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천에서 용난다’ 이젠 옛말…부모 소득에 따라 출발선 달라져
금수저 ‘보물찾기’ 흙수저 ‘지뢰찾기’ 삶 시작
Z세대 5명 중 1명꼴 ‘노력해도 성공할 수 없어’ 공정성 인식에 부정적
대학생 4명 중 1명꼴 ‘가정 환경 탓에 상대적 박탈감 느껴본 적 있어’
부모 찬스로 MZ세대 부의 격차, 상대적 박탈감 점차 커져
[한국대학신문 이중삼 기자] 방탄소년단(BTS)의 ‘불타오르네’(FIRE) 노래 가사를 보면 ‘그 말하는 넌 뭔 수저길래 수저수저 거려 난 사람인데’라는 구절이 있다. 한국의 수저사회를 비판한 가사로 읽힌다. 방탄소년단이 노래로 꼬집은 바와 같이 한국은 ‘수저공화국’이다. 부모의 재산이 자녀의 수저 색깔을 결정하고 수저의 색깔은 개인의 운명을 좌우한다. 즉, 금수저는 ‘보물찾기’로 흙수저는 ‘지뢰찾기’로 삶을 시작하는 것이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격언이 있다. 우리는 어린 시절부터 노력은 결코 배신하지 않으며 열심히 하면 반드시 보상이 따르는 법이라고 배웠다. 하지만 현 세대 청년들은 노력과 성실함이 점점 의미를 잃어간다고 말한다. M세대의 한 청년은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은 이제 옛말이다. 부모에 따라 출발선이 달라지는 사회가 됐다”며 “노력과 성실함만으로는 성공할 수 없다. 단순하게 열심히 노력해도 내 집 마련이 어렵다는 불평이 아니라 꾸준함이 가져다주는 의미가 사라진 것 같아 허무하다. 노력하면 보상받을 수 있다는 믿음이 사라진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청년들의 ‘노력해도 안 된다’ 인식은 5명 중 1명꼴로 나타났다. 최근 한국행정연구원이 공개한 ‘포스트 코로나 시대 새로운 사회전환을 위한 과제 연구’ 보고서에 따르면 Z세대 5명 중 1명은 ‘노력해도 성공하지 못한다’며 공정성에 대한 부정적인 인식이 큰 것으로 나타났다. 보고서는 “공정성은 신뢰의 문제와 밀접하게 관련이 돼 있다. 신뢰와 사회적 연대감의 약화가 불평등하다는 인식에 영향을 미쳤다”며 “우리 사회의 불공정성 문제를 제도적 보완을 통해 해결할 수 있다는 국민적 믿음을 높이기 위해 어떻게 제도를 개선할 것인가의 문제에 주목해야 한다”고 첨언했다. 2019년 인구보건복지협회에서 공개한 ‘청년세대의 결혼과 자녀, 행복에 대한 생각’ 보고서에서도 비슷한 결과가 나왔다.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라는 질문에 74.0%가 ‘아니다’라고 답했다. 또한 ‘사회의 불공평을 경험해 봤다’는 항목에서 74.2%가 ‘그렇다’고 응답했다.
부모 찬스가 가져다주는 상대적 박탈감은 청년들에게 막대하다. 학창 시절 사교육비만 봐도 그렇다. 가구소득에 따라 자녀 사교육비 지출이 최대 8배까지 차이가 났다. 지난 1월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전남 여수시을)이 통계청 가계동향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작년 만 7~18세 자녀가 있는 가구 중 소득 상위 20% 가구(5분위)의 평균 자녀 사교육비는 87만2000원으로 집계됐다. 반면 하위 20% 가구(1분위)는 평균 10만8000원에 그쳤다. 사교육비 지출 격차가 약 8배에 달한다.
김회재 의원은 “소득격차가 교육격차로 이어지는 악순환을 끊기 위해선 가장 먼저 우리 아이들의 교육격차를 해소해야 한다”며 “프랑스의 우선교육정책을 벤치마킹해 교육격차가 심한 지역이나 계층에게 대폭적인 교육투자가 이뤄져야 한다. 프랑스의 우선교육정책은 학생 5명 중 1명이 포함되는 대규모 교육지원정책으로 교육격차가 심한 지역을 우선교육네트워크를 통해 대폭적으로 지원하는 정책이다”고 설명했다.
정부를 포함한 교육 전문가들은 사교육비 급증을 막기 위해선 공교육의 강화가 이뤄져야 한다며 EBS 수능 연계 비율 확대 등 많은 정책을 내걸었다. 하지만 사교육비 지출은 매년 천청부지(天井不知)로 치솟았다. 지난달 28일 국회입법조사처가 발행한 ‘초·중·고교 사교육비 변화 추이 분석 및 향후 과제’ 보고서에 따르면 작년 학생 1인당 월평균 사교육비는 36만7000원으로 2020년 30만2000원보다 21.5% 급증했다. 사교육비 조사를 시작한 2007년 이래 가장 높은 수치다. 작년 사교육비 총액도 23조4000억 원으로 역대 최고치를 기록했다.
또한 자녀 사교육을 위해 지출하는 비용이 부담된다고 응답한 학무보의 비중도 20년 사이 크게 늘었다. 지난 8일 한국교육개발원이 공개한 ‘교육에 대한 국민 인식과 미래교육정책의 방향’ 보고서에 따르면 20년 사이 자녀 사교육비 지출이 부담된다는 학부모 비율이 2001년 81.5%에서 2020년 94.3%로 12.8%p 늘었다. 사교육을 시키는 가장 큰 이유는 세월이 지나도 일관되게 ‘남들이 하니까 불안해서’였다. 결국 공교육 시스템을 명확히 구축하지 않고 말만 떠들어댄 정부의 정책 실패로 읽힌다.
■ 대학생 4명 중 1명꼴 부모의 경제력 등 원망해봐 = 하물며 이젠 가난하면 꿈도 접어야 할 판이다. 사법고시가 대표적이다. 이른바 흙수저의 인생역전 무대로 불렸던 사법고시는 2017년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이제 법조인이 되려면 로스쿨(법학전문대학원)진학이 필수다. 하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겪는 청년들은 로스쿨은 돈스쿨이며 ‘그림의 떡’일 뿐이다. 이은주 정의당(비례) 국회의원이 ‘2021년도 교육부 예산안·기금운용계획안’을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기준 연간 로스쿨 등록금은 고려대가 1950만 원으로 최고액을 기록했다. 전체 25개 로스쿨에서 22개 로스쿨의 연간 등록금도 1000만 원을 넘었다. 연간 1000만 원 이상 등록금을 감당할 흙수저가 얼마나 있을까. 이제 개천에서 용이 나지 않는다. 용은 은·금수저 집안에서 탄생한다.
특히 대학생 4명 중 1명은 부모의 경제력 등 자신의 배경을 원망해본 경험도 있었다. 취업포털 사람인이 대학생 298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가정 환경 때문에 상대적 박탈감을 느낀 경험이 있는가’라는 질문에 절반 이상인 50.3%가 ‘있다’고 답했다. 박탈감을 느껴본 적이 있다고 응답한 학생 중 49.3%가 ‘학교생활을 하며 부모 배경을 원망해본 경험이 있다’고도 답변했다. 수저계급론에 공감하는 이들이 늘어나면서 청년층의 상대적 박탈감이 커진 탓으로 분석된다.
2020년 한국개발연구원(KDI)에서 공개한 ‘30세 vs 60세, 세대갈등을 넘어 세대공존의 길로’ 보고서에서도 우리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중요한 요인으로 ‘집안의 배경’을 꼽았다. 김소희 한국개발연구원 여론분석팀 연구원은 “과거에는 ‘노력=성공’이라는 등식이 있었지만 점점 그 등식이 무너지고 있다”며 “청년들은 개인이 열심히 노력하더라도 계층 상승 가능성이 낮다고 평가했고 집안의 배경이 성공하는 데 가장 중요한 요인이라고 생각했다. 우리 사회 구조에 대한 젊은이들의 상실감과 좌절감을 읽을 수 있는 대목이다”고 지적했다.
부모 찬스는 MZ세대 부의 격차도 심화시켰다. 특히 한국의 20대 가구 상위 20%의 자산이 하위 20%의 약 35배에 이르는 것으로 파악되면서 청년들의 자조 섞인 한숨이 커지고 있다. 아무리 노력해도 부모 찬스를 이길 수 없다는 생각이 지배적이다. 실제로 MZ세대의 자산 격차가 커진 원인은 부모 찬스와 연관이 깊다.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난 이들은 경제적 어려움 없이 많은 기회를 제공받는다. 그렇지 못한 이들은 온갖 수단을 동원해 아등바등 기회를 잡으려 애쓴다. Z세대의 한 청년은 “한 달에 월급이 200만 원 조금 넘는다. 핸드폰 요금 등 고정지출 비용을 제외하면 저축할 돈도 많지 않다”며 “소위 은수저라고 불리는 한 친구는 학창 시절부터 용돈만 100만 원을 받았고 부모가 결혼자금으로 5000만 원을 준비해뒀다고 자랑까지 했다. 부러운 건 어쩔 수 없다”고 털어놨다. 상대적 박탈감이 들 수밖에 없는 대목이다.
작년 10월 김회재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통계청 가계금융복지조사 마이크로데이터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2020년 MZ세대가 가구주인 가구의 평균 자산은 3억1849만 원으로 집계됐다. 2019년(2억9649만 원) 대비 2200만 원 증가했다. 전체 평균 자산은 늘었지만 MZ세대 내 자산 격차는 벌어졌다. 작년 상위 20%(5분위)의 평균 자산은 8억7044억 원으로 2020년에 비해 7031만 원 늘었다. 반면 하위 20%(1분위)의 평균 자산은 2473만 원으로 2020년 대비 고작 64만 원밖에 늘지 않았다.
김회재 의원은 “부모의 재력에 따라 출발점이 달라지는 기회의 불공정과 부의 대물림의 고리를 이제는 끊어야 할 때다. 우리 사회가 양극화 해소를 위해 머리를 맞대고 조속히 해결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말했다.












































































