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유동 경남도립거창대 총장 “획일적 지표 보고서 평가, 대학 자율성 침해”
나라 안에서는 대학들 줄세우기 경쟁…정작 나라 밖 순위는 하락세 지속
연구·교육에 밤새워야 할 교수, 보고서 써야해 교육 혁신도 못하는 상황
尹당선인 ‘획일적 대학평가 지양’ 공약 언급…안정적 고등교육 재원 확보 주문

박유동 경남도립거창대 총장이 지난 16일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부산·울산·경남 권역 운영협의회 정기총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의진 기자)
박유동 경남도립거창대 총장이 지난 16일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부산·울산·경남 권역 운영협의회 정기총회에서 환영사를 하고 있다. (사진=김의진 기자)

[한국대학신문 김의진 기자] “총장에 취임한 직후부터 교육부에 대학과 관련한 규제가 많다고 목소리를 냈던 것이 기억납니다. 대학이, 특히 전문대는 기업에서 요구하는 맞춤형 인재를 양성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하는데…. 정부의 획일적인 평가가 오히려 이를 막고 있으니 이런 답답함은 어디다 내야 하는 겁니까.”

박유동 경남도립거창대 총장은 지난 16일 열린 전문대학혁신지원사업 부산·울산·경남 권역 운영협의회 정기총회 도중 20여분간 환영사를 전하며 하소연에 가까운 심정을 토로했다. 올해 해당 국책사업의 1주기 성과를 마무리하기 위해 권역 사업단장들이 경남도립거창대를 찾은 자리에서다. 박 총장은 정부의 대학 규제에 대한 내용을 전할 때마다 한숨을 내쉬었다.

박 총장은 “처음 대학 총장으로 왔을 때 우리 대학이 역량강화대학에 해당됐다고 들었다”며 “가만히 내용을 들어보니까 우리 대학 정도가 ‘역량을 강화할 필요가 있어보임’이라는 성적표를 받은 대학 리스트에 들어갔다는 게 이해가 안 됐다”고 말했다.

이어 “우리 대학은 신입생 충원율, 졸업생 취업률, 교원 확보율 등 실질적인 성과 지표가 아주 좋은 대학”이라며 “객관적 지표 내용으로 따져보면 우리 대학은 역량강화대학이 아니어야 하는데 결과가 잘못됐으면 평가 자체가 잘못된 것이 아니었겠나”라고 일갈했다.

박유동 경남도립거창대 총장
박유동 경남도립거창대 총장

■ 줄세우기식 대학 평가…나라 밖 경쟁력은 후퇴 = 국내 최대 전문대 국책사업의 핵심 사업단장들이 모인 회의 자리에서 박 총장은 ‘정부 규제 개혁 필요성’을 역설했다. 그는 한국 대학·교육이 자율성 약화, 경쟁력 하락의 늪으로 빠져드는 길목에서 규제 완화만이 돌파구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특히 특정 지표·성과만을 요구하는 현재의 획일적인 평가방식이 계속되는 한 네거티브(negatiave) 규제와 같은 완화책은 개선의 핵심 정책이 아니라고 꼬집었다. 네거티브 규제는 법률·정책으로 금지한 것이 아니면 모두 허용하는 것을 뜻한다.

박 총장은 보고서 평가 위주의 현 정부 대학 평가 시스템의 교체를 요구했다. 정부가 성과 제표 달성 수준을 보고서로 제출하도록 요구하고 해당 보고서 내용에 대한 답변을 수동적으로 듣는 게 아니라, 정부가 개별 대학의 특수성, 지역·산업과의 관계를 고려해 지원하는 구도가 돼야 한다고 강조했다.

교육계가 정부의 대학 평가 개선을 촉구하는 배경에는 교육기관의 목적이 교육이 아닌 사업비 수주로 전도되고 있다는 불안한 심리가 깔려 있다. 지난해 스위스국제경영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우리나라 대학교육경쟁력 순위는 전체 64개국 중 47위였다. 특히 선진국과 비교해 우리나라는 우수논문 생산 실적과 연구 영향력에서 낮은 점수를 보였다.

■ “보고서 쓰느라 교육 혁신도 못해” = 박 총장은 “대학 교수들이 어떻게 하면 학생들을 잘 가르칠까 밤을 새워 연구해도 모자랄 판에 보고서를 쓰다가 밤을 새운다”며 “보고서 평가 성격이 강한 현재의 교육부 평가 자체를 바꿔야 한다”고 말했다.

교육계는 대학들이 진보하는 산업 기술을 활용해 자유롭게 교육 경쟁력을 강화할 수 있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한다. 대학이 새로운 교육 영역을 확장할 수 있도록 하려면 규제 완화가 선행돼야 한다는 이야기다.

박 총장은 “전체적으로 하락세를 걷고 있는 한국 대학의 현실에서는 혁신의 분위기, 기반을 재구축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며 “윤석열 대통령 당선인의 공약을 보니까 획일적인 평가방식을 지양하고 규제를 완화하겠다는 내용이 있다. 기본적인 성과도 채우지 못한 재정지원제한대학을 제외한 나머지 대학들은 현재의 보고서 경진대회보다는 질적 성장을 도모할 수 있는 지원 체계를 도모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정부, 안정적 재정지원 확보 방안 마련해야 = 박 총장은 “지방대학, 특히 지역 전문대는 당장 6개월, 1년 후 재정 상황도 예측하기 힘들다”며 “안정적인 재정확보 방안이 마련되지 않고 있다 보니 지방대 회생을 위한 아까운 시간만 지나가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올해 초·중·고 교부금이 65조 원으로, 지난해(59조 원)보다 약 6조 원이 늘었다”며 “학생 수는 줄어드는데 초·중·고에서 걷어가는 돈은 늘어난다”고 지적했다.

이어 “반면 정부는 중등교육과 고등교육의 재정 격차를 전혀 느끼지 못하는 것 아닌가 한다”며 “한쪽은 배가 부르고 한쪽은 허기지다 보면 지역에서 고등교육을 책임지고 있는 지방대부터 하나둘씩 어려움에 처하고 폐교 등 곤란한 상황에까지 이를 수 있다”고 했다.

박 총장은 “자원이 부족해 인재로 먹고살 수밖에 없는 나라에선 결국 교육, 특히 고등교육 경쟁력이 커야 잘 살아나갈 수 있다”며 “앞으로의 정부는 지역 전문대 상황까지 잘 살피면서 재원을 합리적으로 활용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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