실했고 그것이 대학의 연구경쟁력 나아가 국가경쟁력을 높이는 길이라 대학도서관 사서들이 생각했기 때문이다. 

2022년도 정부 연구개발(R&D) 예산은 약 30조 원으로 결정됐다고 한다(과학기술정보통신부). OECD 국가 중 GDP 대비 1위이다. 대규모의 연구개발 예산 투입은 이미 10년 전부터 지속적으로 이뤄져 왔다. 하지만 세계대학순위와 노벨상 수상 및 세계 시가총액에서 뚜렷한 진전이 없다.

우리나라 모든 대학도서관의 연간 자료구입비 예산 합계는 2500억 원이 되지 않는다. 하버드대도서관 예산에도 미치지 못한다. 만약 연구개발 예산 중 5% 즉, 1조 5000억 원정도의 예산이 대학도서관에 투자한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국가 연구과제에 선정된 교수뿐 아니라 선정되지 못한 교수도 대학도서관의 정보유통과 서비스의 혜택을 보게 될 것이며 학생과 교직원 역시 모두가 그 혜택을 받게 된다. 이로 인해 우리나라 전체 연구경쟁력이 올라가게 되면서 국가경쟁력 역시 상승하게 될 것이다. 도로가 비포장이면 좋은 차라도 속도를 낼 수 없다. 대학도서관이란 연구경쟁력의 인프라부터 구축해야 한다. 가필드 박사와 에디슨을 보라. 그리고 미국을 보라. 그들은 도서관을 통해 세상을 바꿨다. 대학도서관에 대규모 국가재정 투입이 이뤄지지 않으면 앞으로도 예산 투입의 효과는 미미할 것이다. 정부 연구개발 예산의 대학도서관 투입이 조속히 이뤄지길 기대한다. 서울대 도서관 (故)김기태 과장의 헌신에 깊이 감사드리며 그의 씨앗이 열매를 맺길 소망한다.

<한국대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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