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보경 성신여대 총장
대학, 국가의 미래인가
2022년 새해가 밝았다. 톨스토이는 자살 직전까지 갔던 절망의 시간에 그 자신의 삶과 철학을 완전히 바꾼 명작 “사람은 무엇으로 사는가”를 남겼다. 새해 아침, “대학은 무엇으로 사는가”로 생각이 이어졌다. 당대 러시아 혁명운동의 폭력성과 편협성에 실망한 톨스토이는 이 소설에서 개개인의 근본적 변화가 사회 전체를 변화시키는 힘이라는 것을 말하고자 했다. 톨스토이를 떠올린 것은 혁신과 지속가능을 위해 몸부림치는 지금의 대학들에게 대학 스스로 변할 수 있도록 자유가 허용되기를, 아니 자유를 함께 만들어 나가기를 희망하는 바람 때문이다.
‘희망 대한민국’을 향하기 위해 대학의 미래에 대한 질문들을 던지며 성찰해 본다. 대학을 국가의 미래라고 한다. 대학은 지구의 미래를 살아갈, 이끌어갈 사람들을 키워내기 때문이다. 지금 대한민국의 대학은 국가의 미래가 될 것인가.
작년 한해 대한민국의 위상과 경쟁력에 관한 흐뭇한 소식들이 많았다. 2021년 10월 8일 대한민국 정책브리핑 자료에 따르면 “대한민국 달라진 국제 위상, 세계 10위 경제대국으로 성장” “블룸버그 혁신지수 1위” “유엔무역개발회의(UNCTAD)가 한국의 국제 지위를 선진국 그룹으로 변경” “OECD 디지털정부평가 종합 1위” “세계 7번째 우주발사체 독자 기술개발 성공” “기생충, BTS로 대표되는 한국의 소프트파워 세계 2위” 등 많은 지표가 대한민국의 밝은 미래를 보여 준다.
그런데 대부분의 사람은 잘 모르는 암울하나 주목해야 할 지표가 있다. 대한민국의 고등교육 경쟁력이 해마다 낮아지고 있다는 점이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 세계경쟁력보고서에 따르면 한국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2018년 27위에서 2021년 23위로 4계단 상승했지만, 고등교육경쟁력은 2011년 39위, 2018년 47위, 2019년 55위로 하락했다. 세계경제포럼(WEF)의 ‘대학교육 시스템의 질’ 순위도 2011년 55위에서 2017년 81위로 하락했으며, QS 등 글로벌대학평가기관의 세계대학평가순위에서도 한국 대학들의 순위가 낮아지고 있다. 대학이 국가의 미래라면, 대한민국의 미래에 희망을 이야기할 수 있을까.
고등교육의 경쟁력, 고등교육 질의 하락 속에 국가의 미래, 국가의 경쟁력은 지속가능한 것인가. 유엔 산하 WIPO ‘2021년 혁신지수’ 평가에서 한국이 세계 5위, 아시아 1위를 차지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어려운 대내외 여건 속에서도 미래에 대한 투자를 지속하고, 이러한 투자가 무형 자산의 창출, 확산으로 이어졌기 때문으로 보인다”고 이유를 설명했다. 미래에 대한 투자는 개인이나, 기업, 국가 못지않게 국가 미래 인력 양성의 중심축인 대학에게는 필수 요소이다.
그러나 오늘의 한국 대학들은 미래를 위한 투자는커녕 당면 문제 해결에 급급한 참담한 현실이다. 10여 년 이상의 등록금 동결로 날로 열악해지는 대학재정 속에서도 대학들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디지털전환 시대를 이끌어갈 인재양성을 위해 혼신의 노력을 하고 있다. 재정문제 못지않게 대학의 미래와 고등교육 경쟁력 강화를 위해 안타까운 일은 교수들이 본연의 교육과 연구에 집중할 시간이 부족한 점이다. 대학의 유능한 교수들은 각종 제안서, 평가서, 보고서 작성에 늘 바쁘다. 이러한 사정은 대학의 규모가 작을수록 더 심각하다. 인류의 미래를 위해 창의적 연구와 학생 교육, 사회 공헌에 힘써야 할 능력있는 교수들이 보고서 제조기가 되어 가고 있다. 또한 대학을 위한 행정을 해야 할 대학행정에 평가를 대비한 조직, 전문인력을 늘려 행정력 낭비가 확대되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대학평가는 필요한가.
한국의 대학혁신과 대학평가: 대학평가는 누가 평가하는가
현 정부의 고등교육 정책방향은 ‘혁신의 주체로 서는 대학, 대학의 자율 혁신을 지원하는 지역과 정부’이다. 이 방향은 대학인으로부터 환영받았다. 대학이 원하는 대학의 자율과 혁신을 지원하는 것으로 생각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학들은 대학평가의 부담 완화를 요청했다. 현재의 대학평가의 종류와 대학에 미치는 영향, 평가부담 등이 과도하다는 것이 모든 대학의 목소리이자 현실이기 때문이다. 한국의 대학평가는 실시 주체에 따라 정부 주도형, 학문분야 평가 등 인증기관 주도형, 언론사 주도형 등이 있다. 대학들이 참여하지 않을 수 없으며, 부담이 가장 큰 평가는 대학기본역량진단평가(3년 주기), 대학기관평가인증(5년 주기) 등 정부 주도형 평가다. 대학들은 이 두 개의 평가를 하나로 통합해 줄 것을 수없이 건의했으나 실현되지 못했다.
대학평가의 필요성은 누구나 인정한다. 대학평가는 대학 내부의 개혁을 위한 계기 제공, 대학의 투명성과 교육의 질 제고 등 대학의 고등교육기관으로서의 책무성 강화에 긍정적 효과가 있어서다. 반면 대학 특성과 규모 등을 고려하지 않은 획일적 지표에 의한 자율성의 침해와 자기검열, 대학의 특성화와 다양화 저해 및 획일화, 대학의 불평등 심화, 배타적 경쟁 유발로 대학 간 협력활동 저해, 평가를 위한 평가화, 평가부담 등 부정적 영향도 심각하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정부의 획일적 평가와 관리에 길들여진 한국 대학들의 혁신 및 운영 방향은 평가잣대에 의해 결정적으로 좌지우지되고 있다. 기업, 정부, 시민사회, 미래사회가 요구하는 다양한 지식을 생산해야 하며, 가장 자유롭게 생각하고 가장 창의적이어야 할 대학의 어두운 현실이다.
성신여대는 2021년 대학기본역량진단 평가 결과 미선정됐다. 충격이었다. 사범대학으로 출발해 교육을 잘하는 전통있는 대학이며, 2018년 교원·직원·학생·동문 등 4주체 뜻을 모아 직선 총장 선출, 정이사체제로의 안정적 전환으로 사학의 변화와 발전을 민주적으로 이뤄 한국 대학사에 길이 남을 쾌거로 지칭됐다. 2021년 최초로 시행한 사학혁신지원사업에 선정된 직후라 그 충격은 더욱 컸다. 4주체가 힘을 모아 법인과 대학, 행정의 공정성과 투명성을 확보했으며, 진정성 있는 학생중심 교육과 교육환경 투자로 중도이탈율 감소, 교육만족도 상승, 첨단학부 신설을 이뤄 가장 건실하며 가장 민주적이며 가장 좋은 교육을 하는 대학으로 재탄생했음을 자부했던 성신여대가 하루 아침에 부실대학으로 언론 보도됐다. 대학평가의 목적, 대학의 기본역량, 대학의 혁신, 평가의 공정성에 대한 본질적 의문이 제기됐다. 그것도 학생들이 제일 먼저 문제를 제기했다.
극히 미세한 점수차로 선정과 미선정이 결정돼 미선정 시 매년 수십 억의 재정지원을 못받아 학생들이 차별받는 것. 대학의 명예가 실추돼 입시에 영향을 받는데, 특정 정성평가 영역에 과도한 점수차를 부여하는 것. 재정지원제한대학이 아님에도 선정 비율의 공지 없이 미선정해 재정지원을 하지 않는 것 등이 과연 공정한가. 대학의 규모와 특성을 무시하고 모든 대학에 동일한 평가기준을 적용하는 것도 공정한가.
정부 주도의 대학평가 실시 이후 한국 대학의 경쟁력은 높아졌는가. 대학평가는 누가 평가하는가. 신현석 교수의 지적처럼 “좋은 대학평가란 대학이 혁신과 아이디어로 새로운 도전을 하게 하는 평가”이다. 지금 한국에는 획일적 평가로 대학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있다. 대학이 추구하는 특성과 전통, 장점을 살리고 지역 여건 등을 고려한 맞춤형 열린 평가, 규제와 불이익을 주는 것이 아니라 대학 교육의 질과 역량을 높여 진정한 대학혁신을 이루는 데 지원과 도움을 주는 평가가 이뤄지기를 희망한다.
새해 아침, 더 늦기 전에 국가와 사회가 고등교육의 중요성을 다시 돌아보기를, 고등교육이 국가의 미래를 위한 투자에 선순위로 포함되기를, 좋은 대학평가가 이뤄져 대학이 국가의 미래가 되는 희망 대한민국이 되기를 소망한다.
본지가 창간 32주년을 맞아 희망 대한민국 캠페인을 시작했습니다. 코로나19, 학령인구 감소 등 어려움에 직면한 대학들을 격려하고 희망의 메시지로 내일을 향해 나아가자는 취지에서입니다. 캠페인은 참여한 대학 관계자 및 저명인사들이 다음 주자를 지목하는 방식으로 진행합니다. <편집자주>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